11: 6 건져 내지 않음 - 11: 8 싫어하였고
11: 6 건져 내지 않음 -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 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거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 손에서 건져 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
"하나님의 긍휼"이 사람들의 "평안의 원인"이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실 때 그 백성은 평안을 누릴 수 있지만, 그가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면 그들은 불쌍한 양이 될 수밖에 없다.
1]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 땅 주민"은 유대 민족을 의미한다.
2] 그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므로 각기 이웃의 손에서 학대를 받기도 하고, 다른 나라 임금의 손에서 압제를 받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는 증표이다.
3]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 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1) 땅의 백성
'땅의 백성'은 '나그와'는 반대로 완전한 시민권자들을 가리킨다(이 히브리어 표현을 창 23: 7. 출 5: 5. 민 14: 9에서는 각각 '그 땅 거민', '나라에 … 백성', '그 땅 백성'으로 옮겼다).
완전한 시민권자들은 토지를 소유하고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성경의 몇몇 군데에서는 이 표현이 완전 시민권자들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지방 귀족들을 가리키는지를 단정할 수 없다(레 20: 2, 4의 '그 지방 사람', 왕하 11: 14, 18-20. 21: 24. 23: 30, 35. 왕하 25: 19의 '국민', 왕하 25: 3의 '그 땅 백성', 겔 7: 27의 '거민', 겔 45: 22의 '이 땅 백성').
왕하 24: 14에서 '비천한 자'로 옮긴 히브리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비천한, 땅의 백성'이어서, 이 경우 '땅의 백성'은 하층민을 뜻한다.
* 왕하 24: 14 - 그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포로기 이후 시대에는 '땅의 백성'이 이교적인 혼합주민을 가리켰다(스 4: 4의 '그 땅 백성', 스 10: 11의 '이 땅 족속들'. 느 10: 30-31의 '이 땅 백성'은 문자적으로 '땅의 백성들'을, 스 10: 2의 '이 땅 이방 여자'는 문자적으로 '땅의 백성들 가운데 이방 여자들'을 뜻한다).
나중에 유대교에서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율법을 따르지도 않는 주민층을 멸시하는 투로 '땅의 백성'이라고 불렀다.
(2) 건져 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지키시기 위하여 모든 방법을 사용하셨다.
그러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땅에 침략당하여도 건져 내지 아니함은 그들의 죄악에 대하여 책임을 물으심과 같다.
좋은 예화 :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
슥 11: 7 두 막대기 -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 내가 이 잡힐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이라. 내가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락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 쌔 )
선지자는 죽임을 당할 양 떼를 먹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그의 양들의 형편은 참으로 가련하였다. 그는 그들을 위하여 막대기 둘을 취하였다.
그는 그 하나를 은총(호의)라 부르고 다른 하나를 연합이라 불렀다.
양 떼의 불쌍한 처지에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호의)뿐이었다. 또 그들은 비록 불쌍한 양 떼일지라도 연합이 필요하였다.
1]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이스라엘 백성은 잡혀 죽을 양 떼처럼 비참한 처지에 있었다.
스가랴 선지자의 마음은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스럽지만 그런데 양들을 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다.
2]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그런데도 메시야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목양하여 잘 되게 하려고 막대기 둘을 취하여 그들의 목자로 활동하였다.
이 두 막대기 중 "은총"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관계를 은혜의 관계라고 가르치는 것을 대표하고, "연락"이라는 것은 유대인과 유대인 사이에 형제적 연합을 배양하려는 사역을 상징한다.
은혜와 연민과 긍휼로 양들을 다스리고 먹이겠다는 뜻이었고, 다른 하나는 양들이 서로 다투고 싸우고 나눠지지 말라는 뜻에서 ‘연합’의 막대기라 부른 것이다.
(1) 은총
'은총'은 '아름다움'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는데, 하나님 자신의 아름다움을 종종 가리킨다.
* 시 27: 4 -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 시 90: 17 -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이 은총이라는 막대기는 언약 가운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보이신 은혜를 가리킨다.
(2) 연합
'연락'이라는 막대기는 나누어진 이스라엘이 연합될 것을 가리키는데, 이 연합은 새 언약의 한 부분이다.
* 렘 30: 3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 렘 31: 27, 31 – 2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 렘 33: 7 –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11: 8 싫어하였고 -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
스갸랴는 메시아를 예표 하는 것 같다.
양 떼를 효율적으로 돌보기 위해 목동을 세 명이나 채용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들은 일당을 챙기는 일에만 신경을 썼고, 양들이 무엇을 먹든, 어디로 가든, 사나운 짐승들이 오던, 별로 상관하지 않았고 그저 무사안일주의로 자기 몸만 사리는데 골몰하였다.
그는 한 달 동안에 세 목자를 끊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당시의 여러 악한 지도자 들을 가리킨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목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1]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한 달 동안에 내가 세 목자를 제거하였다"라고 함은 짧은 시간 동안에 메시야께서 이스라엘의 목자를 세 사람이나 버리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 인도하시려는 동기에서 하신 일이다.
세 목자의 정체가 불분명한데, 모든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충실한 왕적 인물 (메시아?)이 이들을 지도자 자리 경쟁에서 제거해 버릴 것이다.
예수님도 패역한 대제사장과 사두개인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대결하셨다.
2]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하반절 초두에 "이는"이란 말이 히브리 원문에는 없다.
여기에서 목자 되신 이의 "마음이 그들을 싫어하셨다."라는 것은 그가 위에 관설된 세 목자를 싫어하셨다는 뜻이 아니고, 유대의 모든 백성을 싫어하셨다는 뜻이다(Calvin).
메시야께서 그 백성을 싫어하시게 되는 원인은 하반절이 말하는 것과 같이 그들이 하나님을 미워하였기 때문이다.
세 목자에 대하여 해석이 여러 가지가 있다.
제롬(Jerome)은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이라 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요시아 왕의 세 아들, 또는 마카비의 삼 형제, 씨릴(Cyril)은 유대의 제사장과 관원과 서기관이라 하였다.
그러나 칼뱅(Calvin)은 "세 목자"라는 것이 많은 수효의 목자를 의미한다고 하였으니 그것이 적당한 해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