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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태일 목사
어느덧 이해의 마지막 달인 12월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참으로 시간이라는 것이 결코 느리지 않고 빠르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유수와 같이 빠른 세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 가라 말씀하심니다.
비록 죄악이 관영하고 사고 사건 난리, 슬픔이 많은 세상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이 땅에 하나님이 생명 주시는 날 동안에 무엇보다도 우리는 즐겁고 행복하게 살 것을 말씀하심니다. 이미 나눈 말씀으로,
1) 첫째로는 즐거운 마음으로 먹고 마시라 말씀하셨습니다.(7절)
2) 둘째로는 매일매일 특별한 날처럼 아름다운 행실로 믿음의 귀한 향기를 발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셋째로는 결혼 생활을 즐기라 말씀하심니다. 즉 가족간에 나눔이 있는 삶을! 충실하고 사랑이 가득한 가정생활을 말씀하심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사랑하는 남 편과 함께! 사랑하는 자녀손들과 함께 즐겁게 살 것을 말씀하심니다.
오늘은 네번째로,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10절)
최선을 다하여 사는 삶이 바로 행복하고 즐거운 삶입니다.
10절을 보면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여기서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하라’는 말씀은 살아있는 동안 내가 맡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힘이 남아 있는 한 열심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10절 하반절에 나오는데 우리는 언젠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을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자만 일할 수 있습니다. 죽어서 무덤 안에 있는 자에게는 아무 할 일이 없습니다. 죽은 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살아 있는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무슨 일이나 최선을 다한다는 것, 그것도 처음만이 아닌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 어려운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 그것도 남이 봐주고 알아주는 것이 아닌, 알아주지도 않고 이름없이 빛도 없이 최선을 다한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님니다.
원래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이 보람되거나 아니면 돈이 많이 생기거나 내 취양이나 능력에 잘 맞는 일이라면 누구나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이 보람이나 마음이 없는 일이라면 어쩔 수 없이 마지 못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두 여인이 맷돌을 갈다가 한 여인은 들림을 받고 한 여인은 들림을 받지 못했다는 말씀을 주님이 마24:41절에 말씀하십니다. 같은 여인이 둘이 맷돌질을 하다가 누구는 들림을 받고 누구는 들림받지 못했는데 그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동일한 환경에서 일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내면적인 삶이 어떠하냐에 따라 하나는 들림을 받고 하나는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아니한 여인은, 건성으로 맷돌을 가는 척하면서 그저 손이나 얹고 돌리는 척한 여인은 영광의 들림을 받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시기 바람니다. 마음 중심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 계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그 분을 따른다면, 우리는 어렵다고 힘들다고 삶을 회피하거나 될대로 되라는 식의 운명론적으로 살면 아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을 주님이 주신 선물로 기쁘게 받아 들이고 그것을 행하되 힘써서 일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10절에 말씀처럼 죽으면 일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죽으면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산자들에게는 일이나 계획이나 지식이나 지혜나 모두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쓸데없다고 밀어낼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 자기 삶을 최선으로 일구고, 세워 가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약하지만 약할 수 없는 내가 되려는 노력속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인간의 위대성이 나타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완성됨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노동을 축복으로 생각하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동을 고생으로 생각하고 먹고 노는 것이 축복인 줄 착각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성공 출세하면 먹고 놀기만 하려 합니다.
이스라엘의 속담 가운데 “자녀에게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노동을 가르치는 것은 축복입니다. 괜히 자식들 고생시킨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모 잘못 만나서 고생한다고 말하지 말고 일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요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고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살전3:10절)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일하기 싫으면 죽으라는 이야기입니다. 먹지 않으면 죽는 것이고 죽으면 더 이상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습니다. 일도 살아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에게 생명 있음을, 살아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즐겨 부르던 찬양중 ♬ 할렐루야 주를 찬양 할렐루야 주를 찬양 생명있음을 찬양해.... 생명있음을 감사하고 그리고는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몇 등 했고, 점수가 몇 점이고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거기서 하나님이 나를 세우신 그곳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오는 불행이나 실패나 결과는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고 부모나 주변 사람들의 책임이 아닌 바로 내 책임입니다. 그러나 진짜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했다면, 그 때는 내 책임이 아닌 것입니다. 환경이나 사람이나 누구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봅니다. 내가 부족해서, 더 많이 노력하고 애쓰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면 누구라도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최고의 자리에 올라갔더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최하로 굴러 떨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오늘 10절 말씀에 "자신의 손에 주어진 일을 힘을 다하여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자신에게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께서 맡겨 주셨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놀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내가 아직도 할 일이 있고, 건강이 있고, 생명이 있다는 사실은 바로 감사요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나에게 주어진 일이 비록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소중히 생각하며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것이요 여러분의 삶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것이 기쁘고 즐겁게 인생을 사는 비결입니다.
얼마 전에 제대하고 오는 길에 지하철 선로에 한 아주머니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바로 뛰어 내려가 그 생명을 구한 젊은이의 이야기도 들려집니다. 기런 일을 볼 때 그 자리에서 자기 생명까지 돌보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12. 1에는 서울 창신동 신발 가게에서 불이 일어나 많은 재산 피해와 생명들이 불에 타 숨졌습니다. 그 가운데도 한 아주머니는 불이났으니 피신하라고 그 새벽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를 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살려냈습니다. 그러나 막상 자기와 29살 먹고 유치원 교사생활을 하는 딸과 손잡고 나가려하니 불길이, 연기가 닥쳐 나가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림니다. 딸은 나오지 못하고 그 아주머니는 다시 길을 찾아 나온 후 다시 딸을 찾으러 그 방에 가보니 두꺼운 잠바를 뒤집어 쓰고 연기에 질식되 죽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마우면서도 너무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그 불타는 와중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살리려 최선을 다한 그 모습이나 사랑하는 딸을 잃은 그 아주머니의 마음 무엇으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남을 위하여 생명까지 걸며 최선을 다하는 귀한 분들 많습니다.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모름니다.
가끔 믿는 성도 중에 믿음을 오해하고 땀을 흘리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놀고먹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열심히 땀을 흘려야 바로 참된 믿음입니다.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결코 바람직한 인간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믿는 사람으로서 바른 인간상을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노동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후 타락하기 전부터 주신 3가지 축복입니다. 또한 타락이후에도 에도 변함없이 주신 축복중 하나입니다. 결혼, 안식, 노동은 인간 타락 이전 이후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다만 타락이후 첫째로 노동의 목적이 변질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해야 하는데 그러하지를 아니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죄인데 일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지 않으니 타락된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노동의 종류 문제입니다. 어떤 일은 귀히 여기고 어떤 일을 천히 여김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야 하는데 어떤 일은 천하다고 열심히 안합니다. 세 번째로는, 노동의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일을 열심히 힘쓰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그것도 끝까지 잘 감당해야 하는데 그러지 아니합니다. 이 시간은, 이 기회는 다시 오지 아니할 것으로 알고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일을 안하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의 면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을 더욱 잘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제목도 놀고 먹으려는 심리가 담긴 기도제목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이런 기도에는 응답이 없다 했습니다. 야고보는 자기 욕심에 이끌려 기도하는 사람들은 구하여도 얻으려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대개 사람들에게 복권 심리가 있습니다.
기독교인에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밖의 어떤 분은 복권을 사고 당첨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온 교인들이 모여 금식하고 철야기도하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복권 당첨을 위한 기도는 응답되지 않아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복권은 아니더라도 그런 유사한 기도제목, 일 안하고 놀고 먹으려는 심사를 가지고 기도할 때에 그 기도에 응답되지 않는 순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얼마전 뉴스에 미국과 중국에서 똑같이 로또 복권 추첨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중국에서 왕이라는 할아버지는 당첨금 6억4000만원(500만위안)을 전액 자선사업에 기부하였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중국 북서부지역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월 7만7000원(600위안)의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1일 허름한 외투 차림으로 당첨금을 수령하기 위해 로또 운영회사를 방문한 그는 즉석에서 장학사업에 50만위안을 기부했습니다. 이 노인은 나머지 350만위안도 기독교단체를 통해 전액 자선사업에 기부했습니다.
아내와 사별한 이후 유일한 혈육인 딸에게는 로또에 당첨된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습니다. 외지에 나가 살고 있는 딸은 이미 안정된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 했고, "나는 새 라디오 한 대가 필요할 뿐 매월 600위안씩 지급되는 연금으로 충분하다"고 말한 왕 노인은 평소에도 여건이 허락되는 한 주변에서 도움을 요청하기위해 내미는 손길을 거절한 적이 없는 것으로 소개됐습니다.
2003년부터 꾸준히 복지 로또를 구입하고 있는 것도 로또를 통해 조성되는 자금이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만연한 배금주의에 경종을 울려줄 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지난 달 23일에는 5년 전 6540만달러(약 654억원)의 로또 복권에 당첨된 미국 부부가 끝내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는 이야기입니다. 5년 전 이 부부는 꿈같은 당첨금을 받자마자 곧바로 이혼했고 그 이후 지게차를 운전하던 남편인 맥 퀘인 멧칼프는 호주로 이민가 행복하게 살겠다는 꿈도 못이룬 체 복권당첨 3년만인 2003년 45살에 켄터키의 주택가에 살던 중 전처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 부양 문제와 당첨 이전의 음주 운전 혐의 등 여러 가지 법정 싸움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내였던 버지니아 멧칼프 메리다는 “나는 남편과 다른 길을 갈 것”이라고 했고 종이 박스에 주름 내는 일을 하던 그녀는 이를 그만두고 오하이오강이 내려다보이는 저택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 부인은 복권 당첨금으로 두 번째 집을 사면서 세입자를 퇴거시키려다 소송을 당했고 숨진 당일에도 관련 청문회가 예정돼 있기도 했으나 지난 달 23일 숨진 채 그의 자택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꼭 행복한 것 아님니다.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님 것은 이렇게 인생을 황무하게 만듭니다. 수고하며 일할 수 있다는 것이 특권이요 은혜입니다.
여러분! 일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신 적이 있습니까?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은 근면한 사람입니다. 일을 다스려야 합니다. 또한 일에 치여서 일을 피곤하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동기와 목표가 뚜렷할 때에 즐거울 것입니다.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당신은 무슨 재미로 사노?" 하고 물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너는 예수님도 안 믿고 신앙생활도 누리지 않으면서 무슨 재미로 사노?"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되고 즐겁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주신 복 가운데서 우리에게 먹고 마시며 일할 수 있고 가정을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며 이 땅에서의 은혜를 베푸시는 시은소인, 교회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성도들을 위하여 일하는 것, 얼마나 감사한 삶인지 모름니다. 일만 있으면 날 불러 주시오. 어디든지 가오리이다.
일을, 사역을, 직분을 짐으로, 고난으로만 생각 마시기 바람니다. 은혜요 축복의 기회요 놀라운 기쁨입니다. 감사하며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오직 충성이라 하셨습니다. 일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서 초등학교 다닐 때 연필이나 공책이 귀할 때 쓰던 몽당 연필과 같지 않나 생각납니다. 글씨나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에게 붙잡히기만 하면 좋은 글을 쓰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그려집니다. 쓰다가 또 쓰면 닳아지고 깍아지고 나중에는 큰 것이 점점 작아지고 작아집니다. 연필로서의 생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의 인생이 바로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몽당 연필이 아닌가 합니다. 몽당 연필은 이제 조금만 더 쓰면 자기의 생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버리지 않고 더 쓰려하면 다 쓴 볼펜 껍데기를 가져다가 몽당 연필을 끼워서 마지막까지 썼던 것처럼 하나님이 그래도 우리 인생을 쓰심도 그와 같지 않나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쓰지도 않은 새 연필 같이 깨끗하고 멋도 있었으나 점점 쓰고 또 써서 결국 몽땅 연필이 되고 다 쓰면 버려지는 것인데 몽당 연필은 때가 되면 더 이상 쓰이지 않고 닳아 없어지고, 깎기고 깎여 결국 없어지는 것입니다.
일생을 믿음안에서 참고 인내하며 교회와 주의 나라위해 희생하고 헌신적으로 살았지만 그러나 그 삶에 대한 영광은 연필 자신이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그 연필을, 심지어 몽당 연필같은 우리를 붙잡아 아름다운 삶의 그림을 그리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손에 들린 몽당 연필이었을 뿐이라는 이런 겸손한 고백, 얼마나 멋진 표현입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했다고 착각합니다. 자기를 내세우며 자기중심적으로 일한다고 할 때 그것은 부끄러운 일군이요 세상에서 영광과 칭찬을 다 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의 상을 이미 다 받은 것이라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힘을 다하여 수고하고 그 상급과 은혜는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서 누리는 삶인줄 믿습니다.
교회를 위해 온갖 수고와 노력을 다하여 공로가 크게 인정된다고 해도 그것을 우리가 한 것 아니라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손에 들린 연장이며 도구일 뿐이고 하나님께서 하셨고 고백한다면 이것이 훌륭한 신앙인의 자세일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오늘이라도 너 이제 다 썼다 하시면 다 쓴 몽당 연필처럼, 자꾸 쓸다가 다 닿아 없어진 싸리 빗자루처럼, 걸레처럼 더러운 곳을 그렇게 닦다가 자신은 너무 더러워졌지만 하나님의 역사의 자리에서 들림받는 것이 우리 인생일진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는 주님의 손에 들린 도구로 쓰임 받을 뿐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겸손하게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찬양하며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 안에 아름답게 쓰여진 것임을 인정하는 성숙한 모습으로 승리하기 바람니다.
여러분! 잘난 성도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잘났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입니다. 못난 성도 되십시오. 그저 어린 아이가 부모없이 살 수 없음같이 그저 우리는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아무 것도 아님니다. 아무 것도 못합니다. 전적으로 그 분의 은혜와 능력만을 크게 의지하는 충성스런 일군들이 다 되시기를 바람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바 되어, 무슨 일이든지, 교회나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업장이나 어디서든지 힘을 다하는, 최선을 다하는, 크고 멋진 아름답게 주님의 손에 붙잡힌바 되어 귀하게 쓰임받는 거룩한 주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