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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아가라.
성경본문 : 에스더 4: 15 - 5: 2
15.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대로 다 행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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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1. 제 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보좌에 앉았다가
2.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홀 끝을 만진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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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 할트는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여자 비행사였습니다. 그녀는 대서양 횡단을 처음으로 성공시킨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대서양 횡단은 쉽게 이루어 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대서양 횡단 중에 바다 한복판에서 엔진이 고장나는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비행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그 위기를 넘겨 무사히 대서양 횡단 항공을 마쳤습니다.
대서양 횡단을 성공하고 돌아와 보스턴에서 기자회견이 열렸을 때 기자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엔진이 고장났을 때 그 위급하고 어려운 순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습니까?"
그 질문에 그녀는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그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바다 위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기자는 자세한 의미를 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제가 위기에 있었을 때는 이미 대서양의 반을 넘어왔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갈 수가 있었겠습니까? 포기하면 떨어져서 죽을 것이 당연했지요. 그 당시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앞으로 가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실패한 사람들의 특징은 오래 참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주저앉거나 때로는 너무 쉽게 폭발합니다.
쉽게 포기합니다.
그러나 꿈을 이룬 성공한 사람들은 아무리 어렵고 불리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결코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현실이 어려워도, 낙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 아름답게 쓰임 받았던 사람들 중에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우는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비록 갈 바를 알지 못한 상태이지만, 그래도 나아갔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얻을 땅까지 나아갔습니다(히11:8).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수많은 난관과 역경을 만났습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도, 답답한 일을 당하고도, 핍박을 받고도, 거꾸러뜨림을 당하고도, 그래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고후4:8,9). 그런데 남자들만 그렇게 산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남성 못지 않게 목숨걸고 앞으로 나아갔던 여성들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에스더가 바로 그러한 여인입니다.
에스더는 우리와 같은 이민자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민 2세입니다. 포로로 잡혀 온 부모님의 딸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사촌오빠인 모르드개의 손에서 곱게 자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이 왕명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왕비인 와스디를 폐위시키고, 전국의 처녀들 가운데에서 새로운 왕비를 뽑을 때, 에스더가 행운의 주인공이 되어 왕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에스더에게 이상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나서부터 자신을 키워준 사촌오빠 모르드개가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재를 끼얹고 성밖으로 나가 대성통곡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더 왕비는 내시 하닥을 통해 사촌오빠가 총리대신 하만의 엄청난 음모 때문에 슬퍼하고 있다는 소
식을 들었습니다. 그가 모든 유대인들을 멸절 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하만은 왕에게 은 1만 달란트라는 거액을 뇌물로 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민족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인데, 그것은 왕비인 에스더가 왕에게 직접 나아가 이 음모를 밝히라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이 말을 듣고 다시 하닥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자신이 비록 왕비라 할지라도 왕이 부르지 아니하면 왕에게 나아갈 수 없고 지금 왕을 만난 지가 30일이나 되어서, 자기로서도 어찌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시 모르드개는 하닥을 통해 에스더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에스더여, 그대가 왕궁에 있다고 무사할 줄 아는가? 하만이라는 자가 얼마나 무서운 인간인데, 이럴 때 그대가 잠잠하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우리 민족을 구원하시겠지만, 그대와 그대의 집안은 영원히 망하리라. 생각해 보라. 그대가 왕비가 된 것도 이럴 때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겠느냐?"
하닥을 통해서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난 에스더는 비로소 중대 결심을 합니다.
15절과 16절을 보겠습니다.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환경과 상관없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첫째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만을 신뢰하라.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이 부르지 아니하면 왕 앞에 나아갈 수 없는 규례를 어기고 왕 앞에 나가겠다고 결단을 하면서, 사촌오빠 모르드개에게 한 가지 요청을 합니다. "나를 위해서 사흘 동안 금식해 주세요." ]
금식 중보기도를 요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모르드개에 금식 중보기도만 요청하고 궁궐 여기 저기를 싸돌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 자신도 시녀들과 더불어 금식하겠다고 합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에스더는 하나님만을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모든 인간적인 방법은 다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녀가 명색이 왕비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인간적인 방법이나 사람의 꾀를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오빠, 내가 명색이 왕비인데 왕 앞에 나아가면 차마 죽일까,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입생 로랑 한 벌 잘 빼 입고 블란서제 향수를 몸에 살짝 바르고, 왕 앞에 나가면 문제없을 것 같아요. 내가 왕을 꼬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인간적인 꾀를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적인 방법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그녀는 하나님의 방법을 썼습니다. 사흘간 금식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사실 금식을 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흘간 금식하고 나면 얼굴이 창백해지고 핏기가 없어집니다.
심하면 얼굴이 수척하다 못해 꾀죄죄하게 됩니다.
그러한 몰골로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사흘간의 금식은 에스더의 외모 가꾸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외모 가꾸기에는 오이 마사지나 머드팩 마사지가 더 어울릴 것입니다. 아니면 사우나를 가든지 온천을 가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달랐습니다.
왕 앞에 나아가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은 다 내려놓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1977년 우리 나라 산악팀이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했습니다. 당시 고상돈이라는 산악인이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정복해서 영웅이 되었지만, 에베레스트 정복의 쾌거 뒤에는 김영도 당시 등반대장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모 교회의 장로님이셨습니다. 김영도 장로님이 등반대를 이끌고 험준한 코스를 올라갈 때, 갑자기 산소통의 조절 장치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에베레스트 봉우리를 코앞에 두고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산소 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등반을 강행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컸습니다. 또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가자니 너무 억울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 하시리로다"라는 시편121편3절 말씀이 떠오르더랍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붙들고 올라가는데 눈 속에 뭔가 발에 걸리더랍니다. 뭔가 하여 눈을 헤쳤더니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사용하고 남은 산소통 12개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었습니다. 그리하여 대원들은 그 산소통으로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었고, 결국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복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길지 않은 목회기간 동안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이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나아갔을 때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에디슨의 말처럼 시간이 약간 더 걸릴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자꾸 동원합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같은 세상에서도 돼지 머리 같다놓고 그것에 절을 하며 잘되기를 비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년 전 최첨단 인공위성인 무궁화 위성을 발사하던 때의 일입니다.
남미에 있는 프랑스령인 가이아나에서 위성을 발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국의 과학자들이 가지고 갔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돼지 머리입니다.
한국의 과학자들은 가이아나에서도 돼지머리를 구입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 있는 돼지머리로 고사지내면 부정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돼지를 잡자마자 비행기에 실어 냉동도 하지 않고 가이아나에 공수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그 앞에 넙죽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요즘에는 인공위성이 흔하기 때문에 발사 장면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거의 없습니다만, 당시에 인공위성 발사직전에 돼지머리 갖다놓고 절하는 모습이 하도 신기하니까, 외신기자들은 돼지머리 놓고 절하는 장면만을 계속 실었습니다.
얼마나 망신입니까?
이런 어리석은 짓을 과학자들이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리석은 일인 줄 모릅니다.
돼지머리가 인공위성의 안전을 보장해줍니까?
돼지머리에 열심히 절하면 떨어질 인공위성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웃기는 짓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고사상위에 올려있는 돼지머리가 다 웃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 삶의 모든 해답은 돼지머리에 있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열쇠는 세상에 있지 않고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스더는 인간적인 방법은 다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나아갔습니다.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에스더와 같이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환경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2) 현실에 안주하지 마라.
환경과 상관없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둘째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아야 합니다. 현실 보다 미래를 보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의 에스더를 보십시오. 그녀는 "죽으면 죽으리라" 희생하기로 결단하고 왕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페르시아 왕실의 법도에 의하면 누구든지 왕이 불러야 왕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 앞에 나아가면 즉시로 사형입니다. 왕 앞에 나가서 살 수 있는 단 한가지 방법은, 왕이 금홀을 내밀어 허락할 때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에스더는 희생을 각오했습니다. 어쩌면 왕 앞에 나갔다가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과거 와스디 왕비를 폐위시킨 적이 있는 아하수에로 왕이 자신을 왕비 자리에서 쫓아낼 수도 있습니다.
이민 2세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어렵게 왕비에 올랐는데, 그 모든 것을 한번에 날려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라"고 결심했습니다.
혼자서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지만, 수많은 시녀를 두고 산해진미를 마음껏 먹고 호화로운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들 보다 미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성도의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과거라는 감옥에 갇혀있고, 현실이라는 올가미에 매여 있지만, 성도는 과거보다는 현재를, 현재보다는 미래를 항상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정복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집착하고 현실에 안주하는가, 아니면 반대로 미래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믿음
의 경중을 어느 정도까지는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사람은 항상 과거 지향적입니다.
현실을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미래를 지향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우리 교회는 150명 정도 모이는 교회였는데, 이제는 300명 이상이 모이는 교회다"라고 하는 시각은 믿음의 시각이 아닙니다. 그러한 시각은 현실주의 교회입니다. 반면에 "지금 우리가 300명이 모이지만, 금년 말에는 350명이 모이고 내년에는 500명이 될 것이다. 그리고 2010년까지는 수많은 영적 거인들이 나와 크라이스트처치와 뉴질랜드와 온 세계를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시각은 믿음이 시각입니다.
미래 지향적인 교회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까지는 세상의 향락을 즐기는 막가파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술 담배끊고 새사람이 되었다"라고 하는 현실적인 고백도 좋지만, 더 귀한 고백은 미래 지향적인 고백입니다. "지금은 이렇지만, 나는 점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 갈 것이다. 나는 내년 이맘때에는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 받을 것이다"라고 하는 고백이 미래지향적인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곧 미래에 있는 모든 것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과거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고 앞으로 전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18세기의 감리교회 창시자 요한 웨슬러 목사님은 아주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설교 원고를 태우는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7년마다 한 번씩 규칙적으로 자신의 설교 원고를 불에 태우는 것이 웨슬러 목사님의 버릇이었습니다. 그 분은 평생 동안 사역을 하면서 모두 1만 번이 넘게 설교를 하신 분인데 그 설교 원고만 해도 산더미처럼 많았을 것입니다. 웨슬러 목사님은 그것들을 아낌없이 태워버렸습니다. 그 원고들 때문에 더 이상 말씀을 연구하고 준비하는데 소홀해지느니 차라리 그 원고들을 없애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자세로 말씀을 연구했습니다.
이러한 웨슬러 목사님의 삶의 자세가 미래 지향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사도 바울도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3절에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고백하며 뒤엣 것은 보지 않고 앞엣 것에만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바울처럼 지나간 과거는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에스더처럼 현실에 안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3) 믿음으로 행동하라.
환경과 상관없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째로 믿음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기도했으면 믿음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사실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정상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행동할 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합니다.
홀리데이인(Holy day Inn)의 창업자인 케몬스 윌슨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 제재소 직원이었던 그는 아침에 출근해보니 자기의 책상 위에 해고 통지서가 있었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황당하게 해고된 그는 굉장히 화가 났고 직장과 자기 상관에 대한 복수심이 끓어올랐습니다. 그는 제재소 옆에 똑같은 제재소를 만들어 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자본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포자기한 나머지 집을 떠났습니다. 여러 달 동안 방황하면서 모든 것을 잊으려 했지만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가진 돈을 모두 다 써버리고 다시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자살하고 싶어. 모든 노력을 다해 보았지만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어." 이때 아내는 남편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이 한가지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 있어요. 당신은 당신이 처한 이 상황과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기도해 보신 적이 없잖아요." 아내의 말 한마디는 그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맞아, 나는 기도해 본 적이 없지.' 그후 그는 아내와 더불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기도하는 동안 신기하게도 자기 마음에 있었던 직장과 상사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 집을 담보로 융자를 얻어서 조그마한 건축업을 시작했는데 건축업이 너무 잘되어 5년만에 제 발로 설 수 있는 조그마한 사업가로서 자기 기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는데 그의 마음속에 "좋은 호텔은 서비스는 좋지만 값이 비싼 반면, 작은 호텔은 값은 싸지만 서비스가 좋지 않은데, 적절한 가격에 좋은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호텔을 만들라"는 소원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이러한 소원을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하나 둘 호텔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세계적인 체인이 되어 홀리데이인이라는 호텔이 되었습니다.
기도했으면 행동이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세가 홍해 바다를 어떻게 갈랐습니까? 모세가 하나님 말씀대로 지팡이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자, 밤새도록 동풍이 불어 홍해가 갈라졌고 그리로 수백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갔습니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어떻게 건넜습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언약 궤를 맨 제사장들을 앞세우고 요단강 물에 발을 담그자,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마른땅이 되어, 백성들이 건너가는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에스더도 믿음으로 행동한 사람이었습니다.
5장 1절을 보겠습니다. "제 삼 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보좌에 앉았다가"
'제 삼일에'라는 말은 에스더가 금식기도를 마친 직후라는 말입니다. 금식하며 기도한 지 정확히 사흘째 되는 날, 에스더는 응답을 확신하며 믿음으로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왕이 부르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죽을지도 모르지만,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에스더는 기도한 후에 왕의 마음을 하나님이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 보다 크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과 백성들의 금식하며 드린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금식을 마친 그녀는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아마 사흘 동안 금식할 때는 왕후의 예복을 입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금식하는 동안 4장 1절과 3절에서 모르드개가 굵은 베를 입고 금식하며 기도한 것처럼, 슬픔을 상징하는 굵은 베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기도가 끝났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였습니다. 더 이상 굵은 베옷을 입고 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왕후의 예복을 입었습니다. 이제는 울어야 할 때가 아닙니다. 기도를 마쳤기에 이제는 기뻐하며 왕 앞에 나아갈 때입니다.
그녀는 왕이 거하는 어전 맞은 편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2절을 보겠습니다.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어 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홀 끝을 만진지라."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를 보았을 때, 심히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왜 그렇게 보였습니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앞서도 말했지만, 금식을 한 에스더의 얼굴은 꽤죄죄하게 보여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왕이 어전 앞에서 에스더를 보는 순간, 너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심히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하여금 에스더가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다니엘서에도 나옵니다.
다니엘 1장을 보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바벨론에 끌려왔습니다. 다니엘은 10일 동안 사치스러운 음식은 먹지 않고 채소만 먹겠다고 뜻을 정하였는데, 10일이 지난 후 왕의 진미를 먹은 다른 소년들에 비해서 다니엘의 얼굴은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하게 보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에스더의 얼굴이 심히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왕은 금홀을 내밀어 에스더 왕비를 받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하만의 음모를 무위로 끝나게 하여 유대인의 몰살을 면하게 되었고, 오히려 하만과 그 열 아들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에스더는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행동한 여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이 믿음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의 모든 해답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에스더와 같이 하나님만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현실에 안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열쇠는 세상에 있지 않고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의 시를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한 걸음이 당신을 그리 멀리 데려다 주는 것은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걸어야 합니다.
한 마디 말로 당신 자신을 다 설명하는 것이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말해야 합니다.
한 인치가 당신을 크게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하나의 행동이 모든 것을 이루어 놓는 것은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행해야 합니다."
저는 이 시에 한 줄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단 한 번의 시도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어도
당신은 그래도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