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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적 확신: 휘포스타시스 (ὑπόστασις, 실상이요)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님의 사자후가 터집니다! 믿음은 "잘 될 거야"라는 심리적 위안이 아닙니다! 헬라어 '휘포스타시스'는 건물 밑에 놓인 '기초 석', 혹은 권리를 보장하는 '부동산 권리증서'를 뜻합니다!
즉, 믿음은 아직 손에 잡히지 않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미 내 손에 꽉 쥐고 있는 '객관적이고 실체적인 권리증서'로 여기는 우주적인 배짱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의 유죄 판결: 엘렝코스 (ἔλεγχος, 증거니)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확실한 실체로 확정 짓는 '엘렝코스(법정에서 죄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 확신)'입니다! 믿음의 눈을 뜬 자는 말씀으로 지어진 우주의 배후에 계신 창조주를 응시하며 세상의 허상을 비웃습니다!
II. 홍수 이전의 거인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11:4-7)
(히 11:4, 6)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피의 제사와 예배의 본질 (아벨): 아벨이 가인보다 나았던 이유는 그의 도덕성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의 죄악을 대속할 '피의 제사'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임을 믿음으로 꿰뚫어 보았습니다. 믿음의 예배만이 죽어서도 말합니다(Lalei)!
죽음을 건너뛰는 동행 (에녹): 에녹은 심판이 임박한 시대 속에서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분이 보상하신다는 '신전의식(Coram Deo)'이 그의 뼈속에 사무쳤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심판에 대한 경외 (노아): 노아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Rain)'와 '홍수'에 대한 경고를 들었을 때, 세상의 조롱을 십자가의 경외함으로 박살 내고 120년간 방주를 지었습니다. 믿음은 현실의 데이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생명을 올인하는 것입니다!
III. 족장들의 행진: 영원한 본향을 향한 나그네 (11:8-22)
(히 11:10, 13)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불확실성을 향한 확실한 돌격 (아브라함): 75세의 노구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Mē epistamenos pou erchetai)" 떠난 아브라함의 동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눈에 보이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설계하고 지으실 영원한 도성, '천국'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불가능을 임신케 하는 신뢰 (사라): 단산한 사라는 자신의 생물학적 한계를 보지 않고, 약속하신 이의 '미쁘심(Piston, 신실함)'을 보았습니다. 믿음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이의 능력을 보는 것입니다!
멀리서 보고 환영하는 삶 (13절): 아더 핑크(A.W. Pink)가 감격하며 강해하는 대목입니다! 족장들은 약속의 성취를 당대에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스파사메노이(Aspasamenoi, 멀리 있는 사랑하는 자를 향해 손을 흔들며 환호하듯 반기다)' 했습니다! 그들은 이 땅을 영구 거주지가 아닌 '호텔(나그네)'로 여겼기에, 세상의 유혹에 닻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IV. 모세와 출애굽: 보이지 않는 왕을 향한 선택 (11:23-29)
(히 11:26-27)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수치를 영광으로 바꾸는 가치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
존 오웬(John Owen)의 장엄한 통찰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황태자라는 '보이는 권력'을 쓰레기처럼 던져버렸습니다. 왜입니까? 훗날 오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이 애굽의 모든 금덩어리보다 우주적으로 더 가치 있음을 계산해냈기(Hēgēsamenos) 때문입니다!
신적 실재에 대한 응시: (보이지 않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모세가 바로 왕의 서슬 퍼런 칼날을 두려워하지 않은 비결은 단 하나입니다! 보이지 않는 만왕의 왕 여호와 하나님을, 눈앞에 있는 바로보다 더 생생한 실체로 '응시하며 참아냈기(Ekarterēsen)'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의 야성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사는 데서 나옵니다!
V.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불멸의 군단 (11:30-40)
히브리서 11장의 피날레, 기독교 역사상 가장 처절하고도 눈부신 순교와 승리의 리스트가 폭발합니다!
(히 11:33, 35-38)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승리의 사자들 vs 고난의 어린양들: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사자의 입을 막고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33-34절). 그러나 똑같은 믿음으로 어떤 이들은 톱으로 몸이 잘려 나가고 채찍에 맞으며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광야를 떠돌았습니다!
존 맥아더가 일갈합니다! "성공하는 것만 믿음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위해 고난받고 죽임당하면서도 끝내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더 거대하고 맹렬한 믿음의 절정입니다!"
우주적 판결문: 욱스 엔 악시오스 호 코스모스 (ὧν οὐκ ἦν ἄξιος ὁ κόσμος,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11장의 가장 웅장하고 품격 있는 결론입니다! 헬라어 직역은 "세상은 그들의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The world was not worthy of them)!"입니다.
온 세상을 다 합쳐도 이 십자가 군사 한 명의 가치보다 가볍습니다! 세상이 그들을 핍박하고 죽였으나, 사실은 세상이 이 거룩한 거인들을 품기에는 너무나도 더럽고 좁고 보잘것없었다는 하나님의 우주적 선언입니다!
완성을 향한 기다림 (39-40절): 이 모든 구약의 영웅들도 '우리(신약 성도)'가 없이는 온전함을 얻지 못합니다. 그들은 멀리서 보았으나, 우리는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우주적 구원의 피날레를 장식할 마지막 주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