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 관광 단지
봉미산 157m
영월 근린공원[ 迎月公園 ]
여주 마암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신륵사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282
남한강 관광지
여주 신륵사에는 원래부터 사찰의
경계표시인 당간지주와 일주문
그리고 사천왕문이 없습니다.
이쪽 세상에서(차안)
저쪽 세상(피안)으로 건너 가는
강물이 그대로 당간지주이며
일주문이며 사천왕문
이었으리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은 날씨가 띠뜻해
토끼가 놀고 있읍니다
여주시 지도
신륵사 입장료는 대인 3000원 입니다
여주신륵사 코스
신륵사 관광지 입구 ㅡ신륵사 ㅡ여주대교 ㅡ
영월 근린 공원 ㅡ여주 마암 ㅡ여주역
약 10.7km 약 5시간 소요
신륵사 일주문
4대천왕은 없읍니다
신륵사
소 재 지 경기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번지
다양한 유물이 숨쉬고 있는
고찰, 신륵사
신륵사는 여주시에서 동북쪽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진 남한강
상류 봉미산 기슭에 있는 오래된
전통 사찰로,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미륵(혜근을 가리킴)이,
또는 혜근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를 막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났는데,
이 용마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워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인당대사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신륵사 인근 강가쪽 암반 위에
벽돌로 쌓은 다층 전탑이 있어서
고려 때부터 벽절이라고도 불렸다.
나옹화상이 이 절에서 입적을 했고,
그의 보제존자석종은 1379년에
제작된 것으로 고려 말의 대표적인
부도 양식을 띠고 있다.
여주의 대명사는 단연 신륵사다.
여주읍에서 여주대교를 건너면 낮고
부드러운 곡선의 봉미산(鳳尾山)이 나서고,
이 산 남쪽 기슭에
신륵사가 자리잡고 있다.
뒤로는 숲이 우거지고
왼쪽 곁으로는 안벽(岸壁)이,
마당 앞으론 여강(驪江)이라 부르는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절경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신륵사가 근년에 고찰과 어울리지
않게 일주문을 크게 세워 아쉽다.
여주신륵사삼층석탑
고려시대의 석탑
절 바로 앞의 강상유원지가 휴일이면
매우 번잡스러워 어쩔 수 없었을까.
하기야 강줄기 위로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조포(潮浦)나루터가
바로 곁에 있었으니 신륵사 주변은
제법 도시 분위기가 감돌았을 것이다.
강변의 너른 마당을
지나면 왼쪽에 구룡루가 있다.
나옹선사가 아홉 마리의 용에게
항복을 받고 그들을 제도하기
위해 지었다는 전설의 누각이다.
구룡루를 돌아들면
맞은편에 극락보전이 있다.
아미타불 도량인 신륵사 금당이다.
신륵사 소원지
다층전탑
신륵사는 고려 때부터
벽절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경내의 동남쪽에 위치한,
탑 전체를 벽돌[塼]로 쌓아올린
다층전탑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 탑은 강가에 솟은 넓은 바위면 위에
세워져 한가로이 강물을 굽어보고
저 건너 너른 평야를 조망하며 서 있다.
완성된 형태로 남아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전탑이다.
우뚝 솟은 이 전탑을 보고 절을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탑은 보통 경내 중심부에,
그 중에도 금당의 본존불
가까이 안치하는 게 상례이다.
탑 역시 중요한 예배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전탑은 금당의 본존불과는
무관한 듯 멀리 외곽으로 뚝 떨어져 나앉았다.
봉미산 157m
경기도 여주군의 중앙에 위치한 산이다(157m).
남쪽 기슭에는 신라 때 처음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신륵사(神勒寺)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봉미산은 주의 동쪽 7리에 있다
"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라는 이름은 풍수상 비봉귀소형
(飛鳳歸巢形:봉황이 날아드는 형상)
의 산 모양새와 관련되는 것으로,
신륵사는 바로 봉황이 깃드는
명당에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1469년(예종 1)에 영릉이 여주의
북성산(北城山)에 자리 잡은 후
신륵사는 영릉의 원찰(願刹)이
되면서 이름도 보은사(報恩寺)
로 바뀌는 것을 볼 때,
그러한 신륵사의 입지처를 풍수적으로
의미를 강화하기 위한 방편에서 주산이
되는 봉미산을 봉황에 비유한
것으로 짐작된다.
고지도에서 신륵사의 주산인
봉미산에서부터 신륵사 국면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를 실제보다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로 짐작된다.
다층석탑
금당 앞에 아담하게 놓인 다층석탑은
흰 대리석재라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형식은 방형의 일반형 석탑에 기단부를
2층으로 구성하고 그 위에 여러 층을
거듭해 얹은 탑신부를 받고 있다.
여기까지는 신라나 고려 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세부조형으로 들어
가면 전혀 다른 양식을 취하고 있다.
즉 조선 초기 석조공예의 성격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조형기법이
나타나 주목된다.
지대석 위로는 상·하의
갑석에 단엽의 복련을 둘렀으며,
매우 얕은 하층의 기단면석은
네 모서리에 형식적인 우주를 모각하였고,
4면에는 물결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그 위로 중후한 느낌을
줄 만큼 두꺼운 하갑석이 놓여 있고,
상층기단 면석에는 신라나 고려에서는
볼 수 없는 비룡문과 연화문·물결무늬·
구름무늬 등의 조각이 능숙한 솜씨로 섬세하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둔중함을 덜어주고 있다.
신륵사는 아름다운 경관과 많은
유물·유적들을 간직하고 있지만
정작 이 절의 내력은 소상치가 않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유물이나 유적이 없고,
고려 우왕 2년(1376)에 나옹선사가
입적하면서 유명한 절이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조형물도 모두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의 것이다.
조사당
보물 제180호인 조사당은
금당 왼편 뒤쪽에 있다.
대들보가 없는 팔작지붕으로
정면 1칸 측면 2칸의 아담하고 예쁜 건물이다.
정면 앞쪽에는 띠살무늬의 분합문
6짝을 달았으나 벽체로 고정시켰고,
측면 한 짝에 정자문살을
달아 출입문을 삼고 있으며,
3면에는 모두 벽을 둘렀다.
공포는 내외이출목의 다포계 형식을 썼으며,
내부는 우물반자의 통간으로 되어 있다.
날렵한 팔작지붕인데 멀리 떨어져서 보면
볼수록 운치와 정감이 있어 뵈는 집이다.
바로 위 보제존자 부도가 있는 곳에서
내려다보면 또 다른 정겨운 느낌이 든다.
기울어가는 고려 말에 한 줄기 빛이었으며
도인으로서 법맥을 형성했던 세 분의
영정이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지공·나옹·무학 대사이다.
신륵사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봉미산에 있는 절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로 신라 진평왕 때에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원 효장군 전승비
점심 식사는
쏘가리회 를 먹었다
비싼 점심 이다
3인 160,000
술 20,000원
쏘가리
농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우리 나라 압록강을 비롯한 서해와 남부
연해로 흘러들어가는 여러 하천의
중류·상류에 분포하고 있다.
봄에 수온이 올라감에 따라 활동을
개시하며 먹성이 활발하여 비대해진다.
산란기는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 사이이고,
하천중류의 암석이 많은 곳에 서식한다.
단애 혹은 큰돌이 첩첩한 곳에서 홀로 살며,
그 부근에서 먹이가 될만한 작은 물고기나
새우류가 접근하면 잡아먹는다.
효능 및 기능
어육은 흰빛깔로 담백하여 회는 물론이요
무슨 음식을 만들어도 좋은데,
특히 매운탕이 유명하다.
쏘가리는 우리 나라와 중국에서는 고래로
시문과 그림 및 도자기 등에 흔히 나타난다.
몸은 긴 편으로 측편되어
있고 전장은 50㎝에 달한다.
머리와 등에는 불규칙한 자적회색의
다각형 반문이 분포하여 금린상
(錦鱗狀)을 나타낸다.
머리는 길고 그 위 외곽은 둥글며 끝은 뾰족하다.
입은 크고 비스듬히 찢어져 있다
매운탕으로 적격인 쏘가리는 많은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영양도 만점인 웰빙 먹거리
쏘가리회를 먹고 갑니다.
쏘가리
여주 쌀밥은
찹밥과 비슷하고 맛이있네요
여주대교
경기도 여주시에서 남한강을 가로질러
37번국도로 연결되는 다리이다.
서울국토관리청이 1994년 공사를 시작해,
1996년 준공하였다.
왕복 4차선 교량으로,
길이는 502m, 너비는 17.5m이다.
영월 근린공원[ 迎月公園 ]
경기도 여주시 상동에 있는
영월루를 중심으로 조성된
근린공원으로서,
면적은 2만 5564㎡이다.
여주대교 진입로 오른쪽에 있다.
여주대교 앞 상리 네거리에서 강변유원지
쪽으로 100m 정도 가면 남한강 둔치에
자리잡은 영월루(迎月樓)가 나온다.
영월공원은 바로 이 영월루를
중심으로 조성된 근린공원이다.
공원 안에는 영월루가
자리한 말바위(馬巖)가 있다.
여주에서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강 건너편의 천 년 고찰 신륵사(神勒寺)를
비롯해 남한강을 끼고 펼쳐지는 빼어난
자연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영월루 에서 바라본는 남 한강이다
여주 창리 삼층석탑,
여주 하리 삼층석탑이 있다.
그 밖에 분수광장,
복지회관, 산책로 등이 있고,
2005년 2월 영월루에 경관조명을
설치해 밤에도 남한강을 조망할 수 있다.
영월루 아래에는 현충탑,
명성황후 생가(경기유형문화재 46),
영릉(英陵:사적 195)),
영월공원,
신륵사,
목아박물관,
고달사터, 파사성지를 잇는
관광 코스가 개발되어 있다.
여주 마암
여주 마암(驪州 馬巖)은
경기도 여주시 상동에 있다.
2012년 8월 27일 여주시의
향토 유적 제20호로 지정되었다.
마암(馬巖)은 여주팔경 중 제2경으로
여주의 옛지명 ‘황려(黃驪)’와 연관이 있으며,
여주의 대표적 성씨인 여흥민씨의
시조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자연경관유적이다.
마암은 해동지도,
1872년 지방도 등
각종 고지도에 모두 그려져 있다.
이규보, 이색, 서거정, 정약용 등
당대의 시인묵객들이 마암에 찾아와
시와 풍류를 즐기던 명소로 전해져 왔다.
현재 마암이 시작되는 평평한
바위면에 '馬巖'이라 큰 글씨가,
위쪽에 여주목사를 역임한
'이인응(李寅應)'과 '
시월(十月) 일각(日刻)'이,
오른쪽에 여주군수를 지낸 '신현태
(申鉉泰)'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여주의 대표적 성씨인
여흥민씨(驪興閔氏)는 마암 바위의
구멍에서 시조가 탄생했다 여기고,
신라시대 경덕왕 때 마암 바위
아래 강물에서 황룡마와 여룡마
(검은 용마)가 나타나 고을 이름을
황려현(黃驪縣)으로 고쳤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경기도 여주시 상동에 있다.
이이색의 마지막을 지켜본 남한강
이색의 마지막을 지켜본 남한강
목계와 가흥을 지난 남한강은 점동면
삼합리에서 섬강과 청미천을 합하여
신륵사 부근으로 흐른다.
남한강에 대해 이중환은 『택리지』
「복거총론」의 ‘산수’편에서
“웅장하거나 급하지 않고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다”
라고 쓰고서 그 까닭을
“강의 상류에 마암과 신륵사의
바위가 있어서 그 흐름을 약하게
하는 데에 있다”라고 하였다.
영월루 아래에 있는
마암은 한강변에 있는 큰 바위로,
표면에 ‘마암(馬岩)’
이란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물결이 치면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데,
그곳에 큰 굴이 있다.
옛날에 그 굴에서 큰 가라말
(털빛이 온통 검은 말)이 나와서
하늘로 올라갔으므로 황려(黃驪,
여주의 옛 이름)란 고을이 생겼다고 하며,
여흥 민씨의 시조가 이 굴에서 나왔다고 한다.
여주 신륵사 관광 단지
봉미산 157m
영월 근린공원[ 迎月公園 ]
여주 마암
오늘은 포근한 날씨여서
구경 잘하고 갑니다
임 경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