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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Walden) - Henry David Thoreau, 강승영 역
차례
1 숲 생활의 경제학
2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3 독서
4 숲의 소리
5 고독
6 방문객들
7 콩밭
8 마을
9 호수
10 베이커 농장
11 보다 높은 법칙들
12 이웃의 동물들
13 집에 불 때기
14 전에 살던 사람들, 그리고 겨울의 방문객들
15 겨울의 동물들
16 겨울의 호수
17 봄
18 맺는 말
옳기고 나서
핸리 데이빗 소로우의 연보 / 연보
1 숲 생활의 경제학 中에서
"내 동료 시민들이 나에게 법원의 한자리나 부목사직 또는 먹고 살 만한 다른 자리를 줄 생각이 없다는 것, 그리고 나 스스로 앞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안 나는 더욱 더 숲으로 얼굴을 돌리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꽤 알려진 편이었다. 나는 흔히 하듯이 자본금이 모이기를 기다리지 않고 이미 가지고 있는 약간의 준비금만을 가지고 곧바로 사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내가 월든 호숫가에 간 목적은 그곳에서 생활비를 덜 들여가며 살거나 또는 호화롭게 살자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 개인적인 용무를 보자는 데 있었다. 약간의 상식과 사업적 재능이 없어서 이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서글프다기보다는 차라리 어리석은 것처럼 보였다."
Finding that my fellow-citizens were not likely to offer me any room in the court house, or any curacy or living any where else, but I must shift for myself, I turned my face more exclusively than ever to the woods, where I was better known. I determined to go into business at once, and not wait to acquire the usual capital, using such slender means as I had already got. My purpose in going to Walden Pond was not to live cheaply nor to live dearly there, but to transact some private business with the fewest obstacles; to be hindered from accomplishing which for want of a little common sense, a little enterprise and business talent, appeared not so sad as foolish.
2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中에서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불가피하게 되지 않는 한 체념의 철학을 따르기는 원치 않았다.
나는 인생을 깊게 살기를,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원했으며, 강인하게 스파르타인처럼 살아,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때려 엎기를 원했다. 수풀을 폭 넓게 잘라내고 잡초들을 베어내어 인생을 구석으로 몰고 간 다음에, 그것을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압축시켜서 그 결과 인생이 비천한 것으로 드러나면 그 비천성의 적나라한 전부를 확인하여 있는 그대로 세상에 알리며, 만약 인생이 숭고한 것이라면 그 숭고성을 스스로 체험하여 다음다음번의 여행 때 그에 대한 참다운 보고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이 악마의 것인지 또는 신의 것인지 이상하게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사람이 사는 주요 목적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영원한 기쁨을 얻는 것’이라고 다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I went to the woods because I wished to live deliberately, to front only the essential facts of life, and see if I could not learn what it had to teach, and not, when I came to die, discover that I had not lived. I did not wish to live what was not life, living is so dear; nor did I wish to practise resignation, unless it was quite necessary. I wanted to live deep and suck out all the marrow of life, to live so sturdily and Spartan-like as to put to rout all that was not life, to cut a broad swath and shave close, to drive life into a corner, and reduce it to its lowest terms, and, if it proved to be mean, why then to get the whole and genuine meanness of it, and publish its meanness to the world; or if it were sublime, to know it by experience, and be able to give a true account of it in my next excursion. For most men, it appears to me, are in a strange uncertainty about it, whether it is of the devil or of God, and have somewhat hastily concluded that it is the chief end of man here to “glorify God and enjoy him forever.
3 독서 中에서
"모든 책이 다 독자들만큼 따분한 것은 아니다. 어떤 책에는 어쩌면 우리의 현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들이 들어 있을 가능성도 크다. 만약 우리가 이 말들을 정말로 듣고 이해할 수만 있다면 아침이나 봄보다 우리의 삶에 더 큰 활력을 줄 것이며, 우리에게 사물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줄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자기 인생의 새로운 기원을 마련했던가! 우리의 기적들을 설명해주고 새로운 기적들을 계시해줄 책이 어쩌면 우리를 위하여 존재할 가능성은 크다. 지금 내가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어느 책에 표현되어 있을지 모른다. 우리를 당혹하게 하고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며 우리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문제와 똑같은 문제들이 일찍이 모든 현명한 사람들에게도 제기되었다. 한 문제도 빠짐없이 말이다. 그리고 이들 현인들은 저마다 이 질문들에 대해 해답을 제시했다. 자기 능력에 따라, 또 자기 고유의 언어와 생활 방식으로.
그뿐 아니라 우리가 지혜를 배우면 그와 동시에 너그러움도 아울러 배우게 될 것이다. 콩코드 교외에 있는 어느 농장에서 고용인 생활을 하고 있는 한 고독한 농부는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 농부는 다시 태어남을 얻고 특이한 종교적 체험을 한 사람인데, 그는 자기 신앙에 따라 엄숙한 침묵과 배타적인 고독의 생활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It is not all books that are as dull as their readers. There are probably words addressed to our condition exactly, which, if we could really hear and understand, would be more salutary than the morning or the spring to our lives, and possibly put a new aspect on the face of things for us. How many a man has dated a new era in his life from the reading of a book. The book exists for us perchance which will explain our miracles and reveal new ones. The at present unutterable things we may find somewhere uttered. These same questions that disturb and puzzle and confound us have in their turn occurred to all the wise men; not one has been omitted; and each has answered them, according to his ability, by his words and his life. Moreover, with wisdom we shall learn liberality. The solitary hired man on a farm in the outskirts of Concord, who has had his second birth and peculiar religious experience, and is driven as he believes into silent gravity and exclusiveness by his faith, may think it is not true;
4 숲의 소리 中에서
"첫번째 여름에는 책을 읽지 못했다. 콩밭을 가꾸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일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시간을 보냈다. 꽃처럼 활짝 핀 어느 순간의 아름다움을, 육체적 일이든 정신적 일이든 일을 하느라 희생할 수는 없는 때들이 있었다.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 여름날 아침에는 간혹, 이제는 습관이 된 멱을 감은 다음, 해가 잘 드는 문지방에 앉아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한없이 공상에 잠기곤 했다. 그런 나의 주위에는 소나무, 호두나무와 옻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으며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고독과 정적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오직 새들만이 곁에서 노래하거나 소리 없이 집 안을 넘나들었다. 그러다가 해가 서쪽 창문을 비추거나 또는 멀리 한길을 달리는 어느 여행자의 마차 소리를 듣고서야 문득 시간이 흘러간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이런 날에 나는 밤 사이의 옥수수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정말이지 이런 시간들은 손으로 하는 그 어떤 일보다 훨씬 소중한 것이었다. 그런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공제되는 시간들이 아니고 오히려 나에게 할당된 생명의 시간을 초과해서 주어진 특별수당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동양 사람들이 일을 포기하고 명상에 잠기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I did not read books the first summer; I hoed beans. Nay, I often did better than this. There were times when I could not afford to sacrifice the bloom of the present moment to any work, whether of the head or hands. I love a broad margin to my life. Sometimes, in a summer morning, having taken my accustomed bath, I sat in my sunny doorway from sunrise till noon, rapt in a revery, amidst the pines and hickories and sumachs, in undisturbed solitude and stillness, while the birds sang around or flitted noiseless through the house, until by the sun falling in at my west window, or the noise of some traveller’s wagon on the distant highway, I was reminded of the lapse of time. I grew in those seasons like corn in the night, and they were far better than any work of the hands would have been. They were not time subtracted from my life, but so much over and above my usual allowance. I realized what the Orientals mean by contemplation and the forsaking of works.
5 고독 中에서
"조용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나는 갑자기 대자연 속에,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속에, 또 집 주위의 모든 소리와 모든 경치 속에 너무나도 감미롭고 자애로운 우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해주는 공기 그 자체처럼 무한하고도 설명할 수 없는 우호적인 감정이었다. 이웃에 사람이 있음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던 모든 이점이 대단치 않은 것임을 느꼈고 그 후로는 그런 것을 생각해본 일이 없다. 솔잎 하나하나가 친화감으로 부풀어올라 나를 친구처럼 대해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황량하고 쓸쓸하다고 하는 장소에서도 나와 친근한 어떤 것이 존재함을 분명히 느꼈다. 나에게 혈연적으로 가장 가깝거나 가장 인간적인 것이, 반드시 어떤 인간이거나 어떤 마을 사람이지는 않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부터 어떤 장소도 나에게는 낯선 곳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아름다운 토스카의 딸이여!
애도는 슬퍼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불시에 빼앗아가나니,
이 세상에서 그들이 사는 날은 길지 않은 것이다."
내가 보낸 가장 즐거운 시간들 가운데에 봄이나 가을에 비바람이 오랫동안 몰아치던 때를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 나는 오전은 물론 오후에도 집 안에 틀어박혀 쉴 새 없이 부는 바람 소리와 빗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이런 때는 이른 황혼이 긴 밤을 맞아들여 많은 사념들이 뿌리를 박고 그 나래를 펼칠 시간적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저 북동 태풍이 마을의 집들을 엄습하여 하녀들이 빗자루와 물통을 들고 문간에 서서 집 안이 물에 잠기는 것을 막으려 하고 있을 때, 나는 내 작은 집의 문을 닫고 그 뒤에 앉아 비바람으로부터 완벽한 보호를 받았다."
In the midst of a gentle rain while these thoughts prevailed, I was suddenly sensible of such sweet and beneficent society in Nature, in the very pattering of the drops, and in every sound and sight around my house, an infinite and unaccountable friendliness all at once like an atmosphere sustaining me, as made the fancied advantages of human neighborhood insignificant, and I have never thought of them since. Every little pine needle expanded and swelled with sympathy and befriended me. I was so distinctly made aware of the presence of something kindred to me, even in scenes which we are accustomed to call wild and dreary, and also that the nearest of blood to me and humanest was not a person nor a villager, that I thought no place could ever be strange to me again.—
“Mourning untimely consumes the sad;
Few are their days in the land of the living,
Beautiful daughter of Toscar.”
Some of my pleasantest hours were during the long rain storms in the spring or fall, which confined me to the house for the afternoon as well as the forenoon, soothed by their ceaseless roar and pelting; when an early twilight ushered in a long evening in which many thoughts had time to take root and unfold themselves. In those driving north-east rains which tried the village houses so, when the maids stood ready with mop and pail in front entries to keep the deluge out, I sat behind my door in my little house, which was all entry, and thoroughly enjoyed its protection.
6 방문객들 中에서
그는 능숙한 나무꾼으로 나무를 벨 때 약간의 멋을 부리길 즐겼다. 그는 나무를 지면에 바싹 고르게 잘라냈다. 그래서 나중에 새순이 날 때도 좀더 무성하게 나오고, 그루터기 위로 썰매가 달려도 미끄러지듯 넘어가게 했다. 그리고 장작 다발의 받침목을 통나무로 내버려두지 않고 가느다란 나무로 잘라 사용자가 나중에 손으로도 끊어 쓸 수 있도록 했다.
내가 그에게 흥미를 가진 것은, 그처럼 말이 없는 외톨이이면서도 몹시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쾌활과 만족의 샘 같았는데 그 샘의 물은 그의 눈을 통해 철철 흘러넘쳤다. 그의 기쁨은 순수한 것이었다. 나는 종종 그가 숲에서 나무를 베며 일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런 때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족의 웃음소리를 내며 나를 맞이했으며, 영어도 할 줄 아는 사람이지만 캐나다식 프랑스어로 인사말을 했다. 내가 다가가면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는 듯, 잘라놓은 소나무 위에 길게 누웠다. 그러고는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돌돌 뭉쳐 입 안에 넣어 씹으면서 웃기도 하고 이야기도 했다.
그는 야생동물과 같은 기백이 넘쳤기 때문에 이야기 도중 재미있다고 생각되면 웃다가 굴러 떨어져 땅에 뒹굴기도 했다. 사방의 나무들을 둘러보면서 그는 소리치곤 했다. “사실 말이지, 나무 베는 일이 너무나 좋습니다. 이 이상 재미있는 일은 바라지도 않아요.”
He was a skilful chopper, and indulged in some flourishes and ornaments in his art. He cut his trees level and close to the ground, that the sprouts which came up afterward might be more vigorous and a sled might slide over the stumps; and instead of leaving a whole tree to support his corded wood, he would pare it away to a slender stake or splinter which you could break off with your hand at last.
He interested me because he was so quiet and solitary and so happy withal; a well of good humor and contentment which overflowed at his eyes. His mirth was without alloy. Sometimes I saw him at his work in the woods, felling trees, and he would greet me with a laugh of inexpressible satisfaction, and a salutation in Canadian French, though he spoke English as well. When I approached him he would suspend his work, and with half-suppressed mirth lie along the trunk of a pine which he had felled, and, peeling off the inner bark, roll it up into a ball and chew it while he laughed and talked. Such an exuberance of animal spirits had he that he sometimes tumbled down and rolled on the ground with laughter at any thing which made him think and tickled him. Looking round upon the trees he would exclaim,—“By George! I can enjoy myself well enough here chopping; I want no better sport.”
17 봄 中에서
만약 우리의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인적 드문 숲과 강변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지극히 단조로울 것이다. 우리는 야성의 강장제를 필요로 한다. 때때로 우리는 뜸부기와 해오라기가 숨어 사는 늪 속을 무릎까지 빠지며 건너보거나 도요새의 날갯짓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야성의 외톨이 새만이 둥지를 틀며 족제비가 배를 땅 가까이에 대고 기어가는 곳에 가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골풀의 냄새를 맡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편으로 모든 것을 알아내고 탐색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신비에 싸인 채 탐색되지 않기를 바라며, 육지와 바다가 무한의 야성을 지니고 미개척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우리가 자연을 아무리 받아들이더라도 결코 그 도가 지나치는 법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무진장한 힘, 웅대한 지세, 난파선의 잔해가 깔린 해안, 살아 있는 나무와 썩어가고 있는 나무들이 뒤엉킨 황무지, 천둥을 품은 구름, 3주간이나 계속되어 홍수를 낸 폭우 등을 목격할 때마다 자연에 대한 안목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경계境界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며, 우리가 결코 가지 않는 곳에 어떤 생명이 자유로이 풀을 뜯는 것을 목격할 필요가 있다.
18 맺는말 中에서
나는 숲에 들어갈 때나 마찬가지로 어떤 중요한 이유 때문에 숲을 떠났다. 내게는 살아야 할 또 다른 몇 개의 인생이 남아 있는 것처럼 느꼈으며, 그리하여 숲 생활에는 더 이상의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쉽게 어떤 특정한 길을 밟게 되고 스스로를 위하여 다져진 길을 만들게 되는지는 놀라운 일이다. 내가 숲 속에 산 지 일주일이 채 안 되어 내 집 문간에서 호수까지는 내 발자국으로 인해 길이 났다. 내가 그 길을 사용하지 않은 지 5, 6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 길의 윤곽은 뚜렷이 남아 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 길을 밟아 유지되게 했나 보다.
땅의 표면은 부드러워서 사람의 발에 의해 표가 나도록 되어 있다. 마음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큰길은 얼마나 밟혀서 닳고 먼지투성이일 것이며, 전통과 타협의 바퀴 자국은 얼마나 깊이 패었겠는가! 나는 선실에 편히 묵으면서 손님으로 항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인생의 돛대 앞에, 갑판 위에 있기를 원했다. 나는 이제 배 밑으로 내려갈 생각은 없다.
I left the woods for as good a reason as I went there. Perhaps it seemed to me that I had several more lives to live, and could not spare any more time for that one. It is remarkable how easily and insensibly we fall into a particular route, and make a beaten track for ourselves. I had not lived there a week before my feet wore a path from my door to the pond-side; and though it is five or six years since I trod it, it is still quite distinct. It is true, I fear that others may have fallen into it, and so helped to keep it open. The surface of the earth is soft and impressible by the feet of men; and so with the paths which the mind travels. How worn and dusty, then, must be the highways of the world, how deep the ruts of tradition and conformity! I did not wish to take a cabin passage,hz but rather to go before the mast and on the deck of the world, for there I could best see the moonlight amid the mountains. I do not wish to go below now.
우리 안의 생명은 강의 물과도 같다. 올해 이 생명의 물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수위가 높아져서는 고지대의 마른땅을 물바다로 만들지 모른다. 올해가 바로 기억에 남을 해, 물이 넘쳐 강변에 사는 사향쥐들이 모두 익사하는 그런 해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사는 곳은 항상 마른땅은 아니었다. 나는 과학자들이 홍수를 기록하기 전에 강물이 범람했던 흔적이 있는 둑을 저 멀리 내륙 지방에서 본다. 뉴잉글랜드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람들 사이에 퍼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즉 처음엔 코네티컷 주, 다음에는 매사추세츠 주 어느 농가의 부엌에 60년 동안이나 놓여 있던 사과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식탁의 마른 판자에서 아름답고 생명력이 넘치는 곤충이 나왔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 곤충이 자리잡고 있던 곳의 바깥쪽으로 겹쳐 있는 나이테의 수를 세어본즉, 그보다도 여러 해 전 그 나무가 살아 있을 때에 깐 알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었다. 아마 커피 주전자가 끓는 열에 의해 부화되었겠지만 그 곤충이 밖으로 나오려고 판자를 갉아 먹는 소리가 여러 주일 전부터 들렸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부활과 불멸에 대한 자신의 신념이 새로워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떤 날개 달린 아름다운 생명이 처음에는 푸른 생나무의 백목질 속에 알로 태어났으나, 그 나무가 차츰 잘 마른 관처럼 되는 바람에 오랜 세월을 사회의 죽은 듯 건조한 생활 속에서 목질의 공심적共心的인 나이테 속에 묻혀 있다가(아마 지난 수년 동안, 일가족이 즐겁게 식탁에 둘러앉아 있을 때 밖으로 나오려고 갉는 소리를 내서 모두를 놀라게 한 적도 여러 번 있었으리라.),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흔한 가구 속에서 튀어나와 마침내 찬란한 여름 생활을 즐기게 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나는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이런 이야기를 다 이해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것이 단순한 시간의 경과만 가지고는 결코 동트게 할 수 없는 저 아침의 성격인 것이다. 우리의 눈을 감기는 빛은 우리에겐 어두움에 불과하다. 우리가 깨어 기다리는 날만이 동이 트는 것이다. 동이 틀 날은 또 있다. 태양은 단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