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구원"을 재음미하다 - 우리가 믿는 '믿음'의 실체와 층위들
'믿음'이라는 단어에 함몰된 기독교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가장 흔하게 남발되는 단어는 '믿음'입니다. 누구나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확신'이 가득한 세상은 점점 더 부패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이 각기 다른 대상과 기초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새언약학회는 이 혼란스러운 믿음의 계층들을 분석하고, 진정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원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 현재 기독교 안에 존재하는 '믿음'의 다양한 얼굴들
① 지적 동의의 믿음 (Intellectual Belief):
성경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거나 교리적 체계를 학습하여 동의하는 단계입니다.
"예수가 구원자라는 사실을 안다"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이는 삶의 변화보다는 지식적 만족에 그칠 위험이 큽니다.
② 감정적 확신과 체험의 믿음 (Emotional Belief):
뜨거운 집회나 개인적인 신비 체험을 통해 얻은 고양된 감정을 믿음이라 착각하는 경우입니다. 감정이 뜨거울 때는 구원받은 것 같으나, 삶의 고난이나 메마름이 찾아오면 순식간에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는 불안정한 층위입니다.
③ 보상과 거래의 믿음 (Transactional Belief):
"내가 이만큼 믿어주니 하나님도 나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기복적 믿음입니다. 사실상 자기를 믿는 것이며, 하나님을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도구로 전락시킵니다. 이 믿음은 자기 기대가 무너질 때 하나님을 원망하며 떠나게 됩니다.
④ 자기 암시적 믿음 (Presumptive Belief):
"구원에 자신 있는 이들"이 주로 빠지는 함정입니다.
구원의 원리를 공식처럼 외우고 "나는 믿었으니 무조건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세뇌합니다.
정작 삶 속에서 진리와 동행하는 고통과 기쁨은 상실한 채, 종교적 면죄부만 쥐고 있는 상태입니다.
새언약학회가 바라보는 믿음의 실제: '에흐예'에 뿌리 내린 신뢰
그렇다면 진정한 믿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의 주체'가 인간인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의 대상은 나의 확신이 아닌 '하나님의 자기 언약'입니다:
우리는 '내가 예수를 얼마나 잘 믿느냐'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나를 걸고 너를 구원하기로 에흐예 언약을 맺었다"는 그 사실을 알고 내 마음을 찢는 할례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흔들릴 수 없는 근거:
인간의 믿음은 환경에 따라 요동칩니다. 그러나 1층위 언약(에흐예 언약)을 발견한 자의 믿음은 단단합니다.
나의 믿음이 연약해질 때조차,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피로 쏟은 사랑에 대한 나의 반응이 믿음으로 압도되며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흘린 피에 반응하는 자에게 성령의 견인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어가는 동력:
이 진리를 아는 자는 방종할 수 없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자기 존재를 거신 하나님의 그 거대한 열정 앞에 나의 자아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십자가에 나의 마음이 같이 달아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비로소 부패를 이기는 자발적인 거룩과 구원의 완성이 시작됩니다.
갈망하는 이들을 향한 외침
종교적 형식과 자기 확신 속에서 길을 잃은 분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믿음은 당신의 감정이나 지식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아니면 창조 전부터 스스로 결의하신 하나님의 '에흐예 언약'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기초가 바뀌어야 삶이 바뀝니다.
우리 새언약학회는 바로 이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다시 놓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