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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충만한 하나님(23-24)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유의 하나님이십니다. 유다가 놓친 하나님에 대한 점도 자유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분은 가까이 하여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멀리하여 심판하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에게서 숨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특정 신학이나 교리로도 다 설명할 수 없으며 종교적 의식이나 열정으로도 조종할 수 없는 분입니다.
2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24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23-24)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를 유다에게 소개합니다. ‘가까운-먼’의 대립적 표현을 사용하실 때는 자주 여호와의 ‘구원-심판’과 관련해서 사용됩니다. ‘∼ 아니냐?’라고 묻는 질문은 청자들이 여호와를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먼 데에 있는 하나님’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음을 전제합니다.
이스라엘은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에 임재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해가 맞는다면, 본문은 여호와를 이스라엘의 구원과 축복을 보장해주시는 분으로 알아온 신학적 전통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오직 이스라엘을 위하여, 존재하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구원신학은 특히 예루살렘 성전과 다윗 왕조에 의해 조장되어 왔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에 대한 일방적 이해를 거절하고, 당신은 구원의 하나님(‘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초월적인 심판의 하나님(‘먼 데에 있는 하나님’)임을 주장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언제나 이스라엘 편에서 이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멸시하며 자기 마음에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은(17) 여호와를 심판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께서는 ‘가까운 데’와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의 필요조건입니다.
창조주 여호와 앞에서 숨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도 그분의 눈을 벗어나 은밀하게 일을 꾸밀 수 없습니다. 피조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보고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때로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심판자)으로, 때로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구원자)으로 당신을 계시하십니다. 아무도 그 초월하신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거짓 예언자들(25-32)
하나님의 말씀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집니다. 달콤한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는 말씀은 무거운 짐이 될 뿐입니다. 꿈은 실효가 없지만, 말씀은 불같이 반석을 무너뜨리는 방망이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죄를 태우는 불이 되고 굳은 마음을 때려 부수는 방망이 같은 말씀이필요합니다. 문맹이 늘고 신비적인 은사에 몰두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오늘도 분별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25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26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27그들이 서로 꿈 꾼 것을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조상들이 바알로 말미암아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28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29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30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2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5-32)
선지자들은 그 시대의 최후 보루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죄악 가운데 빠뜨린 선지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에 메시지를 기록합니다. 죄악에 빠지면 그 시대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죄악에 빠져 들어갑니다. 여호와께서 꿈을 계시의 수단으로 이용해 거짓 예언하는 자들을 고발하십니다.
⑴ 꿈을 예언하는 거짓 예언자들(25-27)
거짓 예언자들의 특징은 초월적인 하나님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하나님의 뜻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가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하고 떠들면서 자기 생각을 여호와의 계시로 포장합니다(25).
거짓 예언자들의 꿈 해석은 모호하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꿈을 여호와께서 주신 계시적인 꿈이라고 주장합니다. 천지에 충만하신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이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속임수)을 예언하는 자들입니다(26). 여호와와 전혀 상관이 없는 꿈인데도 여호와로부터 온 계시로 확신하며 자신도 속아 넘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알 숭배와 거짓 예언자들의 꿈을 한 차원에 놓고 고발하면서 꿈의 가나안적 성격을 암시해줍니다(27). 예전에 바알이 하나님의 이름을 잊게 하였던 것처럼 지금은 꿈이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잊게 합니다. 거짓 예언자들이 꿈 이야기를 하나님의 계시로 선전하며 그분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며 그분에게서 멀리 떠나가게 합니다.
⑵ 참된 예언자(28-29)
여호와께서 꿈을 떠드는 거짓 예언자들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참된 예언자(예레미야)에게 격려의 말씀을 주시며 용기를 북돋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꿈을 꾸는 자는 꿈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그 받은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28).
여호와의 말씀이 ‘알곡’이라면 꿈은 ‘겨(쭉정이)’에 불과합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꿈을 말하는 사람들보다 덜 신령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겨와 알곡이 질적으로 다른 것처럼, 꿈과 말씀은 차원이 다른 것으로 서로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겨(쭉정이)’에 불과한 꿈은 알곡에 해당하는 말씀에 어떤 식으로도 비교될 수 없습니다. 계시의 수단으로서의 꿈을 근본적으로 부정합니다.
실체가 없는 꿈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은 여를 태워버리는 불과 같고(5:24; 15:14, 20:9)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와 같습니다(29). ‘불’과 ‘방망이’의 표상은 파괴적 행위에 속하는 것으로 심판의 말씀을 함축합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된 심판의 말씀이 거짓 예언자들을 따르는 유다 사람들에게 불과 방망이가 됩니다.
⑶ 거짓 예언자들의 징계(30-32)
꿈을 말하는 거짓 예언자들에게 징계의 심판이 선언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 이름으로 꿈을 이야기하면서 말씀을 도둑질하는 거짓 예언자들을 치실 것입니다(30). 이들은 서로 동료의 꿈을 도둑질해서 예언합니다.
말씀이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마치 계시를 받은 것처럼 누군가가 떠들면, 이것을 들은 동료 예언자들은 그 거짓 계시를 다시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며 떠벌립니다. 거짓 예언이 또 다른 거짓 예언을 낳습니다. 이들은 여호와로부터 말씀을 받지 못했음에도 자기 혀를 놀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하고 거짓을 선포합니다(31). 여호와께서 보내지 않으셨음에도 보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예언자들은 거짓 꿈과 허황한 말로 여호와의 백성을 미혹하는, 어떤 유익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자들입니다(32).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도둑질한 선지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고합니다.
요즘에는 예언한단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신령한 듯 보이지는 대부분 헛소리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안다고 주장한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연구해야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고, 성도들의 능력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짐(33-40)
하나님께서 항상 말씀해 주시지만, 바르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마음의 욕심이나 죄악 그리고 상황 때문에 자신이 듣기 좋아하는 음성만 편식 하듯이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33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인가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묻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 34또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는 선지자에게나 제사장에게나 백성에게는 내가 그 사람과 그 집안을 벌하리라 하셨다 하고 35너희는 서로 이웃과 형제에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냐 하고 36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함이니라 하고 37너는 또 선지자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무엇이라 대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냐 38너희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 말씀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니 너희는 말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였은즉 39내가 너희를 온전히 잊어버리며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성읍을 내 앞에서 내버려 40너희는 영원한 치욕과 잊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33-40)
이제 언어유희를 활용해서 여호와의 신탁을 주장하는 (거짓) 예언자들을 고발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훔친 ‘절도죄’, 자기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명의 도용죄’, 거짓 꿈과 거짓말과 허황된 백성을 오도한 ‘사기죄’로 거짓 선지자들을 고발하십니다.
⑴ 버림받은 예언자들(33-34)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 자들에게 부담스러운 짐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들이 짐이 되기에 그들을 던져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가 아니라 그 심판을 거절한 존재들을 짐 같은 존재로 여기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과 관련해서 바른 태도는 무엇이겠습니까?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자신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특별히 그의 말씀을 신탁한 자들 외에 여호와의 신탁을 주장하는 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곡해(曲解)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선포한 여호와의 신탁이 이들에게 짐 중벌이 될 것입니다.
‘엄중한 말씀’으로 옮긴 히브리어 ‘맛사’(משא)는 ‘짐’과 ‘신탁’의 이중적 의미 갖습니다. 심판을 선고하는 예레미야의 신탁을 부담스러운 ‘짐’으로 받아들이는 자들, 특히 예언자와 제사장이 (그의 뻔한 답을 예상하며) 그에게 조롱 삼아 ‘여호와의 (심판의) 신탁/짐’이 무엇인지를 묻고,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의 신탁을 짐스럽게 생각하는 자들에게 바로 그들이 여호와께 짐이 되기에 그들을 던져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33). 예레미야가 아니라, 그의 심판의 신탁을 거절하는 자들이 (여호와께) 짐(이 되는 존재)입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말씀을 선포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선언합니다(34). ‘여호와의 신탁/짐’이라며 자신의 말을 마치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처럼 포장하여 선포하는 자들은 그 집안이 함께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이들의 거짓 신탁이 이들을 벌하는 짐이 됩니다.
⑵ 여호와의 신탁에 관한 가르침(35-37)
‘여호와의 신탁’과 관련해서 바른 태도가 무엇 인지 를 가르쳐 줍니다.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여호와의 신탁/말씀’을 갖고 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36a). 이들은 단지 ‘여호와께서 무엇이라고 응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냐?’고 서로 물어볼 수 있을 뿐입니다(35). 여호와의 신탁이 특정 인물에게 한정되고, 다른 사람들은 단지 여호와의 신탁에 관하여 물어볼 수 있을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특별히 택한 자 외에 ‘여호와의 신탁’을 주장하는 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곡해하는 자들입니다(36b). 이들이 선포한 여호와의 신탁이 이들에게 짐(‘중벌’)이 될 것입니다. 다른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신탁을 직접 선포할 수 없고, 그분의 신탁이 독점적으로 주어진 예레미야에게 그분의 신탁에 관해 물어볼 수 있을 뿐입니다(37).
⑶ 영원한 수치(38-40)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에게 주는 심판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신탁을 선포하지 말도록 명령하셨음에도 자신은 여호와의 신탁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멸망의 심판이 선포됩니다. 자신의 감각을 의지해서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제외한 다른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에게는 여호와의 신탁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와의 신탁을 선포한다면, 여호와께서 당신께 짐이 되는 거짓 예언자들을 잊어버리시고, 그들과 그들의 선포를 따르는 예루살렘 성을 던져버리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들에게 잊지 못할 영원한 수치와 영원한 치욕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도 특정한 한 사람에게만 말씀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서로 성경을 통해 깨달을 말씀을 나누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에 가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서 잘 분별해야 합니다. 유명 설교자의 설교만 의지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가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묵상하고 반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부담스러운 말씀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게 두려운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다는 징표이기에 그렇습니다. 말씀을 짐으로만 여기는 아들은 자신이 하나님께 짐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무거운 말씀이 나를 살리는 은혜의 도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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