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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의 줄거리] 선조의 계비(繼妃) 인목 대비의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 대군이 역모에 연루되자, 광해군은 영창 대군을 궁 밖으로 내치려고 한다.
위께서 인사불성이 되어 다 돌아가실 뻔하다 겨우 정신을 차리시고 곁에서 부축하는 나인 우두머리 너덧 사람을 들어오라 하셔서 이르시되,
“너희들도 사람의 탈을 썼으면 설마 나의 애매함과 서러워하는 걸 모를 리야 있겠느냐? 내가 무신년(戊申年)에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은 대전이 선왕의 아드님이시기에 두 아이를 의탁하여 편안히 살게 해 줄까 함이었는데 여러 해를 두고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이 백 가지로 근심 만 하며 살아오다 흉적을 만나 이 세상에서 용납할 수 없는 대역이란 죄명을 내게 뒤집어씌우니 하늘이 아지 못하사 이토록 애매한 처지를 변명조차 하지 않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한단 말이냐. 이제 밖으로는 아버님과 동생을 죽이셨고 안으로는 나를 가까이 받들던 나인들을 모두 죽였으니 이 어린 것의 몸에는 죄가 미칠 까닭이 없으련만 또 대군을 내놓으라 하니 차라리 내가 저희 앞에 바로 죽어서 이런 망극하고 서러운 말을 듣고 싶지 않되, 대전의 말과 내전의 말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히 남아 있고, 나인들이 증인이 되었으니 임금이 설마 국모를 속이겠으며 범인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여러 번 은근한 말로 일러 왔으니 그 말들을 철석같이 믿고 내어보내겠거니와 두 어린 동생만은 놓아 주셔서 어머님을 모시게 하고 선조께 제사나 받들게 하여 주신다면 대군을 내어보내려 하노라. 이 말대로 대전과 내전에 전하라.”
하시고 애통해하시니, 사람으로서 눈물 없이 어찌 차마 들을 수 있으리오마는 그년들은 모진 말을 거리낌 없이 하되,
“이토록 말씀하시지 않으시더라도 대전께서 어련히 알아서 잘하시겠습니까? 속히 내어보내도록 하여 주십시오. 이 두 동생들일랑 고이 살게 하리이다. 대군을 빨리 내어보내 주십시오. 종이며 그릇들이며 궐내에 있던 대로 갖추어 보내시고 언감생심으로라도 다른 길로 빼돌리지 말고 저 살림하던 것을 덜어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피접*을 나가는 것이니 오히려 편안하고 좋으실 겁니다.”
하더라. 차마 내어보내시지를 못하시고 한없이 통곡하시니 두 아기들도 곁에서 함께 우시더라. 위에서 통곡하시며,
“하느님이시여. 제가 몹쓸 죄를 지었다고 하늘은 이토록 섧게 하시는가?”
이렇게 말씀하시고 하도 섧게 우시니 비록 철석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인들 어찌 눈물이 나지 않으리오마는 장성 내관들이 틈틈이 앉아서,
“너희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대군을 내어주지 않으실 것이니 좋은 낯으로 어서 빨리 들어가 여쭈어야지. 행여 서러운 빛을 보이거나 하면 다 죽게 하리라.”
하고 얼르니, 제각기 눈물을 감추고 들어가 여쭙는 것이더라.
“벌써 범인에게 잡혀 모면하실 길이 없게 되셨으니, 병환이 드신 본가댁 부부인마님께 지금 살아 계심은 오로지 위를 믿고 의지하심이니 미처 부원군 뼈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신 형편이실 겁니다. 두 오라버님이나 살려 주시거든 제사는 받들게 하시고 설움은 잠시 참으셔서 대군을 내어보내시오.”
날은 저물어 가고 어서 내라는 재촉은 성화 같고 또 안에서는 나인마저 나와 재촉하니 하늘을 깨칠 힘이 있다 한들 어찌 그때 이길 수 있으리오. 점점 더 늦어 가니 우리 시위인을 각각 꾸짖으며,
“너희들이 이러니까 할 수 없으니 우리가 들어가서 대군을 빼앗아 데리고 오겠다. 너희들 한 사람이라도 살 수 있나 어디 두고 보자.”
하고 들이닥치는데, 나이 많은 변 상궁이 들어가 여쭈기를,
“안팎 장정들을 보냈으며 밖에는 금부 하인들이 쇠사슬을 들고 위립하였고 나인들을 데려가려고 의녀대도 대령하였으니 우리 죽는 것은 서럽지 않건만, 위께서 믿으실 이 없어 이 늙은 것을 믿고 계시고 소인도 위를 믿고 의지하여 연약하신 옥체에 혹시 무슨 불행이 닥치더라도 소인이 살아 있다가 막아라도 드릴 수 있을까 하여 죽지 않고 살았는데 대군 아기를 저토록 내어주지 않으시니 이제야 죽을 곳을 알게 되었소이다.”
위께서 말씀하시되,
“너희들은 나인인 까닭으로 자식에 대한 어미의 정을 모르는도다. 인정상 차마 내어주지를 못 하노라.”
하시더라.
한편으로 대군을 모시고 있는 나인들이 대군 아기씨를 달래며,
“사나흘만 피접 나갔다가 올 것이니 버선 신고 웃옷 입고 나를 따라 나가압사이다.”
말하니, 이르시되,
“죄인이라 해 놓고 죄인들이 드나드는 문으로 내어 가게 하니, 죄인이 어찌 버선 신고 웃옷 입어. 다 쓸데없다.”
하시기에,
“누가 그렇게 말씀드렸습니까?”
대답하시되,
“남이 일러 주어서 아나 내 다 알았네. 서소문은 죄인이 드나드는 문이니 나도 죄인이라고 하여 그 문밖에다 가두려 하는 거다.”
하시고,
“나하고 누님하고 간다면 가려니와 나 혼자는 못 가겠노라.”
하시니, 위께서는 더욱 아득하여 우시더라. 어서 내라고 재촉하며,
“내어주지 않거든 나인들을 다 잡아 내라.”
겹겹이 사람을 풀어 놓는 것이더라. 대군을 뫼신 김 상궁을 곁나인이 잡아내어,
“더욱 울고 아니 뫼셔 내니 ‘옥에 가두라.’하신다.” / 하니,
“아무리 달래서, ‘나가십시오.’ 하여도 저렇게 우시고, ‘죄인 드나드는 서소문으로 나가시라.’ 하니 아무리 어린 아기씨신들 이렇듯 하시거든 어찌 이리 핍박하여 보채는고? 내가 모실 것이니 조금만 물러서라.”
하더라.
*피접: 앓는 사람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요양함. 병을 가져오는 액운을 피한다는 뜻.
01 윗글의 서술 방식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여 성격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②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③ 장황한 사건을 요약적으로 압축하여 간결하게 전달하고 있다.
④ 한쪽의 입장을 두둔하는 태도를 보이며 사건을 전달하고 있다.
⑤ 일상의 일을 하루하루마다 구분하여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02 윗글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때. 이에 대한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 대군을 궁 안에 두려는 세력 |
↔ |
ⓑ 대군을 궁 밖으로 내 쫓으려는 세력 |
② ⓐ는 대군 대신 두 동생들을 데려가기를 바라고 있군.
③ ⓐ는 대군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의 말이 지켜지기를 바라고 있군.
④ ⓑ는 강압적으로라도 대군을 데려가려고 하고 있군.
⑤ ⓑ는 대군을 내보내면 ⓐ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고 있군.
03 윗글을 읽고 당대의 문화를 추론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도성에 특별한 용도로 사용된 출입문이 있었다.
② 왕과 왕비를 지칭하는 고유한 명칭들이 있었다.
③ 피접을 갈 때 궁궐에서 쓰던 물건을 가져가기도 했다.
④ 나인, 상궁 등의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왕족을 보필했다.
⑤ 궁 밖으로 나갈 때는 버선을 신거나 웃옷을 입지 않았다.
도움자료
[2014 EBS 인터넷 수능]
(문학A)
작자 미상,「계축일기」
01 ④ 02 ② 03 ⑤
해제 ㅣ 이 작품은 조선 시대 궁정 비사를 작품화한 것으로,「인현 왕후전」,「한중록」과 함께 대표적인 궁중 문학으로 손꼽힌다. 이 작품을 수필로 보는 이도 있고 소설로 생각하는 이도 있다. 내용은 선조의 계비인 인목 대비 김씨와 그 소생인 영창 대군과 인목 대비의 아버지인 김제남을 몰아내고 권력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광해군 일파의 무옥 사건을 소재로 한 것인데, 이 소용돌이 속에서 비극적인 숙명에 희생당하는 어린 영창 대군과 인목 대비 김씨의 슬픈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음모의 와중에서 기어이 영창 대군은 희생되고 인목 대비는 구사일생으로 생존하여 인조반정 때에 복위되었다. 당시 인목 대비를 가까이 모시고 있던 어떤 나인의 수기라고 생각되는데, 문체와 역사적 사실을 들어 인목 대비가 썼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영창 대군이 역모했다는 무고로 인해 쫓겨나는 장면이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기술되어, 피비린내 나는 궁중 비극의 한 단면을 보는 듯 생동감이 있다. 조선 중기의 궁중에서 전개되는 풍속, 인정 및 생활상을 잘 보여 준 점,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한 우리말로 쓴 점, 중후하고 전아한 문체를 유지한 점 등은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 ㅣ 궁궐 내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의 비극성
구성 ㅣ 등장인물의 대립 구조
대군을 궁 안에 두려는 세력
•아들을 보내지 않으려는 인목 대비
•사지로 끌려가는 것을 짐작하고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영창대군
•영창 대군과 인목 대비를 동정하며 출궁을 막으려는 나인들
⇔
대군을 궁 밖으로 내쫓으려는 세력
•영창 대군을 출궁시키라 명령한 광해군
•광해군의 명령을 받들어 영창 대군을 데리러 와 재촉하는 내관들
01 서술상 특징 파악 ④
정답이 정답인 이유
‘사람으로서 눈물 없이 어찌 차마 들을 수 있으리오마는 그년 들은 모진 말을 거리낌 없이 하되,’, ‘이렇게 말씀하시고 하도 섧게 우시니 비록 철석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인들 어찌 눈물이 나지 않으리오마는’ 등에서 대군을 보내지 않으려는 쪽을 동정 하며 두둔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02 갈등의 양상 파악 ②
작품 속에 드러나는 두 세력 간의 갈등 양상을 파악하여 갈등의 원인과 세부적인 갈등 전개 과정을 이해하며 감상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문제이다.
정답이 정답인 이유
‘두 어린 동생만은 놓아 주셔서 어머님을 모시게 하고 선조께 제사나 받들게 하여 주신다면 대군을 내어보내려 하노라.’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대군을 궁 밖으로 보내는 대신 동생들을 풀어 주기를 바란다고 볼 수 있으므로 적절하지 않다.
① ‘이제 밖으로는 아버님과 동생을 죽이셨고 안으로는 나를 가까이 받들던 나인들을 모두 죽였으니 이 어린것의 몸에는 죄 가 미칠 까닭이 없으련만 또 대군을 내놓으라 하니’라고 말하는 부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③ ‘대전의 말과 내전의 말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히 남아 있고, 나인들이 증인이 되었으니 임금이 설마 국모를 속이겠으며 범인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여러 번 은근한 말로 일러 왔으니 그 말들을 철석같이 믿고 내어보내겠거니와’를 통해 상대방이 대군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말을 상기시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상대방의 말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그 말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④ ‘안팎 장정들을 보냈으며 밖에는 금부 하인들이 쇠사슬을 들고 위립하였고 나인들을 데려가려고 의녀대도 대령하였으니’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⑤ ‘이 두 동생들일랑 고이 살게 하리이다. 대군을 빨리 내어 보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03 작품의 내용 파악 ⑤
정답이 정답인 이유
나인들이 대군에게 ‘사나흘만 피접 나갔다가 올 것이니 버선 신고 웃옷 입고 나를 따라 나가압사이다.’라고 말했을 때, 대군 이 ‘죄인이라 해 놓고 죄인들이 드나드는 문으로 내어 가게 하니, 죄인이 어찌 버선 신고 웃옷 입어 다 쓸데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죄인으로서 버선을 신거나 웃옷을 입을 수는 없다는 의미이므로 궁궐 밖으로 나갈 때 버선을 신지 않거나 웃옷을 입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서소문은 죄인이 드나드는 문이니 나도 죄인이라고 하여 그 문밖에다 가두려 하는 거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출입문에 특별한 용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② 왕을 ‘대전’, 왕비를 ‘내전’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③ ‘대군을 빨리 내어보내 주십시오. 종이며 그릇들이며 궐내 에 있던 대로 갖추어 보내시고’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④ ‘나이 많은 변 상궁이 들어가 여쭈기를, / “안팎 장정들을 보냈으며 밖에는 금부 하인들이 쇠사슬을 들고 위립하였고 나인들을 데려가려고 의녀대도 대령하였으니 우리 죽는 것은 서럽지 않건만, 위께서 믿으실 이 없어 이 늙은 것을 믿고 계시고 소인도 위를 믿고 의지하여 연약하신 옥체에 혹시 무슨 불행이 닥치더라도 소인이 살아 있다가 막아라도 드릴 수 있을까 하여 죽지 않고 살았는데 대군 아기를 저토록 내어주지 않으시니 이제야 죽을 곳을 알게 되었소이다.”’, ‘대군을 모시고 있는 나인들이 대군아기씨를 달래며,’, ‘대군을 뫼신 김 상궁을 곁나인이 잡아내어,’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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