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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의 비밀 18강
히브리어를 왜 배워야 하는가? 가장 본질적인 개념을 주기 때문에 이것을 배우지 않고는 성경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성경의 주요 개념, 단어만 알아도, 그리스도를 설명할 수 있다. 사진을 계속 만드는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밖에는 주님을 볼 길이 없기 때문이다. 왜 주님은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는가? 주님 다시 오셔서 그 사진 보시고 아니면 어떻게 하겠는가? 집에 걸려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진이 다시 오실 그분과 같을 것이라고 확신하는가? 주님은 사진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어떠함으로 아는 것이다.
잠13:1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우리는 계속 ע아인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니엘의 기도 속에서 예레미야가 예언을 하는데 바벨론에 끌려가서 70년만에 돌아온다고 예언한다. 70년만에 돌아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엇이 생겨야 돌아온다는 것인가? 눈 수술을 해야 돌아온다는 것이다. 눈을 빼야 돌아온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시드기야가 끌려갈 때, 눈을 뺐다. 주님의 눈을 얻어야 돌아온다. 그래서 70년만에 돌아가는 것이다. 눈이 바뀌어야 한다.
עץ חיים תאוה באה 에쯔 하임 타아봐 바아 :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생명나무다
עץ 에쯔: 나무 / חיים 하임: 생명 / תאוה 타아봐: 갈망, 소원 / באה 바아: 오다
헤트에 대한 사역이 있는 것, 이것을 생명이라고 한다. 생명나무는 타아봐가 오는 것이다. 타아봐가 있는 것이 생명나무이다. 주님께서 타아봐가 생명나무라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눈이 그리스도의 눈이 되면 진정한 타아봐를 가지고 생명나무를 오게 하는 것이다. 헛된 타아봐를 가지는 것은 우리에게 죽음을 가지고 온다.
헛된 타아봐의 핵심이 무엇인가? 주님은 나무로부터 먹으라고 말씀하신다.
עץ 의로운 눈: 에쯔라는 것은 의로운 눈을 의미한다.
에쯔에서 끝에 있는 알파벳 철자가 짜딬의 소핏 형태이다. 짜딬는 의인을 가르치는 것인데. 등에 요드를 지고 다니는 것이다. 세상 근심을 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요드를 지고 다니는 것이다. 의로운 눈으로부터 너는 먹으라는 것이다. 먹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신성의 성품을 열어서 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열어야지만 훈련할 수 있다.
אכל 아칼: 먹는다
열어서 훈련하는 전문가를 무엇이라고 하는가? 그런 자들을 신부라고 부른다.
כלה 칼라: 신부 - 그리스도의 정신 세계를 여는 자를 말한다.
자기 생각에 사로 잡힌 자가 아니라 신랑의 생각을 열어서 그것을 훈련하는 것을 생명으로 여기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한다. 자기 생각을 여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니다. 신부들이 제일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먹는 것을 제일 잘한다. 오늘날 그래서 여자들이 먹는 것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음식은 여자가 해야 한다. 남자는 사냥만 해오면 된다.
어디로부터 훈련하라는 것인가? 아칼을 어디서부터 하라는 것인가? 의의 눈으로부터, 나무로부터 먹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가 무엇으로부터 먹었는가? 열매로부터 먹었다. 주님은 한번도 열매를 먹으라고 하신 적이 한번도 없다. 창3장6절 전에는 한번도 열매를 먹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여자가 무엇을 먹었는가? 열매를 먹어버렸다. 나무로부터 먹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타아봐 없이, 갈망과 열망 없이, 훈련이 없이, 적용이 없이, 그대로 먹어버린다는 것이다. 훈련이 없이 열매를 취하는 것,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다. 악인의 갈망이라는 것은 훈련 없이, 적용 없이, 열매를 원하는 것이다.
히브리 스쿨을 하는데 훈련 없이 23 글자를 순식간에 외우려고 하는 것을 악인의 갈망이라고 하는 것이다. 악인의 불평이 있게 되면, 그곳이 키브롯 하타아봐가 된다.
민11: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백성들이 불평을 한다.
민11: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탐을 냈다. 욕망을 냈다. 그런데 잡족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잡족은 에레브라는 것인데, 쾌락, 육신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잡족이라고 한다. 우리 안에 잡족이 있는가? 없는가? 우리 안에 잡족이 많겠는가? 적겠는가? 훈련을 얼마나 받았는가에 따라 잡족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다.
이 잡족들이 큰 문제를 일으킨다. 이 잡족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늘 있게 된다. 이 잡족을 처리하는 과정이 민수기 11장이다. 이 잡족들이, 아주 감각적이고 육신적인 에레브가 쾌락을 좋아한다. 이것이 타아봐를 가진다. 이것이 열망을 가지면 열매만을 추구하게 된다. 감각적인 것(육신적인 것)은 항상 훈련 없이 열매를 따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민수기 11장은 창세기 3장을 설명해 놓은 것이다. 고기 먹겠다고 하는 것이다. 온 세계가 고기 먹겠다고 아우성 치고 있는 것이다.
민 11: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우리가 출출한데 먹을게 만나 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מן 만: 만나 – 진리를 규정하는 것
만나, 진리를 규정하는 것 이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잡족들이 출현하면 번영신학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리스가 나타나도 잡족들의 특징은 징징거리는 것이다.
민11:10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가문별로 운다. 잡족들도 가문이 있다. 온갖 불평을 다한다. 잡족이 출현하면 신성한 진리인 모세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주님께서 영을 부으셔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
민11:33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34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35 백성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행진하여 하세롯에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
קברות התאוה 기브롯 핫다아 (키브롯 하타아봐): 욕망, 탐욕의 무덤
탐욕의 무덤들이라는 의미이다. 주님께서 잡족들의 타아봐를 묻어버리신 것이다. 불평을 하게 되면 잡족들의 타아봐에 빠지게 된다. 헛된 욕망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자기 집을 짓는 것을 바벨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집에 대한 열망, 의인의 열망은 생명나무를 오게 한다는 것이다.
잠21:25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잠언에 많이 나오는 인물 중에 하나가 25절에 출현하고 있다. 게으른 자의 타아봐는 어떻게 되는가? 자기를 죽인다. 게으른 자가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게으른 자는 눈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늦게 일어나는 자가 게으른 자가 아니다
게으른 자를 아쩰이라고 한다.
עצל 아쩰: 게으른자
눈이 있는데 눈이 의를 훈련하는 것을 봐야 하는데, 자기 의를 훈련하면 쩰이 부정적으로 사용된다. 히브리어에는 긍정과 부정이 있다. 양면이 있다.
צל 쩰: 그림자.
그림자를 보는 눈을 가진 자를 게으른 자라고 하는 것이다.
민15: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민수기 14장은 굉장히 중요한 원리를 설명한다. 열 두 정탐꾼들이 갔다 와서 가나안 땅에서 무엇을 보고 오는가? 아낙자손 네피림들을 보고 온다. 거인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 환상이다. 허상이다 이미지다. 그 때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그 땅의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갈렙과 여호수아이다 이 두 사람은 전혀 다르게 보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다르게 보는가? 여호수아와 갈렙은 왜 다르게 보는가?
‘그들의 그림자는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바로 이 보호자가 바로 쩰, 그림자이다. 이 세상에 사단의 보호자, 사단의 왕국이 강해 보이는 것처럼 만들지만, 이런 것들이 무엇이라고 하는 것인가? 그림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들이 무엇을 보고 왔다고 하는 것인가? 허상을 보고 왔다는 것이다. 네피림이 그림자라는 것이다. 허상을 보고 왔다는 것이다. 너희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보고 왔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빛으로 만들어낸 이미지를 보고 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보호자라는 것이다. 그게 굉장히 강력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다 떠났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허상이고 이제 없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밥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의 보호자, 쩰. 허상, 사단이 자신의 왕국을 유지하는 힘이 바로 이 쩰에서 나온다. 그래서 사단은 끊임없이 네 자신이 빛이다, 자신이 보는 것이 진리다라고 하는 것이다.
알파벳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이 이 허상의 세계를 제거하시고자 하시는 것이다. 네가 보는 게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늘 다투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 내가 맞다. 내가 맞다 하는 문제이다.
게으른 자라는 것은 단순하게 일을 하고 안하고가 아니고, 허상을 보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림자 속에서 그림자를 보는 자가 가지는 열망, 갈망이 바로 자기 자신을 죽인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그림자 속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열망한다. 저것 좀 가졌으면, 이 상황이 없어졌으면, 내가 좀 이런 자였으면 등 이런 그림자에서 끊임없이 열망한다. 이것이 생명이 되는가? 서서히 나를 옭아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게으른 자의 정욕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허상을 보지 않아도 되게 하신다. 우리의 눈이 되어주신다. 나는 더 이상 허상을 보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그리스도께서 나의 아인 되셨을 때, 나는 더 이상 게으른 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잠22:12 여호와의 눈은 지식 있는 사람을 지키시나 사악한 사람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
여호와의 눈이 나온다. 이분을 그리스도라고 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여호와의 눈이다. 여호와의 눈만이 실제를 본다. 여호와의 눈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실제를 볼 수 있다. 여호와의 눈이 지식이 있는 자를 지킨다. 그리스도는 나의 눈이다. 여호와의 눈이 내게 있음으로 나는 볼 수 있다는것이다.
잠22:13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אריה 아르에: 사자
게으른 자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허상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저 사람이 나를 망하게 한다고 한다는 것이다. 밖에 사자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자가 무엇인가? 사자는 아르에, 사자는 빛이다. 사자는 주님을 의미한다. 그런데 빛과 주님을 보고도 밖에 사자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참 빛이 왔을 때, 백성들이 영접을 했는가 안 했는가? 어둠 속에 있으니까. 어둠을 사랑하니까, 자기 이미지가 자기 세상이기 때문에 다른 빛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을 자꾸 사자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본 것을 진리라고 하는데 우리는 이제 주님을 위해서 내가 본 것을 진리라고 하는 것을 부인할 줄 알아야 한다.
길거리에서 나를 죽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허상의 세계이다 눈이 바뀌지 않으면 그 허상의 세계에서 누군가가 나를 죽인다고 외치게 된다. 우울증이라는 것은 조금만 뭘 이야기 하려고 해도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나를 상처 준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자가 자꾸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 이런 의미이다.
게으른 자라는 번역은 사실 느낌을 잘 주지 못한다. 게으른은 아쩰이다 참 빛을 거절하고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참 눈을 거절하고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잠26: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자기 눈에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자기 눈을 가지고 있으면 게으른 자가 되어서 여기 또 나온다. 사자가 길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사자가 광장에 있다고 한다. 온 세상이 이러고 있는 것이다. 자기 눈이 지혜롭게 여겨서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눈이 되어서 여호와의 눈이 우리 속에 와 계신다. 이것이 얼마나 큰 구원인가를 알아야 한다.
여호와의 눈이 우리에게 왔을 때, 모든 허상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실제를 보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갈망을 가지게 된다. 생명나무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인 다음이 페이다. 진정한 삶이 오는 것이다. 페는 헤트가 이루어진 것이다. 헤트가 와서 8=>80 생명나무가 오게 된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는 이 타아봐를 다룬다. 잡족들의 타아봐를 갈라디아서에서는 육체의 소욕이라고 한다. 의인들의 타아봐를 성령의 소욕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아인으로 영접할 때, 성령의 소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육신의 소욕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타아봐를 가진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수 있다.
그래서 예슈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하시는 아인이 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슈아이시다. 할렐루야. 주님을 예슈아로 부르시기 바란다. 잃어버렸던 아인을 찾으시길 바란다. 주님의 눈이 우리들의 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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