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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기행문
7/26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고구려 문화 답사기를 오늘 떠나게 됐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돌아다니며 준비를 서둘렀다. 동생은 오늘 산악캠프를 떠나서 충주까지 나와 동행하기로 하였다. 7시20분쯤 부모님의 마중을 받으며 여행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날은 왠지 모르게 설레 여서 차에만 타면 잠들던 내가 잠도 안자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충주에 도착해 우연적으로 같이 여행하게 된 경식이네와 합류하여 속초로 향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깜박 잠들었다가 깨어나니 휴게소에 멈춰서는 게 아닌가? 그곳에서 영은이네 와 합류한 후 다시 속초로 출발하였다. 속초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고, 소집시간은 1시라서 여유롭게 식사를 마친 후 소집장소로 향하였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선생님이 일행들을 차례대로 소개시켜 주셨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은 대가족이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 셋, 첫째가 나와 동갑인(중3)김현교 둘째는 1살 김찬교 막내는 초3 김민교 였다. 답사대원들은 전국적으로 모였는데, 거제, 서산, 강릉, 제주, 공주, 충주 그리고 청주 등 많은 사람들이 가자 서로 다른 곳에서 같은 목적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내 소개를 할 때 나 혼자 왔다고 하자 모두가 놀란 눈치였다. 학생들 중 자기 혼자 온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기 때문이다. 배에 올라타서 방안에 들어가니 현교네 가 먼저 들어와서 나를 반겼다. 처음엔 서로 부끄러워 말도 잘못 걸었지만 한번 말이 뚫리니 서로 무언가 통하는 감이 있는듯했다. 나와 현교형제, 경식이 남매, 영은이, 그리고 경식이와 같은 방을 쓰는 박호균, 이렇게 모두모여 원 카드를 치며 즐겁게 놀았다.
7/27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죄다 떠있다. 내가 이래서 머리를 안 기르는데 .... 밥을 먹고 갑판위에 올라서니 육지가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갑판위의 사람들에게 내려오라고 말하듯 경적을 크게 울리며 육지로 향했다. 항구에 도착해서도 견인선이 느려 터져서 30분은 기다린것 같다. 내리고 나서 곧바로 입국수속을 거쳐서 버스에 올랐다. 차를 타며 풍경을 바라보니 시골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집들과 도로가 눈에 띈다. 한참을 달려 출국하는 곳에 도착했는데 또1시간을(내가 느끼기에) 기다려 겨우 출국 수속을 밟았다. 러시아를 출국 하자마자 바로 중국에 입국!!!!
중국세관을 나오니 가이드가 우릴 맞아주었는데, 이 가이드는 연변에서도 5손가락 안 에 꼽힐 정도로 유명하단다. 점심을 먹기 위해 어떤 식당으로 갔는데, 그식당이 귀빈들만 모신다는 식당 이란다. 뭐... 애들 관점에선 그저 그런 식당이지만 말이다.
점심을 먹고 달리다가 갑자기 가이드가 교체되어 버렸다. 이유인 즉슨 우리를 도울 가이드가 어제부터복통에 시달린것 이었다. 그렇게 해서 가이드는 이영이란 누나로 교체되었다. 가이드 말이 앞으로 6시간은 가야지 백두산 근처에 도착 한단다. 결국 한참을 차를 타고 가서야 숙소에 도착 할 수 있었다.
7/28
드디어 백두산의 천지를 보러간다. 이번 고구려답사의 하이라이트인 만큼 기대가 크다. 기쁜 마음으로 아침밥을 먹으러 갔는데 호빵을 고르고 한입 베어 물었는데 이게 웬일? 호빵 안에 팥이 없다. 이렇게 난감할 수가 없다. 결국 입에 맞는 음식이 없어 그냥 밥만 먹고 나왔다. 버스를 타고 조금 가니 백두산 주차장이 보인다. 거기다 주차를 한 후 백두산입구로 향하였다. 입구에 가니 중국인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백두산을 장백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버스를 타고 올라가니 지프차가 줄을 서있다. 그이유인 즉 천문봉 까지 그걸 타고 올라가야하기 때문이다. 한차에 6명씩 타고 천문봉 으로 올라가니 안개가 자욱하게 껴있다. 더군다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안에서 비까지 내리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안개 때문에 천지도 못보고 내려와야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천지폭포(중국인들은 장백폭포라고 부름) 가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도착하니 갑자기 비가 세차게 몰아치며 바람이 분다. 이곳에서 천지까지는 2시간정도 소요된다.(아마도) 천지폭포를 보니 그 거대하고 웅장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천지로 올라가는 길의 경사가 급한 곳이 있어 힘들었지만 그래도 천지를 본다는 생각에 열심히 올라갔다. 천지에 올라가니 반대편이 흐리게 보일정도로 천지의 규모는 막강했고 여름인데도 아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서늘하였다.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다 내려와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온천을 하러갔는데 나오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니 온천탕에 이끼가 끼었단다. 결국 그 얘기를 들은 나와 영은이 가족, 경식이 가족 그리고 준희네는 온천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1시간을 밖에서 보내야했다. 온천이 끝나고 밥을 먹고 노래방으로 향했는데 주국에서는 시간제한 없이 한방에 10만원이란다. 우리나라로 치면 6시간30분을 해야 본전을 따는 가격이다. 그날 중3들 넷이서 서로 누가 먼저 부를까 하다가 가위 바위 보로 결판을 내기로 했는데 아뿔사!!! 내가 당첨되어 버렸다. 노래방에서 여자애들 보고 한곡 부르라고 하자 극구 사양하던 애들이 한곡 뽑고나니 아주 술술 터져 나온다. 노래를 다 부르고 기차에 오르니 내가 생각하던 의자 칸이 아니라 침대가 양옆으로 3층씩 있다. 오늘도 아주 편하게 잘 수 있었다.
7/29
아침 일찍 일어나니 가이드가 거의 다왔다며 일행들을 깨웠는데 거의 다왔다더니 30분이 넘도록 역의 코빼기도 안 보인다. 결국 책을 보는 걸로 시간을 때우다가 밖을 보니 그제야 역이 보인다. 기차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 호텔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먹었고 그나마 중국음식 중에 먹을 만한 음식을 먹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 배불리 먹고 밖으로 나오니 밖에 웬 대포가 설치되어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인가 했더니 식당이 포함되어 있는 호텔에서 결혼식이 열린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여튼 아침을 먹고 버스에 오르니 가이드가 자기소개를 했고 우리는 비로수(주몽이 부여군에게 쫓겨 졸본부여로 넘어갈 때 건넌 강)를 건너 집안 시로 향하였다. 집안 시는 고구려당시 두 번째 수도였던 국내성이다. 그래서 그런지 집안 시에는 고구려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 매우 많다. 집안 시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놓은 후 12시30분에 점심을 먹고 관마산성으로 출발하였다. 집안 시는 사면이 산으로 막혀있어 산을 산성의 일부로 이용하였다. 관마산성을 보고 산성아래에 있는 묘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그곳에는 대략2000개가 넘는 무덤이 있었고 그 규모는 엄청났는데 그날따라 무더위에 쪄죽는 줄 알았다. 그 후 우리는 광개토 태 왕릉과 태왕릉비, 그리고장군총 을 보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장군총이란말은 잘못된 표현이고 올바른 표현은 고구려 제20대왕 장수왕릉 이라고 말해야 맞는 표기법이다. 오후가 되어서 우리는 압록강보트를 타기위해 압록강 선착장으로 갔다. 원래는 유람선을 타려고 하였으나 가뭄으로 인해 물이 많이 말라 유람선이 움직일 수 없다고 하여 모터보트를 타고 압록강을 가로지르며 달렸다. 나와 함께 탄 사람은 제주소년 어머니와 제주소년(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현교와 나, 의표와 의표네 아버지 그리고 준희 가 탔는데 나는 재밌어 죽겠는데 현교는 커브를 할때 마다 얼굴이 사색에 질린 게 눈에 보인다. 신나게 보트를 탄 후 맛있는 고기로 저녁식사를 마쳤고 나와 준희, 찬교, 현교 그리고 경식이는(의표는 맞장구만 쳤다.)기사 아저씨가 문을 열어주실 때 까지 압록강을 보며 만일 마법이 존재한다면 압록강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하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 광개토태왕릉비(내부촬영이 안 되는 관계로 결국 내부촬영은 포기)
7/30
오늘은 졸본산성(중국인은 오녀 산성이라고 함)을 본 후 기차를 타고 연변자치주로 돌아가는 날이다. 차에 타서 PSP(휴대용 플레이 스테이션)를 했더니 멀미가 나 자려고 했는데 경식이 와 그 외 일당들 때문에 수면을 취하지 못하여 상태가 악화 결국 멀미에 체하기까지 하여 중국에서 최악의 점심을 맞아야 했고 결국 점심엔 달랑 오이 두 조각만으로 배를 채워야 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번엔 가이드의 말이 귀에 거슬린다. 백두산을 자꾸 장백산이라고 하질 않나 졸본산성을 오녀 산성이라고 하질 않나 아무리 중국에서 산다지만 같은 한민족인데 너무했다. 이영누나도 백두산이라고 하는데... 졸본산성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올라가니(이곳엔 따로 셔틀버스를 운영하여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셔틀버스를 타고 졸본산성 바로 아래까지 올라간다.) 909계단(정확하지는 않음)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간신히 다 올라가서 쉬고 있는데 어느 선생님이 가마를 타고 올라오신다. 가마 무게가 장난이 아닌데 지게꾼들 팔에 근육이 나와 있다. 확실히 힘이 많이 들지만 그만큼 돈도 많이 버는 직업이다. 졸본산성을 계속 오르니 웬 연못이 있다. 그 높은 산위에 연못이 있는 걸로 보아 이곳이 최적의 방어수단이었다는 걸 알게 해준다. 산성에서 내려와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고 기차를 타고 연변자치주로 향하였다.
7/31
기차에서 내리니 이른 새벽인데도 가이드누나와 보조가이드 형이 마중을 나왔다. 오늘은 목욕을 한 후 아침을 먹고 김일성낚시터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잠시 있다가 두만강발원지로 향하였다. 두만강발원지의 물은 너무나도 맑고 시원했다. 어찌나 시원한지 오금이 다 저릴 정도였다. 두만강발원지를 보고난 후 일송정으로 향하였다. 이곳은 일제시대 에 일본인이 민족의 얼이 있다고 하여 불태운 소나무를 기리기 위하여 정자와 소나무 한그루를 심어놓은 곳이다. 그곳에 간 다음 우리가 향한 곳은 용정이었는데 용정이란 용정시가 세워질 때 만들어진 최초의 우물을 말한다. 그곳에서 용정을 본 후 인력거를 타고 용정중학교로 향하였다. 이곳 용정중학교는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어떠한 권력이 있어도 오직 조선인만이 들어올 수 있는 학교이며 또한 이곳은 윤동주시인이 다녔던 학교로도 유명한곳이기도하다. 그곳에서 우리는 용정중의 역사를 듣고 난 후 연길시 로 가서 중국에서의 마지막만찬 그리고 북한공연을 본 후 숙소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일송정 옆에 자리하고 있는 소나무, 우리나라와 용정시에서 같이 심은 나무다.
8/1
우리는 오늘아침5시30분에 기상하였다. 이것이 모두 세관통과 시간을 감안한 것 이었기에 우리는 두말없이 일어나야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침부터 배가아파서 화장실에 틀어박힌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라는 것 이었다. 나도 화장실에 서 한참을 있다가 지사 제를 먹고 나서야 속이 가라않았다. 우리는 호텔을 나와 쇼핑센터로 향하였다. 그런데 아직 아버지와 큰삼촌의 선물을 사지 않았는데 살게 없는 것이 아닌가? 결국 아버지와 큰삼촌선물은 사지도 못하고 밖으로 나와야 했다. 쇼핑센터를 나와 우리가 간곳은 냉면집이었는데 그릇이 무슨 세숫대야만하다. 우리나라처럼 그릇만 큰 것이 아니라 양도 푸짐하여 우리나라 냉면2그릇정도의 양이었다. 냉면을 맛있게 먹고 난 후 우리는 세관으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가이드누나, 보조가이드 형의 배웅을 받으며 중국을 빠져나와 러시아로 향하였다. 러시아 입국수속 전 차량통과에서 꽤 많은 시간을 잡아먹고 입국수속을 마쳐서 다시 차에 올라 한참을 달렸더니 1시간정도는 지났을까? 드디어 항구에 도착하였다. 입국보다 출국이 오래 걸리기에 PSP를 하며 시간을 때우다가 줄을 섰는데 우리 앞에 사람은 없는데 들여보내주질 않는다. 또다시 서서 5분정도를 기다린 끝에 배에 오를 수 있었다. 배에 올라 우리들은 갑판위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였고 일몰을 보다가 아래로 내려가 한국에 도착할 내일을 꿈꾸며 잠이 들었다.
8/2
국기 게양대에 우리나라 국기를 거는걸 보니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나보다. 배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내릴 수 있었다.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드디어 집으로 향한다. 모두와 정들었는데 벌써 헤어져야 한다니 안타깝기도 조금은 슬프기도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인연이 닿는다면 또 만날 수 있을 것 이라는 희망을 같고 힘차게 집으로 향했다.
첫댓글 우
아
박 건호 화이팅


언제 이렇게 많이 컷나요
대견 스럽다 근데 7월28일에보면 주국이라 했던데,또 7월29일에 비로수 잘못된게 아닐까 고모도 아직 못가봤는데 건호는 부모님께 감사 드려야 해야겠어 좋은글 잘읽고 가네 ^^*
참 사진이 어디에 있을까 백지로만 있던데 어떻게 해야보는 걸까 알려주기 바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