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자따의 우유죽 (18)
동녘이 밝아올 무렵, 보살은 새 길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걸식하기 위해서는 옷부터 바꾸어 입어야 했다.
몸을 가리던 누더기는 너무 낡아 속살도 채 가리지 못했다. 묘지에 버려진 옷들을 주워 우루웰라의 연못으로 갔다.
빨래터 여인들이 힘겹게 다가와 옷감을 물에 적시는 보살의 모습을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옷을 제게 주십시오. 빨아 드리겠습니다.”
보살은 손을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스스로 할 일입니다.”
보살은 시체의 피고름이 묻은 옷을 빤 뒤 언덕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고행으로 야윈 다리는 낮은 언덕을 오르기도 버거웠다.
물의 여신이 발목을 붙잡기라도 한 듯 휘청거렸다. 때마침 불어온 훈훈한 바람에 언덕 위 나무가 가지를 드리웠다.
나뭇가지를 붙잡고 언덕을 오늘 보살은 강변 그늘에서 분소의(糞掃衣)를 말렸다. 그러자 출가자에게 어울리는 옷이 되었다.
아침을 지으러 여인들이 연못을 모두 떠나고 난 뒤, 보살은 천천히 일어나 마을로 들어갔다.
그 무렵, 장군의 딸 수자따(Sujata, 善生)는 심상치 않은 꿈을 꾸었다.
“수자따,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신 분에게 최초의 공양을 올릴 기회를 놓치지 말라.”
토지신의 목소리는 수자따의 귓전에 쟁쟁했다. 수자따는 정성스럽게 소젖을 짜 일곱 번을 끓인 다음, 정수만 골라 새 그릇에 새 쌀과 함께 다시 끓여 죽을 만들었다. 죽이 만들어지자 깨끗한 발우에 담고 향수와 꽃으로 장식한 좌대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시녀에게 말했다.
“문 앞에 있다가 걸식하는 수행자가 나타나거든 집으로 모셔라.”
조용한 거리 저쪽에서 볼품없는 천을 두른 한 수행자가 나타났다.
토지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안 수자따는 무릅을 꿇고 준비했던 우유죽을 올렸다.
수행자의 손에는 흔한 진흙 발우 하나 없었다. 보살이 말하였다.
“식사가 끝나면 이 발우를 누구에게 돌려줘야 합니까?”
“발우를 드리겠습니다. 뜻대로 하소서.”
보살은 우유죽이 담긴 발우를 들고 우루웰라 마을을 나와 네란자라의 샛강 숩빠띳티따(Suppatitthita)로 갔다.
강기슭에 발우를 내려 놓고는 오랜 세월 다듬지 않은 머리와 수염을 말끔히 자르고, 강에 들어가 몸을 씻었다.
기슭으로 올라와 나무 아래 자리 잡은 보살은 우유죽을 맛있게 먹었다.
우유죽을 먹는다는 것은 숲 속 최고의 고행자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위없는 지혜를 기대하고 경외심을 품었던 다섯 수행자는 크게 실망했다.
“고따마는 죽을 만큼 고행하고도 최고의 지혜를 얻지 못하더니, 이제는 좋은 음식까지 탐내는구나,
고따마는 고행을 버렸다. 고따마는 게으른 사람이다. 고따마는 타락했다.”
그들은 손가락질하며 북쪽으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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