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잠언 16:1~17
설교: 정직한 거래는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이다
● 기독교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대로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의 핵심 요약은 십계명이고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들이 흩어져 세부적으로 마음에 적용되면 도덕법이 되고, 더 나아가 상거래 같은 실생활에 적용되면 정직한 거래가 됩니다.
잠16:11 (현대인의성경) 사람은 모든 상거래에 있어서 정직해야 한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세우신 원칙이다. 개역개정) 공평한 저울과 접시저울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가 지으신 것이니라 |
구원파나 극단적 세대주의자 등 율법폐기론자는 십계명이 복음과 대립되는 율법이라고 매도를 하는데요. 과연 십계명에 복음이 없습니까?
출애굽기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제1계명) |
위 말씀은 십계명의 제1계명인데, 오직 하나님만을 믿으라는 제1계명의 말씀이 복음과 대립되는 율법이라고 어거지를 쓰는 사람은 복음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독생자” 예수를 믿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한 구원을 안다면 십계명의 제1계명은 복음과 대립되는 율법이 아니라 율법의 모양을 한 복음입니다. 제1계명은 신약에서 아래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사도행전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이 구약의 출애굽기에 적히면 복음과 대립되는 율법이고 신약의 요한복음이나 사도행전에 적히면 율법과 대립하는 복음이라고 여기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고 그렇게 구약과 신약의 단절성∙율법과 복음의 대립에 과도하게 몰입하면 율법폐기론∙도덕률폐기론에 빠집니다. 여러 이단과 사이비를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 같이 율법폐기론∙도덕률폐기론의 모습을 보여주며 더럽습니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뜨고 있는 고발 동영상 『나는 신이다』를 보면 그들은 모두 십계명을 위반하는 자들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의 핵심 요약본입니다.
● 제1계명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서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게 된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와 복음의 첫 번째 단추이고요. 이렇게 구원을 받은 자들은 신앙적인 것∙종교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들 외에, 일상 생활에서, 심지어는 모든 상거래에서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원칙을 지킵니다(잠16:11). 하나님께서 세우신 원칙과 그것을 기록한 성경은 먼저는 신앙에 그리고는 모든 생활에까지 확장되어 최고 원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
하나님께서 세우신 원칙을 믿고 지키는 것을 흔한 구원의 서정으로 이야기하면 넓은 의미의 성화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이방인이 본성의 빛을 따라 상도덕(商道德, business morality)을 지키면 일반양심이 되고요.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성경을 따라서 정직하게 상거래(商去來, business deal)를 하면 신앙양심이 됩니다. 일반 양심은 일반 은총의 결과이고 신앙 양심은 특별 은총의 결과인데요. 이들 두 가지 은총과 양심은 구분(distinguish)은 되지만 분리되지는 않습니다(not separate). 신앙 양심을 가져야 하는 자가 일반 양심을 가진 자보다도 더 부도덕하게 더 거짓스럽게 산다면 그는 신앙 양심을 가지지 못한 자이고 특별 은총을 받지 못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잠16:11이 말씀하는 ‘여호와께서 세우신 원칙’의 원칙은 ‘이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믿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원칙을 지키는 정직함입니다. 이는 칭의(justification)의 원인이 성화(sanctification)가 아니고 칭의의 결과가 성화인 것과 비슷합니다.
● 우리가 성도이든 아니든 타인과 거래를 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이해타산(利害打算)적으로 계산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럴 때 가장 영리하게 계산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계산법은 원칙과 규범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원칙의 반대말은 예외인데요. 예외에 해당되면 확률적으로 불리해집니다.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를 쓰는 것이 원칙인데, 예외로 달려가서 마스크를 안 쓰면 감염되기 쉬운 것이 쉬운 예일 것입니다. 규범은 대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로 만든 것이 많습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해악이 되는 것을 지속적으로 경험한 후에 이를 교정하기 위하여 규범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예: 민식이법∙부동산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사항). 그런 점에서 규범은 기존 제도의 허점과 시행착오를 반성한 사회적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거래를 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규범을 준수하는 것은 가장 효과적이고 영리한 계산법입니다. 예를 들어 알바생으로 취업을 하면 법규에 따라 근로계약서를 쓰고 부동산거래를 하면 법 규정에 쓰인 대로 확인설명서를 교부 받는 것이 원칙이고 안전한 것입니다. 괜히 인정에 호소하고 어물쩡 경우에 어둡게 넘어가다가는 사기를 당하고 봉변을 치룹니다. 원칙과 규범을 무시하면 막심한 피해를 입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원칙과 규정 같은 것조차도 우리에게 영리한 계산법을 알려주고 안전한 상황으로 이끌어 주는데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원칙(잠16:11)이 성도들을 보호하시는 지혜와 안보(安保)의 능력은 얼마나 더 강력하겠습니까? 아무리 착해 보이고 친절한 사람일지라도 원칙을 어기는 사람은 관계를 맺고 거래를 함에 있어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며 위험한 사람이고, 확실히 모든 진상이 파악되지 않을지라도 어딘가에 거짓말과 궤계를 숨겨놓은 사람입니다. 어떻게든 거짓말과 술수가 동원되는 거래는 위험하고 불편하며 정신과 육체에 피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거짓말쟁이들과 사기꾼들은 가스라이팅 시도와 적반하장으로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깐깐하다고 디스하고 매도하며 뱀 같은 혓바닥을 낼름거리듯이 마귀의 흉내를 낼 것입니다. 크든 작든 농담이든 진담이든 거짓말은 마귀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
왜 거짓말을 할까요? 궁극적인 이유는 그 사람의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외견상 목사∙장로∙집사∙교인일지라도 왜 거짓말을 할까요? 진리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원칙(잠16:11) 같은 것을 디스하고 무시하는 죄악의 원조와 원흉은 마귀였습니다.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원칙이 먼저 있었는데요. 그 내용은 단순한 편이었습니다.
창2: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
그런데 이 단순한 하나님의 원칙을 복잡∙미묘하게 왜곡한 것이 마귀의 화법과 궤계였습니다. 원칙을 비틀고 교묘하게 거짓말을 하는 수법이지요.
창3:1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
참으로 말씀하신 것들 즉 하나님께서 세우신 원칙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점차 강도를 높여서 죽음의 길로 유도하는 것이 거짓말과 마귀의 궤계이며, 마귀의 수법을 따라쟁이로 흉내 내며 대인관계와 거래에 활용하는 악인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원칙을 준수하고 정직하게 판단을 하면 속지 않고 안전할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축복입니다.
첫댓글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제41문
문) 도덕법은 어디에 집약되어 있습니까?
답) 도덕법은 십계명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신10:4 여호와께서 그 총회 날에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
마19: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소교리문답이 주는 간결함과 정확성이 돗보입니다.
@천이다 공감합니다.
도덕법은 십계명으로 집약되기 전, 어디에서 완전하게 공표되었는가? 모세는 시내산에서도덕법의 내용을 집약한 두 돌판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모세 율법이라고 부른다. 그것이 왜 모세 율법이라 불리게 되었는지를 안다면. 그 명칭 때문에 오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도덕법은 모세 율법이라 불리지만, 실은 모세가 태어나기 오래전부터 이미 온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법이었다. 도덕법이 처음으로 공표된 것은 두 돌 판이 시내산에서 기록된 때가 아니었고, 성령이 아담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했을 때였다.
도덕법은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요 1:9)이고, 그 빛은 사람의 영혼 안에서 처음으로 켜졌을 때 가장 밝게 타올랐다. 모세는 그 빛이 아니었고, 그 빛을 증언하러 온 사람이었다. 모세는 단지 도덕법의 변색된 등불을 다시 깨끗하게 닦고, 그 죽어가는 불빛에 새로운 기름을 부어 환하게 밝히는 사명을 받은 인물이었다. 그는 그 빛을 켠 인물이 아니라 그 빛을 촛대에 붙여 이스라엘 집에 속한 모든 사람을 비추게 한 인물이었다. 인간 본성의 도덕법, 양심의 법, 창조의 법은 십계명으로 집약되고 다시 공표되었다.
소교리문답 강해, p.117.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작상자인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의 논지와 비슷하고 배울 점이 많은 합당한 설명입니다.
좋은 묵상이고, 실생활에도 도움이 됩니다.
원리 원칙을 어기고 복잡하게 살수록 피곤하고 위험 확률도 높아집니다.
매우 공감합니다. 쉽게 말해 법대로 법 지키는 게 결과적으로 이득이고 마음도 편합니다.
"십계명"
가장 오래된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에서 발견되고, 또 다른 십계명은 신명기 5장에서 발견된다. 이 두 가지 형태 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전혀 차이가 없다. 계명은 수적으로는 열 개이지만, 성경은 이 계명을 표로 보여주거나 숫자를 매기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각각의 계명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끝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때문에 성경을 해석하는 모든 학파가 이 계명이 열 개임에는 동의하지만, 이 계명을 동일한 방식으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유대 랍비들은 우리가 십계명의 서문이라고 부르는 것을 첫 번째 계명이라고 본다. 그 후에 열이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 우리가 첫 번째 계명과 두 번째 계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하나로 통합했다. 트렌트 교리문답도 그런 분류를 따라 "서문"을 첫 번째 계명으로 보지만, 우리가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이라고 하는 것을 거기에 덧붙여진 것으로 여기고, 열 번째 계명을 둘로 나누어 열 개라는 숫자를 맞춘다.
소교리문답에서 채택한 분류는 주님의 날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되었다. 이 분류는 다수의 교부가 채택했고, 동방 교회에서도 받아들인 분류이며, 개혁교회의 거의 모든 신학자가 인정하고 있다. "처음 네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본분을 담고 있고, 나머지 여섯 계명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본분을 담고 있다" (대교리문답).
알렉산더 화이트,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강해>, p.118.
@장코뱅 1-4계명은 대신 계명, 5-10계명은 대인 계명이라는 설명이 소교리문답에 이미 있는 것이군요. 첨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일 이전 주말에 미리 좋은 묵상을 읽으며 은혜를 받게 되어 고맙습니다.
공감과 격려에 감사합니다.
제1계명인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 신약에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는 것을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우 정확하며 반론의 여지가 없군요.
십계명이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의 핵심 요약본이고 이것에 따라 모든 생활에까지 확장된 것이 원리가 된다는 것도 유용한 정리입니다.
가장 영리하고 효과적으로 사는 것은 원칙과 규범을 준수하는 것이라는 말씀도 복잡한 사회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 될 것 같습니다.
제 묵상을 요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개혁주의는 율법의 세번째 용도(성화)를 강조하는데요.
이와 결이 다른 루터가 쓴 십계명의 결론도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m.cafe.daum.net/1107/YrXT/13?svc=cafeapp
@장코뱅 율법에 대한 균형잡힌 글이라서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