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독후감

[산야초]

오직 두 사람 독후감

연수를 받기 위해 타고 갈 열차 안에서 읽을 거리를 찾던 중 작가의 이름은 생소하였지만 우선 얇은 두께와 섬뜩한 제목에 이끌려 급하게 고른 것이 김영하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알츠하이머에 걸린 70대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며 딸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살인을 계획한다.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잠언들, 돌발적인 유머와 위트, 마지막 결말의 반전까지 단시간에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높은 가독성으로 종착역을 알리는 방송 멘트가 아니었으면 목적지를 지나칠 뻔하였다. 나는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작가의 이름을 한 번 더 살펴보게 되었는데, 그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이 이번 달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되었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또한 오랜만에 맛보았던 몰입의 짜릿함을 되새기며 책을 바로 구매하였다.

“오직 두 사람”은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반적인 이야기는 모두 ‘상실’을 다루고 있다. 7편에는 각기 다른 상실의 아픔이 있고, 각기 다른 이야기로 우리의 감정 선을 짜릿하게 자극하는 반전이 있다. 작가는 삶과 죽음, 시간과 악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상실 이 후의 삶을 써내려 간다. 때로는 슬픔으로, 아픔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바램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조용히 침식해 들어온다.

 7편의 단편을 읽고 인상 깊은 글귀 한 문장을 새겨보며, 공감되거나 느낌이 좋았던 3편에 대한 감상문을 적어보았다.

“우리는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고,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이를 찾습니다.>는 아이를 잃어버린 부부의 지옥도를 그리고 있다.

평범한 부부의 인생이 아이를 잃어버린 순간 이후 변화되는 과정은 모골이 송연할 만큼 읽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하고 답답하게 한다.

“지난 십일 년 간 윤석의 인생 전부가 그 전단지에 요약돼 있다. 그는 전단지를 위해 돈을 벌고 전단지를 뿌리기 위해 밥을 먹었다. 전단지는 집안 어디에나 있었다. 화장실에도, 심지어 미라의 낡은 핸드백 속에도 가득 있었다. 너무 많아서, 마치 전단지라는 이름의 벌레들이 야금야금 집을 먹어치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원과도 같았던 지난 십년 동안 그의 의무는 자명했다.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 명료하고도 엄중한 명령 앞에 모두가 길을 비켜주었다. 그들 부부는 좋은 집과 직장을 바쳤다. 부부관계도 사라졌다. 실종된 아이라는 블랙홀이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그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미라의 병은 점점 깊어져 갔다.”

11년이 되던 어느 날 아이를 유괴했던 여인이 죽자 아이는 돌아오지만 훌쩍 커버린 아들은 낯설었고, 아이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부부, 아이를 찾은 후의 환경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를 받아들인 아버지 윤석, 퇴행성 조현병에 걸려 거의 미친 사람이 된 아내 미라는 결국 실족사로 죽고 만다. 오히려 아이를 찾은 이후의 부부가 겪는 생지옥은 처절하다 못해 끔찍하다.

“십 년 간 그는 ‘실종된 성민이 아빠’로 살아왔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것이 끝나버렸다. 행복 그 비슷한 무엇을 잠깐이라도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내일부터는 뭘 해야 하지? 그는 한 번도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민이만 찾으면, 성민이만 찾으면. 언제나 그런 식이었지 그 이후를 상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퇴행성이라는 조현병까지도 씻은 듯이 나으리라 생각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아니면 포털사이트 배너로 한 번씩 보게 되는 실종아동에 대한 글들. 찾기 위한 과정과 찾고 난 이후의 삶에 대하여 우리는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함보다는 무관심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삶의 뿌리를 뒤흔든, 그 무엇으로도 이전으로는 되돌리지 못하는 고통과 허망한 삶의 현재와 미래는 누구의 책임이며 누가 무엇으로 보상 할 것인가?

<오직 두 사람>은 자신의 이름보다는 ‘아빠의 딸’로 살아온 주인공과 엄격하고 자기만족을 위해 사랑이란 허울 좋은 포장으로 딸을 훈육해 온 아버지. 그 아버지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버지의 요구와 뜻에 따라 살다가 자기 인생을 잃어버린 중년이 된 딸의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큰 딸을 더 예뻐하며 사랑했고, 가족들은 그런 두 사람을 외면하면서 점점 멀어져 갔다. 아버지의 통제와 간섭으로 그녀의 주변에 있던 동료와 친구들도 모두 떠나고 결국 그녀에게는 병실에 누워있는 아버지와 그녀, 오직 두 사람만이 남았다. 돌이켜 보면 그녀의 삶에 심각하게 중독된 아버지였지만 자기만 예뻐해 주길 바랐던 이기적이면서 소심한 성격의 본인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비로소 그녀는 새로운 삶을 살아 보려 한다.

그녀는 말한다. “지금 병상에 누워있는 저 낯선 몸뚱아리를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허망한 존재에게 인생이 바쳐졌구나 싶어요.” 그러면서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두렵지는 않다." 라고

어쩌면 가부장적 권위의 시대에 살았던 우리 세대 이야기의 일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유교사상의 틀에 갇혀 항상 부모가 먼저였고 그 중에서도 아버지가 우선이었던, 환갑을 지낸 지금도 내 삶보다도 부모님을 먼저 챙겨야하는 우리.

나 또한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병석에 14년간 누워계셨던 아버님을 떠나보내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나와 함께한 아내가 있어 상실감으로 이후의 삶이 두렵거나 외롭지는 않았다. 저자는 상실감과 그 후의 삶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다른 가족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딸과 아빠를 위한 이들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작가가 매정하게 느껴졌고 아쉬웠다.

<신의 장난>은 평범한 구직자 4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남자 둘, 여자 둘로 구성된 구직자 4명은 신입사원 테스트라며 방 탈출게임을 꼭 해야 한다는 한 인사담당자에 의해 한 ‘방’에 갇힌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방을 탈출할 수 있는 단서는 존재하지 않았고, 4명은 절망한다. 각각 우울증, 신앙, 자신의 힘 그리고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인생을 살아왔던 그들은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신들이 그동안 살아온 방식대로 그 방을 탈출하려 한다. 간절히 기도하고, 온 힘을 다해 문을 부수고, 방 곳곳을 수색한다.

정은은 남녀 네사람이 도덕의 굴레를 벗고 욕망의 짝짓기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가장 욕망에 불타던 강재가 거세된 채 쓰러졌고 모두들 놀란다. 그리고 방문은 힘없이 열렸고 네 사람은 다음 방으로 들어가지만 또 다시 갇히게 된다. 그 방에서 밤사이 태준이 거세되었고 울부짖는다. 네 사람은 정은의 제안으로 모두 시체처럼 쓰러져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기로 한다. 무의식 속에 경찰이 문을 열고 구해준다. 갑자기 팡파르가 울리며 탈출게임 성공했다며 정규직 입사를 축하하는 인터뷰를 요청한다. 정은은 운이 좋았다며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원했던 내일이다.” 라고 말한다. 악취가 풍겨오고 정은은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온다. 탈출은 실패했고 그들의 일상은 다시 시작된다.

처음 이 단편을 읽었을 때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한번 읽어보니 취업난의 절망적인 삶속에서 탈출하고 픈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과 심정을 격하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사회생활과 상사와 부하, 동료, 가족과 이웃, 친구 등등 수없이 얽힌 인간관계와 부족한 시간 속에서 벗어나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원했던 내일, 즉 오늘을 맞이하는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는 비참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초상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일요일 저녁식사 후 다음 날의 힘겨운 출근을 위해 제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눈시울이 붉어져 마냥 지켜보고 서있는 아내의 모습이 아련하게 보인다.

2017.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