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사신도-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신(금성 교과서)
국정 교과서 국사책.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벽화 고구려인 등장 벽화-그림 제공 김태현 블로그)
고구려는 왕관대신 관모(冠帽)를 사용하였다.
왕은 백라관(白羅冠)을 썼다.
고급 귀족과 말갈 등 복속 지역 부족장은 청라관(靑羅冠).
중급 귀족과 관료는 비라관(緋羅冠).
하급 관료는 조우관을 머리에 썼다.-구당서(舊唐書)
비라관, 조우관은 새의 날개 깃을 꽂고 금, 은을 장식했다’고 구당서에 전한다
사마르칸트의 고구려 사신 벽화는 조우관을 쓴 벽화이다.
조우관을 쓴 하급 관료 벽화이므로 사신을 따라 온 호위무사들이 모여서
자국 사신들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으로 판단된다.
백제, 고구려, 신라 사신도- 왕회도 양 염립본.
위의 그림은 당나라 때 발견된 사신 그림이다.
그래서 중국이 왕회도 당 염립본이라고 주장하지만 진짜는 왕회도 양 염립본이다.
양나라 황제에게 각국 사신들이 조공하는 그림이다.
고구려 관모를 보면 비라관을 쓴 관모로 중간급 관료를 양나라에 파견하여 조공하는 그림이다.
고구려 사신은 조공하는 나라의 국력에 맞추어 신분에 맞게 사신을 파견하였다.
양나라는 동이족 국가라고 구당서, 신당서에 분명히 밝히고 있다.
중국은 자존심이 상하니 당 염립본이라고 명명해서
마치 당 황제에게 조공하는 그림처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왕회도 양 연립본"
양나라 황제 소역(蕭繹:508-554.江蘇武進人.효원황제/세조)을 방문한 북위의 노국[魯國]황제 일행.
북위>동위(고환/고태/구태)>서위(우문태/우태)>북제(동위/고양)>북주(서위/우문각)>수 양견>당(이세민)으로
이어지는데, 당나라의 선조격인 탁발선비족과 우문선비족 북위의 노국 황제 일행이 동이족 국가인
양나라 황제 소역을 각국 사신들과 함께 방문한 그림이다.
양나라는 하남성 개봉시(카이펑/황하강을 따라 정주시 한성 백제 동쪽에 있음/ 옛 대량 지역)에서
북위>북제>북주에 밀려 하북성 서남단 안양시로 천도하는 나라다.
안양시에서 북주에 밀려 지도부를 따르는 양나라 세력이 한반도로 이주하게 된다.
북주를 멸망시킨 수나라가 동이족 국가인 정주 한성백제의 후신 정나라, 진패선의 진나라를 멸망시키자,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였다.
진패선의 진나라는 양나라를 이어받은 나라로 동이족 국가였다.
양나라, 정나라, 진나라는 동이족 국가였던 것이다.
한반도 지명에서 안양을 비롯하여 천안, 안산, 안성, 양주, 남양주, 양평, 양구, 양양, 곤양 등
안과 양을 사용하는 지명은 모두 양나라 후예들이거나 제후 국가들이 세운 지명이다.
진천 등의 지명은 양나라를 이어받은 진나라인들이 이주하여 세운 지명이다.
황하강을 건너지 못한 대량(양나라)인들이 강소성 양주시로 피신했다가 동진 혼란기 때,
수원 등으로 이주하는 세력을 남양이라고 한다.
정주, 정읍 등의 지명은 평북과 호남에 들어와 정착하여 정나라 후예들이 세운 지명이다.
양나라 멸망기 6대 경황제 소방지(연호/소태/555~556)때 반도로 이주한 세력이 정착한 곳에서
"소태정"이라는 지명을 사용한다.
[양나라(강소성 남경시, 양주시, 하남성 개봉시(카이펑), 하북성 안양시/양무제/소연),
남제(南齊/강소성 남경시/건강/소도성)는 모두 소씨성의 정권이다.
하북성 북경에 들어서는 남제(南濟/하남성 정주시 한성백제, 양나라인, 북제인들 중
반도이주를 거부한 세력이 연경(북경)에 세우는 나라)와는 다른 나라].
양나라 후예들이 주로 경기도, 충청 북부에 집중 분포하여 살고 있다.
양나라는 동이족 순수혈 국가였다.
언어에서도 그대로 증명되고 있다.
경기 표준어가 현재의 국가 언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구려, 백제는 양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살았다.
삼국사기에도 조공 기록은 많이 나온다.
그당시 양나라는 실크로드에서 들어오는 물류의 중원 최종 소비지였던 것이었다.
가장 잘 살았던 문명국이었고 멋과 맛, 기풍을 알고
실크로드에서 들어오는 신 문물의 최종 소비처였던 것이다.
고구려 백제인들이 이곳으로 실어나르고 물류비를 받았던 것이다.
현재도 유행, 패션의 중심지가 수도권이 아니던가....
그래서 역사는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유행, 관습, 풍습에서 그 행동 습성들이 과거에서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는 평안도, 함경도 사투리를 사용하였고,
백제는 충청, 호남 사투리를 사용한 나라다.
영남은 말 그대로 가야, 신라 사투리를 사용한 나라다.
호남은 마한어, 남마한어와 혼합된 사투리와 동부지방은 우르 가야어를 사용하였다.
함길도는 함북 길주를 중심으로 함길도라고 말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함경도와 길림성을 포함한 곳을 말한다.
더 넓게는 흑룡강성 남부지방도 포함된 적이 있었다.
그당시에는 인구가 적어 길림성 지역을 길주라고 했던 것이다.
나중에 거란족>여진족에게 밀려 함북 길주로 내려와 살게 된다.
동북 9성이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이며 고려인들이 거란, 여진에밀려 함경도로 들어왔기 때문에
동북 9성이 함경도로 인식해버린 것이다.
경기인들은 하북 최 서남단 안양시 북부의 하북 남단 한단시 루트와 산동성 제남시, 동영시 루트를 거쳐
제남시 위례백제, 동명부여 백제인들과 함께 반도로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현지에 남은 세력이 북경으로 들어가서 남제를 건국한다.
이 세력은 정주 한성백제, 북제, 양나라, 제남시 위례백제, 동명부여 백제인들 중
반도 이주를 거부한 세력들이 옛 연나라 영토였고 한때 북위가 점령했던 북경으로 들어가
남제를 건국한다.
북경 서부일대는 고구려가 광개토 때 점령하기도 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북경은 전연과 고구려가 양분하다가 북위와 후연의 모용수가 양분하다가 산서성 대동시 백등산 북부
참합피 전투에서 패한 모용수가 산동성 등주시 동북부 하북 동남단 천진시 중산지방으로 밀려나 천도한다.
그후 고구려는 전연>후연> 북위에 의해 연군지역으로 밀려난다.
숙군성, 평주성, 연군 지역은 현재의 하북성 북평 일대 지방이다.
이 일대가 감숙, 청해, 섬서 북부, 산서 서부 고구려의 연나부이다.
고구려는 북위가 내세운 후연, 서연, 북연에 북경 서부지방을 빼앗겨 하북성 서남부
북평 지방(연군지역)으로 밀려나자, 전략을바꾸어 하북성 발해만 북부 대릉하의 낙랑국을 장악하고
후에 북발해만 대련반도로 밀려난 낙랑국[요녕성 조양, 심양]을 점령하면서
북경 동부지방까지 장악해 들어간다.
그리고 후연의 모용수가 연경에서 북위에 밀려 하북성 동남단 천진, 산동 등주시 북부 중산지방으로
수도를 옮겼다가 모용희 때 실크로드 문물에서 우선 혜택을 받기 위해 하남성 서북부 서연을 점령하고
천도하자, 광개토가 바로 중산지방을 접수하고 산동성 제남시 위례백제 아신왕의 등주시 보하이만
관미성을 침공한다.
산서성 동부지방과 하북성 서부 지역 사이에 퇴행산맥[태항산맥-구 연산산맥]이 남북으로 뻗쳐 있어
적절한 견제구 역활을 하였다.
고구려 문자명왕 때 동부여를 멸망시키면서 북발해만 대련반도의 동명 부여인(동명백제)들과
산동성 동영시 동부여인을 끌어다가 하북성 서남부 북평 일대의 연나부에 귀속시켜
연나왕을 두었다가 다시 격하시켜 사라진다.
동부여는 산동성 동영시에 있었던 동명부여 백제를 말한다.
동부여는 대련반도로 이주한 세력과 산동성 동영시 일대에 정착했던 동부여인이 있었다.
만주에서 동만주로 이주했던 동부여인들이 고구려에 패하자, 훗날 반도로 남하한다.
만주에서 남하하는 동부여인들은 동해안을따라 부산지방까지 남하하고,
산동반도에서 반도로 들어오는 동명부여인들은 충청, 호남지방까지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 있는 고구려 사신 벽화는 관모 형태로 봐서 분명히 고구려인이 맞다.
이 고구려는 고구려 6대 태조대왕 때 감숙성 평양시 고원현, 고구원 지방[하서회랑/비단길]에서 거병하여
천수시를 장악하고 수도를 세운후 광개토 때 청해성 서령시[초원의길]를 장악하면서
감숙성 돈황시, 장액시의 하서회랑을 손에 넣고 실크로드 중원 진입 길을 통제하게 되면서
고구려가 강성해져 섬서성 북부, 영하성 회족 자치구(영주), 산서성 영제시 운성시의 하서주랑과
하서시랑인 백제 진평 2군(진성시의 진평성, 고평시의 고평성)을 장악하면서 강성해지게 되는 것이다.
교과부에서 사마르칸트 벽화 속의 고구려 사신도를
고구려 사신 추정도로 수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관모 형태에서 이미 고구려 것으로 판명된 마당에
고구려 사신 추정도라고 교과서에 기록하게 되면 과거 역사관으로
돌아가라는 후퇴한 역사관 일 수밖에 없다.
사마르칸트의 조우관을 쓴 무사는 사신을 따라온
하급 호위 무사 벽화이다.
p/s
아프라 시압에서 시압은 내몽고 서남부 시라선맹(사라선맹) 파단(단파) 길림사막 (사반)지방에서
황하강 최 상류 지역인 감숙성 동부 6군의 흑하= "압수"지방의 시원지를 가리키는 뜻이고,
아프라는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서역, 북아프가니스탄 우가리트 지방으로 옮겨가서 생성되는 지명임.
-압수(鴨水)는 당나라의 고구려 제1차 침공으로 동만주와 한반도로 옮겨가서 압록수[鴨綠水]로 변하는 것임.
압록강[鴨緑江]지방에는 푸른 나무와 숲이 있으므로...
[감숙성 흑하(黑河),흑수(黑水)는 흑룡강성으로 들어와 용처럼 구불구불하다고 하여
흑룡강(黑龍江)으로 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