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으로 잇는 한중 문화의 가교
창포(蒼浦) 허유(許由) 선생, 『창포 허유 산수서예집』 출판기념회 성료
금석문의 역사와 비림의 정신을 오늘에 새기다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 3층에서 지난 7월 15일부터 21일까지 개최된 『창포 허유 산수서예집』 출판기념회가 제헌절을 맞아 더욱 뜻깊은 문화행사로 마무리됐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출판기념회를 넘어 반세기 넘게 한국 서예와 금석학, 그리고 한중 문화교류의 길을 개척해온 창포 허유(許由) 선생의 예술세계를 총망라하는 자리로 평가받았다.
이어서 국민의례 및 순국선열과 먼저가신 예술인들에 대한 묵념, 테이프 컷딩있었다,
감사장 및 선물 수여식에서 중국 장학경에게 29대 국무총리 이수성 전)국무총리가, 이빙수석에게는 45대 이낙연 전)국무총리가 이효령 수석에게는 신계용 과천시장이 수여하였다,
축사는 이수성, 이낙연 전)국무총리, 신계용 과천시장, 허찬 양천 허씨 대종회 명예회장, 조강훈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허평환 양천 허씨 대종회 회장, 이은집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허만회 양천허씨 대재학 공파 회장, 김영기 한국서도협회 이사장, 장현승 과천로고스 미술관 관장께서 축사를 했다,
중국 축사로는 정화경 중국 경필서법협회 제6대 주석, 이효평 중국 한원비림 동사장, 이빙 중국 경필서법협회 주석이 해 주셨다, 통역은 중국 정주대학교 구단 교수가 했다,
'창포 허유 산수서예집'은 허유 선생이 평생 연구해 온 산수서예와 금석문의 철학을 집대성한 작품집으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예술관을 바탕으로 시대를 초월한 서예의 본질을 담아냈다.
행사에는 국내 서예가와 문화예술인은 물론 중국 각지의 문인과 예술계 인사들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며, 한중 문화교류의 상징적 인물인 허유 선생의 발자취를 함께 기념했다.
"금석문은 살아있는 역사교과서"
허유 선생은 이번 출판기념회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금석학의 연구는 단순히 오래된 비문을 읽는 학문이 아닙니다. 돌에 새겨진 역사를 통해 시대정신을 배우고 문화를 계승하는 현장교육입니다. 금석문은 후손들에게 살아있는 역사이며 문화유산입니다."
그가 평생 강조해온 비림(碑林) 역시 이러한 철학에서 비롯된다.
비림은 수많은 석비와 금석문을 한곳에 집대성한 문화공간으로 중국에서는 천 년 이상 이어져 온 전통이다.
허유 선생은 이러한 문화를 대한민국에도 정착시키기 위해 모든 역량을 바쳐 한국 최초의 한국비림박물관을 설립했다.
시대의 격랑을 넘어 예술로 승화된 삶
창포 허유 선생은 1946년 충남 공주시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부친인 한학자 고(故) 허연 선생에게 천자문과 한학을 배우며 성장했다.
젊은 시절부터 서예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그는
1973년 해강서예학원 설립
1976년 창포서예학원 설립
이후 서울시장상, 서도대전 특선, 동아일보사장상, 한국미술대전 은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서단의 주목을 받았다.
1978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입선하면서 본격적인 서예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국인 최초의 중국 서예전 개최
1989년. 허유 선생은 한국인 최초로 중국 요녕성 무순시에서 오복광 선생과 공동 서예전을 개최했다.
당시만 해도 한중수교 이전이었으며 양국 문화교류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는 신념으로 중국을 오가며 교류를 이어갔다.
1991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하얼빈공업대학 한어과에 유학하며 중국 문화를 직접 연구했고, 같은 해 하얼빈에서 개인전을 개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원비림 창건자 이공도 선생과의 인연
허유 선생의 삶을 바꾼 결정적인 만남은 중국 최대 민영비림인 한원비림(翰園碑林) 창건자 이공도(李公濤) 선생이었다.
1992년 한중수교를 전후해 허유 선생은 평생 소장해 온 귀중한 서예 작품을 이공도 선생에게 기증했다.
그 작품들은 곧바로 석각으로 제작되어 중국 한원비림에 영구 보존되었다.
1993년 직접 한원비림을 방문한 허유 선생은 3㎞에 걸쳐 조성된 수천 점의 석비를 둘러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공도 선생이 남긴 '가훈'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비림은 대를 이어 건설하며 완성되면 국가에 무상으로 헌납한다."
그 순간 허유 선생은 평생의 사명을 결심했다.
"대한민국에도 반드시 비림을 세우겠다."
사재를 털어 세운 한국 최초의 비림박물관
1997년 문화관광부로부터 사단법인 한국비림원 설립 인가를 받은 허유 선생은 충북 부지를 매입했다.
수십 년간 모아온 재산을 모두 투입하고 수많은 문화인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2002년 5월 11일 한국 최초의 비림박물관을 개관했다.
현재 박물관에는
한국 역대 명필 작품
중국 갑골문, 왕희지, 안진경, 소식, 김생, 최치원, 한석봉 추사 김정희
등의 금석문과 서예 작품이 석비로 복원되어 전시되고 있다.
비석만 1,000여 점에 달하며 국내외 문화재와 예술품 수천 점이 함께 보존되고 있다.
이공도 선생 3주기 회고
허유 선생은 지난 2019년 8월 시사뉴스저널 인터뷰에서
2016년 8월 7일 오전 11시 20분 향년 90세로 별세한 중국 한원비림 창건자 이공도 선생의 3주기를 맞아 깊은 추모의 뜻을 전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선생과의 인연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 고 회고하며,
이공도 선생의 문화정신과 예술혼을 한국에서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오늘날까지도 한국비림박물관은 그 정신을 계승하며 한중 문화교류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제헌절에 더욱 빛난 출판기념회
이번 출판기념회는 제헌절을 맞아 개최되면서 허유 선생 출생한 날이기도 하여
더욱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문화예술계 원로들과 전국의 서예인들은 물론 중국 각 지역의 서예가와 학자들이
축전을 보내며, 허유 선생의 새로운 저서 발간을 축하했다.
참석자들은
"창포 허유 선생은 금석문의 역사를 오늘에 되살린 문화인" 이라며
한국 서예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한중 문화교류의 선구자 허유 선생은 지금까지
중국 한원비림 고문
중국 상지비림 명예박물관장
중국 중원공자학회 명예회장
한국고서연구회 부회장
세계비림협회 한국대표
극동사회문화연구원 원장
고운 최치원 국제교류사업회 국제교류위원
등을 역임하며 민간 문화외교의 최일선에서 활동해 왔다.
문화예술을 통한 국제교류와 세계서예대전 개최, 지방정부 간 우호협력, 국제학술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중 문화의 가교 역할을 수행해 왔다.
"영원히 빛날 묵향의 유산"
창포 허유 선생이 평생 남긴 것은 단순한 서예 작품이 아니다.
돌에 새긴 금석문의 역사, 후학을 위한 교육의 장, 한중 문화교류의 토대, 그리고 예술을 통한 인간 정신의 계승이다.
그는 "비림은 과거를 보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역사를 전하는 살아있는 학교"라고 말한다.
『창포 허유 산수서예집』의 출간은 이러한 철학을 한 권의 책으로 집약한 결과이며, 한국 서예사와 금석학 연구에 남을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묵묵히 걸어온 길.
그 길 끝에서 창포 허유 선생은 여전히 새로운 비림을 꿈꾸며 붓을 들고 있다.
그의 묵향은 시대를 넘어 역사 속에서, 그리고 미래 세대의 가슴 속에서 오래도록 향기를 이어갈 것이다.
박호식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