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제목 : 이단 사상인 해방 신학이란
성경 본문 : 요한복음 8장 31절-32절
설교 자 : 박 한서 목사 <2025년 1월 15일 수요일>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2025년 매주 수요일은 이단에 대한 강의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요한복음>8장 31절-32절 말씀에
31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Ⅰ.서론
1970년대에 한국 사회와 교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신학 사상이 바로 <해방 신학>입니다.
이 <해방 신학>은 교회와 사회가 다 같이 관심을 가졌는데
사회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그것이 사회문제를
진지하게 다룬데다 사상이 과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이 신학은 우리가 가장 증오하는
<마르크스>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으며 해결의 신학으로
자처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습니다.
이런 과격한 신학사상이 교회 밖의 일반 대중에게
호소력을 갖는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해방 신학>은 초기<남아메리카>의 <프로테스탄트>신학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되었으며 1960년에 후반 <로마>카톨릭 신학자 등에
의해 체계화 되었습니다.
이 신학은 <남아메리카>와 제 3세계의 빈곤. 사회 불의. 독재 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마르크스>주의 의 이론을 기독교 신학에 도입한
정치 신학입니다.
이 신학 사상은 전통적 기독교 신학에 도전하고 신학의 목적을
성경에 기초한 인간권 회복 보다는 지상의 유토피아 건설에 둡니다.
이러한 과격한 신학 사상이 1970년대 우리나라의 복잡한 상황에
도입되기 시작하여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일부 기독교 단체는 <해방 신학>에 근거하여
투쟁적 행동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 신학이 1974년. 부터는 '한국화'하여
민중 신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민중 신학은 <해방 신학>과 같이 기독교의 구원관을
정치. 경제적으로 해석하여 가난으로 부터의 해방.
독재로 부터의 해방 등을 부르짖으며
구원을 '민중'만이 누리는 특혜라고 주장함으로써
새로운 배타 주의적 성격을 띠었습니다.
이 점에서 <해방 신학>이나 민중 신학은 특수 계층의
사람만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습니다.
<해방 신학>은 해결의 신학이 되지 못하며
기독교의 근본교리 까지도 위협하는 과격한 사상입니다.
Ⅱ. <해방 신학>의 네 가지 핵심이론
<마르크스>주의 의 네 가지 핵심 이론들이
<해방 신학>의 뼈대를 구성하고 있다.
1. 인간의 악의 원인은 계급투쟁에 있다.
2. 계급투쟁의 원인은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에 있다.
3. 오직 폭력 혁명만이 그러한 사적 소유를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4. 그러한 혁명으로부터 그리고 혁명을 통해서 사람은 그 자신을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신학>과 <마르크스>주의의 의식 체계는
"인류는 완전한 자기 개조를 할 수 있는
요소들을 자신 스스로가 가지고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구세주 이다." 라는
것에 다 같이 수렴되고 있다.
Ⅲ. <해방 신학>과 기독교 교리와의 차이점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왜곡된 기독교 교리
<해방 신학>은 그의 구조로서 <마르크스>주의를 취하고 있다.
<해방 신학>은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도움을 입고 있으면서 반면 성경을 부인하거나 성경을 다르게
해석하여 적용시켜 왜곡하고 있다.
즉 <해방 신학>과 <마르크스>주의 의 연합은
'가장 견고하고 건전한 전통적 기독교 신학'의 모든
기본적인 요소들을 손상시켰다. 그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타락의 교리
<마르크스>주의와 마찬가지로 <해방 신학>에는 타락의 교리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셨고. 그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였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환경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창세기>2장 17절 말씀에서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자유 함을 입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은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하나님과 분리되었다. 이것이 죄이고
이로 모든 죄악의 근본이 된다.
이로 말미암아 셀 수 없이 많은 인간의 고통이 찾아왔고
이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고난당하고 죽으심과
부활을 통한 구원이 큰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는데 이는 죄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해방 신학>은
이것을 계급투쟁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2. 타락에 대한 벌로서 죽음이 있다는 교리를 부인한다.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벌로서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다. 그러나 <해방 신학>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변증법을 통하여 죽음이 또한 정복되어 질 때가 있다고 예고한다.
3. 하나님을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자였다고 한다.
<해방 신학>은 창조주 하나님을 계급투쟁의 저자 하나님으로 봄으로써
타락의 교리를 애매히 부인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첫 번 째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주장한다.
<출애굽>도 <해방 신학>자들에 의해 계속적으로 왜곡되고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현상에 대한 격렬한 반대를 통해서 그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반역자를 좋아한다고 왜곡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해방이 그러한 해방으로 날조 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의 하나님은 결코 그의 백성을 반역자로 만들지 않으신다.
<에덴>동산에서의 반역은 죽음을 가져왔다.
4. 예수그리스도를 파괴주의의 장본인으로 만든다.
5. 속죄의 교리를 배제해 버린다.
<마르크스>주의와 <해방 신학>의 중심 사상은 반역이다.
<디도서>2장 14절 말씀에
14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라고 하였다.
기독교의 중심은 속죄의 교리이다. 이것은 <애굽>의 유월절이나
<이스라엘>에서 계속되고 있는 의식의 전조를 이루는 것으로서.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 속에서 실현되어진 것이며
우리로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에 의해서 이것을 이룰 수 있다.
(참고 성경 <로마서>1장 5절)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반역을 통해서 그 자신을 해방시킨다.
그러나 성서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는
자들을 해방 시킨다.
6. 회심의 교리를 왜곡한다.
기독교인의 회심은 회개로부터 이루어져야만 한다.
회개는 신앙의 첫 번 째 결심이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1장 14절-15절 말씀에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다.
회심은 회개로 부터 출발하여 하나님을 그의 주님으로
하나님의 법을 삶의 지침으로 인정함으로써 하나님의
방주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해방 신학>이 말하는 회심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회심이란 "가난한 자와 억압당하는 자의
해방 운동에 명확하게 실제적으로 구체적으로 전념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전염뿐 아니라 상황과
행도 전략을 분석하여 일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7. 사랑의 의미를 바꾸어 버린다.
사랑이란 기독교의 본질이다. 구체적인 사랑이
<요한복음>3장 16절 말씀에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참고 성경 <로마서>5장 8절)
하나님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랑을 주신다.
<해방 신학>은 사랑이라는 고귀한 성경의 개념을
<마르크스>주의 맹종자들에게 알맞게 왜곡시켜 버린다.
즉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해방 신학>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정치권력을 가져다주는 궁극적인 대망 등을 향한 열정이다.
8. 기독교인이 '행함'을 <마르크스>주의의 <프락시스>로 변이시킨다.
<야고보서>2장 20절 말씀에서
<야고보>는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이것이 기본적이고 중요한 기독교 교리이다.
성서 전체를 통해서 이것이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해방 신학>의 '실천'은
<마르크스>의 반역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해방 신학자 <다스만은 프락시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극단적이고 배타적으로 주장한다.
"<해방 신학>의 출발점으로서 실천의 중요성도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
세계를 왜곡하는 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논리로 이끈다.
즉 세계를 변화시키지 않고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9. 교회가 <마르크스>주의자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10. 전전한 종말론을 날조한다.
'종말론'이란 용어로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단어이며
'마지막 시간' 또는 마지막 일들 이라는 교리상의 의미를 지닌다.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에서는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도 <베드로>는 기록하기를
<베드로후서>3장 10절 말씀에
10절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간단히 말해서 이것이 성경의 종말론이다.
성경의 <종말론>은 '마지막 시간'안에서 '마지막'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폭력적 반역을 통해 '죄인들'과 그들에게 '죄를 받은 자들'
사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르크스>주의자나 <해방 신학>자의
종말론적 관점과 분명히 다르다.
결론적으로 <해방 신학>은 라틴 <아메리카>의 착취당하고 있는
민중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있다. 또 <해방 신학>의 사상 구조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온 것이다.
<해방신학>은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고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교리를 손상. 왜곡 시키고 있다.
적절하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만이 라틴 <아메리카>와
그 밖의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경제적 착취의 사회적. 정치적
불의에서 해방될 수 있는 힘을 불어 넣을 수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