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 Q.T]
2021년 9월 15일(수)
[하나님이 없는 곳에는 악이 가득합니다]
● 성경본문 : 사사기 19:16-30
16.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17.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18.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19.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여물이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인 우리들과 함께 한 청년에게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는지라
20.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21.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22.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23.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24.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25.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27.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29.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 오늘의 말씀 요약
한 노인이 레위인 일행을 집으로 영접합니다. 밤에 불량배들이 노인에게 찾아와 레위인과 관계하려고 그를 끌어내라 합니다. 레위인은 자기 첩을 내주고, 첩은 밤새 능욕당합니다. 다음 날 엎드러진 첩을 싣고 자기 곳에 돌아간 레위인은 그 시체를 열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사방에 보냅니다.
●본문 해설
기브아 불량배들의 악행 19:16-25
기브아에서 유일하게 레위인 일행을 맞아 준 사람은 에브라임 출신의 한 노인입니다. 노인은 레위인 일행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그들의 발을 씻기고 먹을 것을 줍니다. 그들이 편히 쉬고 있을 때, 불량배들이 노인의 집을 에워싸고 레위인을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그와 성적인 관계를 맺겠다는 것입니다(22절). 이러한 모습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소돔처럼 타락했음을 보여 줍니다(창19:1-5). 노인은 레위인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주겠다고 제안하지만, 계속되는 위협에 레위인은 결국 첩(아내)을 불량배들에게 내줍니다. 자기 목숨을 위해 아내를 희생시킨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약육강식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 없는 곳에는 음란과 폭력이 가득합니다.
- 기브아 불량배들과 소돔 사람들의 악행은 어떤 점에서 유사한가요?
- (창19:1-11 참조) 하나님을 아는 것과 건강한 공동체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레위인 제사장의 악행 19:26-30
기브아 불량배들의 모습뿐 아니라 자기 첩(아내)을 대하는 레위인의 모습 역시 충격적입니다. 첩이 불량배들에게 밤새도록 성폭행을 당하는 순간에도 레위인은 편안하게 잠을 청합니다. 날이 밝자 레위인은 길을 떠나기 위해 서두릅니다. 집 문을 열 때 쓰러져 있는 첩을 발견합니다. 그가 첩에게 건넨 말은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28절)가 전부입니다. 생사조차 확인하지 않습니다. 아무 대답이 없자, 그는 첩을 나귀에 싣고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첩의 몸을 열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보냅니다(29절). 파렴치의 극치를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끔찍한 사회가 된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결과입니다.
- 레위인은 쓰러져 있는 첩을 어떻게 대했나요?
- (28절, 비교 19:3) 나는 주변 사람을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게, 그리고 나 중심으로 대하지 않나요?
● 오늘의 찬송 (새 515 눈을 들어 하늘 보라)
(1) 눈을들어하늘보라 어지러운세상중에 곳곳마다상한영의 탄식소리들려온다 빛을잃은많은사람 길을잃고헤매이며 탕자처럼기진하니 믿는자여어이할꼬
(2) 눈을들어하늘보라 어두워진세상중에 외치는자많건마는 생명수는말랐어라 죄를대속하신주님 선한일꾼찾으시나 대답할이어디있나 믿는자여어이할꼬
(3) 눈을들어하늘보라 살아계신주하나님 약한자를부르시어 하늘뜻을전하셨다 생명수는홀로예수 처음이요나중이라 주님너를부르신다 믿는자여어이할꼬
(4) 눈을들어하늘보라 다시사신그리스도 만백성을사랑하사 오래참고기다리네 인애하신우리구주 의의심판하시는날 곧가까이임하는데 믿는자여어이할꼬
● 묵상 에세이
하나님 안에서의 자율 - 나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 이재훈
사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에게, 하나님 없이 살아야 스스로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속입니다. 우리는 자율(自律)이라는 단어에 너무 쉽게 속아 넘어갑니다. 물론 자율은 소중합니다. 무언가를 자기 의지로,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인간됨을 나타내는 특성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자율이 되기 위해서는 신율(新律), 곧 하나님의 다스리심 속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없는 자율은 인생을 자기 삶의 크기로 축소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태초부터 추구하신 비전과 영광처럼 크고 위대한 존재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죄의 역사를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는 그 엄청난 삶의 크기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탐욕의 크기만큼 축소시켜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는 초월적인 삶을 거부하고 애굽에서 먹었던 음식만 그리워하며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왜 어겼습니까?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와 의에 갇혀 하나님의 정의와 의를 축소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거부한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그 삶의 크기가 점점 작아집니다. 계속 작아져서 결국엔 아주 사소한 것에 목매는 인생으로 변해 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한절 묵상
사사기 19장 30절
인간에게 가장 비참한 상태는 하나님의 부재(不在)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하나님 없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그분 말씀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으면, 죄는 더 크고 잔인한 악을 쉬지 않고 확대. 재생산합니다. 죄가 장성하도록 내버려 두면 결국 사망을 낳게 됩니다(약 1:15). 성도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롬12:21).
● 오늘의 명언
하나님으로부터 독립! 그것은 비극적이고 허탄한 환상이며 사탄의 노예가 되는 길이다. - 앨버트 그린
● 오늘의 기도
무정하고 잔인한 세상이 죄인을 위해 생명을 내어놓으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녹아들길 원합니다. 음란하고 더러운 죄악에 무너진 가정과 교회가 말씀으로 다시 세워지고 정결함을 회복하게 하소서. 내주하시는 성령께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내어 드리는 성도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