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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계 직원신앙부흥회 02-작은 일에 신실함이 형통입니다. - 박상길 목사 - 2024.4.16 (월) -
이런 제목입니다. 여러분 유튜브에서 19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연설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먹방도 아니고 또 아주 사람들의 그 무엇인가를 자극할 만한 콘텐츠도 아닌 연설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끄는 것은 좀 특이한 일인데요.
이 연설은 2014년에 미 해군 특수전 사령관이던 윌리엄 맥레이븐 대장이 그의 모교인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학교에서 한 졸업식 연설입니다.
그런데 이 연설의 제목이 정말 거창합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려면 그런 제목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미군의 별4개 대장이 할 법한 연설 제목이죠.
저 같은 사람이 이런 연설을 하면 누가 듣겠습니까?
근데 아마 이 사람이 하니까 상당히 임팩트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한번 짐작해 보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세상을 바꾸고 싶으시다면 뭘 해야 된다고 이 윌리엄 맥레이븐이 말했을까요?
이 연설에서 그는 세상을 바꾸기를 원하는 사람이 해야 될 10가지를 말하는데
그 첫 번째가 이것입니다. 한번 읽어보실까요? 시작 아! 요즘 말로 정말 확 깹니다. 이게 뭐야?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침대 정돈을 제대로 하세요.
연설문 내용을 제가 조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매일 아침 침대를 정돈함으로 여러분은 그날의 첫 번째 과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작은 뿌듯함을 안겨주며 다음 과업을 수행할 용기를 줄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를 마치고 나면 완수한 과업이 여러 개 쌓여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침대를 정돈하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줍니다.
사소한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큰 일 역시 절대 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실망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하더라도 집에 돌아오면 정돈된 침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아침에 정돈한 침대 말입니다. 그것은 내 일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줄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이 윌리엄 맥레이븐의 연설은 이렇게 끝납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작은 일을 제대로 하십시오.
공감이 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윌리엄 맥레이븐의 연설을 들으면서 요셉이 생각이 났습니다.
요셉이야말로 사소한 일을 제대로 해서 세상을 바꾼 아니 세상을 구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셉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작은 일을 제대로 한 것은 아닙니다.
작은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예요.
어떤 보상이나 결과를 기대하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작은 일을 제대로 한 요셉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셨고 세상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던 요셉을 상징하는 낱말이 채색옷이라면 애굽의 요셉을 설명하는 낱말은 형통입니다.
창세기 39장 2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요셉이 아버지 집에 있을 때 아무 걱정 없이 살 때가 아니라 애굽에서 노예살이할 때에 그가 형통했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창세기 39장 23절에 같은 비슷한 말씀이 있어요.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더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여러분 형통은 참 좋은 것이죠.
저는 여러분이나 다 형통하기를 바랍니다. 가정도 직장도, 교회도 아파트를 사도 다 형통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형통한 자가 되었으면 걱정 없이 살아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형통한 자가 되었으면 집이 그리운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배고픈 사람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야 하고 뭐 이렇게 돼야 되는데 요셉의 형통은 좀 이상합니다.
성경에는 요셉이 형통하더라 형통하였더라 그렇게 기록돼 있는데 지금 요셉은 누명 쓰거나 아니면 감옥에 들어가거나 아주 인생이 좀 복잡하고 힘들어요.
이것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형통이 성경이 말하는 형통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은 하루아침에 인생이 역전되는 복권 당첨 같은 것이 아니고
성경적인 형통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그 법칙이 갈라디아서 6장 7절 말씀입니다.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고 그 법칙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입증되는 것이 형통입니다.
이 과정에서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성경적 형통은 당장 내가 직면한 상황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요셉은 어떻게 형통한 사람이 되었을까? 여기 제가 부조와 선지자를 읽는 동안에 그 비결을 찾았습니다.
여기 214쪽에요.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서 이제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에 그가 한 결심이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하늘, 왕녀, 신민답게 행동하여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리라는 고결한 결심으로 그의 영혼은 감동되었다.
그는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운명의 시련을 인내로 당하며 제가 특별히 주목한 부분은 마지막 빨간색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시죠. 시작 날마다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자 하였다.
이게 요셉이 아버지 집에 있다가 형들의 버림받아서 애굽으로 가는 길에 한 결심이에요.
나는 이렇게 살겠다. 내가 반드시 살아남아서 내가 집으로 돌아가야 되겠다.
아니면 나를 죽이려고 한 형들에게 복수해야 되겠다.
그런 다짐이 아니라 나는 한결같이 하나님을 섬기겠다.
어떤 시련도 인내로 감당하겠다. 그리고 매일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겠다.
놀라운 일이죠. 17살 소년이 이런 결심을 했다니 참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특별히 저는 매일의 의무에 성실하기로 결심한 이 요셉의 결심에 좀 주목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매일의 의무가 뭡니까? 매일의 의무 맥레이븐이 말한 것처럼 침대 정리와 같은 일입니다.
매일의 의무 매일의 일은요 한다고 해서 표가 나는 것도 아니고
안 한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 일어나는 일도 아닙니다.
그런 것이 매일의 일이에요.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고,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하면 되지 이런 일이 매일의 의무입니다.
아파트 계약 이건 매일의 의무가 아니에요. 안식일 지키는 것도 매일의 의무는 아닙니다.
이게 매주의 의무니까 매일의 의무는 뭡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물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서 잠깐 기도하고 성경 몇 절 읽고 뭐 이런 건 매일의 의무예요.
그런데 애굽으로 팔려갔던 요셉이 인생에 무슨 크고 거대한 어떤 원칙을 세운 게 아니라 나는 날마다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겠다 그거 결심한 거예요.
그리고 요셉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요셉이 매일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신실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갔어요.
여러분 그때 요셉이 애굽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못하겠습니까?
당연히 못하겠죠. 그러면 이런 말 한마디 알아듣지 못하는 노예에게 시킬 수 있는 일이 뭘까요?
마당 쓰는 일 뭐 장작 옮기는 일 뭐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무리 잘해도 표가 나지 않는 일입니다.
근데 요셉이 그 메일의 의무를 성실하게 한 것입니다.
주인의 눈치를 보지도 않았고 다른 노예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봐서 그 정도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매일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이 그러다가 보디발의 집 총무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됐을까요? 여러분 보디발이 누굽니까?
바로의 친위대장 경호실장이에요. 왕궁의 핵심이고 권력의 실세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람을 안 믿는 것입니다.
사람을 믿었다가는 큰일 나요. 아무나 쓰지 않습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것이 모든 권력자들의 속성이에요.
그런 보디발이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았을 뿐 아니라 자기의 식료 외에는 어떤 것도 간섭하지 않겠다고까지 말할 만큼 요셉을 신뢰하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요?
비결이 무엇일까요? 오랜 기간에 걸쳐서
매일의 의무에 성실한 요셉의 진실성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놈은 어떤 일을 시켜도 대충대충 하지 않아 보디발이 그걸 알아본 거예요.
쟤는 말이야. 아무리 자기가 궁지에 몰려도 거짓말 안 해 속이지 않아.
그러니까 자기의 모든 재산을 맡길 수 있었던 것이죠.
여러분 요셉의 형통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매일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결과입니다.
그러다가 이 요셉이 다시 감옥에 들어가죠. 그런데 감옥의 요셉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죠.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김으로 그 재반 사물을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다.
이제 보디발의 청직이었던 요셉이 이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일단 감옥에 들어가면 그전에 그가 밖에서 뭘 했는지는 다 제로가 되죠 예.
포맷입니다. 없어요. 거기서 밖에서 교수를 했던 사장을 했던 감옥에 들어왔으면 그냥 말단 죄수일 뿐입니다.
근데 이제 간수장이 요셉에게 뭘 이제 시켰습니다 뭘 시켰겠습니까?
여러분 보디발의 집에서 청지기 하다 왔으니까 갑자기 자기 측근을 삼았을까요?
천만해요. 역시 청소하고 화장실 닦고 뭐 그런 일 시켰겠죠.
누가 해도 해야 되는 일이고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감옥한 일이고 잘하고 잘못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열심히 한다고 석방이 될 것도 아니고 무슨 감형될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요셉이 매일의 의무를 성실하게 한 것입니다.
얼마나 성실하게 했던지 나중에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않았다.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또 요셉이 이제 애굽의 총리가 되죠. 근데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그 바로가 말이죠.
요셉이 꿈 해석한 걸 듣고 막 너무 놀라고 감동받아가지고 야 너 총리해 이렇게 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어요.
근데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애굽은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대제국의 총리를 그렇게 아무런 검증 없이 그것도 어디 감옥에 있던 풋내기 30살에게 총리를 시키겠어요?
여러분 부조와 선지자에 보면 다 조사했다고 나와 있어요.
그동안에 누구예요?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는 어떻게 살았고 감옥에서는 어떻게 했고 무엇을 했는지 다 살펴본 겁니다.
그 검증을 통과했어요. 요셉이 요즘말로 하면 뭡니까?
국무총리 뭐죠? 청문회 다 한 거예요. 다 그런데 정말 이 풋내기가 대제국을 경영할 만한 경륜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거예요.
누구를 통해서요? 왕릉의 감옥에 던져졌던 술 관원장을 비롯한 고위층들에 의해서 걔랑 얘기해 보니까 능력 있습니다.
믿어볼 만합니다.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겁니다. 하나님이 갑자기 요셉을 그냥 총리 시켜주신 게 아니에요.
그래서 엘렌지 화잇은 부조와 선지자 제21장 애굽에서의 요셉 장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한번 여러분 잘 보십시오. 생활의 사소한 일이 품성 개발에 끼치는 영향을 바로 아는 사람은 심이 적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에 참으로 하찮은 일은 아무것도 우리가 날마다 직면하는 여러 가지 환경은 우리의 충성을 시험하여 우리로 하여금 더 큰 책임을 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한다.
일상생활의 업무 처리에서 원칙을 고수함으로, 일상생활의 업무 처리에서 원칙을 고수함으로 마음은 향락과 쾌락의 추구보다는 의무의 수행을 더 존중하는 데 익숙해진다.
이처럼 훈련된 마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선과 악 사이를 왔다 갔다 하지 않는다.
이러한 마음은 성실과 진리에 익숙하도록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의무를 충실히 행한다.
작은 일에 충실히 행함으로 큰 일에 충실할 힘을 얻는다.
요즘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좀 이렇게 통용되던 표현 중에 하나가 큰 일 할 사람은 작은 일은 신경 쓰면 안 된다.
큰일할 사람이 뭐 그런 사소한 일을 그렇게 신경 쓰냐 이런 말 많이 했어요.
제가 자랄 때도 그랬고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그랬습니다.
그래서 큰일 하는 사람은 또 큰일할 사람은 뭐 조그마한 거 별거 그런 것들은 그냥 뭐 잘못해도 다 눈 감아주고 다 익스큐즈가 되는 세상이었는데 갑자기 우리나라가 바뀌어가지고 이제는 말이죠.
뭐 큰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 옛날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일이었습니다.
세금 좀 덜 내는 거 뭐 아파트 사면서 이중 계약한 거 위장전입 위장전입이라는 게 우리나라에 개념도 없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총리하려고 하면 위장전입 쫙 나와가지고 이것 때문에 안 된다.
교통법규 위반 음주운전 논문 표절 근데 오래전 일인데 다 끄집어내서 이것 때문에 안 된다 저것 때문에 안 된다.
우리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람들이 이런 창피를 당하는 이유가 뭡니까? 큰 일을 하기 위해서 작은 일은 무시한 것입니다.
그 정도야 내가 앞으로 큰일 날 사람인데
사랑하는 여러분 채색옷 입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무시해도 괜찮을 만큼 하차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도록 하십시다.
우리가 매일 해야 하는 평범하고 사소한 일이 우리의 품성을 형성하고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사소한 일에 성실한 것이야말로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 자녀의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대단한 일을 잘해내는 것은요 누구나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승진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을 앞에 놓고 대충 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거는 다들 죽기 살기로 하기 때문에 다 잘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그런 일이 아니라 사소한 일입니다.
침대를 정리를 했느냐 안 했느냐 이런 겁니다.
바쁜데 불법 유턴을 했느냐 안 했느냐 이런 이런 일입니다 하면 금방 갈 수 있어요.
지금 상황에서 내가 그냥 잠깐 거짓말하면 창피를 모면할 수 있어요.
그런 일이 많지 않습니까? 그럴 때 정직하게 말하고 창피를 당하느냐 아니면 적당히 얼버무리고 창피를 안 당하느냐의 사이에서 우리가 누구인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에 성실한 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 자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비행 학생까지는 아니었지만 내가 작은 일에 신실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목사가 안 됐으면 아마 많은 더 많은 문제를 많이 만들었겠죠.
제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 친구들 몇 나쁜 놈들이죠.
저를 비롯해서 이상한 얘기를 했습니다. 시험지 빨리 내고 나오기 내기를 했습니다.
시험지 빨리 내고 딱 하면 빨리 쓰고 그냥 그래서 쭉 푸는데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모르면 두 번도 안 보고 그냥 지나갔어.
빨리 가서 1등 하려고 왜 그런 못된 얘기를 했느냐 저희가 고등학교 다닐 때 이제 제가 예비고사의 마지막 세대입니다.
제가 1980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었어요. 그때까지는 입시 제도가 예비고사가 있고 본고사가 있었어요.
그래서 예비고사의 성적을 조금 가지고 가서 본고사가 사실은 대학의 당락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다음에 내신 성적이라고 하는 건 아예 개념이 없었습니다.
아무 의미가 없어서 대학 가는데 우리는 저희는 오직 예비고사와
본고사로만 대학을 가는 입시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짓을 한 겁니다. 만약에 그게 대학 가는데 뭐 한 5%라도 이게 영향이 있었으면 그렇게 못하죠.
그래서 저는 시험지 빨리 내기 시합 하면 거의 제가 이겼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제가 내신 성적이 어떻겠습니까? 아주 화려했죠.
근데 아무 걱정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대학 가는데 아무 관계없으니까.
근데 고3 여름방학에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두환 정부가 새로운 입시 제도를 예비고사 측이 석 달 전에 발표한 거예요.
석 달 전에 뭐냐 본고사 폐지 앞으로 대학 입시는 내신 성적 50% 예비고사 50% 여러분이 뭔 말인지 몰라서 지금 충격도 못 받으시는데 그로써 사실 저의 대학 입시는 끝난 거예요.
제가 예비고사를 만점을 받아도 대학 가기 어렵습니다.
예비고사 50% 내신 성적 50% 전 내신 성적은 그렇게 쳤다니깐요.
시험지 빨리 내기
어떻게 어떻게 해서 제가 간신히 삼육대학교 신학과에 입학은 했습니다.
내 인성 제가 예비고사 잘 본 거죠. 그러니까 공부 잘했다니깐요.
그런 내신 성적인데도 들어가 서울 서울 커트라인 훨씬 넘어가고 그다음에 제가 어쨌든 합격했으니까.
근데 장학금 당연히 못 받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두고두고 제 인생의 책 그것이 저의 참 창피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매일의 의무에 성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을 줄 알았으면 제가 그러지 않았겠죠.
근데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그런 일이 있든지 없든지 매일의 의무에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일의 의무에 신실했는데 상사가 몰라 볼 수가 있고 진급 심사에서 누락될 수가 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해야 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삼육부산병원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도 작은 일에 신실한 재림 성도가 됩시다.
청년에게 보내는 기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대들의 업무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신실히 행하라.
그대들의 업무가 무엇이든지 간에 사실 뭐 간호부의 일이든 뭐 구매부의 일이든 부서가 많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뭐 어떤 일이든 여러분의 업무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신실히 행하라.
가장 작은 문제에 관해서도 정직하게 말하라. 날마다 아름다운 일을 행하고 유쾌한 말을 하라.
인생의 길을 걸어가면서 미소를 뿌려라. 안타깝게도 우리
아직까지 병원은 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미소를 뿌려도 잘 안 나가겠습니다마는 그래도 눈으로라도 미소를 뿌리십시오.
인생의 길을 걸어가면서 미소를 뿌려라. 그대들이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의 행동을 간압하실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어느 날 그대들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침대와 사무실을 깨끗이 정리함으로 매일의 의무에 성실한 재림 성도가 됩시다.
자녀에게 친절하고 아내에게 따뜻하고 남편을 존중함으로 매일의 의무에 성실한 재림 성도가 됩시다.
부모님께 사랑을 표현하고 친절한 이웃이 되는 것으로 매일의 의무에 신실한 전임 성도가 됩시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양보하고 또 친절을 베풀고 그에게 관심을 가져서 요셉처럼 오늘 뭐 걱정 있어요?
요셉이 그랬잖아요. 술 반 원장하고 떡반원장 뭐 걱정 있으세요?
그랬더니 어 걱정 있어 뭔데요? 꿈 꿨는데 그렇게 해서 요셉이 자기는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했잖아요.
우리가 우리의 동료들에게 작은 관심과 친절을 보이는 것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이 매일의 의무에 신실한 삶을 사는 가치입니다.
교통신호를 잘 지키고 과속 운전을 하지 않고,
쓰레기를 아무 데나 던지지 않고 마당을 쓸든 걸레질을 하든 다른 사람이 다시 손댈 필요가 없게 하므로 요셉 같은 매일의 의무에 성실한 재림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인사를 잘하고, 약속을 잘 지키고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말하고, 전화를 친절하게 받고, 보고서와 결산서를 정확하게 작성하고, 업무 시간에 개인적인 일을 하지 않고 이렇게 함으로 우리가 매일의 의무의 신실한 재림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우리가 채색옷 입은 요셉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일에 신실한 삶을 살아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음에 내가 많은 것을 내게 맡기리니 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칭찬을 받으시는 우리 삼육부산병원의 모든 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작은 일에
신실할 수 있는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행할 때 저희들 그것이 어떤 일이든 눈에 띄는 일이든 띄지 않는 일이든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신실하게 하셔서 요셉을 따라갈 뿐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가는 우리 모든 믿음의 가족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어떤 것도 대충하지 않으셨습니다.
요셉의 목공소에서 일을 하실 때에도, 3년 반 공생애 하실 때에도, 심지어 주님 부활하고 무덤에서 나오실 때도 입으셨던 옷을 잘 개어서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나오셨던, 너무나 작은 일에 신실하셨던 우리 예수님을 오늘 우리가 배우고 따라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