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너희가 내가 배가고플때 먹을 것을 주었다
우리가 언제 예수님께 그리 하였나이까?
가장 작은자에게 행한 것이 내게 행한 것이다.
무슨 뜻일가? 예수님의 말씀은 마치 예수님이 주신 양심에 반응하여 양심에 위배되지 않게 행하였으니,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처럼 들리기도 한다.
예수님에 대하여 들은 적도 없고 성경을 본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은 마치, 그들이 힘들고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하늘을 향하여 간절함이 있었던 영혼에 대한 본능인 것 처럼 느껴진다.
하나님이 주신 양심에 거리낌이 있던 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들었을때, 성경에 대하여 전함을 받았을때, 그들은 자신들이 영혼에 대한 본능으로 삶을 의지하며 막연히 부르던 하늘이 곧 예수님임을 알아차리지 않았을가?
하나님이 주신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 삶을 살아가며 가족과 이웃하고 다투기도 하며 살던 사람들이, 차마 잔인하지 못하고 차마 냉정하지 못하고 차마 권력과 재물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며 살지 못하였으며, 그렇게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자신들에게도 모자를지 모를 자신들의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으니,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내가 배고프고 추위에 떨때 챙겨주었다 하심이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들이 우리는 예수님을 한번도 본적이 없고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들은 적도 없는데, 우리가 언제 예수님께 그리 하였나이까? 라고 성경에 기록된것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욕심때문에 많은 죄를 지었어도 영혼에 대한 본능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여전히 아는 자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치 살아 있을때 유익이 되는 자들에게 잘하였듯이, 하나님께 자신이 몸에 배인 아부로 대함을 깨우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장 작은 자에게는 함부로 하면서도 대제사장과 친하면서 그들과 함께함이 자신의 영혼을 그들과 함께 천국에서 함께하게 기여할거라 생각하면서 스스로 바리새인이라 하니, 마태와 같은 세관이 아님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지만 귀신도 하나님을 알고 바울을 안다. 하나님을 알고 점집에 가다가 교회를 간다고해서 하나님이 주신 양심에 거리낌을 느끼지 못하니, 마치 점집에 가서 귀신의 비위를 맞추듯이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아부하려하나,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나는 너를 모른다”하시니 다시 또 비위를 맞추는 자신을 받아주는 점집에 가거나 아님, 대제사장과 친해지면서 자신이 하나님이 주신 양심에 반응한다고 착각을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쫏아내고 병든 자를 고쳤다 말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모르는 자가 있던가? 귀신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바울을 안다.
성경을 전해들은 그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전혀 들은 적이 없던 그들도, 하나님이 그영혼에 주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양심이란 표현으로 사람을 영혼의 본능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하였으니, 양심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어떤이들은 잘못을 느끼고 어떤이들은 잘못의 느낌을 무시한다.
예수님에 대하여 아는 지식이 천국에 가게 하는 것이 아니요. 예수님이 주신 말씀이 그 양심을 찔러 하나님에 뜻에 따라, 하늘을 보고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욕심때문에 이웃에게 준 손해에 마음의 거리낌이 있어, 삭개오와 같이 뉘우치고 싶은 마음이 자신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고 토사한 것이 있으면 그것의 4배를 갚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드는 자를 하나님이 안다하지 아니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