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져서 어릴 적 장난기가 발동했다. 비를 맞고 돌아다니는 나를 보고 엄마는 무슨 비 오는 날에 날궂이냐면서 호통을 쳤다. 그래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비 맞는 걸 즐겼다. 답답한 가슴이 비를 맞으면 시원하고 모든 게 씻겨 내려가는 듯 행복하고 즐거웠다. 오늘도 그 시절의 날궂이를 좀 하고 싶어서 비를 맞으면서 마당에 어지럽게 난 풀을 뽑았다. 물을 머금은 풀들이 쑥쑥 뽑혀서 올라오는 것도 재밌고 우산은 썼지만, 엉덩이와 등줄기에 흠뻑 젖는 빗줄기도 좋았다.
한 시간쯤 비를 맞으면서 풀을 뽑았을까? 속에 있던 주체할 수 없던 삶의 열기가 식고 한기가 느껴질 때쯤 집으로 들어와 샤워하고 책상 앞에 앉으니 한결 마음이 편하고 안정감이 느껴진다.
살다 보면 뭔가 모를 불만감 같은 것이 계속 누적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딱히 뭔지 모르겠는데 그런 삶의 스트레스를 해결해 주지 않으면 쌓이고 쌓여서 병이 될 수 있다. 이런 삶의 오물들을 태우고 해결할 수 있는 우리 삶의 영적인 용광로가 반드시 필요하다.
바울 사도는 (빌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시고 베드로는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하신다. 주님 곧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용광로다. 그분 안에 들어가서 우리는 인생의 모든 스트레스를 해결하고 풀어야 한다.
비 오는 날의 날궂이처럼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하고 그분이 주시는 성령의 소나기를 맞는다면 우리 영혼의 찌든 때가 다 벗겨져 나가고 마음이 후련해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환난을 당하는 자나 억울하게 학대를 받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그대들은 마음이 강철같이 냉혹한 자들에게서 돌아서서 그대들의 요구를 그대들의 창조주께 아뢰라. 통회하는 마음으로 그분에게 나아가는 자들은 한 사람도 거절당하지 않을 것이다.”(실물, 174)
영혼의 목욕 곧 성령의 소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계획하고 고안해 내지만 기도는 적게 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이제부터 더 많이 기도하고 오히려 일을 덜 만들어라. 하나님께 맡기고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고 순종하라 그리하면 훨씬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개혁자들은 하나같이 기도의 골방에서 먼저 성령의 소나기를 경험하고 나왔다. 루터는 “내가 아침에 2시간 기도하지 않으면 그날은 마귀가 계속 승리한다. 나는 할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매일 3시간을 기도하지 않으면 그 일들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개혁자 요한 웨슬리는 먼저 자신의 이성과 감정을 바친다고 기도했으며 그다음에는 그의 몸을 드리고 마침내 그의 모든 소유를 드린다고 기도드렸다. 그리고 끝으로 “주님, 저 자신, 제 모든 것을 바칩니다.”라고 기도했다. 계속되는 장마를 보면서 내 삶에도 그치지 않는 하늘의 비가 쏟아지길 기도해 본다. 시원하게 내려서 내 영혼의 불순물을 깨끗이 씻어내고 그분 안에서 참된 쉼을 누리는 하루가 되길 기대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하늘의 이슬, 성령의 단비에 젖게 하소서. 세욕을 씻어내고 하늘의 소망으로 채워지며 바른 열망을 가지게 하소서. 우리를 이기고 또 이기는 승리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기도로 싸움에 나가고 영적 전쟁터에서 패잔병이 되지 않도록 말씀으로 무장되는 주님의 군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