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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禧年)과 육천년설에 근거한 재림의 시기설정의
제 문제와 이에 대한 바른 이해
장병호 목사, 삼육대학교 신학과 교수
희년설 이론과 제 문제
기독교 역사에서 20세기만큼이나 지구의 종말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과 각종 연구들이 홍수
처럼 쏟아져 나온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예외 없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안에도 종
말과 관련된 이설들이 교회를 어지럽게 한 많은 예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희년
(jubilee)설과 육천년설(6000 years theory)은 아직도 교회 역사의 잔상으로 남아있으며 여
전히 상당수의 재림신도들은 21세기에 접어들었지만 재림의 지연으로 인해 시기설정의 유
혹을 받고 있다. 특히 희년주의자들은 역사에서 첫 번째 희년과 마지막 희년 사이의 한 평행점을 이끌어내고
자 노력해 왔다. 체트 울프(Chet Wolfe)는 1987년이 이 지상에서 맞게 될 마지막 희년이
며, 콜린 딜(Colin Deal)은 1989년으로, 웨거비(Waggerby)는 1991년으로, 그리고 호서
(Hauser)는 1994년으로 잡았다. 이 희년 이론이 1980년대 초에 한국에 있는 재림 신자들
에게 소개되었고. 많은 한국 재림신자들은 이 사상을 받아들여 입산운동에 불을 붙이기도
하였다. 개괄적 이해를 도모하고자 희년설과 육천년설의 등장과정과 문제점만 제시하고자
한다. 성서가 말하는 희년과 그 의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중요한 법 가운데 하나가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는
희년제도이다(25:1, 8-55). 이 희년의 법들은 당신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사회적인 관심
을 나타내었는데, “희년은 전 이스라엘을 통해 범국가적인 ‘해방’을 선언하였으며 특히 가난
한 자들과 불이익을 당한 자들에게 유익을 주었다.”1) 어떤 의미에 있어서 그 희년 기간에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탁월한 사회적인 개혁과 경제적인 개혁이 일어나기를 기
대했다. 이 법의 근본적인 목적은 그들의 가장 귀한 자산인, 땅에서 경제적인 균형을 유지
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었다.2) “희년”이란 말의 “쥬빌리”(jubilee)는 히브리어의 “요벨”(Yobel)을 영어로 음역한 것이다
(10).3) 안식년과 마찬가지로 희년에는 땅에 “파종하지 말아(10-11절) 하며, 재산은 보상 없
1) Roy Adams, "The Ultimate Jubilee is Coming," Adventist Review, 7 November 1985, 15-18.
2) Robert Gnuse, "Jubilee Legislation in Leviticus: Israel's Vision of Social Reform," Biblical Theology Bulletn
15 (February 1985): 43.
3) “쥬빌리”란 용어는 “양각”(ram's horn--출 19:13; 수 6:5))이란 말의 “요벨”이란 단어에서 온 말로서 일반적인 나
팔을 뜻하는 “쇼파르”(shophar)라는 말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용어이다. “요벨”(yobel)은 “큰 나팔”(사 27:13)로 불
려지는데 정복당하여 흩어진 이스라엘을 위한 새롭고 더 행복한 시대를 열기 때문이다. J. Morgenstern, "Jubilee,
Year of," The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ed. G. A. Buttrick (New York: Abingdon Press, 1962),
2:1001.이 그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려주어야 한다(24-55절). 이러한 행위의 신학적인 근거는 “토
지는 내 것이다”라고 한 23절에 있다. 이 해에는 모든 히브리 종들 역시 해방이 되었다(10
절). 희년은 일 년 중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마지막이고도 가장 주목할 만한 해였다. 옐리
에(W.H. Jellie)와 브라운(F.W. Brown)은 “희년은 현명하고도 자애로운 계획과 그것이 하
나님에게서 출발했다는 요지부동의 증거를 가져다준다.”고 주장한다.4) 이 제도는 가난한 자
들뿐만 아니라 부자들을 위해서도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이었다. 카일(C.F. Keil)과 델리취(Franz Delitzsch)는 희년법을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 생명의 모
든 관계를 거룩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의 토지와 국가를 평화와 자유의 왕국으로 변형시키
는” 신학적인 기능을 감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5) 말틴 웃스트라(Marten H. Woudstra)는
희년의 표상적이며 예언적인 의미들과 목적들을 제시하면서 말하기를 “희년은 표상적이고도
예언적으로 ‘죄와 사망의 속박이 영원히 폐지될 때인 하나님의 왕국의 완성의 때, 곧 하나
님의 왕국의 영광스런 자유의 여명’을 예표한다고 했다.6) 카일과 델리취는 “희년은 미래의
표상”(롬 8:19; 히 4:9)이라는 데 동의한다.7) 죤 파울러(John Fowler)는 토지와 관련된 희
년법의 3 기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1) 전 땅에 자유를 선포하고; (2) 파종하고
수확하는 것으로부터 땅을 쉬게 하며; 그리고 (3) 모든 땅을 원래의 소유주들에게로 돌려주
는 것이다.8)
이러한 축복들과 특권들을 생각하면서, 많은 신자들은 희년의 깊은 의미를 연구하고 파헤치
려고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그들은 또한 희년의 상징적인 의미를 모든 죄로부터의 즉각적
인 놓임과 해방 등과 같은 기독교의 또 다른 원칙들에 적용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그러
나 실제로 희년은 재림교인들에게 예수의 재림을 위한 하나의 원형적인 사건(an antitypical
event)으로 받아들여져 왔다.9)
희년주의자들과 그들의 주장
시기를 정하는 많은 사람들은 성경과 엘렌 G. 화잇의 저술들을 그들의 주장의 근거로 삼아
재림의 때를 정하려고 노력해 왔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는 그들이 주장하는 희년의 일반적
4) W. Harvey Jellie와 Frederick W. Brown, On the Third Book of Moses Called Leviticus, The Preacher's
Complete Homiletic Commentary, vol.3 (Grand Rapids: Baker, 1980), 301. 엘렌 G. 화잇도 가난한 자를 위한
희년의 기능에 대해 같은 견해를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때 희년은 시작되었고 땅은 쉬어야 했다. 나
는 악한 주인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발해지는 말씀들을 알 수 없었으므로 혼란 가운데 빠져서 어찌할 바를 알지못하
고 있는 동안에 경건한 노예가 그를 묶고 있던 쇠사슬을 풀고 승리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곧 크고 흰 구
름이 나타났다. 이전의 그 어떤 것 보다도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 위에 인자가 앉아 계셨다...” (Ellen G. White,
Early Writings, 35).
5) C. F. Keil and Frnaz Delitzsch, The Pentateuch, 3 vols. (Grand Rapids: Eerdmans, 1951), 2:262.
6) Marten H. Woudstra, "The Year of Jubilee and Related Old Testament Laws.... Can they Be 'Translated'
for Today?" Theological Forum 5 (1977): 4.
7) 상게서에서 재인용. 8) Ministry의 부편집장이었던 John M. Fowler는 희년주의자들과 그들의 주장에 대해 연구하여 비평적인 주제로 중요
한 글을 기고했다. "The Jubilee Message: An Appraisal of Its Claims, " Denominational Studies, Southern
Asia Division of Seventh-day Adventists, March 1986.
9) 엘렌 G. 화잇은 희년의 시작을 예수의 재림 때에 땅이 쉬게 되는 것과 관련시켰다. 그녀는 또한 토지가 지구를 상
징하는 것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Early Writings, 35). 웃스트라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상 하나를 첨가한다. “그
러나 이 진술의 충분한 의미는 실현되지 않았다. 사물의 성서적인 견해에서 볼 때 가나안은 하나님의 언약의 승인
에 대한 확실한 증거이다. 이 약속은 정점이 되고 핵이 되는 말씀을 가지고 있는데, 곧 ‘나는 너희 하나님이고 또한
너희 후손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Woudstra, 7, 19)인 이론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체트 울프는 기원 27년이 희년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 때에 예수께서 “은
혜의 해”를 전파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울프는 말하기를 “기원 27년에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고 곧 이어 자신의 공중봉사를 시작하셨다. 그때에 ‘때가 이루
어졌다’라는 기별을 선포하셨다. 기원 27년을 희년으로 확증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이사야
61:1,2의 희년 예언의 성취를 읽으셨으며 그 때 ‘오늘 이 성경이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라고 진술하셨다”고 했다.10) 그는 기원 27년부터 40희년을 계산하면서, 로마서 9:28절의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는 말씀 때문에 예수
께서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울프는 이 지상의 마지막 희
년으로 1987년을 설정했다.11) 1987년 희년에 관하여 울프는 비록 예수께서 누가복음
4:18,19에서 “신원의 날”(사 61:2)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엘렌 G. 화잇은 신원의 날
을 부정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본문은 40희년인 1987년의 연대기적인 문제와
관련하여 예수의 재림에 대한 예언으로 어느 곳에서도 함축하여 말하지 않았다. 파울러에 따르면 “누가복음 4:16의 시기를 기원 27년에 일어난 것으로 신약의 연구를 인용
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기원 27년이 누가복음 4:16의 선언에 적절하지 않는 네 가지
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 누가는 연대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었으며 의
도적으로 그리스도의 나사렛의 배척을 메시야의 성취라는 모티브(motif)에 놓기 위해서 자
신의 복음의 대화의 시작에 위치시키고 있다. 2) 누가는 연대기적인 형식보다는 주제적인
형식을 사용했는데 그 형식 속에서 대화가 몇 번 연대와 관련이 없이 전개되었다. 3) 예수
께서 나사렛에 나타나시기 전에 자신의 봉사가 널리 알려져 있었다. 4) 누가는 예수께서 나
사렛을 방문하시기 전에 명백하게 그분의 봉사의 기간에 대해 알고 있었다(눅 4:23). 따라
서 파울러는 기원 27년이 누가복음 4:16의 선포에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12)
요약하자면 울프의 잘못은 성경의 해석이나 또는 엘렌 G. 화잇의 저서들을 동원하여 기원
27년을 첫 희년으로 잡은 것에 있었다. 와렌 웨거비(Warren T. Waggerby) 역시 희년주의자로서 희년을 역사의 이 지점에서 교회
를 위한 위대한 그리스도 중심적인 진리로 보고 있다. 그는 희년은 시간적인 요소(time
element)를 포함하고 있는 재림에 대한 예언이며 이 시간적인 요소는 다니엘서에 있는 예
언들의 시간 속에 감추어진 왕국의 세세한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주요 관심은 희년 주기를 다니엘서 8장과 9장에 관련시키는 것이다.13)
첫째 웨거비는 49년의 희년주기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 이론은 다음과 같다. (1) 레위기
25:8에 따르면, 희년의 면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7x7로 계산해서 49에 와야 한다는 것이
다. (2) 희년은 2년 휴작에 의해 불변의 7년 주기로 묶여져 있다. (3) 희년은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불변의 7년 주기로 되어 있다. (4) 49년 주기는 70주 예언 자체 속에 포함되어
10) Wolfe, Jublee-1987, 7.
11) 울프에 따르면 모세가 자신의 봉사를 준비하기 위해 40년을 보냈고, 이스라엘 자녀들이 40년을 광야에서 보냈으
므로 재림신자들도 40희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Ibid.; Fowler, 11, 12를 참조. 그는 레위기 25:9, 10의 기별
을 표상적인 희년으로, 이사야 61:1,2의 기별은 예언상의 희년으로, 누가복음 4:18,19에 있는 기별은 기원 27년에
성취되는 희년으로, 그리고 마지막 희년은 1987년 10월 3일에 성취될 것이라고 이해했다. 이러한 원칙을 활용하여
그는 40 x 49= 1960, 그리고 1960 + 27= 1987로 계산했다. 상게서를 참조하시오. 12) Fowler, 13.
13) Waggerby, The Jubilee Cycle in Daniel 8 and 9, 3을 참조하라.있다. (5) 49라는 숫자는 성경의 큰 숫자 체계의 한 부분이다. (6) 성경으로부터 쏟아져 나
오는 정보의 홍수가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리고 구속사의 주요 국면을 밝혀주고 있다.14)
두 번째 웨거비는 49년 희년주기를 기원전 457년으로부터 계산한다. 그는 그 전체를 두 희
년주기로 나누고 있는데, 기원전 457년과 기원 34년 사이의 10 주기와, 기원 31년과 1844
년 사이의 37 주기로 나눈다.
1) 34년에서 31년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왕국에
서 끊어 없어졌으며, 따라서 이스라엘이 넘어진 것에 해당되는 3년 반이 70주 예언으로부
터 잘라졌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하나님의 달력의 이동(the divine calendar shift)에 의
거해서 그는 이 지상의 마지막 희년은 1994년이 될 것이라고 결론을 맺는다. 이러한 다양
한 사상을 모아서 성경과 역사적인 자료를 통해서 그는 예수의 재림의 작정된 어떤 때를 찾
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많은 의문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첫
째로 자신의 희년 달력에 의하면 기원전 702년, 457년, 그리고 기원 34년이 희년이었거나
아니면 안식년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별히 그는 이사야 37:30을 희년이나 또는 안식
년을 암시하고 있다고 추측하는 것 같다.15)
이에 대한 남대극 교수의 강한 반증은 다음과 같다. 1) “금년”을 “안식년”으로, 그리고 “제
2년”을 “희년”으로 가정하는 것은 레위기 25:4-5, 11에 있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포도를 거두지 말라”라고 규정하고 있는 희년의 일반적인 규칙과 상치된다는 것이다. 2) 3
년을 견디기 위한 “표징”에 대한 진술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백성들이 자신의 법을 순종하면 안식년과 희년에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을 약속하셨기 때
문이다.16) 3) “금년에 스스로 난 것”이라는 구절에 있는 “싸피아흐”(Safich)라는 히브리 용
어와 “제 이년에 또 거기서 난 것”이라는 구절의 “싸히스”(Shachis)라는 용어가 동의어라는
것이다. 즉 두 단어 사이에는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17) 따라서 산헤립이 침입한 해가 안식
년이었거나 희년이었다는 것은 신빙성이 있는 성서적인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벤지온 와홀드(Benzion Wacholder)는 다음과 같은 매우 중요한 진술을 하고 있는데 남대
극 교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레위기 25장이 이스라엘의 모든 주민이 거룩한 땅(가나안)에
서 살 때에 이 제도를 명하였기 때문에 희년은 사마리아가 함락된 후에 폐지되었다(722
B.C.E.). 더 나아가서 레위기 25장이 희년과 쉐미타(Shemitah)를 단일체로 명하고 있으므로
랍비가 말하는 것처럼 희년의 준수가 없는 쉐미타는 “성경”의 법이라기보다는 “랍비”의 법
으로 떨어져 버린다”18)
성경은 바벨론 유수 이전의 희년 축제에 대한 기록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부가해서 와홀드
에 의하면 “비록 레위기 25:8-28이 희년을 안식년에 덧붙여 제시하고 있지만, 그때 매여
14) 특별히 여섯 이론을 제시하면서, 웨거비는 “49년 주기나 50년 주기에 대한 옹호는 궁극적으로 70주 예언, 2300주
야와 그리고 궁극적으로 십자가에서 끝나는 큰 희년과 구속사의 모든 진리의 진앙지를 총 망라하는 진리의 큰 기둥
들을 포괄해야 한다”고 말한다. Ibid., 5, 6 참조. 15) “왕이여 이것이 왕에게 징조가 되리니 금년에는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제이년에는 또 거기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니이다”(사 37:30). 이 구절에서 웨거비는 “금년”을 안식년으로, 그리고 “제이년”을 희년으로 이해했다. The Jubilee Cycle in Daniel 8 and 9, 13.
16) 레위기 25:21에서 하나님께서는 삼년동안의 축복을 약속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명하여 제 육년에 내 복
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삼 년 쓰기에 족하게 할지라”고 하셨다. 17) 역대하 19:29에서 (이사야 37:30과 유사한 구절임) “사히쉬--Sachish”(“싸히스--Shachis”와 같은 단어임)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레위기 25:5,11에서는 “싸피아흐”(Safiach)가 “스스로 난 것” 과 “다스리지 아니한 것” 모
두에 사용되다. 남대극, 출애굽의 어제와 오늘 (서울: 제칠일안식일예수제림교 동중한합회, 1989), 121-123.
18) Benzion Wacholder, "The Calendar of Sabbatical Cycles During the Second Temple and the Early
Rabbinic Period," Hebrew Union College Annual 44 (1973): 154.있는 사람과 땅이 원래의 주인에게로 회복되어져야 하나 우리는 바벨론 유수 이후 시기 동
안에 희년의 준수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19)
로버트 호서(Robert Hauser) 역시 희년주의자이다. 그는 70주 예언은 레위기 25장에 있는
희년의 제사 원칙과 잘 조화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웨거비처럼 50년 희년주기 대신에
49년 희년주기를 받아들이고 있다.20) 그는 유대인 노예들이 49년만에 풀려났으나 비유대
인 노예들은 50년만에 풀려났다고 이해하고 있다. 호서의 희년의 주기표는 웨거비의 것과
비슷하나 각자의 희년 주기를 다른 지점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호서는 70희년 주기는 시내
에서의 출애굽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주장한다.21)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희년의 시작
이 출애굽(the exodus)에서부터 출발한 이래 70희년이 특별 부활에까지 거슬러 내려가야
하는 것처럼, 다니엘서 11장과 12장에서 연속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마지막 사건은 죽음의
속박으로부터 구원을 받아 변화되는 이 지상으로부터의 대 탈출(the grand exodus)이 시작
되는 때에 있다.”22)
호서에게 있어서 다니엘 9:24에 있는 “네 백성을 위해 기한이 정해진” 70주(샤부임
-shabuim, 시빔-shibyim)것에 대한 이중적용(dual application)은 매우 중요한데, 즉 애굽
으로부터 탈출을 이 지상에서부터 탈출로 적용하기 때문이다.23) 이 이중해석은 “예언적 해
석의 10계명”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최종적으로 그는 70주(the seven seventies) 예언이
1994년에 달성될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그때 오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전히 1260년의 문
자적인 유예기간(3년 반)이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이 때의 기간을 “최대 유예기간”(maximum period of the probation)이라고 부른다.24)
19) Ibid. 레위기 27:17-24; 민 36:4; 에 46:16-18.
20) 호서는 말하기를 “우리는 와렌 웨거비 박사에게 충심으로부터 부채를 지고 있다”고 한다. 호서는 여러 면에 있어
서 웨거비의 희년 문제에 대하여 충분히 동의하고 있다. Hauser, 105-106을 보라. 21) ---------------------70 희년 주기--------------------
출애급 457 BC AD 27 ----+---- 34 1844 SR
-----------------------------31--------------------------
이스라엘을 위한 유예기간--------------교회를 위한 유예기간
------------30희년 주기--------+--------40희년 주기-------- 호서는 다니엘서 9:24의 “70 주”가 예언적인 때 속에 있는 주일들과 마찬가지로 희년들을 의미한다고 보았
다. 따라서 그는 출애굽이 70 희년을 위한 첫 희년이었다고 주장하며, 기원 457년부터 34년까지의 490년
은 주일들로 구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시 희년 주기 안에서 유대인들에 의해 계산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
한 주장에 근거하셔 호서는 마지막 희년을 계산했는데 70 희년 주기 안에서 기원 34년으로부터 1994년을
계산해 내었다. 그는 말하기를 기원 457년부터 34년 사이의 10 희년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허용된 기간
이며, 기원 34년부터 1994년까지의 40 희년주기는 영적 이스라엘을 위해 허락된 기간이라고 한다. 그에 의
하면 세계사의 마지막 희년은 출애굽으로부터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Ibid., 110, 111 참조 바람. 22) 호서는 출애굽의 해가 희년이었다고 생각한다. Ibid., 111.
23) 호서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샤부임 시빔 용어를 “일곱 번씩 일흔 번”(sevened seventy)으로 번역을 하며 출애
굽에서 특별 부활, 즉 마지막 유예기간의 끝에까지 70희년 주기에 적용되어져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은 그것을 “70주”(seventy weeks)로 번역을 한다. Gerhard F. Hasel, "Interpretations of the
Chronology of the Seventy Weeks," in 70 Weeks, Leviticus, Nature of Prophecy, Daniel & Revelation
Committee Series, vol. 3, ed. Frank B. Holbrook (Washington, DC: Biblical Research Institute of the
General Conference of Seventh-day Adventists, 1986), 6-7.
24) Robert Hauser, 16, cited in Keumyoung Ahn, "Critics on Double Application of the Prophecy of the Book
of Revelation by Mr. Kang Byung-guk" by the SDA Korean Study Committee in North America, 1989, 29.여하튼간에 많은 재림교회 성서학자들은 출애굽의 해와 기원전 457년이 희년이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안금영 박사는 “그의 이론은 ‘네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안식하게 하라. 그리고 70년이 일곱 번인즉’이라는 레위기 25:2,8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에 상반된다”라고 말한다.
2)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은 기원전 457년과 기원 34년이 안식
년이었을 가능성은 있을지언정 희년은 아니었다는데 동의한다.25)
최종적으로 호서의 성경예언의 이중적용은 비평을 받고 있다. 엘렌 G. 화잇은 “어떤 자들은
자기네들의 때에 적용할 수 있는 진리를 장래에 적용시킬 것이다. 과거에 벌써 성취된 예언
들 가운데 있는 사건들을 미래에 있을 것으로 해석하므로 이런 이론들로 말미암아 어떤 사
람들의 신앙이 서서히 약화되었다”26)라고 말했다. 콜린 딜(Colin Deal) 역시 희년주의자로서 예수의 재림의 정확한 때를 찾기 위한 주요 모퉁
이 돌로서 희년제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희년 사상을 레위기 25장과 역대하
36:21로부터 이끌어내어 70 안식년-희년제도(a seventy sabbatical-jubilee year system)
를 찾아내었다. 역대하 36:21에 있는 구절은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
식하여 칠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라고
진술한다. 콜린 딜은 지구역사의 기간이 70 희년, 즉 1989년에 마쳐질 것이라고 지적했는
데, 그는 이 때를 이스라엘이 기원전 1442년에 가나안 땅을 정복한 해로부터 계산했다.
3) 그
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기의 통치는 1989년의 후반기나 또는 1990년 초기에 시작될 것
이라고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더 나아가서 그는 예수님의 재림의 정확한 달, 일, 시간을 찾
아내려고 노력했다.27)
또 다른 시기를 정하는 사람 가운데는 70년을 대속죄일과 관련시키는 세대주의자인 에드갈
휘스넌트(Edgar C. Whisenant)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마지막 세대를 각 각 40년으로 구성
된 악의 3세대로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첫 세대는 모세의 시대에 광야에서 죽은 악
한 자의 세대이다. 두 번째의 악한 자의 세대는 기원 34년에서 70년 사이의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다(마 23:33-36). 그 해의 후반기에 이스라엘은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
되어 세계로 흩어졌다. 세 번째요 마지막이 되는 악한 자의 세대는 1948년 5월 14일에 출
발했으며 그 날에 이스라엘은 한 국가가 되었다. 이 세대는 40년이 1988년 9월 21일(Yom
Kippur)의 대속죄일 늦게 끝날 것이다. 메시야는 정확하게 그해의 69주일 후에 끊어 없어
졌다(십자가에 달리심). 따라서, 적그리스도의 통치를 위한 마지막 7년은 1988년 9월 21일, 곧 대속죄일에서 시작하여 1995년 10월 4일, 곧 대속죄일까지 확장된다. 이 두 날 사이에
야곱의 환란(렘 30:7)의 때가 1992년 4월 28일에 시작될 것이다. 다니엘서의 1290년과
25) 호서의 안식년과 희년의 도표(Chart of Sabbatical-Jubilee Years)에 따르면 1437, 1388, 702, 604, 65 B.C.와
기원 34년, 그리고 1994년은 다 희년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중 몇 개만 선별한 것임). 호서는 웨거비의 안식년과
희년 도표를 사용하여 하나의 도표를 만듦. Waggerby, The Jubilee Cycle in Daniel 8 and 9, 13을 참조하라. 오
재윤, 30 참조 바람. 26) Ellen G. White, Selected Messages, 2:102.
27) 70희년 주기에 기초해서 딜은 70희년에다 49년을 곱하여 3430년을 얻어내므로 계산하였다. 그러나 그는 1년을
더했는데 왜냐하면 레위기 25:10,11에는 50년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70희년의 끝은 1442 B.C. + 1 A.D. = 1442 + 1989 = 3431으로 계산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기원전 1442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간 해와 기
원 30년에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해는 희년이었다는 것이다. Deal, 144-147. 아울러 딜은 해, 달, 일, 시간을
다음과 같이 확정했다. 해는 1989년 또는 1990년, 달은 9월 또는 10월 초(Tishri), 일은 10월 2일 또는 9월 8,
11, 18, 22, 29 일이며, 시간은 저녁 6시경. Ibid., 146, 220, 223, 225, 235-237.1335년의 예언이 그날에 시작되어진다. 한 유대인으로 간주하여 1290일의 끝은 45일간의
국가들의 심판(마 25:31-33)이 시작되는 1995년 11월 8일의 일몰이 될 것이다. 이 심판은
그해 12월 23일 일몰에 끝난다. 즉 1335일의 끝은 천년기가 시작되는 1995년 12월 23일
일몰이 될 것이다.28)
희년준수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
희년에 대한 성서와 역사적인 자료들을 토대로 해서 가능한 재림의 때를 찾고자 하는 많은
희년주의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때를 위한 신뢰할 만한 자료들은 없다. 불행하게
도 레위기의 기록과 민수기의 한 절(레 25:1-55; 민 36:4) 외에는 성경에서나 외경에서 희
년에 관한 언급을 찾기가 용이하지 않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희년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
대와 소망을 공식화시키는 통상적인 개념으로 사용된 바벨론 유수기간의 하나의 이상향의
계시(a utopian vision)였다고 믿는다.29)
희년준수에 대한 확고한 역사적 기록의 부재가 가나안 땅에 정착한 첫해에 희년이 준수되었
다는 것을 지적하는 성경 외의 기록과 성경의 기록에 의한 유사성을 가리키는 것으로부터
희년의 역사성을 옹호하려는 어떤 사람들을 막지는 않는다.30) 불행하게도 성경에는 희년이
준수되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까발라(Cabala)나 탈무드(Talmud)가 중
요한 참고 자료로 사용되어 왔다. 까발라와 탈무드에서 안식년과 희년을 위한 규정들이 포
함되어 있다.31) 불행하게도 그것들에 대한 랍비의 견해를 통해서만 어떻게 안식년과 희년이
유대 사회에서 준수되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랍비의 견해는 이러한 법들이 신정통치사상(the idea of theocracy)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매 주일 안식일이 정규적인 노동과 율법의 연구로부터 쉬기 위해
바쳐진 것처럼, 칠년 중 일 년은 “여호와께” 바치도록 되어 있었다. 비록 그들의 주요 과제
가 각 족속의 상속을 완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쉐미타(shemittah)와 요벨(Yobel)
이 약속의 땅이 정복되어 각 족속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나누어지기 전까지는 시행되지 않았
다. 유다 아이센스타인(Judah David Eisenstein)은 “첫 쉐미타(shemittsh) 해는 히브리인들이 팔
레스틴에 도착한지 21년 후에 지켰으며, 첫 요벨(yobel)은 그로부터 31년 뒤에 지켰다”고 주
장한다.32) 희년은 모든 지파가 팔레스틴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준수되었으나, “르우벤과
28)Edgar C. Whisenant, On Borrowed Time (Nashville, TN: World Bible Society, 1988), 6-17.
29)여러 유사한 논증들이 제시되었다. (1) 거기에 대한 참고 자료들이 결핍됨. 더 나아가 역대하 36:21은 바벨론 유수
전에는 희년이 준수되지 않았던 것 같다. (2) 희년법은 노예해방에 관한 신명기의 법과 안식년의 부채 탕감에 관한
법과의 사이에 긴장이 상존한다. (3) 그 희년법은 경제적으로 비실제적이다. 그들은 49년과 50년 연속으로 파종을
하지 말라는 것은 기근을 유발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Gnuse, 46 참조바람. 30)희년의 역사적인 준수를 옹호하는 자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디아인 시대(2400-2200B.C.)와 옛 바벨론인의 시기
(1900-1600 B.C.)를 왕들로부터 몇 성경 외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당시의 왕들이 부채와 지불하지 못한 세
금을 탕감하고, 부채로 인한 노예들 해방시키며, 채권자에 의해 빼앗긴 땅을 되돌려 받으며 또 다른 경제적인 개혁
을 명하는 미쉬나룸(mishnarum), 즉 왕의 칙령이 반포되었다. 그러한 선포로 말미암아 왕은 잘 알려진 성서적 전통
인 가난한 자와 압제받는 자의 권리를 보호하므로 “말둑의 눈에 공의를” 행했다. Gnuse, 46 참조. 31) 까발라(전통) 속에는 7이라는 숫자는 하나의 때의 상징적인 구분이다. 탈무드에는 안식년과 희년의 규칙이 언급되
어있다. 그리고 기술적으로 탈무드는 안식년에 노예의 해방이나, 쉐미타(shemittah)로서 부채의 탕감을 위한 분명한
요구를 구분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쉐비이트”(shebi`it-제칠), 또는 “쉐미트 카르카오트”(shemitt karka`ot-땅
을 쉬게하는 것)들과는 대조해서 “쉐미타트 케사핌” (shemittat kesafim-돈을 탕감하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구분
하고 있다. Eisenstein, 605 참조. 32) Eisenstein, 605; Gnuse, 46 참조. 메릴 엉거(Merrill F. Unger)는 “고대 탈무드의 전통에 따르면 첫 희년은 유대
인들이 가나안에 들어간지 64년 후...”라고 말했다. "Jubilee," Unger's Bible Dictionary (Chicago: Moody, 1977),
351. 이 주장에 대해 남대극 박사는 “요단을 건넌 정확한 해를 찾을 길이 없다”라고 말한다. 남대극, 출애굽의 어
제와 오늘 [Exodus--Then and Now], 120.8 재림성도와 종말신앙
갓, 그리고 므낫세의 반지파가 추방된 후는 아니었다.” 더 나아가 그는 “제 이 성전이 있
을 때 희년이 지켜지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살만에셀에 의해 사마리아가 정복된 후 희년
은 단지 형식적으로 지켜지다가 최종적으로 “완전히 잊혀졌으며” 또 “완전히 폐지되었다.”
33)
50년과 49년 희년 주기에 대하여 레위기에는 희년의 때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너는 일
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제 오십 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禧年)이니 너희는 각
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레 25:8-10).
이 구절들에 의하면 희년이 주기에 있어서 일곱 번째 안식년과 겹치든지(즉 49년 희년설),
포함계산에 의해 “50희년”이 되든지, 또는 49년에 뒤따르든지 한다는 다양한 견해가 있
다.34)거기에는 적어도 희년의 주기에 대하여 다섯 견해가 있다. 그 첫 견해는 성경 자체에서 가져온 50년 희년주기 견해이다(레25:10). 이 이론은 탈무드와
그것의 주석책에서 온 것처럼 보이며 또 희년의 때에 관한 문제를 토론한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서 온 것 같다. 특히 유대의 역사 자료 가운데 하나인 시프라(Sifra)로부터 다음의 구절
은 50희년 주기에 대해 제시하는 자료이다. “계산은 유월절의 제 이 일부터 시작해서 주일
축제는 49일까지 연장되어야 한다. 50일째 되는 날을 마치 희년의 경우와 같이(제50년) 거
룩하게 지켜야 한다.”35) 이 견해에 따라 일반적으로 희년 주기의 첫 해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도착한지 15년 후로 간주하며,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후 64년, 즉 희년 기간의 시
작으로부터 50년째 되는 해가 희년으로 나타나있다는 것이다.36) 더 나아가서 주크만
(Zuckerman)은 50년 희년 주기를 견지하는 많은 다른 역사가들을 언급하고 있다.
4) 엉거는
50희년 주기 사상 이 외의 어떤 다른 견해도 수용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성경의 주장
을 절대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곱 안식년이 지난 후, 또는 49년이 지난 후에 나
팔이 온 땅에 울려 퍼졌으며, 제50년은 희년으로 선언하여 거룩하게 해야만 했다. 이해는
어떤 다른 연대가들의 주장처럼 49년이 아니다”고 말했다.
5) 이 이론에 따르면 49년은 일곱
번째 안식년(the seventh sabbatical year)이었고 제50년은 희년이었으며 51년은 여덟번째
칠년 주기와 다음 희년 주기의 첫 해였다.37)
두 번째 이론은 49년 주기설이다. 우선 이 이론은 세빌레의 감독이었던 이시도레(Isidore)
에 의해 주창된 것으로 후에 다른 연대학자들과 17, 18세기의 랍비들에 의해 주창되었
다.38) 그들은 7년이나 안식년의 일곱 주기가 49년인데 왜 일곱째 안식년 후에 50년을 가져
33) J. Morgenstern, 1001, 1002; Zondervan's Pictorial Bible Encyclopedia, s.v. "Jubilee Year."
34) SDABD, s.v. "Sabbatical year."
35) 이 구절은 시프라 (Sifra)의 에모르(Emor)부분에서 왔다. B. Zuckermann, A Treatise on the Sabbatical Cycle
and the Jubilee (New York: Hermon, 1974), 8.
36) 엉거는 자신의 사상을 다음과 같이 위너(R.W. Winer)의 말을 인용하여 더욱 강하게 견지하고 있다. “레위기
25:10에는 희년으로 분명히 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안식년이 49년으로 그것과는 구별되이 표현되어 있다.”
Unger's Bible Dictionary, s.v. "Festivals, Jubilee."
37) 이 이론을 받아들인다면 안식년은 57년, 64년, 78년, 85, 92년, 99년이며 제 100년이 희년이며 107년은 안식년
이다. 그러나 “육년에는 밭에 파종하지 말아야 하며, 육년에는 포도를 따지 말아야 한다”(레25:3)는 법을 더 이상
따르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여덟 번째 주기가 따라야 하며 5년의 노동과 2년의 휴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Suckermann, 10; 남대극, 117-118.
38) Suckermann, 10, 11; 남대극, 출애굽의 어제와 오늘, 118. 특별히 Robert North, Chet Wolfe, Warren T. 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들은 희년은 실제로 49년이며, 옛 주기의 50년째이며 또 다음
일곱 번째 안식년을 구성하는 새 주기의 첫해로 간주했다. 따라서 희년은 일곱번째 안식년
이었다는 것이다.39)
세 번째 이론은 희년주기가 50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50년은 일곱 안식년, 즉
49년에다 희년의 50번째 해를 더하여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40) 이 이론은 탈무드에서 왔
다. 그러나 탈무드는 희년이 7주기의 49년에 포함되어 있는지 혹은 제외되어 있는지에 대
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문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랍비들은 희년은 삽입된 한 해(an
intercalation)이며 일곱 번째 안식년에 뒤따라오므로 연속적으로 이년의 휴작해(fallow
years)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두 해가 지난 후에 새로운 주기가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다. 랍비는 이 이론을 “제50년을 거룩하게 하여”(레 25:10)라는 법의 분명한 말과, 동시
에 “제 팔년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곡식을 먹을 것이며 제 구년 곧 추수하기까지 묵은 곡
식을 먹으리라”(레 25:22)에서 연속 3년 동안 유지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충분한 축복에 대
한 약속으로부터 끌어왔다. 네 번째 이론은 월력개정이론(calendric revision theory)이다.41) 로버트 그누세(Robert
Gnuse)는 제50년을 삽입년으로 이해하고, 계절과 맞추기 위해 월력에 짧은 기간을 삽입시
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연속적인 휴작의 이년으로
인해 기근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월력개정이론을 수용하는 사람들은 희년은 49일
동안 지속되었으며, 본문에 “49”라는 언급은 본래 해(years)가 아니고 날(days)로 언급했다
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본문을 “너를 위해 49일이 한 해가 될 것이다”로 읽어야 된다고
주장한다.42)
또 다른 이론은 희년이 50년째라는 것은 상징적인 해라는 이론이다(symbolic year
theory). 어떤 학자들은 50년째는 상징적인 해이며 49년과 겹쳐 있다고 주장한다. 희년에
대한 이 다섯 이론들은 희년에 대한 이론의 전부는 아니다. 또 다른 이론이 있는데 예를 들
어 땅 임대차 이론(the land lease theory) 같은 것이다.43)
고대 이스라엘에서 준수되었던 희년제도의 출발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은 제한된 정보를 통
해 정확한 결론에 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틴 노드(Martin North)는 “희년을 계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44)라고 했으며, 파울러와 남대극 박사도 다음과 같은
Waggerby, Deal, 그리고 Robert Hauser들은 모두 49년 설을 옹호하고 있다. North, 129, 130; Wolfe, 7,8;
Waggerby, The Jubilee Cycle in Daniel 8 and 9, 5, 6; Deal, 144-147; Hauser, Daniel, Revelation and the
Final Generation, 110, 111, 참조. 39) Gnuse, 45.
40) Morgenstern, 2:1001 참조. 41) 이 “월력개정이론”은 그 의미상 “삽입 년 이론”(intercalary year theory)으로 대차해서 사용할 수 있다. Gnuse,
46 참조. 42) Ibid., 46, 47.
43) 상징적인 해라고 주장하는 이론에는 두 견해가 있다. 한 이론은 희년이 두 민력의 해(two civil years)와 겹쳐져
있는 의식적인 해(a liturgical year)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견해는 50이라는 수는 49년을 상징적인 방법으로 설명
하고 있다고 본다. 이 경우에 희년은 옛 주기의 마지막 해이며 그리고 새 주기의 첫 해로 간주되어져야 한다. Ibid.,
47.
44) North, Leviticus, 184.10 재림성도와 종말신앙
많은 이유들로 인하여 희년의 주기를 계산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45)
첫째는 희년이 일곱 안식년에 오는지 아니면 50년째 오는지에 대한 각기 다른 의견들이 있
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준수에 대한 증거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많은 학자들과 탈무드에서
조차도 연속적인 두 휴작의 해가 사회적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져다준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46)
두 번째는 현존하는 기록에 의해 바벨론 유수 전부터 시작된 희년은 유대역사에서 준수되지
않고(non-observance) 특성상 없어진 것(the obsolete nature)으로 나타나 있다. 오히려
안식년이 준수되었다는 언급은 있다.47) 유대의 역사가 요셉프스(Josephus, c. 37-c. 100)
역시 안식년의 준수는 언급하고 있지만 희년의 준수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48)
역사에서 희년의 준수에 대한 첫 번째 경우를 발견한다는 것은 바벨론 유수 후에 거기에 대
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어렵다. 남대극 박사는 대부분의 학자들의 주장이 그들 자신의 추측
이나 유추적인 추론(conjectures and analogical inferences)에 기초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
린다.49)
희년에 대한 엘렌 G. 화잇의 견해
엘렌 G. 화잇은 희년이란 용어를 “원형적이고도 특별한 의미”로 사용하며, 그 다섯 용례를
찾을 수 있다.50) 엘렌 G. 화잇은 다섯 문맥에서 희년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언급하
고 있다. 그 중 하나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이 머리를 들고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 있었는데
그 말씀은 마치 천둥이 울부짖는 것같이 온 땅에 메아리쳐 나갔다. 무섭도록 엄숙한 순간이
었다. 한 말씀이 끝날 때 마다 성도들은 ‘영광! 할렐루야! ’하고 찬양했다. 그들의 안색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났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 빛이 있었던 것처럼
그들의 얼굴은 영광으로 빛났다. 악인들은 영광 때문에 그들을 바라볼 수 없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자들에게 영원한 축복이 선언되었고 짐승과 그의 우상
을 이긴 자들의 승리의 함성이 우렁차게 울려 펴졌다. 그 때 땅은 희년이 시작되어 휴식 상
태에 들어갔다. 나는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살아 온 종들이 승리의 개가를 부르면서 일어나
는 반면 악한 그의 주인은 혼돈 가운데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는 광경을 보았는데 그
이유는 악인이 하나님의 음성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곧 큰 흰 구름덩이가 나
45) Eisenstein, 605; Morgenstern, 1001, 1002; R. North, Sociology of the Biblical Jubilee, cited in John M.
Fowler, 11; 남대극 115-125 참조. 46) 땅의 기경은 50년동안 임대차 할 수 있으며 희년에는 채권자가 채무로 몰수된 원래의 주인에게 그 땅을 돌려주어
야 한다. 채권자는 부채를 지불받기 위해 그 땅을 경작할 수 있으나 50년이 지난 후에는 그 땅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Ibid.
47) Ibid..
48) 필로, 요셉푸스, 유세비우스 등도 50 희년 주기를 지지했다. Ibld., 8, 9.
49) 남대극, 출애급의 어제와 오늘, 121.
50) Ellen G. White, Early Writings, 35, 286; idem, The Story of Redemption, 410; idem, Life Sketches of
Ellen G. White, 103; idem, Spiritual Gifts, 4 vols. (Battle Creek, MI: Steam Press of the Review and
Herald Office, 1858), 2:75.타났는데 그것은 과거 어느 때 있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운 것으로 그 위에는 하나님
의 아들이 좌정하고 계셨다.”51) “그 때부터 땅은 쉼을 얻는 희년이 시작되었다. 나는 노예가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며 그를
묶고 있던 사슬을 풀고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 때 그의 악한 주인은 어리둥절하며 어찌
할 바를 몰랐는데 그것은 악한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곧
크고 하얀 구름이 나타났고 그 위에 인자가 앉아 있었다....어떠한 언어로도 그 영광스러운
장면을 묘사할 수 없었다. 탁월한 영광과 위엄으로 빛나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구름이 더
가까이 내려오자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그의 겉옷과
다리 부분에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고 쓰여 있었다.”52)
이러한 구절들은 희년 문제의 진정한 이해 속으로 의미심장한 통찰력을 제공한다.53) 이 두
구절에서 엘렌 G. 화잇은 희년의 중심 의미를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린 모든 백성들에게
궁극적으로 자유가 주어지는 예수의 재림과 관련을 지었다. 파울러에 따르면 “엘렌 G. 화잇은 ‘희년’이란 용어를 재림의 수단(means)으로서가 아니라
재림이 어떠함을 우리에게 말해 주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재림에다
문자적인 희년을 첨가시키려고 시도하지 않는다.”54) 사실 엘렌 G. 화잇은 문자적인 희년과
관련한 광신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경고의 기별을 주고 있다. 초기 재림교회의
광신적인 무리에게는 고생스럽게 범하는 한 죄가 있었다. 곧 그것은 그들의 원칙적인 기별
이 “네가 가진 것을 팔아 나누어주라”는 것이었다.55) 엘렌 G. 화잇은 이런 사람들이 사단의
일에 연루되어 있다는 한 계시를 보았다고 말했다.56)
엘렌 G. 화잇은 희년과 관련하여 또 다른 진술을 했다. 자신의 책, 시대의 소망(The
Desire of Ages)에서 예수의 희생적인 사업과 최종적인 승리에 대해서 말하면서 “모든 제
사 가운데 그리스도의 죽음이 보여졌다. 모든 향연 가운데서 자신의 의가 올라갔다. 매 희
년의 나팔에 의해 그분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57)고 했다. 그녀는 또한 직장이 없고 집이 없
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원칙과 관련해서 레위기 25장에 있는 희년에 대한 본래의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58)
51) Ellen G. White, Early Writings, 34-35.
52) Ibid., 286.
53) 그녀의 연속적인 계시 중 하나에서 이 부분은 재림 성도들이 거룩한 도성과 그들의 풍요로운 상급을 향한 백성들
의 여행을 묘사하고 있는 그녀의 첫 계시와 관련이 있다. 화잇여사는 1844년의 대실망이 있고 난 후에 첫 계시를
받았다. 그러나 희년에 대한 계시는 1847년에 주어졌는데 그 때 형제들은 안식일에 메인주 톱삼(Topsham)에 모여
있을 때였다. Ibid., 13-20, 32.
54) Fowler, 17.
55) 비록 그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광신적인 집단에 가담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희년 문제가
1846년 당시에 화잇 자신에 의해서 심각하게 고려된 것으로 봐서 가히 추측할 만한다. Spiritual Gifts, 2:75.
56) 엘렌 G. 화잇의 강한 권면이 있은 후에 S, R,과 N은 기별을 받아들였으나 어떤 지도자들은 그들의 마음이 변하여
그녀의 기별을 거절했다. Ibid., 75, 76.
57) Ellen G. White, The Desire of Ages, 212.
58)
84)엘렌 G. 화잇은 “직업이 없고 집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공통적인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의도하신 생활을 하게끔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대답을 찾고자 열
렬히 노력하는 질문이다....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더욱 유의하였을 것 같으면 그들은 자신
들을 괴롭히고 있는 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구약 성경에서 노동문제와 가난
한 사람을 구제하는 문제에 관하여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을 것이다.”The Ministry of Healing
[Mountain View, CA: Pacific Press, 1942], 183). 이 진술을 하고 난 후에 그녀는 레위기 25장에 이스라
엘 백성을 위한 희년제도로부터 온 하나님의 규율과 축복을 제시했다. Ibid., 184, 185.12 재림성도와 종말신앙
희년에 대한 엘렌 G. 화잇의 견해에 따르면 구약성경에 묘사된 희년제도는 문자적인 희년
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글 가운데서 제시하고 있는 희년의 목적을 다
음과 같이 네 등분 할 수 있다. (1) 예수의 재림을 승리의 날로 생각하도록 하나님의 백성
들에게 용기를 주며, (2)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서 가난한 자들이 소망을 갖
도록 용기를 주며, (3)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감사하게 생
각하도록 권면하며, 그리고 (4) 예수의 재림을 위해 백성이 준비하도록 고무시키기 위함이
다. 요 약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희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레위기 25장에 서술된 희년
법이 매우 구체적이고도 소망스런 규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
야 할 의식주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소외계층의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자상하
신 관심이 그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큰 기대감과 소망을 안겨다 주었음은
불문가지이다. 이러한 희년제도의 중요성이 현대 그리스도인의 관심사의 일부가 되면서 희
년의 준수 역사를 문자적으로나 또는 연대기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가 소위 시기파들의 재
림의 때를 위한 계산의 근거가 되어 왔을 뿐아니라 기독교 사회, 특히 재림교회의 안정된
신앙사회에 상당한 문제를 야기시켜 왔다. 희년설에 관한 본 연구는 희년제도를 통해 재림
의 때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비 성서적일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을 비생산적인 노력이
될 것이라는 몇 가지 증거들을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성경이 말하는 희년제도의 기능, 즉 (1) 전 땅에 자유를 선포하고, (2) 파종하고 수확
하는 것으로부터 땅을 쉬게하며, 그리고 (3) 모든 땅을 원래의 소유주들에게로 되돌려 주는
것 등은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선포하신 매우 훌륭한 법이다(레
25:1-55; 민 36:4).
둘째, 희년제도가 설정되었지만 이 희년법이 실천된 역사적인 기록이 성경과 외경에서 조차
도 없다. 비록 바벨론 유수 전에 준수되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긴 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되는 신빙성있는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셋째, 성경에서 말하는 희년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따라 달리 이해된 희년의 주기, 즉 50
년설, 49년설, 49일성 등의 다양한 견해가 있으며, 또 첫 희년이 준수되었다는 정확한 기록
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사건의 때를 계산하는 것은 매우 납득하기 어려운 일로 이해
된다. 넷째, 그리스도의 침례, 십자가 사건, 혹은 스데반의 순교의 해를 희년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선 성경에 계시되지 않은 사건을 선입견을 가지고 접근하는 매우 인위적인 성경 연구의
자세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성경의 확고한 구절과 매우
상반된 입장으로 받아들여진다. 다섯째, 희년제도를 재림의 때를 계산하는 근거로 삼는 재림교도들에게는 한 번도 희년에
구약성경에 기술된 엘렌 G. 화잇의 희년제도에 대한 견해는 문자적인 의미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그녀
의 희년에 대한 언급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목적으로 나눌 수 있다. (1) 재림의 사건을 승리의 날로 생각
케하므로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2)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서 백성들이 소망을 가지도록 도
우며, (3)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그를 따르는 자들이 감사하게 생각하도록 조력하며, 그리고 (4) 예수의 재
림을 위해 백성들이 준비하도록 고무시킨다.관한 구절을 이스라엘 백성이 실제로 준수했던 역사적인 제도로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재림
과 관련하여 제시한 재림성도의 궁극적인 소망과 이상을 담고 있는 미래적 사건으로 언급하
고 있는 엘렌 G. 화잇의 견해들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희년을
(1) 예수의 재림을 승리의 날로 생각하도록 하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며, (2)
가난한 자들이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서 소망을 갖도록 권고하고, (3)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감사하게 생각하도록 권면하며, 끝으로
(4) 예수의 재림을 위해 백성이 준비하도록 고무시키기 위해서 언급하고 있다.
6000년설 이론과 제문제
재림의 시기를 설정하는 무리들의 등장과 엘렌 G. 화잇의 역할
재림운동에 가담하여 1844년에 대실망을 경험했던 많은 재림신자들 가운데 다시 재림의 시
기를 설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더러는 1845년에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으로
믿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대속죄일의 “일”(day)은 예언적인 날로서 곧 일 년을 나타내는 것
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임스 화잇(James White)과 엘렌 G. 화잇은 아직도 7
재앙이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실 수 없다는 한 계시를 보고 대실망을
경험한 자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었다. 특히 그녀는 호주로 갈 때 「시기 설정에 관한 증
언, 1851, 6월 21일」이라는 봉투를 가지고 갔었는데, 그 속에 담겨진 내용은 1844년을 그
리스도의 재강림의 날로 시기를 설정하는 어떤 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
려졌으며, 그녀의 주 권면은 “그 날과 그 시기는 아무도 모르므로 그 때가 정확히 언제 올
것인지 예언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라는 것이었다(1SM 189 참조).
죠셉 베이츠(Joseph Bates) 역시 한 때 그리스도께서 1851년 초에 오실 것이라고 주장하
였다. 그리고 다수는 그해 가을에 오실 것으로 믿었다. 그의 시기 설정의 근거는 레위기 16
장에서 대속죄일날 대제사장이 피를 “일곱 번”(times) 뿌린 것을 다니엘 7:25에 나오는 일
년을 상징하는 매 때와 같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도 재임스 화잇과 엘렌 G. 화
잇은 시기 설정이 비성서적이며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경고하므로 그의 잘못된 사상을 포기
하도록 만들었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특히 죠셉 베이츠가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
으로 생각하고 또 다수의 사람들이 그 해를 재림의 해로 믿고 있었던 1851년 6월 21일에
엘렌 G. 화잇은 뉴욕주 캠든에서 세 천사와 시기 설정과 관련된 한 계시를 받았다. 그녀는
그 계시에서 그해 가을 곧 1851년에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으로 믿고 가산을 정리하여 교회
에 물의를 일으키는 극단적인 자들을 향한 사랑의 호소가 담긴 권면을 하였다. 그녀의 권면
은 힘이 있었으며 죠셉 베이츠를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이 올바른 길로 돌아서는 결과를 가
져왔다(1SM 188-189 참조).
지금까지 언급했던 1840년대와 50년대의 시기설정과 함께 엘렌 G. 화잇의 생존 기간에 있
었던 시기를 정하는 무리들은 1884년이 재림의 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광야 40년설」
(Forty wilderness years), 그리고 비록 정확한 재림의 때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재림교도들
의 수가 144,000명이 되면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라고 믿고 임의로 그 수를 채우려고 노
력하는 일이 1890년대에 실제로 교회 안에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하이어롬
에드손(Hiram Edson)과 우라이야 스미스(Uriah Smith), 그리고 엘렌 G.화잇의 노력으로 잠14 재림성도와 종말신앙
잠해졌다. 엘렌 G. 화잇은 시기를 정하는 대신에 셋째 천사의 기별이 세상에 널리 전하여졌
더라면 그리스도께서 1884년 이전에 오실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제시하므로 정한
시기보다는 복음 전파가 당면한 사업이라는 사실을 제시하였다(GC 458 참조).
엘렌 G. 화잇과 6,000년설
일반적으로 시기를 정하는 무리들의 시기 설정의 근거를 몇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1) 그
첫째는 2300주야의 해석과 1844년 이후의 유예의 기간에 대한 이해(단 8:14)와, 2) 두 번
째는 인류의 궁극적인 해방의 기별을 담고 있는 희년(Jubilee)에 대한 언급(레 25:8-17),
그리고 3) 세 번째로는 엘렌 G. 화잇의 지구의 역사를 6,000년으로 언급한 진술들(3 SG,
92; ST, May 7, 1884; GC 656 등)에 두고 있다. 6,000년 이론의 근원
성경은 지구의 역사가 6,000년이라는 암시를 어느 곳에서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사상은 초
기 그리스도인 지도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가 자신의 편지서인 베드로후서 3:8
에서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의 제한된 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드로가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라
고 말한 것이 그들에게는 재림의 때의 설정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베드로가 이 절에서 표현하고 있는 사상은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분이시라는 시편 90:4에
서 표현된 진리로부터 이끌어 낸 것이다. 이 진리를 강조하면서 베드로는 조롱하는 자들의
회의적인 조급함(skeptical impatience)을 꾸짖고 있다. 재림교회 성경주석(SDA Bible
Commentary)은 “문맥은 분명히 베드로가 시간을 계산하기 위해 예언적인 자료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7절은 하나님께서 인내로 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을 다루고 있
으며, 9절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오래 참으심’을 다루고 있다”59)고 말하고 있다. 윌리암 바
클레이(Wiliiam Barclay)도 이 구절을 적절히 요약하기를 (1) 시간은 인간에게처럼 하나님
께도 꼭 같은 것이 아니며, (2) 시간은 언제나 기회(apportunity)로 간주되어야 하고, 그리
고 (3)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멸망을 원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고 했다.60)
훔베르또 트레이어(Humberto R. Treiyer)도 바클레이의 결론에 동조하면서 “이 구절은 종
말론적인 특성을 지닌 구절이지만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종말론적인 비교에서 6,000년을
고려하면서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하
나님은 우리가 행하는 것처럼 시간을 측정하지 않으신다”61)라고 말하고 있다. 혹자는 창세
기 1장에 나오는 엿새 동안의 천지창조와 베드로후서 3:8의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진술을
토대로 6,000년 이론과 7,000년 이론을 이끌어 내려고 시도하고 있으나, 성경은 그러한 유
추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익명의 저자에 의해서 신약과 구약의 중간기에 기록된 위경서
(pseudepigraphic work)인 제2에녹서(2 Enoch), 또는 에녹의 비밀(the Book of the
59) SDABC, 7:614, 615.
60) William Barclay, The Letters of James and Peter, rev. ed.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76),
342-343.
61) Humberto R. Treiyer, "Micro Seminar on Biblical Eschatology," lecture outline in Pastoral Theology,
Adventist International Institute of Advanced Studies, January/February 1990, 39Secrets of Enoch--2 Enoch)로 알려진 책에서 이러한 사상이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62)
이 책에 의하면 에녹이 우주의 비밀을 배우기 위해서 하늘로 갔으며, 그 후 그가 창조의 6
일은 지구 역사의 6,000년을 나타내며 7일은 평화와 쉼의 1,000년 곧 7,000년이 될 것이
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63) 이러한 사상은 AD 7년에서 AD 150년 사이에 기록된 외경서
인 바나바 서신(Epistle of Barnabas)에도 나타난다. 이 책은 “자녀들아 이것이 무엇을 의
미하는지 주의하라. 그가 육일에 마치신 바,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6,000년 안에 여호와께
서 모든 것을 끝내실 것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분에게는 그 날이 1,000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 대해서 나에게 증거를 보여주시고 말씀하시기를 ‘보라 여호와의 날이
1,000년이 될 것이다. 따라서 자녀들아 6일 안에, 곧 6,000년 안에 모든 것이 끝날 것이며’
그리고 천년기가 올 것이다”64)라고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지구 역사 6,000년과 또 쉼과 평화의 마지막 1,000년 설은 초기의 교
부들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리용의 감독이었던 이레네우스
(Irenaeus of Lyon)는 창조 6일은 인간 역사의 6,000년을 상징하며, 여섯 번째의 천년기간
(6th millennium)에 적그리스도가 출현할 것이고 일곱 번째 천년기, 곧 천년 안식기는 그리
스도의 재림으로 시작되며 적그리스도는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레네우스의 제
자인 히폴리투스 (Hippolytus, c. 170-c. 236)는 예수님께서 성육신 (incarnation)을 5,500
A.M.에 취하셨으므로 그분의 재림은 A.D. 500년에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65) 제롬(Jerome)
역시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일곱 번째 천년기에 참 안식과 할례가 회복되며, 여덟
번째 천년기에 성도들이 상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66) 이러한 지구의 단기 역사
에 기초하여 처음으로 인류의 세대를 일곱 세대로 구분한 사람이 히포의 어거스틴
(Augustine of Hippo, 354-430)이었다. 그에 따르면 일곱 번째 세대가 재림과 영원한 안
식의 세대라고 주장했다.67) 뿐만 아니라 16세기에는 말틴 루터(Martin Luther), 안드리아스
오시안더(Andreas Osiander), 데이빗 키트레우스(David Chytraeus), 휴 라티멀(Hugh
Latimer), 그리고 크리스토프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등이 6,000년설을 믿고 있
었다. 특히 말틴 루터는 여섯 번째 천년기의 끝에 교황권과 회교가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다.68)
무엇보다도 17세기의 유명한 성경 연대학자인 제임스 엇셔(James Ussher, 1581-1656)69)
62) 위경서들은 기독교 사회가 출현하기 전후(A.D. 1-50년)에 기록된 책들로서 The Book of Enoch, The
Assumption of Moses, The Later Books of Baruch, The Psalms of Solomon 등의 책들이 있다. F.L.Cross,
ed.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3), 1141;
Treiyer, 39.
63) George Reid presents an applicable passage as follows: "God shows Enoch the age of this world, its
existence of seven thousand years, and the eight thousand is the end" (2 Enoch 33:1), 9.
64) Epistle of Barnabas, 15:8, 9. See also Treiyer's note, 40; Reid, 9.
65) According to Treiyer, Hippolytus' reading of the Septuagint was the cause of his confusion on calculation.
See ibid.
66) Jerome(c. 342-420) had almost the same view with Irenaeus. See Treiyer's note, 40, 41.
67)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일곱 세대의 천년기로 나누었다. (1) 아담에서 노아; (2) 노아에서 아브라함; (3) 아브라
함에서 다윗; (4) 다윗에서 바벨론 포로; (5) 포로에서 그리스도; (6) 그리스도에서 세상의 끝; (7) 재림과 영원한
안식(ibid., 41). 어거스틴은 70인역의 장기 연대기에 따라 자신의 시대는 천지가 창조된 이래로 여섯 번째 천년기
의 후반에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매우 빨리 오셔서 영원한 안식일의 쉼(the Sabbath rest of
eternity)을 시작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신속한 재림에 대한 고대가 중세의 사상으로 고정되었
다 (Reid, 17).
68) Johns, "Ellen G. White and Biblical Chronology," 20.
69) Ussher wrote several books, but two books are important to this chronology: Chronologia Sacra(1660),
and Annales Veteris et Novi Testamenti (1650-4). These Annals are said to be the source of the date 16 재림성도와 종말신앙
의 영향은 실로 크다. 그는 성경의 인물들의 생존 기간을 합산하여 지구의 역사가 6,000년
이 된다는 성경의 연대기(Annals on Bible Chronology)를 만들었으며, 그 결과로 지구의
창조를 4004 BC로 잡고 그리스도의 탄생을 4 BC, 그리고 지구의 종말이 6,000년의 끝에
올 것으로 말했다. 이 연대기의 영향은 상당히 오랜 기간 널리 사용되었으며 그 결과 19세
기에 알렉산더 켐프벨(Alexander Campbell)은 그 6,000년이 1996년에 끝날 것이라고 했
으며, 로벌트 스콧(Robert Scott)도 5,999년이 1995년에 이를 것이라며 엇셔의 연대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재림운동의 선구자인 윌리암 밀러 역시 유대의 계산법에 따라 6,000
년이 1843년에 마쳐질 것으로 믿었으며, 죤 커밍(John Cumming)과 쉼멜(R.C. Shimeall)도
여섯 번째 천년기의 끝이 각각 1864년과 1868년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으며 이들의 책이
엘렌 G. 화잇의 서가에 꽂혀 있었다. 결론적으로 6,000년의 진원지는 성경이 아니고 오히려 신구약 중간기(intertestamental
period)의 유대인 학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6,000년 설이 지금까지 많은 재림신도들에게
관심을 갖게 한 것은 그 진원지가 성경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동안의 여러 기록들이 가져
다준 종말론적인 영향과 신자들의 재림을 고대하는 종말성향이 주요 원인이 된 것 같다. 지구의 나이와 성경의 연대
엘렌 G. 화잇의 6000년 구절을 지구의 나이(the age of the earth)와 연결시키는 교인들이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문제가 속히 다시 와서 그분이 살고 있는 그곳으로 백성들을 인도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재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마 24:33; 요 14:1-3; 행 1:11; 계 22:20). 이미 20세기를 넘어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의 나이는 교인들뿐만 아니라 인류 모두의 수수께끼가 되어 왔다. 기원전 3세기의 바벨론 학자였던 베로수스 (Berossus)는 지구의 창조를 2,148,323 B.C.로
잡고, 고대 열 왕 가운데 첫 번째 왕인 아담을 468,323 B.C.로 잡는다.70) 헬라의 철학자인
플라톤(Plato)은 홍수가 2억년 전에 일어났다고 믿었다.71) 지난 세기동안에 소위 과학적인
견해(scientific view)로 불려지는 것이 전통적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의 견해(traditional
Hebrew-Christian viewpoint)72)를 대치했으며, 그 견해는 유성 지구는 45억 6천만 년 동
안 존재하여 왔으며, 복잡한 생명의 형태는 6억 년이 지난 후에 형성되었다는 견해를 견지
해 왔다. 19세기 초에는 지질과학은 지구를 3백만 년에서 16억 년 정도로 짐작했다.73) 20
세기에 발달된 방사능 측정법 (ratidometric dating)은 먼지가 사람이 되는 진화론적인 발전
(dust-to-man evolutionary development)을 위해서는 적어도 40억 년의 간격이 있는 것
later inserted in the margins of the KJV of the Bible. See The Oxford Dictionary of Christian Chruch, s.v. "James Ussher."
70) Stanley L. Jake, Science and Creation (New York: Science History Publications), cited in Robert H.
Brown, "Science and Religion," Ministry, February 1979, 23.
71) Francis C. Haber, The Age of the World: Moses to Darwin (Baltimore, MD: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59), 17. Cited in Brown, Science and Religion, ibid.
72)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지구 자체는 6,000년밖에 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창조하셨을 때는 이전에 존재
했던 어떤 물질에 의존하지 않으셨다고 믿었다. See Robert V. Gentry, "Radiohalos in Radiochronological and
Cosmological Perspective," Science 184 (1974): 62-66; F. D. J. Harder, "Beyond Arithmetic: The Truth of
Creation," Spectrum 15 (August 1984): 54-59.
73) 이러한 간격은 침전 정도(sedimentation rates)층과 지질연대의 다양한 분류의 각 시기 동안에 축적된 것으로 추
측되는 모든 침전층(total sediment)에 근거해서이다. See W. B. Harland, A. Gilbert Smith, and B. Wilcock,
eds., The Phanerozoic Time-Scale (London: Geological Society of London, 1964), 1-29; Brown, "Science
and Religion," Ministry (February 1979), 23.으로 계산했다.74) 로벌트 브라운(Robert H. Brown)에 의하면 방사능에 의한 지질학적 시
간 규모의 조성은 광물질 표본들(mineral samples)이 현재의 환경에 놓여졌을 때 발생해
온 방사능의 변화의 결과를 포함하고 있다는 가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75) 지구의 길고 확장
된 나이의 다양한 견해 아래서 재림교회 안에는 세 추세(three trends)가 있다.76)
1) 첫 번째 추세는 소위 전통적인 견해 (traditional view)로 알려진 것으로 지구의 나이가
단지 6,000년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있는 견해이다. 이 입장을 옹호하는 신자들은 이
지구가 기존 물질에 도움을 받지 않고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것,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하였다는 것(ex nihilo)을 믿고 있다. 재림교인으로서 북미에서 최초로 해외 선교
사로 보냄을 받은 죤 앤드루스(John Nevins Andrews, 1829-1883)는 “주일 중 첫날에 하
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따라서 존재하도록 요청을 받은 땅은 형태가 없이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77) 죤 마티슨(1835-1896),78) 죠지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
1870-1963),79) 로벌트 겐트리(Robert Gentry),80) 아리엘 롯(Ariel A. Roth),81) 래리 헤르
(Larry G. Heer),82) 그리고 콜린 스탠딧쉬(Colin D. Standish)83)는 이러한 전통적인 견해
를 가지고 있는 앤드루스를 지지했다. 롯은 지구가 문자적인 6일 안에 존재하게 된 이후 방
사능 연대 측정(readiometric age measurements)은 거절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84) 물론 이 견해는 엘렌 G. 화잇이 6,000년으로 잡고 있는 것에 동의한다.85)
2) 지구의 나이에 대한 두 번째 입장은 두 창조 이론(the theory of two creations)으로서, 창세기 1:1-5과 이사야 48:13에 의거한 아담의 창조 이전의 세계(the pre-Adamite
world)와 현재의 세계(the present world)이다. 재림교회사의 초기에 교회의 지도자들 중
더러는 지구의 나이에 대한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우라이야 스미드(Uriah
Smith, 1832-1903)는 “창세기의 첫 절은 그 장의 남은 부분에서 보여지는 사건들이 있기
이전의 수백만 년의 기간(a period of millions of ages)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86)라고 기
록하였다. 더 나아가서 헨드슨(J.P. Henderson)은 6일 동안의 조직에 사용된 물질을 구분하
고 있다.87) 두 창조 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88) 하레(P.E.
74) See Brown, Ibid.
75) Ibid.
76) Molleurus Couperus, "Tensions Between Religion and Science," Spectrum 10 (March 1980); 81-82;
Warren H. Johns, "Ellen G. White and Biblical Chronology," 20-23.
77) John N. Andrews, Review and Herald, 13 December 1861, 19.
78) SDAE, 860-861, s.v. "John Gottlieb Matteson."
79) Ibid., s.v. "George McCready Price."
80) Gentry, 62-66.
81) Ariel A. Roth, "Creation, Evolution, or Other Views?" Ministry, May 1984, 7-9.
82) Larry G. Herr, "Was There More than One Creation?" Adventist Review, 5 July, 1984, 9-11
83) Colin D. Standish, "6,000 Years?" Ministry, August, 1974, 14, 15.
84) See Ariel A. Roth, "Implications of Various Interpretations of the Fossil Record," Origins 7 (1980): 73.
85) 엘렌 G. 화잇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물질(matter)에 창조하지 않으셨다는 이론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세계가 형설될 때 하나님께서는 사전에 있던 물질 (pre-existing matter)을 의존하지 않으셨
다. 그와는 반대로 모든 사물들과, 물질, 또는 영적인 것이라도 그분의 음성(His voice)으로 일어섰으며 그 자신의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다.”라고 말했다(Ellen G. White, Testimonies for the Church, 8:258, 259; see Standish,
14-15.
86) Uriah Smith, "Geology," The Adventist Review and Sabbath Herald, 3 July 1860, 49.
87) 헨드슨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6일 동안에 만드셨다는 견해를 거절했다. 오히려 그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
하셨으나(in the beginning God created) 6일 동안에는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만드셨다(in six days God 18 재림성도와 종말신앙
Hare),89) 윌리암 죤슨(William G. Johnsson),90) 모리우루스 쿠페루스(Molleurus
Couperus),91) 그리고 여러 지도자들과 학자들이다. 초기의 재림교회 저자들이 창조주일의
날들을 긴 지질학적인 나이(long geologic ages)로 보는 모든 이론들을 반대한 반면에, 이
두 창조 이론은 교회 안에서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것처럼 보인다.92)
3) 지구의 나이에 대한 세 번째 이론은 칼 투렌드(Carl G. Tuland)의 확장된 연대
(extended chronology) 이론으로서, 투렌드는 말하기를 우리는 지구의 나이를 6,000년에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93) 로렌스 게라티 (Lawrence T. Geraty) 역시 이 이론
을 지지하고 있으며 성경은 지구 역사가 6,000년이 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지 않으며 오
히려 6,000년 이론은 창세기의 족보를 독특하게 해석하므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94)
성경 자체로부터 연대를 계산해낸 것은 분명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각기 다른 의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성서학자들은 연대의 문제를 성경만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역사적이고도 성서적인 연대에 관하여 재림교회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성경에 있는 때
에 관한 진술들(time statements)은 믿을 수 있으나 반드시 총괄적인 것만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95) 홍수 전․후의 연대에 관한 문제들을 간결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혼(Siegfied H. Horn)은 기록하기를 “성경의 초기 부분이 정확한 연대를 위한 자료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 한 우리들은 성경에 있는 어떤 사건들의 정확한 때를 찾으려고 노력해서는
안된다”고 했다.96) 따라서 히브리 본문 또는 맛소라 본문(MT), 70인역(LXX), 그리고 사마
리아 오경(SP) 사이에는 수에 관한 큰 차이가 있음을 성경의 족보로부터 몇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성경의 족보에 대한 큰 다양성 (great variations)은 수정의 여러 정도에 따라 기인된다. 혼은 수정을 위한 두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서기관들 또는 복사자들(copyists)은 많은 자료
들 속에 있는 본래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의도적인 수정을 가했다. 첨가해서 고대의 서
기관들은 자신들의 선입견이 연대의 문제를 지원하고자 노력했으며, 또한 족보의 이름들을
생략하므로 해결하려 했다.97) 예를 들어 재림교회 성경사전(SDA Bible Dictionary)에 있는
made the heavens and the earth)고 믿고 있다(J.P.Henderson, "The Bible," The Adventist Review and
Sabbath Herald, 5 July 1887, 418).
88) Robert H. Brown, "How Old Are the Rocks?" Ministry, May 1973, 16, 17.
89) P.Edward Hare, "The Age of the Earth: How It Changed From Thousands of Biblions of Years," Spectrum
6 (Summer, Autumn 1974): 17-27.
90)William A. Johnsson, "Adventists and Evolution," Adventist Review, 19 May 1988, 4.
91) Molleurus Couperus, “Tensions Between Reigion and Sciences," 82.
92) SDAE, s.v. "Creation," "Science and Religion."
93) 재림교회의 다른 학자들은 지구상에 있는 생명체는 6,000년 보다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한다. 칼 투
렌드는 지구의 나이는 엇셔의 6,000년 보다 1,000년 정도는 확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그는 ‘재림교
도들은 지구의 나이나 우주의 나이를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6,000년에 한정시킬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을 확장연대이론 (Extended chronology theory) (Carl G. Tuland, "Six Thousand Years?" Spectrum
6 [Summer and Autumn 1974]: 55-70).
94) Lawrence T. Geraty, "The Genesis Genealogies as an Index of Time," Spectrum 6 (Winter and Spring
1974): 16.
95) 재림교회 학자들은 정확한 기원전의 자료들, 즉 그 일례로 창조나 또는 후기의 히브리 왕들의 때 이전의 어떤 성
경의 사건들의 기원전 자료를 정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See "Approximate Early Dates Sufficient," SDABC, 1:196; SDAE, s.v. "Chronology."
96) SDABD, s.v. "Chronology."연대표에 의하면 창세기부터 홍수에 이르는 간격이 사본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
다.98) 이 기간의 길이가 히브리 사본(Hebrew Text)에 의하면 1656년으로, 70인역
(Septuagint)에 의하면 2243년으로, 그리고 사마리아 오경(Samaritan Pentateuch)에 의하
면 1307년으로 나와있다. 이러한 기간들은 모두가 창조로부터 계산된 것이다(Anno
Mundi).99) 만일 한 세대를 또 다른 세대에 장수 나이 (longevity ages)를 사용해서 아담
으로부터 노아까지 합산한다면 노아의 홍수는 히브리 사본에는 2156 A.M.이 되며, 70인역
에서는 2256 A.M.이 되며, 사마리아 사본에는 1807 A.M.이 된다. 더 나아가서 사마리아
사본에는 야렛, 므두셀라, 그리고 라멕이 모두 1307 A.M.에 죽었다. 이 사본은 창세기 7:7
과 베드로전서 3:20에 있는 노아의 여덟 식구들만 홍수 후에 살아남았다는 하나님의 말씀
과 조화시키기 위해 고안되었다. 사마리아 본문은 세 부조들의 생명의 수한을 의도적으로
짧게하려고 조정한 것처럼 보인다. 재림교회 성경주석의 저자들은 “부조들의 나이에 있어서
사마리아 사본은 히브리 사본보다 중요성 면에 있어서 못한데, 그 이유는 우리가 그들의 견
해에 동의하는 말들에 대해 수정하는 것을 다른 곳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고 한다.100) 같
은 주석은 70인역 번역자들이 다른 곳에서 족보에 대한 개정의 형태를 제시하려는 소심한
히브리 복사자들(Hebrew copyists)보다 자신의 견해를 더 많이 주입시켰다.101) 따라서 하
리슨 (Harrison)은 홍수 이전의 기간이 각기 정도는 다르지만 조작된 것을 사용하여 계산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창세기 5장에 열거된 것은 명확한 족보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기초로
활용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102)
고대의 문서에서 연대기의 수정은 홍수 이전뿐만 아니라 홍수 후의 사람들에게도 있었다. 많은 증거들은 지구의 나이를 6,000년으로 잡고 있는 것은 고대의 신화나 또는 유대인의
글들에서 기원되었으며 또 옹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70인역은 출애굽
을 4,000 A.M.에 맞추기 위해서 연대를 조정한 것처럼 보인다.103)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97) bid.; "Haran," "The Chronology of Genesis," SDABC, 1:288.
98) 연대표 A: 부조들의 족보. (홍수전: 창세기 5장)
Hebrew Samaritan LXX
부조명 출생 사망 출생 사망 출생 사망
아담 130 930 130 930 230 930
셋 105 912 105 912 205 912
에노스 90 905 90 905 190 905
가인 70 910 70 170 170 910
마하랄렐 65 895 65 895 165 895
야렛 162 962 62 847 162 962
에녹 65 365 65 365 165 365
므두셀라 187 969 67 720 167 969
라멕 182 777 53 653 188 753
노아 500 950 500 950 500 950
홍수시
노아의 나이 600 600 600
SDABD, s.v. "Chronological Tables: Genealogy of the Patriarchs."
99) A.M. means "in the year of the world." "Chronology in the Bible Record," ADABC, 1:179.
100) The Hebrew, Samaritan, and Septuagint Texts," SDABC, 1:180.
101) Ibid.
102) See R.K. Harrison, Instruction to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77), 148-50.
103) 70인역은 연대를 4,000년에 맞추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조정하였다. 창조부터 홍수까지 2,262년(창세기 5장),
홍수 기간 1년(창세기 7:11; 8:14), 홍수부터 아브라함을 부른 때까지 1,307년(창 11, 12장), 그리고 여행 기간을 20 재림성도와 종말신앙
위해서 70인역은 홍수 후의 도표의 세 번째 위치 다음에 카이난(Cainan)을 별도로 포함시
키고 있다. 엇셔(Ussher) 역시 독단적으로 창조를 그리스도의 탄생 4,000년 전으로 놓고
있으며, 그 창조의 시작을 기원전(B.C.) 4004년 10월 23일 저녁으로 잡고 그 때를 A.M. 1
년으로 시작하며, 그리스도의 탄생 전 4,000년을 B.C. 4년으로 잡았다. 분명히 엇셔는 지구
6,000년 이론, 곧 그리스도 탄생 전 4,000년, 탄생 후 2,000년에 자신의 연대를 조화시키
려고 노력했다. 70인역과 엇셔의 연대의 자료들을 비교하면 지구의 나이에 대한 명확한 불
일치가 나타난다. 70인역을 고려하면 엇셔의 6,000년에다 1,000년은 더할 수 있다. 엇셔는
창조의 사건을 4004 B.C.에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는 반면에 70인역에 따르면 지구는
5,500 B.C.에 창조되었다.104)
비록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포함한 모든 성경의
사건들의 정확한 연대를 확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 것 같다. 성경의 연대
를 결정하는 다양한 원칙들이 사용되었다. 재림교회 성경주석은 일반적으로 연대에 관한 한
(1) 나이를 설명하는 방식(the method of expressing age), (2) 부조들의 연속적인 나이
(the consecutive ages of the patriarchs), (3) 가산 나이 계산 방법(inclusive
reckoning); 그리고 (4) 부분 나이와 전체 나이(parts and whole) 등의 4원칙을 제시하고
있다.105)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성경의 기록으로부터 정확한 연대의 자료를
알 수 없으므로 초기의 나이에 관하여 개략적인 것에 만족해야만 한다는 것이 사실인 것처
럼 보인다. 엘렌 G. 화잇의 지구 역사에 대한 견해
재림의 시기를 정하는 자들은 시기설정의 근거를 대부분 엘렌 G. 화잇의 글들에 두고 있다. 칼 투랜드(Carl Tuland)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엘렌 G. 화잇의 지구의 연대적인 나이
(chronological ages)에 대한 진술을 이 지구의 역사적인 나이(historical age)로 받아들이
는 것 같다고 말했다.106) 와렌 죤스(Warren H. Johns)의 연구에 따르면 엘렌 G. 화잇이
1915년에 운명하기 전에 출판된 원래 자료에는 6,000년에 관한 진술이 42곳에 있으며, 여
기에 첨가하여 4,000년에 관한 진술이 41번, 그리고 2,500년에 관한 진술이 4번이나 언급
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진술들이 지구의 나이와 관련된 엘렌 G. 화잇의 견해를 결정하는
질문에 관한 진술들이다.107) 그러나 엘렌 G. 화잇의 지구의 연대에 대한 개념을 보다 분명
히 이해하려면 첫 번째로 그녀가 사용한 엇셔의 연대(Ussher's chronology)를 검토해봐야
하고, 두 번째는 엘렌 G. 화잇이 사용한 연대 구절들(Chronological passages)을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엘렌 G. 화잇의 연대와 관련하여 사용한 구절들의 문맥적인 의미
(contextual meaning)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엘렌 G. 화잇과 엇셔의 연대
종종 연대를 사용하여 대쟁투의 격렬성과 상당한 기간이 경과되었다는 것을 보다 생생하게
430년으로 잡는다.See Daniel T. Taylor, The Reign of Christ on Earth (Boston: H.L. Hastings, 1883),
25-28.
104) See "Date of Creation Not Know," SDABC, 1:195; Harold W. Clark, The Battle Over Genesis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1977), 201-202.
105) "Time Statement in Genesis," SDABC, 1:179-180.
106) Tuland, 66.
107) Johns, 20.묘사하려고 의도했던 엘렌 G. 화잇이 과연 연대에 대해서 공부를 정상적으로 했는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그녀는 연대공부를 체계적으로 한 적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이다. 그녀는 연대기 정보를 당대의 각종 연대와 관련된 자료들을 통해서 얻었다. 이것
에 대해서 로버트 영(Robert Young/ 1822-1888)이 만든 기념비적인 성구 분해사전
(Analytical Concordance of the Bible)은 세상, 곧 사람의 창조에 대해 기원전 6984년
(Muller)부터 3616(Rabbi Lipman)에 이르는 37가지의 연대들을 열거하고 있으며, 그리고
19세기에는 그러한 연대들이 120개가 넘어 어쩌면 3000개 정도가 되었다고 부언하고 있
다.108) 할레는 세상의 창조(Creation of the World)에 대해서 자신의 걸작 연대,지리,역사,
예언의 새로운 분석(A New Analysis of Chronology and Geography, History and
Prophecy)이라는 책에서 “모든 역사의 연대는 성사(聖史)든 속사(俗史)든 세상의 창조와 그
리스도의 탄생의 두 거대한 시기를 중심으로 언급되고 연구된다”고 했다.109) 따라서 당시의
이 모든 연대들은 서로 큰 차이가 없이 공히 창조 주일의 연대를 그리스도가 오시기전 약
4,000년으로 잡는 데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토록 많은 연대와 관련된 자료들 가운데서 엘렌 G. 화잇은 어느 연대기를 주로 사용했는
가? 그녀가 사용한 연대기는 영국 아르마(Armagh)의 주교였던 제임스 엇셔(James Ussher,
1581-1656)의 것이었다. 엇셔의 성서연대기는 너무나 유명하여 최근까지 대부분의 영어
성경 난외 여백(margins)에 기록되어 있다. 1915년 당시 그녀의 서재에는 비그리스도인들
에 의해 기록된 1200여권의 책들이 꽂혀 있었으며 그 중 여러 권의 책들이 연대기에 관한
것이었고 또 연대와 관련된 다수의 책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그 책들 중 스코틀랜드의 설
교자였던 죤 커밍(John Cumming)의 책이 있었으며, 그녀는 그 책을 읽고 경우에 따라 그
자료들을 빌려왔으나 그의 연대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John Cumming, Voices of the
Day [1858], 12 참조). 또한 그녀의 사무실 서가에는 쉼멜(R.C. Shimeall)이 쓴 세계의 나
이(Age of the World)라는 책도 있었으나 그도 역시 밀러주의자와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
었으며 6,000년의 끝에 세상의 종말이 온다며 그 해를 1868년으로 계산했다. 뿐만 아니라
엘렌 G. 화잇은 재림운동의 거장이었던 윌리암 밀러로부터도 영향을 받은 것 같으나 밀러
는 6,000년의 끝을 1843년으로 잡았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당시의 유명한 연대학자였던 윌
리암 할레(William Hales)의 연대기(A New Analysis of Chronology)가 그녀의 서가에 있
었지만 그녀는 그것 또한 이용하지 않았다.110)
그러나 엇셔는 지구의 창조와 그리스도의 탄생을 정확히 4,000년으로 잡고 있었으며 따라
서 지구의 나이는 19세기말이 되면 5,900년이 된다는 것이다. 엇셔는 성경의 족보에 의거
하여 세상의 창조가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에 시작되었고,111) 홍수는 아담의 창조가 있
108) Young, Robert, "Creation," Young's Analytical Concordance to the Bible: Containing About 311,000
References with the Literal Meaning and Pronunciation of Each Based upon the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homas Nelson Publisher, 1980, 210 참조. 109) Hales, New Analysis of Chronology and Geography, History and Prophecy, vol.i. p.210. cited in
ibid.
110) Warren H. Johns, "Ellen G. White and Bible Chronology" Ministry, April 1984, 20, 21 참조. 111) Ussher's chronological works include the Annales Veteris et Novi Testamenti, a chronological digest of
events from creation to the Maccabean period, which appeared in 1650; Annalium Pars Posterior (its
wequel), which appeared in 1654; and Chronologia Sara, which presents an argued defence of the
chronology set out in the Annals, and was published posthumously in 1660. An English translation of the
Annals was published in 1658. Ussher's chronological calculatons later gained quasicanonical status
through their insertion into the margins of English Bibles published after 1701(Jeremy Hughes, Secrets of 22 재림성도와 종말신앙
은 기원전 4004년으로부터 1656년이 경과된 기원전 2349년에 일어났다고 본다.112) 물론
그리스도는 헤롯 대제(Herod the Great)가 죽기 바로 얼마 전인 기원전 4년에 태어났다. 예루살렘 성전은 그보다 1,000년 앞서 기원전 1004년에 완성되었으며, 세상은 그보다
3,000년 전에 창조되었으므로 결국 세상의 창조와 그리스도의 탄생 사이는 4,000년이 된다
는 것이다.113) 이러한 연대기의 구조 속에서 엇셔는 출애굽을 기원전 1491년에 놓았다.114)
이러한 연대는 영어 흠정역 성경(King James Version)의 여러 개정판에 인쇄되어 오랫동
안 활용되어 왔다. 엇셔의 연대기는 성경의 본문에 제시되는 연대기의 불일치를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한 랍비
의 전통과 유세비우스(Eusebius), 그리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115)
뿐만 아니라 엇셔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으로 인도하기 전을 430년으로 보는 “장기 체류설”(long sojourn) 대신에 애굽에서의 여행 기간을 215년으로 보는 “단기 체류
설”(short sojourn)을 옹호하고 있다.116)
와렌 죤스에 따르면 엇셔의 업적은 대부분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몇 경우에 있어서
는 고대인들이 사용한 독특한 연대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발전한 현대의 자료들과는 다소
불일치 하는 것이 있어 왔다.117) 이 가운데 하나가 엇셔의 연대의 계산 체계(calculation
system)였다. 그는 즉위년(sccession-years)과 비즉위년(nonaccession-years)의 차이를
계산에 넣지 않았다. 따라서 왕의 통치의 시작에 있어서 엇셔의 계산은 거의 50년이 빠르게
잡혀있다.118)
the Times: Myth and History in Biblical Chronology [Sheffield, England: JSOT Press, 1990], 261.
112) Finegan, 191.
113) Ibld., 262.
114) Johns, 23.
115) According to the rabbinic tradition there would be 4,000 years from creation to the age of the Messiah.
Eusebius(c. 260-340), who produced a synchronistic chronicle of world history to his own time, argued
form a shorter chronology than had previously been accepted, and date the birth of Christ to 5199
A.M.(one year short of a schematic total of 5,200 years) (Jeremy Hughes, 261-262). In Jewish
chronologies, Demetrius calculated a period of 3,624 years from creation to the entry into Egypt, and
1,360 years from the flood to this event, which was followed by a period of 215 years spent in Egypt.
Eupolemus, a Palestinian Jewish historian, calculated a period of 5,149 years from creation to the fifth
year of the reign of Demetrius. Josephus calculated the flood in 1662 A.M., Abraham.s migration in 2082
A.M., and the Exodus in 2510 A.M. (ibid., 241-251).
116) 엇셔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정확하게 215년 있었다고 보고 있는데, 곧 야곱이 그의 가족을 고센
으로 인도하여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낼 때까지의 기간이다. 따라서 출애굽은 1445년, 아브라
함을 부르신 때는 430년 전 이므로 1875 B.C.이며,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때는 1660 B.C.이다. 엘렌 G. 화잇도
엇셔의 연대를 따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지구의 연대를 6,000년에 맞추려고 한 것 같다. Johns, 22, 23; SDABD, s.v. "Creation to Exodus."
117) Johns, 21.
118) 재림교회의 학자인 에드윈 딜레(Edwin R. Thiele)는 히브리 연대의 기본적인 원칙을 “왕이 자신의 즉위를 실제
로 즉위했던 때로부터 계산했는가? 아니면 자신의 즉위를 그 다음해로부터 계산했는가?”라는 질문에 기초하여 제시
하였다. 이 질문에서 그는 실제로 왕들의 즉위에는 두 계산방식이 있었는데, 곧 즉위년 방식(the accession-year
system)과 비즉위년 계산 방식(nonaccession-year system)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앗시리아, 바벨론, 그리고
페르시아는 왕이 처음에 등극할 때 그 해가 일반적으로 왕의 즉위년으로 불렀으나, 실제로는 다음 새해의 첫 달까
지는 자신의 통치의 첫해로 계산하지 않았다. 이러한 제도를 즉위년 제도 또는 “후 연대 계산법” (postdating)이라
고 부른다. 다른 곳에서는 왕은 자신의 첫 통치 해를 그가 등극하는 그 날로부터 계산한다. 이러한 계산 방법은 비
즉위년 계산 또는 “사전 연대 계산법”(antedating)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연구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분열 시에 비즉
위년을 따라 기원전 9세기가 마쳐질 때까지 사용했으나 Jehoasha 하에서 즉위년으로 옮겨져서 이스라엘의 역사의
끝에 이르기까지 사용했다. 분열 시기에 유다는 즉위년을 사용했으며 그 방식을 9세기 중엽까지 사용했으나, 여호
람(Jehoram)으로부터 요아스(Joash)까지의 통치는 비즉위년 방식을 따랐다. 그리고 8세기 초인 아마샤(Amaziah)로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렌 G. 화잇은 19세기에 많은 다른 연대기들이 있었지만 자신의 글에
서 엇셔의 연대기를 채택했다.119) 그 이유는 엇셔의 연대기가 그 당시에 전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었고 또 대부분의 성경의 난외(margins)에 인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연대기들과 비교하여 엇셔의 연대기가 가장 건전하고 성서적인 것(the most sound
and Biblical)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와렌 죤스에 따르면 엘렌 G. 화잇은 그녀에게 가
장 훌륭한 것을 선택하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엇셔의 연대기는
수정할 것이 비교적 적은데, 그 이유는 그의 성경의 자료에 대한 소상한 신뢰성과 추측이나
가설을 삽입시키는 것을 거절하는 이유들 때문이라고 말한다.120) 따라서 엘렌 G. 화잇은
6,000년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많은 성경의 사건들의 시기에 대해서도 엇셔의 편에 섰던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 대답해야할 질문 가운데 하나는 엘렌 G. 화잇이 자신의 저서들에서 엇셔
의 연대를 사용한 목적은 무엇이며 도대체 그 연대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다. 죤스는 엇셔의 연대를 사용하고 있는 두 기능(functions) 또는 목적(purposes)은 문학
적인 연결(literary linkage)과 또 문학적인 강조(literary emphasis)를 위한 수단으로 열거
하고 있다.121) 그 예로서 엘렌 G. 화잇의 두 진술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이 완전한 존재(첫 아담
을 말함)가 두 번째 아담과 얼마나 대조가 되는가....4,000년 동안 인류는 규모와 신체적인
힘에 있어서 퇴보하여 왔다”(The Spirit of Prophecy, 2:88). “6,000년 동안 인류의 대적
(마귀)은 하나님의 정부를 대항하여 전쟁을 해왔다”(ibid., 93). 여기서 죤스는 “만일 1,000
년이 강한 인상(impressive)을 준다면 3,000년은 더 강한 인상(more impressive)을 주고, 6,000년은 더욱 강한 인상(even more impressive)을 준다”라고 말한다.122)
분명한 것은 엘렌 G. 화잇은 지구의 나이(age of the earth)나 또는 어떤 다른 역사적인 사
건을 계산하기 위해서 연대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그
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진행 과정을 보다 생생하게 설명하려
는 의도였던 것 같다. 엘렌 G. 화잇의 6,000년 사용 용례들
재림교회의 전 역사를 통해서 대부분의 재림교도들은 역사적인 연대와 예언적인 연대에 관
부터 유다의 역사가 마쳐진 시기까지는 다시 즉위년 방식을 따랐다.(Edwin R. Thiele, The Mysterious Numbers
of the Hebrew King: A Reconstruction of the Chronology of the Kingdoms of Israel and Judah [Grand
Rapids: Eerdmans, 1965], 16-17, 20, 22, 38).
119) 많은 연대들 가운데서 19세기에 몇 연대기가 학자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다. 엘렌 G. 화잇은 죤 커밍(John
Cumming)의 연대를 읽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어떤 경우에 그의 자료들을 사용했으나 그의 연대만은
사용하지 않았다. 커밍은 천지가 창조된 이래 6,000년은 1864년에 마쳐질 것으로 보았다(John Cumming, Voices
of the Day [1858], 12, cited from Warren, 21). 엘렌 G. 화잇은 쉼멜(Shimeall)과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
의 연대도 잘 알고 있었다. 쉼멜은 6,000년의 끝을 1868년에 놓고 있었으나 윌리암 밀러는 그것의 끝을 1843년에
놓고 있었다(William Miller, "2300 years," Signs of the Times, 1 May 1841, 17-21). 그 당시에 권위있는 연대
에 대한 연구 가운데 하나는 윌리암 할레(William Hales)의 것이었다. 엇셔가 출애굽을 1491 B.C.에 또 천지 창조
를 4004 B.C.에 놓는 반면에, 그는 출애굽이 1648 B.C.에, 그리고 창조는 5411 B.C.에 놓았다.(Johns, 21).
120) Johns, 23.
121) Ellen G. White, The Spirit of Prophecy, 4 vols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1969) 2:88, 93;
Johns, 22.
122) Johns, 22.24 재림성도와 종말신앙
심을 가져왔다. 엘렌 G. 화잇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상의 종말에 대한 그녀의 글들에서 어
떤 연대적인 표현이 사용되었다. 콤팩트 디스켓 사전(compact-disc concordance)에 의하면 엘렌 G. 화잇은 “6,000년”이라
는 말을 61번 사용했으며, “4,000년”이라는 말은 43번, 그리고 “2,000년”이라는 용어는 42
번 사용하였다(중복되는 부분도 있음).123) 특별히 엘렌 G. 화잇이 6,000년이라는 용어를 사
용했을 때 그녀는 거의 대부분 “동안”(for), “대략”(about), “거의”(nearly), “이상”(over),
그리고 “더 이상”(more than)이라는 전치사나 부사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몇 경우에는 전
치사가 없는 것도 있다.124)
엘렌 G. 화잇이 사용한 다양한 전치사나 부사들 가운데서 41회나 사용된 “동안”(for)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시간의 존속기간(duration of time)이나 또는 공간의 확장(extension of
space)을 표현하기 위한 전치사이다.125) 그 단어의 뜻은 “동안”(during)이나 “전 기
간”(throughout), “공간 안에 또는 통해서”(in or through the space) 또는 “때”(time of), “어느 정도”(to the extent of)등을 의미한다.126) 비록 엘렌 G. 화잇이 여러 번 “동안”이라
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그녀는 재림의 때와 관련된 어떤 제한된 때와 관련하여 결코 사용하
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그녀는 “6,000년 동안 사단의 반역활동은 지구를 떨게 만들었
다”(GC 659)와 “6,000년 동안 대쟁투는 진행되어 왔으며 하나님의 아들과 하늘 사자들은
악한자의 세력과 투쟁하여 왔다”(GC 656)로서 그녀는 여기서 확실한 승리를 향한 그리스도
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과정의 길이(the length of the progress)를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듯 보인다. 엘렌 G. 화잇이 사용한 “약” 또는 “대략”(about)이라는 용어도 “대략”(approximate), “정확
성에 어느 정도 가까운”(with some approach to exactness), “양에 관하여”(in respect to
quantity), “수”(number), “때”(time), “가까워지는”(being near), “그리 멀지 않은”(not far
from)등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ST, 20 March 1879, 4; SP, 1:87). 그것들은 재림의 때에
국한시키는 어떤 의미를 담고있지 않다.
123) 이 자료들은 엘렌 G. 화잇의 글들에 담겨져 있는 연대와 관련된 용어들을 필자가 직접 찾아 기록한 것이다. The
investigation through the compact-disc concordance on the issue of the chronological data from the
writings of Ellen White was done at the Ellen G. White Research Center located in the Leslie Hardings
Library in AIIAS in the Philippines.
124) Ellen G. White, The Spirit of Prophecy, 2:93; "The great controversy between Christ and His angels on the one side and Satan and his angels on events spanning six thousand years" (Ellen G. White, Ellen G.
White: The Early Years [1827-1862], Vol. 1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1985])
125) Ellen G. White, The Desire of Ages, 413; idem, The Great Controversy, 4, 552, 659, 673; idem,
Counsels on Health and Instruction to Medical Missionary Workers (Mountain View, CA: Pacific Press,
1951), 19, 574; idem, Counsels on Diet and Foods: Compilation from the Writings of Ellen G. White
(Mountain View, CA: Pacific Press, 1969), 59, 117; idem, Fundamentals of Christian Educatioin, 22; idem,
Testimonies for the Church, 3:138, 491; idem, Maranatha, 62, 130, 296, 372; idem, Mind, Character, and
Personality: Guidelines to Mental and Spiritual Health (Nashville, TE: Southern Publishing Association,
1977), 2:510; idem, My Life Today, 126; idem, Patriarchs and Prophets, 50, 342; idem, Temperance as Set Forth in the Writings of Ellen G. White (Mountain View, CA: Pacific Press, 1949), 16, 21; idem,
Christian Education (Battle Creek, MI: International Tract Society, 1893), 207; idem, Healthful Living, 45;
idem, "Longevity, and Habits of Life," The Second Advent Review and Sabbath Herald, 13 December 1881,
3; and so on. 126) William Allian Neilson, ed., Webster's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Cambridge,
MA: Riverside, 1959), 984.엘렌 G. 화잇은 “거의”(nearly)라는 용어를 6회나 사단의 반역(Satan's rebellion)과 인간의
지속적인 범죄(the continual transgression)를 언급하기 위해 사용하였다(GC 552; CE,
467). 그녀의 목적은 지구의 역사를 6,000년이라는 길이에 제한시키려는 암시를 담고 있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고통과 질병과 죽음에 대한 지루하고도 긴 시간(tediously long time)
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SP, 4:370). 그녀는 역시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를 위해
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GC, 518).
흥미롭게도 엘렌 G. 화잇은 지구에서 죄의 지배를 6,000년으로 언급하면서 여러 번 “이상”, “더 이상”이라는 용어도 사용하고 있다(Christian Temperance and Bible Hygiene, 154;
Historical Sketches of the Foreign Missions of the Seventh-day Adventists, 133;
ST, 29 September 1887, 2).
이러한 전치사나 부사의 사용은 엘렌 G. 화잇이 이러한 용어들을 지구의 나이에 제한시키
려고 사용했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가져다준다. 그러한 용어들에 대한 그녀의
사용의 용례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는 이 지구상에서 죄의 지배의 지속적인 기간을 언급하
는 구절들의 문맥적인 의미(contextual meaning)들을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관련구절들의 문맥적인 의미
한 구절의 정확한 해석과 이해로 인도하는 건전한 성서 해석학의 원칙은 「저자가 말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간파해야 된다는 원칙이다. 따라서 구절을 이해하는 첫 단계는 문맥
(context)과 내용(content)에 호소하는 것이다. 많은 성서해석가들 역시 주어진 구절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광역적인 문맥이 조심스럽게 연구되므로 보다 합리적이고도 건전한 의미를 찾
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엘렌 G. 화잇이 6,000년이란 연대적인 언급을 하
고 있는 이유와 또 그 초점이 무엇인지를 보도록 하자. 아이아스 신학대학원(AIIAS
Seminary)의 신약학 교수인 트레이어 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엘렌 G 화잇의 글을 수록하고
있는 레이저 디스크 사전(laser-disc Concordance)에는 9,000,000개의 글이 수록되어 있
는바 그 중 2,500번이나 성서적 연대(Biblical chronology)와 관련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
나 이 숫자는 반복되는 것을 제한한 것이어서 실제로는 이에 두 배가 되는 셈이다. 그 가운
데 중요한 몇 진술들을 통해 사용 용례의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녀는 1864년에 “성경의 기록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땅에서 발견되는 기이
한 것들, 창조주간이 단지 문자적 7일이라는 견해와 또 세계가 지금 약 6,000년(about six
thousand years)이 되었다는 것에 관해 곤경에 빠져있다”(3SG, 92)고 말하면서 “약”(about)이라는 전치사를 사용하고 있다. 1868년에는 “현재 사단이 그의 올무에 인간들을 잡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기술과 민첩함, 그
리고 거의 6,000년 동안(nearly six thousand years)의 경험을 통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다. 항상 그는 인류에 관한 모든 것을 가까이서 관찰해 온 자이다”(Test. No 16:71)라며, “거의”(nearly)라는 부사를 사용하여 세월의 흐름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26 재림성도와 종말신앙
1872년에 엘렌 G. 화잇은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생명력을 인간에게 주셔서 곡해된 습관의
결과로 증가되는 질병을 버티어 왔으며 6,000년 동안(for six thousand years)계속되어 왔
다”(Test. No 22:15)에서는 시간의 길이를 수식하는 부사나 전치사를 사용하지 않고 단지
기간만을 기록하고 있다. 1875년에는 “6,000년 동안(for six thousand years) 지속된 인간의 범죄는 그 열매로 질
병, 고통, 그리고 죽음을 가져왔다. 우리가 시간의 끝이 가까워 올수록 식욕에 방종하도록
하는 사단의 유혹은 더 강해질 것이며 극복하기가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Test. No.
25:42)에서도 동일하게 기간의 상태를 나타내거나 수식하는 부사나 전치사를 사용하지 않
고 다만 시간과 공간의 상태를 나타내는 전치사(for)만을 사용하고 있다. 1877년에는 “사단은 하나님의 정부를 대적해서 6,000년 동안(six thousand years) 전쟁을
치러 왔으며 계속된 훈련은 기만하고 유혹하는 자신의 기술을 증가시켜 왔다”(2SP, 93)에
서는 어떤 형태의 수식형의 전치사나 부사가 없다. 1881년에는 “인간이 완전한 조직과 아름다운 용모로 하나님의 손에서 나왔다. 그가 6,000
년 동안(for six thousand years)증가되는 질병과 범죄의 힘을 버티어 온 사실은 그가 처음
부여받은 견지능력의 결정적인 증거이다”에서도 여러 경우에서처럼 기간의 길고 짧음을 한
정하는 부사나 전치사를 생략하였다. 1884년에는 “거의 6,000년 동안(for almost six thousand years) 수행되어 온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는 곧 끝나려하고 있다”(ST, May 7, 1884)라며 전치사와 부사를 사용
하여(for almost) 종말의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는 한시성과 임박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1886년에는 지금과는 달리 “그가 아름다운 에덴 동산에서 우리의 첫 조상을 굴복시
키는데 성공한 이래로 그는 이 사업에 종사해 왔다. 6,000년 이상(more than six
thousand years) 지속된 훈련은 기만하고 유혹하는 자신의 기술을 크게 증가 시켜왔
다”(MS 133)며, 처음으로 “이상”(more tha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6,000년이 경과되었
다고 표현하므로 6,000년이라는 시간의 한시성에서 탈피하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1888년에는 “6,000년 동안(for six thousand years) 대쟁투는 진행되어 왔으며 하나님의
아들과 그의 기별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경고하고 계몽하고 구원하기 위해 악한자의 세력
과 싸워왔다”(GC, 656)며 “for”라는 전치사를 사용하지만 문맥상에서 시간의 한시성을 지
닌 부사나 전치사를 사용하거나 또는 기산의 길이에 영향을 주는 수식어나 전치사를 사용하
지 않고 있다. 1890년에도 동일하게 “사람 뿐만 아니라 지구도 순종의 영원한 거처가 되기 위해 구속함을
받았다. 6,000년 동안 사단은 땅의 소유권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하여 왔다”(PP, 342)며 시
간의 제약을 암시하는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상기와 같은 해(1890년)에 다시 그녀는 “6,000년 이상(for over six thousand years) 사람
들의 계속적인 범죄는 그 질병과 고통, 그리고 죽음의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가 시간의 끝에 가까이 이끌려 갈수록 식욕에 방종케하는 사단의 유혹은 더 강해질 것이며 저항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CTBH, 154)라며 1886년에 처음으로 사용했던 “이상”(for over)이라
는 전치사를 사용하여 인간이 죄와 질병으로 당하는 고통이 6,000년이 경과된 것으로 제시
하고 있다. 1913년에는 “거의 6,000년 동안(for nearly six thousand years) 계속되어 온 사람의 범
죄는 그 결과로 질병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가져왔다”(CT, 467)라며 기간이 거의 다 되었
다는 시간의 한시성을 암시하는 부사(nearly)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엘렌 G. 화잇이 반복해서 6,000년의 기간을 언급하는 것을 보았다. 부언하자면 위
에서 언급된 것 외에도 타락에서부터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시간에 관한 것이 42곳이나
되며 창조로부터 출애굽의 기간을 2,500년으로 말하는 것도 4곳이나 된다. 그러나 상기의
진술들을 종합해 볼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연대기적인 표현을 언제나 동일하게 서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주 나타나는 것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약”(about), “거
의”(nearly), “동안”(for), “이상”(for over, more than) 등이며, 상당수의 경우에는 기간에
영향을 주는 전치사나 부사를 사용하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들을 접하면서 매우 자연
스런 의문이 생기게 되는데 그것은 엘렌 G. 화잇은 어떤 목적으로, 또 왜 이렇게 표현하였
는가? 라는 것이다. 해답은 매우 단순한 것으로 그것은 엘렌 G. 화잇은 시기에 어떤 상세한 의미(specific
connotation)를 부여하지 않고 오히려 대략적인 수(round numbers)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
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의 세 가지의 진술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우선 1886년에 화잇은 “그가(사단) 아름다운 에덴 동산에서 우리의 첫 조상을 굴복시키는
데 성공한 이래 그는 이 일에 가담해 왔다. 6,000년 이상(more than six thousand years)
이나 계속되어 온 훈련은 기만하고 유혹하는 자신의 기술을 크게 증가 시켜왔다”(MS, 133)
라고 했으며, 1890년에는 “6,000년 이상(for over six thousand years)이나 계속된 인간
의 범죄는 그 결과로 질병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가져왔다”며 비슷한 뜻을 가진 다른 어휘
를 사용하고 있으며, 1913년에는 “거의 6,000년 동안(for nearly six thousand years) 계
속된 인간의 범죄는 그 결과로 질병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가져왔다”(CT, 467)고 기록하
므로 같은 내용을 두고 약간의 표현상 차이가 있는 부사나 전치사를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
하게 된다(참조: 이 동일한 표현을 1887년에는 “6,000년 동안(for six thousand years) 계
속된 인간의 범죄는 질병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가져왔다”(3T 492)로 기록하고 있음에 주
의하라).127)
문맥의 연구를 통해서 요약하자면 같은 사건을 엘렌 G. 화잇은 “6,000년 동안”, “6,000년
이상, 또는 넘도록”(1890), 그리고 “거의 6,000년 동안”(1913)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 이
127) An example showning that Ellen White used a preposition interchangeably with a adverb is found in the
statements on "the continual transgression of man' in 1890 and 1913. Here she used "for over" in 1890,
but used "nearly" in 1913. (Ellen G. White, Christian Temperance and Bible Hygiene, 154; idem, Counsels
to Parents and Teachers, 467; idem, Maranatha, 130; idem, Mind, Character, and Personality, 2:510; idem,
The Great Controversy, 518, 552; idem, Christian Education [Mountain View, CA: Pacific Press, 1943],
467).28 재림성도와 종말신앙
문제에 있어서 엘렌 G. 화잇이 잘못 (wrong)을 범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봉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연대를 사용함에 있어서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여
러 차례 언급을 한 것처럼 그녀는 대략적인 숫자(round numbers)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녀
가 다소 상치되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은 시기에 관한 표현을 결코 예언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지적할 수 있다. 또 다른 질문은 엘렌 G. 화잇이 다른 곳에서도 개략적인 연대를 사용하면서 정확성 면에서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어떤 이는 그녀가 부정확성
(inexactednesses)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사실이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일련의 예를 들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엘렌 G. 화잇은 야곱과 그리스도의 연대
적 간격을 약 1,000년(a thousand years)으로 기록했으나 실제는 1,500년이 넘으며(4SP,
18), 창세기와 히브리서 사이를 역시 1,000년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실제는 1,500년이나 된
다(PP, 138). 그리고 그녀는 이사야와 그리스도 사이의 시대적인 간격을 1,000년 이상
(more than a thousand years)으로 말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약 700년 정도밖에 안된다
(RH, November 13, 1900). 다시 말하자면 500년이 넘지 않을 때는 “천 년이 못되
게”(inferior thousand)와 또 자리 수가 500년이 넘을 때는 “천 년 가까이”(superior
thousand)라는 대략적인 수치(round numbers)로 기록했다. 거듭 강조하는 것은 엘렌 G. 화잇은 1844년 이 후에는 더 이상 예언적인 연대가 없음을 감
안하여 어떤 연대적인 표현도 예언적 기간(prophetic period)을 계산하려는 의도로 기록하
지 않았으며 동시에 연대적인 정보(chronological informations)를 제공하려고도 하지 않았
다는 사실이다. 엘렌 G. 화잇의 연대와 관련된 개략적인 표현의 가능성에 대한 이해를 성경을 통해서도 발
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구약성경에서 짧은 연대기와 긴 연대기를 찾아보게 된다. 또 다
른 것은 마태복음 1:17은 아브라함과 그리스도 사이를 42세대로 말하고 있으나 41명의 이
름만 기록하고 있으며, 이 41명을 누가복음 3장과 비교할 때 56명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
다. 이점에서 볼 때 성경의 기자들은 족보에 관해서는 현대의 역사가들보다 더 자유로웠음
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의 권면이 시기적절하게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는 “신화와 끝
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니라”(딤전 1:4)면서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이나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딛 3:9)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할 것은 영감(inspiration)은 무오성(infallibility)을 허락하지 않으며 단지 하나님만이
과오가 없으신 분(infallible)이시다. 따라서 엘렌 G. 화잇의 6,000년과 관련된 여러 다양한 진술의 문맥에서 사용된 전치사들과
부사들을 연구하면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로 그러한 진술들에 대한 조사는 엘렌 G. 화잇이 어떤 연대적인 의미를 나르는 특정한
전치사나 부사를 의도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for,” “over,” “nearly” 등의 전치사를 그리스도와 사단간의 대쟁투 뿐만아니라 인간의 타
락으로 인한 질병과 범죄의 증가에도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했다(CT & BH, 154; CT, 467;
Maranatha, 130; MCP, 2:510; GC, 518, 552; CE, 467). 그녀는 지구의 나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전치사를 사용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녀는 그것들을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격렬한
대쟁투와 인간의 지속적인 범죄와 퇴화를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했다. 요약하자면 그녀가 사
용한 6,000년은 상세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일반화시켜서 개략적인 숫자(round
numbers)로 사용한 것이다. 두 번째는 그러한 용어들은 주로 인간의 타락 이후의 대쟁투의 길이(length)를 진술하기 위
해서 사용했다. 엘렌 G. 화잇은 분명히 언제 재림이 있을 것인지를 예언하기 위한 의도가
없었다. 몇 경우에서 그녀는 “over” 와 “more tha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리스도와
사단간의 전쟁이 오랜 기간(a long time) 있어왔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 였다(Christian
Temperance and Bible Hygienex, 154; Historical Sketches of the Foreign Missions
of the Seventh-day Adventists, 133; The Story of Jesus, 183 등 참조). 엘렌 G. 화잇
은 때로는 이러한 용어들을 지구의 나이와 관련시키기보다는 6,000년 “이상”(more than),
또는 전달된 “창조주의 사랑”(the Creator's love)를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했다. 따라서 그
녀는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기 위해서나 또는 예언적이고 연대적인 용어(prophetic
chronological terms)로 어떤 제한된 기간을 암시하기 위해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세 번째는 엘렌 G. 화잇의 개략적인 연대의 표현인 “6,000년”은 아마도 대쟁투로부터 가능
한 한 조속히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의도를 가지신 하나님의 인내와 오래 참으시는 품성(the
enduring and longsuffering nature)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특별히 1884년에 그녀는 “거의 6,000년 동안(for almost six thousand years)이나 지속되어 온 그리스도와 사단 사
이의 대쟁투는 곧 끝나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ST 7 May 1884, 1). 1888년에 그녀는 거
의 꼭 같은 진술을 반복하면서 대쟁투의 오랜 역사로부터 당신의 자녀들을 구원하시려는 하
나님의 계획을 표현했다.128)
재림의 시기를 설정하는 문제에 대한 엘렌 G. 화잇의 권면
엘렌 G. 화잇은 자신의 글에서 여러 번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를 정하려는 사상을 배격하
였고 아울러 경고하였다. 그녀는 “그리스도께서 언제 오신다든가 혹은 오시지 않는다는 등
시기를 정하는 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참된 기별을 갖고 있지 못하다”라고 말했다(2SM,
113). 그녀는 또한 주님의 오심의 분명한 때는 인간의 지력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강
조했다(4T, 307).
두 번째로는 엘렌 G. 화잇은 예언적인 시간은 1844년 이후에는 주어지지 않았다고 선언했
다. 그녀는 “1842년과 1844년에 도달하는 이 기간이 지난 후에는 한정된 예언적인 시간을
추정할 수 없다. 계산할 수 있는 가장 긴 기간은 1844년 가을에 도달하는 것이다”라고 말
했다(SDABC, 7:971).
세 번째로 엘렌 G. 화잇은 결코 자신이 연대 문제에 대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거나 또는 자
128) Ellen G. White said, "For six thousand years the great controversy has been in progress; the Son of
God and his heavenly messengers have been in conflict with the power of the evil one, to warn,
enlighten, and save the children of men." (The Great Controversy, 656).30 재림성도와 종말신앙
신의 저서에서 연대에 관해서 언급한 것이 주님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주어졌다고 주장하지
않았다(ST, October 1985, 14; 1SM, 57; 3T, 21 참조).129) 엘렌 G. 화잇의 아들인 윌리
암 화잇(William C. White)도 “어머니께서는 우리의 형제들이 그것들(역사와 연대)을 권위
있는 상세한 역사나 또는 역사적인 자료로 취급하기를 결코 원치 않으셨다”고 말했다.130)
특별히 대쟁투(The Great Controversy)의 마지막 편집에 관해서도 언급하면서 “어머니는
역사에 관한 한 결코 권위있는 것으로 주장하지 않으셨다”라고 말했다(3SM, 437, 447).131)
마지막으로, 첨가하고자 하는 것은 엘렌 G. 화잇이 지구의 나이나 또는 연대와 관련된 어떤
계시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엘렌 G. 화잇이 성서학자들이 작성한
연대를 사용하는 문제에 있어서 어떤 안내나 지침도 주시지 않으셨다는 의미가 된다. 엘렌
G. 화잇은 특별한 때와 관련된 정보를 얻을 필요성이 있을 때는 언제나 모든 성경의 사건
들에 때가 표시된 19세기에 만들어진 성경의 난외의 자료들로부터 얻었다. 요 약
시기를 설정하는 문제에 대한 엘렌 G. 화잇의 견해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결론을 얻게 되었다. 1. 그리스도의 강림의 시기를 정하는 문제는 재림신자들에 의해서 시작된 불건전하고도 극
단적인 종말사관에 기인된 것이 아니고 지구의 창조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일단의 유대인들에 의해서 초기에 제시된 지구의 단기 역사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지구의 창조의 역사를 6,000년에서 7,000년 정도로 보고 있다. 2. 초기의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지도자들은 서기 2,000년 전 후로 하나님에 의해서 예정된
지구의 역사가 끝날 것으로 믿고 각기 나름대로 때를 정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시기설정의
근거는 우선적으로 6,000년 설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는 유대인의 외경에 의존하였으며, 그
후로는 지구의 역사를 성경에 근거하여 6,000년으로 제시하고 있는 엇셔의 연대기에 주로
근거하여 제시하였다. 3. 엘렌 G. 화잇이 자신의 저서에서 종종 사용하고 있는 연대적인 숫자(chronological
numbers)는 성경으로부터 또는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직접 가져오거나 주어진 것이 아니고, 당시에 편만하게 알려졌던 각종 성경의 난외 여백(margins)에 기록된 엇셔의 연대기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연대를 사용한 목적은 사건의 역사적인 정확성을 연대를 통
129) Warren Johns presents the three views of the inspiration of Ellen White; (1) The full authority
view--believes that her statements on the 6,000 years are to be taken in their literal, chronological
sense; (2) The inspiration or limited authority view--believes that the inspiration acts upon the person,
not upon the pen; and (3) No inspiration or no authority view(Johns, 20-23). See also Ellen G. White,
Selected Messages, 1:57; idem, Testimonies for the Church, 3:21.
130) William Clarence White(1854-1937) was editorial assistant and publishing manager for his mother, Ellen
G. White, SDAE, s.v. "White, William Clarence,"; Selected Messages, 3:446.
131) W.C. White added, "In connection with the writing of these views, she has made use of good and clear
historical statements to help make plain to the readers the things she is endeavoring to present"(Ibid.,
3:437, 447). About this statement Humberto Treiyer suggested that it is good to remember that The Great
Controversy contains 400 quotations or references from 88 authors--a little more in the Spanish edition
due to the fact that a chapter on the Reformation in Spain was added with Ellen G. White's approval
(Treiyer, 45).해 나타내거나 또는 지구의 역사에 대한 보다 소상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
오히려 구속사의 과정을 보다 생생하게 묘사하고 또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품성을 보다
실감나게 묘사하기 위해서 문학적으로 차용한 것이다. 4. 엘렌 G. 화잇은 그리스도의 재강림의 때와 관련된 어떤 계시도 받지 못했으며, 한번도
자신의 연대기적인 정보가 권위가 있다거나 영감을 통해 주어진 것이라고 제시한 적이 없
다. 오히려 그녀는 재림의 때를 정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히 밝혔고
또 경고하기까지 한 것을 볼 때 그녀의 글들에 실린 연대들은 재림의 때와 관련된 연대적인
정보로 볼 수 없다. 5. 비록 지구의 역사가 정확히 6,000년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엘렌 G. 화잇의 저서
에서 연대가 사용된 문맥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는 사단으로 말미암는 이 지구
상의 죄악의 역사가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으며 이로 볼 때 그리스도의 재림이 상당
히 가까웠으므로 재림신도들이 그를 맞을 준비를 하도록 강하게 권면하시는 것이 주요 목적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