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부인
어느 겨울 저녁 맨발의 어린 소년 하나가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불이 환하게 켜진 신발가게 진열장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한 중년 부인이 소년에게 다가가 물었습 니다. “얘야, 뭘 그리 뚫어져라 쳐다보니?” 소년은 작은 목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저는 지금 하느님께 신발 한 켤레 만 달라고 기도하는 중이에요.”
부인은 소년의 손목을 잡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양말 과 신발을 주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점원에게 세숫대야와 수건을 빌려서 가게 뒤편으로 소년을 데리고 가서 발을 씻 긴 뒤 수건으로 닦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점원이 가지고 온 양말과 신발을 소년의 발에 신겨주었습니다. 소년은 부인 의 손을 꼭 잡고 가게를 나오다가 부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아줌마가 하느님 부인이에요?”
흔히 사람들은 하느님을 긴 머리에 흰 수염을 늘어트린 할아버지라고 상상합니다. 아마도 이 이야기의 소년도 그렇게 생각했나 봅니다. 그런데 웬 중년 여인이 나타나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니까 ‘하느님의 부인’으로 여겼던 것입니 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부인’,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곳 으로 가서 그분이 원하시는 사랑의 손길을 내미는 ‘천사’가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부족하고 흠이 많은 자신을 당신 자녀로 삼아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는 달리 무조건적 이고 지속적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을 등지고 잘못 된 길을 가더라도 안타까워하시면서 사랑의 눈길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왜 이렇게 변치 않는 사랑, ‘바보 같은’ 사랑을 베푸실까요?
우리가 사랑으로 변화되어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랑 과 선행을 실천하면 하느님께서 찬양받으십니다. 자식이 훌륭하면 부모가 칭찬을 받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촉구하십니다.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하느님은 착한 행실로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약속하십니다.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주시리 라.”(제1독서) 하느님의 사랑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고, 그 사랑을 본받아 자신을 내어주 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힘’(제2독서)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헌신적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의 힘과 능력을 체험하는 신자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그런 신자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는 세상에 짙게 드리운 어둠을 흩어버리는 환한 등불이 될 것입니다. 우리 한국 천주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 | 서울대교구 총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