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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 김혜순]
북한산성 산행기
동그랗고 키가 크-은 나무의 끝자락에
노오-란 화관처럼
나뭇잎이 매달린 가지들이
바람에 아름답고 쓸쓸하게 흔들리는
가을의 끝자락에
북한산엘 오르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언젠가는 가보고 싶던 코스라서, 참을 수 없는 유혹에 연락할 틈도 없이 집을 나섰다.
연신내역 ③번출구
일행은 7명이었다.
마치 새벽의 7인처럼 비장함을 갖춘 체 - 추위를 이기겠다고 옷을 겹겹히 입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범 속에 범상치 않은 비범을 지닌 기열님, 변함없는 심성을 가진 심형, 실과 바늘의 조피아. 강소저님, 그리고 처음 만나 인사 나눈 최 토끼님!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등장하는 LA.에서 오신 김지영님을 기다렸다. 머리가 큰 아담하고 중후한 분을 조피아가 금방 알아보았고, 서로들 인사를 한 후, 초면인 사람들도 반갑게 인사했다.
기열님의 차로 편안히 목적지에 도착, 북한산성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우선 김지영님은 등산화를 사서 바꾸어 신고, ..... 큰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등산화 뒷축의 255mm 딱지가 눈에 띄어 모두 한 마디씩 해도 지영님은 중후함에 답하듯이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르막이 되니 땀이 흐른다. 겹겹의 옷을 허물 벗듯이 벗고 걷기 시작하다. 대서문이 나온다. 성안에 들어서니 바로 가게가 두어 개 있다.
계속 걸어가면서 오른쪽으로 의상봉을 끼고, 계곡 너머 왼쪽에는 원효봉, 원효봉 따라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을 바라보며, 우리가 갈길은 위문(衛門)을 지나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코-스를 확인하고 그럴 때마다 기열님의 빠-알간 손수건 지도가 톡톡히 길안내를 한다.
음식점 밀집지역인 성안 먹자골목을 벗어나니 계곡 따라 길은 둘로 나뉜다. 대남문 쪽 길이 아닌 위문 쪽으로 향하다. 가파르다. 계속되는 계단 길... 밀려오는 사람들에 묻혀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우리 일행은 오를 수밖에 없었다.
늘 다니던 사람들보다 처음 온 지영님의 땀이 여름의 비지땀처럼 흐른다. 목에 두른 하얀 타올도 한여름 분위기다. 배낭에 카메라 가방까지 앞에 매고... 최 토끼 님도 가파른 길을 잘 오르고 있다.
오르는 길옆에 자리잡고 휴식도 하면서 간식을 먹다. 짐을 덜겠다고 서로 싸온 귤과 떡이 나오고, 커피도 마시고, 맛있는 숭늉까지 마셨다. ... 우리 산악회의 가장 좋은 점은 일행 중 누구든지 원하면 쉴 수 있다는 점이다. 자주 쉬고 먹고 쉬는 동안에 몸이 추워지지 않도록 다시 겉옷을 걸치고.....
하늘을 바라보니 가을 하늘답게 맑고 바람도 없고 날씨가 좋다. 또 오르다. 가는 길에 절이 많다. 무령사 --> 대동사--> 약수암은 상당히 높은 곳에 있다. 약수가 있어 목마른 사람에겐 생명수가 되고 있다. 오를수록 사람은 많아지고,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도 만만치 않다.
백운대가 가까워지니 사람이 많아지고 위문(=백운봉암문)까지 너무 사람이 밀려 위문에서 우이동 내려다보는 과정은 생략하고 만경봉, 노적봉 방향으로 행로를 돌렸다. 이 곳은 너무나 가파라서 산성도 없다. 바위에 쇠줄이 있어 잡고 매달리며 가장 험난한 지역을 지났다. 험난한 만큼 절경(絶景)이다. 멀리 바라보이는 백운대 오르는 바위에 사람이 개미같이 떼지어 기어오른다. 험하다는 염초봉에도 사람이 오르고 있다.
잠시 서있을 때는 정신없이 백운대, 염초봉을 바라본다.
갑자기 노적봉을 앞에 두고 여러 사람이 쉴 수 있는 평지가 나와, 쉬면서 덕담을 주고받았다.
“방 나왔어.” “방 빼.” 라는 쉼터를 칭하는 주위사람의 말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고 하면서도 지영님의 끊임없는 말솜씨가 하루 종일 빛나기 시작했다.
“「물은 셀프입니다」가 식당마다 적혀있어 상당히 철학적인 명언인줄 알았다“고..... 해서 모두들 박장대소했다.
“박(Park)찬호, 박(Pak)세리의 영어표기에서 왜 세리는 ”r"이 없을까?”...
“Anybody....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는데 남편이 치매 or 에이즈 둘 중의 하나란다.... 집에서 몇 km 밖에 남편을 내려놓아 보라.... 찾아오면 에이즈고, 못오면 치매고 .."
그외 四字成語 ....
유비무환 --- 비올땐 환자가 없다.
임전무퇴 --- 임산부 앞에서 침뱉으면 안된다.
등등으로... 쉴 때마다 재담으로 시간이 저절로 가는구나..
만경대를 옆으로 지나고, 노적봉을 앞에 두고 길은 두갈래이다. 다행히도 전문 산악인을 만나 길안내를 잘 받았다. 기열님의 빠-알간 손수건과 전문가의 상세한 설명으로 북한산성의 구도가 어느 정도 잡혀가기 시작했다.
---대서문, 시구문, 북문 위문,용암문,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청수동암문 가사당암문 부왕동암문 ---
우리가 아는 문을 세어보고,..... 언젠가는 원효봉 - 염초봉을 가야겠다고 얘기하다. 산책 같은 평탄한 산성 옆길이 나타나다. 융단같은 낙엽들.. 한참 때의 찬란한 빛의 여명만 남기고 말라 붙은 채 나뭇가지 끝에 단풍들이 매달려 있다.
한참을 가니 갑자기 넓은 공간에 현대식 건물도 있고, 공중전화 박스도 있고,... 아래에는 작은 운동장 만한 헬기장이 있고 여러 칸의 공중화장실이 있다. -- 북한산대피소다--- 용암사란 절터가 북한산장 휴식처가 되었다.
내려가자는 의견이 분분하다가 산성을 따라 더 걷다가 동장대에 오르다. 동장대는 산성 중에서 가장 높고 성안도 잘 보이고 우이동 방향도 잘 보인다. 햇볕 좋은 동장대 주변에 앉아서 쉬면서 또 한바탕 웃어가며 보내다.
대동문까지 더 가서 성안으로 내려가다. 원래 계획보다 산성길을 조금 더 걸었지만 운치도 있고, 편안한 길이었다. 내려오는 길은 이 곳이 북한산인가?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 완만하고 좋다. 오다보니 行宮址(=왕이 머물던 궁터), 上倉址(=식량창고)가 있었다. 조금 더 내려오니 中倉址도 나오고 중흥사터도 지나왔다. 이 곳 중흥사의 평탄한 터-- 계곡에는 이끼가 그윽하고 태고의 냄새가 난다. 멀리 바라보니 노적봉이 백운대를 가로막고 웅장하게 서 있다. 곳곳에는 억새가 그득하게 자리잡고 성안의 군사처럼 사열해있다. 억새 축제를 열어도 되겠다.
조금 더 내려오니 비석거리가 있고 총융사 선정비들이 서있다. 경사진 너른 암반에는“北漢僧徒節目”이라는 제목으로 319자가 새겨진 명문이 있는데- 뜻은 승도의 우두머리 격인 팔도도총섭의 교체과정에서 생기는 폐단을 없애 산성 수호에 완벽을 기할 것을 촉구하는 준엄한 내용이라 한다.
계속 내려오니 重城이 나왔다. 북한산성의 성내 시설물을 효과적으로 방어키 위해 쌓았다고 한다. 대서문이 적에게 뚫리더라도 병목과 같은 이 일대 계곡을 차단하면 행궁을 비롯한 주요 시설과 인명을 보호할 수 있도록 이중으로 철옹성을 쌓은 것이다.
중성아래 계곡이 아름다와, 그 아래 아지트 같은 곳에 자리잡고 마지막 간식 - 호박고구마-를 맛있게 먹었다. 오던 길을 따라 내려오니 오늘의 일정이 다 끝나 가고 있었다. 점심이 아닌 저녁이 된 식사를 구기동 순두부 집에서 맛있게 먹고 나서니 밖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외롭다는 것은 나이가 듦인가?
젊을 때는 혼자도 좋지만
나이가 들수록 서로가 편안하고 좋은 사람들과 하루를
보내고 평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가는 것을 인생의 행복이라고 할까?
(추신)
북한산성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국난을 당할 때마다 도성을 한번도 방위하지 못한 조정에서는 그 동안 믿었던 강화도와 남한산성도 위급할 때에는 신속한 피란 처가 되지 못한다는 판단 아래 도성과 가까운 곳으로 새로이 물색한 곳이 바로 북한산이었다.
선조 때부터의 장기간에 걸친 찬반 양론은 숙종의 확고한 신념에 따라 숙종 37년(1711) 2월 축성 방침을 굳히고 그해 3월에는 구획을 나누어 삼군문에서 축조하도록 결정하였다.
4월3일에 착수된 공역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급속히 진행하여 불과 6개월만인 10월 19일 백운봉, 만경봉, 용암봉, 문수봉, 의상봉, 원효봉, 영취봉 등 북한산의 연봉을 연결하는 석성을 완료하였으며 길이는 21리 60보에 이르렀다.
북한산성은 고종말기까지 유지되어 왔으나 갑오 개혁 이후 급격히 우리의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 모든 제도가 바뀌며 승군 제도가 폐지되었고 의병 전쟁, 군대 해산, 일제에 의한 강제 합병 등 큰 변혁기를 맞아 몰락하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이후 100년 이상 우리의 관심 밖에 있는 동안 돌로 된 성벽만 남겨 놓은 채 모든 시설물은 사라지고 원시의 자연 상태를 방불케 할만큼 잡목과 풀섶에 묻혀 있다. 다행히 서울시에서는 서울 정도600년 기념 사업으로 1990년부터 모두 42억 원을 투입하여 북한산성 제모습 되찾기 사업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현재 대남문, 대성문, 대동문의 문루와 주변 성첩에 대한 복원과 보국문의 정비 공사가 완료되었다. 5개년 계획으로 추진해 온 복원 사업은 1994년에 대남문과 대동문 사이의 성곽을 800미터 보수를 끝으로 1단계 사업이완료 되었다. 1995년 이후에는 2단계로 동장대 및 여러 암문과 성곽이 복원되었으며, 현재도 복원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