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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일시: 2016년 5월 7일 (토)
o 날씨: 맑음(강풍)
o 산행경로: 화엄사 - 노고단 - 연하천 - 벽소령 - 세석 - 장터목 - 천황봉 - 중봉 - 치밭목 - 유평 - 대원사 - 유평매표소
o 산행거리: 트랭글 GPS 기준 43.6km (도상거리 46.2km)
o 소요시간: 16시간 반
o 지역: 전남 구례, 전북 남원, 경남 산청
o 일행: 나홀로
o 산행정보: 지리산
▼ 화대종주지도 및 고도표
오늘 산행은 그동안 꿈꿔온 화대종주다. 원래 일정은 현재 참여하고 있는 백두21기의 '성삼재~중산리 구간'이지만 성중종주는 작년에 완주를 했으니 오늘을 화대종주의 날로 잡았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잠시 고향을 들른 후 진주역에서 출발, 진주역을 떠난 기차는 순천에서 환승한후 구례구역에 나를 내려 놓았다. 구례구역에서 택시를 합승하여 화엄사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한밤중 12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화엄사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밑에서 등산화를 조여메고 스틱을 고쳐잡고 대장정의 길을 나선다. '할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고 '드디어 출발선상에 섰다'는 기대도 교차한다. 화대는 나를 어떻게 맞아줄까....
▼ 화엄사 기점
화엄사를 지나는 등산로는 평범하다. 등산로 옆의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만 어둠속에서 요란하다. 그믐날이라 달빛도 없고 나무에 가려 한줄기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내 감각은 오로지 헤드렌턴의 불빛과 그 불빛에 드러난 등산로의 작은공간에 집중된다. 주변은 볼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 연기암 갈림길
캄캄한 어둠속, 갑자기 뒷쪽에서 여러개의 헤드렌턴이 보이고 인기척이 느껴진다. 이 어둠속을 헤치고 갈 동지아닌 동행이 생기나 보다 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작은 쌕을 둘러메고 짧은 옷차림을 한 한무리 청년들이다. 물어보니 산악마라톤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는 대학교 새내기 정도의 앳된 아가씨도 몇몇 보인다. 화대종주 산행도 어려운데, 화대를 뛰어서 주파한다니....'젋으니까' 하고 치부하기에는 그저 놀랍기만 하다. 서로에게 파이팅을 주고 받고....
▼ 산악마라톤 회원들
노고단 대피소의 개방시간이 새벽 3시기 때문에 무리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는데 잠시 산악마라톤 젋은이들의 스피드에 맞추어 걷다보니 금새 다리에 무리가 온다. 여기서 10분을 무리하면 나중에 한시간 이상의 후유증으로 나타날수 있기 때문에 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피드를 늦추니 산악마라톤 회원들은 금새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 참샘터 이정표
다시 혼자의 길이다. 내가 타고온 순천발 기차가 구례구역에 도착시간하는 시간은 새벽 00:01분, 서울발 기차가 구례구역에 도착하는 시간은 00:09분 이므로, 분명 화대종주를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산꾼들이 슬슬 뒤에 보일 때도 되었는데....
▼ 국수등 이정표
돌멩이 투성인 등산로는 국수등 이정표를 지나면서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새벽의 화엄사 계곡길은 서늘하기 조차 하다. 산행을 하기에는 시원한 편이나 문제는 다리다. 등산로의 경사가 급해질수록 속도는 비례하여 떨어지고 다리의 피로도 급격하게 커진다.
▼ 집선대 이정표
집선대 이정표를 지나면서 등산로는 훨씬 거칠어진다. 경사도 급하고 돌길도 뒤죽박죽이다. 가픈숨을 몰아쉬며 엉금엉금 기다보니 언제부턴가 뒤따르던 산객들이 우루루 나를 추월해 나간다.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돌길로 악명(?)이 높다. 30여년전 대학생 시절에 친구들과 노고단에서 화엄사로 내려가면서 질렸던 그 돌길이 아닌가!. 하물며 오늘은 오르막길이다....
한참(?)의 전투끝에 시멘트포장의 임도가 눈앞에 나타난다. 무넹기(코재) 기점이다. 이곳부터 노고단 대피소까지 등산로는 비교적 무난하기 때문에 화엄사 계곡의 돌길은 비로소 벗어난 셈이다.
▼ 무넹기 이정표
[무넹기]는 (달궁으로 빠지는 노고단) 물을 (화엄사쪽으로) 넘겼다는 뜻이라고 한다.
무넹기 언덕에 올라서니 지리산의 찬바람이 세차게 몰아친다. 벗었던 자켓을 입어도 찬공기가 살속 깊숙이 파고든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45분, 약 2시간 15분이 걸렸다. 양호한 시작이다. 노고단 대피소의 출입문은 아직 굳게 닫혀있고, 이른 시간에 도착한 산객들은 대부분 찬바람을 피해 대피소옆 식수장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산악마라톤 회원들도.....
▼ 노고단 대피소 출입문
▼ 노고단 대피소에 대기중인 산객들
새벽 2:50분에 노고단 대피소 출입문이 열리면서 본격적인 지리산 종주 산행이 시작된다. 산객들중 누구는 "이참에 노고단 정상을 가볼까" 하는데 노고단 정상은 10:00~15:30까지만 개방하기 때문에 이시간에는 출입이 통제된다. 아쉽지만 노고단고개에서 노고단 정상을 한참 바라본후 지리산종주 출발점에 섰다. 지리산 제7경 노고단 운해는 언제나 한번 볼수 있으려나.....
노고단고개는 노고단대피소에서 0,5km를 올라와야 한다. '지리산종주시점' 앞에 서니 다시 전투력이 살아난다...
▼ 노고단고개(1440m) 출입문 (종주시점)
아직은 새벽 3시를 조금 넘긴 밤중이라 산객들의 헤드렌턴 불빛만 사방으로 흩어진다. 이 시간 그것도 깊은 산속에서 정체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다른 산객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는 앞선 산객의 꽁무니만 뒤쫒을수 밖에 없다.
이렇게 자의반 타의반 밀려가다 보니 어느듯 돼지령과 임걸령을 통과한다. 이정표가 이곳이 그곳임을 알려줄 뿐 어둠속이라 아무런 형체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돼지령]이라는 지명은 예로부터 돼지들이 좋아하는 둥굴레가 많이 나는 곳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 돼지령 (1390m)
[임걸령]은 옛날 녹림호걸(綠林豪傑)들의 은거지, 즉 주변에 키 큰 나무가 호걸처럼 많이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의적 두목인 임걸(林傑)의 본거지라 하여 ‘임걸령’이라 부른다고 한다. 능선 10m쯤 아래에 임걸령샘터가 있는데 한겨울 눈이 펑펑 내리고 얼음이 꽁꽁 얼어도 이곳만큼은 물이 콸콸 나오는 신비의 샘이며,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솟는다.
▼ 임걸령 샘터 표시판
노고단고개에서 4.5km 지점이 노루목이다. 직진하면 삼도봉, 반야봉은 왼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반야봉까지는 왕복 약 2km, 1시간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산행력이 뛰어난 산객들은 반야봉을 다녀온다. 어떡할까? 지난번 성중종주 때도 생략을 했었는데....아쉽지만 오늘도 반야봉 등정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아직 체력은 괜찮지만....혹시 후반에 다리가 풀려 화대종주 전체를 망칠수도 있기 때문이다.
▼ 노루목 (1498m)
[노루목]은 흔히 노루가 자주 다니는 길목이나 넓은 들에서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좁은 지역을 말한다. 지리산 주능선의 노루목도 예외 아니다. 이곳의 암두(巖頭) 모양새가 마치 반야봉에서 내려지르는 산줄기가 산중턱에서 잠깐 멈추었다가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피아골로 내려다보는 것 같아 부르게 된 이름이다. 또 노루가 지나다니는 길목이란 얘기가 전해온다.
노루목을 지나고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약 1km는 오르고 내림이 있는 돌길이다. [삼도봉]은 이름 그대로 전남, 전북, 경남 3도의 경계이며, 정상부는 심하게 주름진 암릉이지만 전망이 좋아 지리산 주능선과 대성리 방향의 멋진 운해를 감상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너무 이른시간이라.....
▼ 삼도봉 (1550m)
삼도봉을 지나면 곧바로 너덜길의 등산로는 높이를 확 낮추어 화개재로 이어진다. 삼도봉의 해발고도가 1550m, 화개재는 1316m, 두구간 간격은 0.8km의 짧은 거리이기 때문에 하강속도가 빠르다.
▼ 화개재
[화개재]는 삼도봉과 토끼봉 사이의 허리목이자 뱀사골과 화개골을 연결하는 노루목이다. 북쪽 뱀사골에서 올라오면 만나는 첫 능선이 화개재다. 화개재는 옛날 화개장터가 있던 자리다. 화개장터는 지리산 능선에 있었던 장터 중 하나였으며, 경남에서 연동골을 따라 올라오는 소금과 해산물, 전북에서는 뱀사골로 올라오는 삼베와 산나물 등을 물물교환 했다고 한다. 이 높은 곳까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와서 물물교환을 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화개재를 지나면서 서서히 여명이 밝아온다. 토끼봉까지 약 1.2km는 삼도봉에서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한다.
토끼봉 이정표 옆에는 헬기장이 자리잡고 있다.
▼ 토끼봉 (1534m)
[토끼봉]은 반야봉에서 방위가 묘향(卯向)이라 하여 묘봉으로 불리다가 토끼봉으로 불리게 되었다. 여순사건 이후 지리산으로 숨어든 빨치산들이 봉우리에 꽃이 만발한 모습을 보고 꽃대봉이라 불렀다고도 전한다.
날이 밝으면서 지리산도 어둠에서 깨어나고 있다. 산아래로는 운해가 산허리를 감으며 천하절경 '노고단 운해'의 맛뵈기를 보여준다. 산을 올라온 사람만 가질수 있는 특권이다....
▼ 토끼봉에서 바라본 운해
일출이 가까와지는 것 같은데 숲길의 등산로에서 좀처럼 조망포인트를 찾기 어렵다. 어렵사리 찾은 조망포인트에서 바라본 천왕봉은 일출의 기운은 머금고 있다. 여기서 마냥 기다리고 있기에는 가야할 길이 너무 멀다. 명선봉 아래에서 다시 보게 된 일출은 이미 절정을 조금 넘긴 상태다. 5분만 더 빨리 걸었더라면 명선봉에서 멋진 일출의 장관을 맞았을텐데....
▼ 천왕봉 일출 모습 (아래쪽 사진은 산악동호회에서 펌)
명선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여전히 걷기 불편한 너덜길이며, 암릉아래의 경사지에는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명선봉]은 연하천 발원지이며 남서쪽 봉우리로서, 명선봉에서는 대성리 의신마을과 삼정마을이 계곡 안에 묻히듯 가라앉은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 명선봉 올라가는 등산로
▼ 명선봉(1586m) 이정표
명선봉 이정표에서 연하천 대피소까지 약 0.5km는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내리막길이다. 명선봉은 명선봉 이정표 뒤쪽으로 약간 올라간 지점이며, 별다른 특징은 없다고 한다.
▼ 연하천대피소로 내려가는 나무계단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6시 10분, 화엄사에서 약 17.5km의 거리를 다섯시간 반이 주파한 셈이다. 아직까지는 비교적 순조로운 진행이다. 연하천대피소에서 백두21기 산우들을 만났다. 성삼재에서 새벽 3시에 출발하였다고 한다. 나는 '나홀로 화대종주' 임을 알려주고 다음코스에서 뵙기로 하였다.
▼ 연하천대피소(1480m)
[연하천]은 높은 지대에도 불구하고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구름 속에서 흐르고 있다 하여 ‘烟霞泉’이라 했다고 한다. 연하천은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우면서 물이 넘쳐흐르는 곳으로 사시사철 등산객이 끊이질 않는다. 지리산 종주객들이 짐을 재정비하고 물을 보충하는 주요 지점이기도 하다.
연하천대피소를 통과하면 '삼각고지 지킴터'와 '삼각고지 이정표'를 지나며 산속에는 기암괴석들이 눈길을 끌기 시작한다. 특히 형제봉 주변에는 크고 작은 기암괴석들이 많다.
▼ 형제봉 주변 기암괴석群
등산로 좌우의 기암괴석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작은 언덕에 이르게 된다.'긴급신고 안내표지판'에 누군가 매직으로 '형제봉' 이라고 적어 놓았다. 바로 옆 바위에 올라서면 천왕봉 방향의 조망이 아주 좋다. 아래로는 형제바위의 상단부분이 보이고 산능선 중간에 벽소령대피소도 눈에 들어온다.
▼ 형제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방향 (앞쪽이 형제바위, 중앙왼쪽이 벽소령대피소)
형제바위는 너무 커서 바로밑 등산로에서는 전체 모습을 사진에 담기 어려우며, 형제바위를 지나 한참 밑에서 뒤돌아 보면 전체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 형제바위
[형제봉]은 우뚝 솟은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와 비슷한 모습이라 해서 명명됐다. 언뜻 보기에는 한 개의 큰 석상(石像)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서로 등을 맞대고 서 있는 두 개의 석상이다. 옛날 지리산에 두 형제가 수도하고 있을 때 산의 요정 지리산녀의 간곡한 유혹을 받았으나 형제가 다 같이 이를 물리치고 도통성불 하고, 성불한 후에도 집요한 산녀의 유혹을 경계하여 도신(道身)을 지키려고 서로 등을 맞대고 너무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었기 때문에 그만 몸이 굳어 두 개의 석불이 됐다고 전한다.
형제봉 아래 마을인 마천 삼정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부자(父子)바위, 부자봉이라고 부르며, 그 유명한 '나뭇꾼과 선녀'의 전설에 나오는 연못 '선유정'이 지금 삼정마을에 있고, 나무꾼 인걸이 선녀의 날개옷을 훔친 후 선녀와 어쩌고저쩌고 해서 2남2녀를 낳고 달콤하게 살아가던 중 장난으로 꺼내 준 날개옷을 입고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 버리는 바람에 시아버지, 남편, 아들 삼부자(三父子)가 기다림에 지쳐 죽어서 망부석이 되어 벽소령에 솟아올랐다는... 그래서 자세히 보면 바위가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이고, 지금도 매년 초복에 제를 올리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 뒤돌아본 형제봉과 형제바위
형제봉을 내려서면 벽소령대피소다. 오전 7시 반을 넘기고 있다.
[벽소령]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종주코스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지리산의 허리에 해당하는 셈이다. 예로부터 화개골과 마천골, 즉 지리산의 남북을 연결하는 고개 중의 대표적인 곳이다. 벽소령에서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碧宵嶺'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벽소령의 달은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다.
▼ 벽소령대피소(1350m)
벽소령대피소를 지나면 좌측에는 깍아지른 절벽이 등산로를 덮칠듯 아슬아슬하며, 오른쪽도 산아래로 떨어지는 절벽이다. 약 200m 거리이며,'낙석주의' 팻말이 위험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삼국지에 나오는 '棧道'가 이런 모습일까...
▼ 벽소령대피소→덕평봉 낙석주의구간
낙석주의구간을 지나면 등산로는 덕평봉으로 향한다. 멀리서 바라보는 덕평봉은 둥그스럼한 봉우리의 모습이다. [덕평봉]은 정상부가 각이 지지 않고 평평한 것이 덕스러워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진행방향으로 바라본 덕평봉(1651m)
덕평봉 아래 등산로에는 선비샘이 있는데 오가는 산객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귀중한 샘이다.
▼ 선비샘(1450m)
[선비샘 유래] 옛날 덕평골에 화전민 이씨라는 노인이 살았다. 노인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서, 죽어서라도 남에게 존경을 받고 싶어 자식들에게 자신의 묘를 상덕평의 샘터위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였다. 효성스러운 자식들은 그의 주검을 샘터위에 묻었고, 그로부터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샘터의 물을 마시고자 하면 자연스럽게 허리를 구부려서 무덤으로 절을 하는 형상이 되어 죽어서 남들로부터 존경 아닌 존경을 받게 된 것이다. (안내판)
선비샘을 지나 돌길을 다시 내리고 올라가면 천왕봉이 한눈에 조망되는 전망포인트가 나온다. 많은 산객들이 휴식터이기도 하다...
▼ 천왕봉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바로 앞산에 다양한 형태의 바위들이 보인다. 칠선봉과 주변의 기암괴석들이며, 칠선봉은 덕평봉에서 약 2.4km의 거리에 있다.
▼ 칠선봉(1558m)과 주변의 기암괴석들
[칠선봉]은 봉우리 자체가 암장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일곱 개의 바위가 오밀조밀 모여서 정상을 이룬 모습이 마치 일곱 선녀가 한자리에 모여 노는 형상과 같다고 해서 칠선봉이라 불린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비경의 암봉들이 구름이 스쳐 지나갈 때면 더욱 아름답고 고요한 운치를 돋운다.
칠선봉을 지나 영신봉 방향을 바라보면 커다란 암봉 하나가 마치 혹처럼 튀어나온 모습이 보인다. 그 하단에서부터 암봉옆으로 우회하는 가파른 나무계단이 이어지는데, 이곳이 영신봉을 오르는 난코스 아닌 난코스다.
▼ 영신봉 방향의 기암
나무계단을 올라와 작은 암릉을 지나오면 등산로에 영신봉 이정표가 있으며, 그 이정표 왼쪽의 산봉우리가 영신봉이다.
▼ 영신봉(1652m) 이정표와 진행방향으로 보이는 촛대봉(왼쪽)
영신봉을 내려서면 곧바로 세석평전과 세석대피소로 이어진다. 세석평전으로 내려와 영신봉을 뒤돌아 보면 많은 기암괴석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신봉]은 말 그대로 신령스런 봉우리라는 의미이며, 낙남정맥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 뒤돌아본 영신봉
▼ 세석대피소(1560m)
세석대피소 아래로 펼쳐져 있는 [세석평원]은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고 데서 유래했다. 해발 1,703m의 촛대봉과 1,651m의 연신봉을 좌우로 하고 둘레 8km에 걸쳐 넓게 펼쳐져있는 평원이며, 세석평전에는 바람과 운무가 끊기지않고 지속되는 기후 특성때문에 큰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2m안밖의 작은 나무들만 성장하는데 이나무들을 멀리서 볼때 평원을 연상케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녘의 개마고원이라고도 불리며, 한국 특산식물인 구상나무도 자생하고 있다. 매년 5월말에서 6월초가 되면 세석평전은 연분홍빛으로 붉게물들인 철쭉꽃으로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세석대피소에서 짧은 휴식과 요기 후 다시 촛대봉을 향하는데 갑자기 다리 힘이 확~ 풀린다. 장거리 산행시 고질병처럼 나타나는 쥐(근육경련)가 난 것은 아니지만 다리의 근력이 현저히 약해진 것이다. 세석대피소에서 촛대봉까지는 0.7km다.
▼ 촛대봉 방향 등산로
촛대봉 위로는 새파란 하늘이 가을을 닮았다. 세차게 몰라치는 강풍은 그칠줄 모른다. 보통때면 초여름의 날씨라 자켓을 벌써 벗었을 텐데 오늘은 강풍때문에 아직도 자켓을 여미게 된다.
▼ 촛대봉(1703m)
[촛대봉 전설] 지리산 촛대봉에는 세석철쭉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옛날 언진이라는여인이 남편 호야와 대성계곡에서 행복하게 살았는데 자녀가 없어 고민하던 중 어느날 흑곰에게서 세석고원에있는 신비의 물을 마시면 자식을 낳을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남편과 상의없이 산신령이 금기한 영신봉 음양수를 마셨다, 평소 흑곰과 앙숙이던 호랑이가 일러바쳐 산신령의 노여움을산 여인은 평생 남편과 생이별하고 세석의 철쭉밭을 가꿔야하는 벌을 받아야했다, 여인은촛대처럼 생긴 산꼭대기에 촛불을 켜고 천왕봉 산신령에게 용서를 빌다가 돌로 굳어버렸다.
촛대봉에서는 천왕봉과 노고단 양방향의 조망이 시원하다. 미세먼지와 황사가 조금만 덜했으면 정말로 청명한 조망일텐데.... 작년 성중종주시 안개 때문에 한치앞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에 비하면 오늘은 엄청 좋은 편이다....
▼ 촛대봉에서 바라본 세석평전과 반야봉(중간뒤)
천왕봉을 바라보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 하다. 그 앞쪽으로는 삼신봉, 화장봉, 연하봉과 제석봉 고사목 군락지가 순서대로 눈에 들어온다.
▼ 촛대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촛대봉을 내려서면 곧바로 삼신봉(1807m)으로 이어지는데 등산로는 크고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기 때문에 어디가 삼신봉인지 화장봉인지 알기가 애매하다. 두개 봉우리는 별다른 이정표도 없다. 멀리 촛대봉에서 볼때는 연하봉까지는 무난한 능선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등산로에 들어서면 의외로 오르고 내리는 바위길이 무한 반복된다.
촛대봉을 오르면서 풀려버린 다리는 좀체 나아질 기미가 없다. 무릎부근에 근육경련 기미가 있어 스프레이 파스도 뿌려보고.... 많은 산객들이 추월해 간다.....
▼ 고사목
화장봉에서 연하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백만불짜리 절경이다. 보고 또보고..... 중국 운남성 차마고도 트래킹 코스의 일부를 보는 듯하다
▼ 화장봉(1678m)에서 바라본 연하봉(중간)과 천왕봉(맨뒤)
▼ 뒤돌아본 화장봉(오른쪽), 삼신봉(좌측)과 촛대봉(좌측 맨뒤)
연하봉 주변은 기암괴석의 경연장이다. [연하봉]은 구름이 노는 아름다운 봉우리라는 뜻으로 ‘지리 8경’ 중의 하나다
[연하선경] 짙은 안개사이로 고사목과 기암괴석들의 모습에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여기가 바로 지리산 10경중의 하나인 연하선경의 바위군락지 인 것이다. 세석평전과 장터목 사이의 연하봉은 기암과석과 층암절벽 사이로 고사목과 어우러진 운무가 홀연히 흘러가곤 하여 이곳에 앉아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천왕봉을 향해 힘차게 뻗은 지리산의 크고 작은 산줄기 사이사이에는 온갖 이름 모를 기화요초가 철따라 피어 지나는 이의 마음을 향기롭게 한다. 이끼 낀 기암괴석 사이에 피어 있는 갖가지 꽃과 이름모를 풀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지리산과 어우러져 마치 신선의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고산준령 연하봉의 선경은 산중인을 무아의 경지로 몰고 간다. (네이버 백과사전)
▼ 연하봉(1730m) 기암괴석群
연하봉을 지나 우측능선으로 보이는 또다른 바위군락이 일출봉이다. 일출봉은 현재 출입제한 지역이며, 일출봉 이정표는 등산로 옆에 세워져 있다.
▼ 연하봉→장터목 방향의 등산로와 일출봉(맨 우측?)
▼ 뒤돌아본 연하봉(앞)과 촛대봉(좌측 맨뒤)
▼ 일출봉 이정표
일출봉 이정표를 지나면 장터목대피소로 내려서게 된다.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세석대피소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말았다. 장터목대피소는 많은 산객들이 휴식과 요기를 취하는 곳이다. 나도 이온음료를 구매하여 수분과 전해질을 보충하고, 허기도 달래고... 물은 보충하기 위해 샘터를 찾으니 한참(?) 밑에 있다. 짧은 거리지만 풀린 다리로는 멀게만 느껴진다.
▼ 장터목대피소(1553m)
[장터목]은 옛날 천왕봉 남쪽 기슭의 산청 시천 주민과 함양 북쪽 마천 주민들이 매년 봄가을 이곳에 모여 장(場)을 세우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한 데서 이름 붙여진 이름이다. (안내판)
장터목대피소에서 짧은 휴식을 취하고 다시 힘을 내본다. 장터목을 지나면 등산로는 가파르다. 풀린 다리지만 한발두발 꾸준히...짧은 거리의 오르막을 올라서면 제석봉까지는 비교적 완만하다. 평지나 완만한 오르막에서는 아직까지 다리의 움직임(걸음)이 괜찮은 편이다....
▼ 제석봉 방향의 등산로
[제석봉]은 천왕봉(天王峰,1,915m)과 중봉(中峰,1,874m)에 이어 지리산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1,806m)이다. 봉우리 근처에 산신에게 제를 올리던 제석단이 있고, 그 옆에 늘 물이 솟아나는 샘터가 있어 예로부터 천혜의 명당으로 알려졌다. 제석봉 일대 약 33만㎡의 완만한 비탈은 고사목으로 뒤덮여 있으며, 나무 없이 초원만 펼쳐져 있다. 한국전쟁 후까지만 해도 아름드리 전나무·잣나무·구상나무로 숲이 울창하였으나 자유당 말기에 권력자의 친척이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리고 거목들을 무단으로 베어냈고, 이 도벌사건이 문제가 되자 그 증거를 없애려고 이곳에 불을 질러 모든 나무가 죽어 현재의 고사목 군락이 생겼다고 한다.
▼ 제석봉 전망대
▼ 제석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제석봉에서 천왕봉까지 1.1km 구간도 의외의 다이나믹한 암릉구간이며, 주변에 다양한 모습의 기암괴석들을 만날수 있다.
▼ 제석봉→통천문 방향 등산로
천왕봉을 0.5km 앞두고 [통천문]을 통과하게 된다. 천왕봉을 지키며 하늘과 통한다는 문이다. 예로부터 부정한 자는 출입을 못하며, 신도 하늘로 오르려면 통천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전설이 있다. 통천문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천상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그곳은 삼라만상의 희노애락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일까?....
▼ 통천문
통천문을 지나면 천왕봉까지는 마지막 깔딱고개다. 하늘길에도 고통은 여전하다. 하지만 오래된 철계단을 통해 오르는 바위길은 주위의 멋들어진 구상나무 주목의 자태와 고사목까지 어우러져 길은 험해 힘은 들어도 힘든 만큼 천왕봉을 오르는 이에게 마지막으로 황홀경을 선사해준다...
▼ 통천문→천왕봉 방향 등산로
드디어 천왕봉이다. 시간은 정오를 넘겨 12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다. 화엄사에서 천왕봉까지 32.5km, 약 12시간이 걸린 셈이다.
천왕봉에는 정상의 기쁨을 즐기는 산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줄을 서 있는 산객들이 많아 정상석 인증샷은 포기......
내마음에 천왕봉을 새겼으니 이보다 더 멋진 인증샷이 있으랴...
▼ 천왕봉(1915m)
[천왕봉] 지리산의 제 1경은 천왕일출(天王日出)이다. 이른 새벽 동틀 무렵 해발 1,915m의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에 올라보면 끝없이 펼쳐진 회색 구름바다 저 멀리 동녘 하늘에 희뿌연 서기가 어리기 시작한다. 이것도 잠깐 동녘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물들면서 휘황찬란한 오색구름 속에서 진홍빛 거대한 태양이 눈부신 햇살을 부채살 같이 뻗치며 불쑥 솟는다. 이 천왕봉 해돋이는 지리산 10경중 제1경으로 이 일출을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삼대에 걸쳐 적선을 해야 된다는 속설도 있다.
천왕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의 물결이 감동이다. 눈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지나온 종주길이 노고단에서 제석봉까지 파노라마 처럼 몰려온다....
천왕봉 (문효치)
산은
冠을 쓰고
의젓하게 앉아 있더라.
수많은 풍상이
할퀴고 지나갔지만
산은 꿈쩍도 아니한 채
잔기침 몇 번으로
꼿꼿하게 앉아 있더라.
기슭에 가득
크고 작은 생명들을 놓아기르며
수염 쓰다듬고
앉아 있더라.
긴 장죽에
담배 연기 피워 올리며
스르르 눈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더라.
▼ 천왕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중간 맨뒤가 반야봉)
지리산을 '어머니의 산'이라 한다. 어머니는 인자하고 포근한 가슴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강인함이 숨어있다. 지리산도 멀리서 보면 온화한 육산의 모습이지만, 지리산에 들어와보면 불을 쪼개 솟아난 수많은 기암괴석과 바위들을 품고 있음을 보게 된다.
[지리산(智異山)]의 명칭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달라진다" 라는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왕봉 정상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시작되다’란 정상비석이 있다. 이 내용은 전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닌 것이다. 옛날에는 ‘萬古 天王峰 天鳴猶不鳴(만고 천왕봉 천명유불명)’이라 새겨진 청석표주와 지리산 산신령을 봉안하는 성모사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명의 ‘하늘은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는 뜻을 그대로 쓴 것이다. 서산대사는 금강산, 구월산, 묘향산과 더불어 지리산을 평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장엄한 산이라 했다. 그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지리 8경’ 중의 으뜸인 ‘천왕일출’이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광경이다.
지리산 위에서 (김대식)
구름은 골짝마다 가득히 깔려있고
굽이굽이 산들은 펼쳐져 있는데
멀리 잿빛 산들은 구름 위에 올라 있다.
능선마다 울긋불긋 피어나는 단풍들
계곡마다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
산길마다 사람들의 활짝 핀 모습들
생사고락은 산에도 있는 것
풍상에도 꿋꿋이 지켜온 신념
고사목이 되어서도 그 기상 변함없네.
세월에 묻힌 숱한 비화들
적도 동지도 한겨레인데
지리산은 말없이 안개만 깔고 있다.
통천문을 지나서 천왕봉에 오르면
하늘이 내려와 산아래 깔려있고
광활한 지리산은 하늘을 품고 있다.
▼ 중산리 방향 하산길
중산리 방향으로 하산하는 산객들을 뒤로하고 앞을 바라보니 지척에 천왕봉과 어깨를 견주는 중봉이 보인다.
▼ 천왕봉에서 바라본 중봉(우측 앞)
오후 1시가 가까워졌다. 이제는 하산을 서둘러야 한다. '정상은 하산을 하고서야 완성된다'고 하지 않는가.... 천왕봉에서 중봉까지는 0.9km의 짧은 거리지만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천왕봉 이후는 내리막만 있을 것이란 생각은 오판이다. 중봉도 그렇고, 중봉 이후도 치밭목대피소 까지는 크고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 올려다본 중봉
중봉은 지리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천왕봉을 상봉이라고도 한다. 중봉에서도 사방의 조망이 좋다. 서북쪽으로는 웅석봉과 멀리 황매산이 보이고...아래로는 가야한 치밭목대피소가 아련하다. 지나온 천왕봉에는 산객들의 크고 작은 움직임까지 느껴진다.
▼ 중봉(1874m) 이정표 (왼쪽 맨뒤가 황매산)
▼ 중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행복 (허형만)
지리산에 오르는 자는 안다
천왕봉에 올라서는
천왕봉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천왕봉을 보려거든
제석봉이나 중봉에서만
또렷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살아가는 이치도 매한가지여서
오늘도 나는 모든 중심에서 한발 물러서
순해진 귀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행복해 하고 있다.
▼ 내려다본 중산리 방향
▼ 중봉에서 내려다본 치밭목대피소(우측 중앙)
중봉 아래에서 부산에서 왔다는 산객 한명을 만났다. 혼자 산행을 왔다면서 내려가는 길을 함께하자고 한다. 많이 지쳐보여 그러자고 했는데....이 때문에 많은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다. 걸음걸이가 늦어지고, 자꾸만 쉬자는 바람에....
중봉을 지나면 산은 점점 허리를 낮추지만 중간중간 만만치 않은 암릉들을 지나게 된다. 지리산은 암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진행방향으로 바라본 써리봉
[써리봉]은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오르다 바라보면, 써리봉 바위가 농기의 써래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 써리봉에서 뒤돌아본 천왕봉(좌측)과 중봉(중간)
중봉에서 써리봉과 치밭목대피소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상대적으로 산객들의 발길이 적은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 제법 많은 산객들이 보인다. 이구간은 산방기간후 5월 1일부로 개방되었는데 첫번째 토요일을 맞아 화대종주를 나선 산객들이 많은 것이다. 내가 다니는 서울의 모산악회에서도 몇팀이 내려온 것 같다....
▼ 써리봉→치밭목대피소 방향의 등산로 주변 풍경
중봉에서 치밭목대피소까지 2.1km의 거리, 너무도 멀게만 느껴진다. 하산 속도가 늦은 것도 있고 피로도 그만큼 쌓인 탓이다.
▼ 치밭목대피소
하산이 더 늦어지면 곤란해질 것 같아 치밭목대피소에서 동행하던 부산사나이에게 작별(?)을 고하고 하산에 고삐를 당긴다. 무리를 하여 속도를 높혀 보지만 이곳의 악명높은 바위길(너덜길)에 막혀 좀처럼 진도가 나지 않는다. 약 6~7km 이어지는 울퉁부퉁 바위길에 발바닥은 불이 나고, 무릎도 뻐끈하게 이상징후가 나타난다. 화대종주의 어려움을 이곳에서 제대로 실감한다.....
▼ 무제치기 다리
[무제치기 폭포]는 '무지개를 치는 폭포'라는 뜻에서 이름붙은 폭포다. 나무사이로 폭포가 보이는데, 접근로를 찾을 수가 없다...
▼ 무제치기 폭포 (펌)
가도가도 끝이 없다. 치밭목대피소에서 유평마을까지는 약 6.2km의 거리, 대부분은 울퉁불퉁 바위길이고, 일부는 키를 넘은 산죽길이라 지겹고 고달프다. 30여년 전에 삼총사 친구들과 함께 유평마을에서 천왕봉으로 올라갔던 기억, 그때의 진절머리나고 험한 바윗길의 악몽이 되살아 난다. 지금도 그때와 별로 바뀐것이 없다. 유평마을이 가까워지면서 설치되어 있는 나무계단 外에는....
▼ 유평마을로 하산하는 길....
길고 진절머리나는 하산길은 유평마을로 내려서면서 끝이 났지만 유평마을에서도 다시 차도를 따라 유평매표소까지 걸어 내려가야 한다. 차도 옆으로는 그 유명한 대원사 계곡이 자리잡고 있다.
▼ 유평마을 등산로 기점
유평마을에서 대원사로 내려가는 약 1.5km는 계곡을 끼고 있어 그나마 지루하지는 않다....
▼ 대원사
[대원사 일원]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대원사는 48년(신라 진흥왕 9)에 연기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절은 임진왜란(1592)과 여순사건(1948)때 화재로 폐허가 되었으나, 1955년 법일스님이 다시 세웠다. 이 절은 언양의 석남사와 충남 수덕사의 견성암과 더불어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과 다층 석탑,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 등이 있다. 이 절을 둘러싼 경관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절에서 조금 올라가면 용이 100년간 살았다는 용소가 있는데, 바위가 뚫려서 굴처럼 된 것으로 항아리 모양을 이루고 있다. 깊이는 약 5m 정도 인데,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박에도 대원사 주위에는 가락국의 마직막 왕인 구형왕과 관련된 지명이 이곳저곳에 남아 있다. 그가 소와 말의 먹이를 먹였다는 소막골, 그가 넘었다고 하는 왕산과 망을 보았다는 망덕재, 군량미를 저장하였다는 도장굴 등이 오늘날까지 전설ㄹ 전해지고 있다. (안내판)
대원사에서 유평매표소까지는 약 2km이며, 그 길을 따라 깊은 대원사계곡이 이어진다. 이곳 풍경도 30여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차도가 비포장길에서 잘 정돈된 아스팔트 길로 바뀌었다는 것 말고는.... 고등학교 시절 삼총사가 여름방학때 대원사계곡에 놀러왔다가 유평매표소로 내려가면서 잠깐 만났던 여학생이 떠오른다. 짖궂은 친구가 여학생이 흘린 카메라 케이스를 주워서는 바로 돌려주지 않고 유평매표소까지 가는 내내 농을 걸었는데, 그 여학생이 과감하게 카메라 케이스를 포기하는 바람에.... '닭 쫒던 개 신세'가 되었던.... 그 카메라 케이스는 어떻게 했더라?....
▼ 대원사계곡 모습
유평매표소에 도착해보니 하루에 몇대 없는 진주향 버스가 금방 출발할 태세다. 바쁘게 승차권을 끊어 탑승하는 바람에 유평매표소를 사진에 담지 못하였다. 다음에 다시 와야 하나....^^;;
▼ 유평매표소 (펌)
원지에 내려 목욕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화대종주의 대장정이 완성되었다. "누구나 화대를 꿈꾸지만 아무나 그 꿈을 이룰수 없다"는 말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느낀 하루였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