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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과하욕(受袴下辱)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며 굴욕을 참는다는 뜻으로, 큰 뜻을 품은 사람은 쓸데없이 작은 일로 시비를 벌이지 않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受 : 받을 수(又/6)
袴 : 사타구니 과(衣/6)
下 : 아래 하(一/2)
辱 : 욕될 욕(辰/3)
(유의어)
고하지욕(絝下之辱)
과하(跨下)
과하욕(袴下辱)
과하지욕(胯下之辱)
면출과하(俛出袴下)
수과하욕(受袴下辱)
한신출과하(韓信出袴下)
출전 : 한서(漢書) 한신전(韓信傳)
학교 동급생 끼리나 동네 불량배들이 시비를 걸어오며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라고 강요하는 일이 있다. 수가 달려, 또는 힘이 약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때 그 치욕은 평생 갈 것이다.
그런데 힘이 있으면서도 굴욕을 참고 기어나간 사람이 있어 오랫동안 기림을 받는다. 바로 젊을 때의 한신(韓信) 이야기다. 한 때의 굴욕을 참지 못하고 울컥하여 다툼을 벌였다면 몸이 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과하욕(受袴下辱)은 큰 뜻을 품은 사람은 쓸데없이 작은 일로 시비를 벌이지 않는 것을 뜻하는 말이 됐다. 袴(과)와 같이 사타구니를 뜻하는 胯(과)를 써서 과하지욕(胯下之辱)이라고도 한다.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에 한신의 불우했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진한(秦漢) 교체기에 초(楚)의 항우(項羽)를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궁지까지 몰아넣었던 장군이고, 유방(劉邦)이 통일한 뒤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했던 그 한신이다.
평민으로 지낼 때 그는 가난하고 행실도 좋은 편이 아니라서 추천해 주는 사람도 없이 빈둥거렸다.
어느 때 성 밑 회수(淮水) 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한 아낙네가 한신의 굶주린 모습을 보다 못해 며칠간 밥을 주었다. 후에 제후가 되어 여인에 천금으로 은혜를 갚은 것이 일반지은(一飯之恩) 고사다.
이런 모습을 보고 한 무뢰배가 한신에게 키도 크고 칼도 차고 있지만 겁쟁이라며 시비를 걸었다. '용기가 있으면 나를 찌르고 그렇지 않으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信能死, 刺我, 不能死, 出我袴下).'
물끄러미 불량배를 바라보던 한신은 머리를 숙이고 그의 가랑이 밑을 기어갔고 사람들은 모두 겁쟁이라 비웃었다.
대인 한신은 뒤에 자신을 모욕한 이 무뢰배를 불러 중위(中尉)에 임명하며 말했다. '분을 참지 못하고 만일 그 때 죽였으면 이름을 얻을 수 없어 참았기 때문에 오늘이 있게 됐다고...'
이 일로 한신은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통일의 대업을 통해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잠시의 수모를 견디고 보다 큰 뜻을 도모할 때 즐겨 인용되는 일화다.
그렇다고, 한신의 행동이 찬사만 받은 것은 아니다. 그가 결국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한 것도 그런 비굴한 행동이 결국 비극적 종말의 전조가 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는 것은 어떤가?
누군가 나를 모욕할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올바르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면,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적확한 것이 될 수 있을까?
한신이 무뢰배 가랑이 사이를 기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과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한신과 같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힘도 미약하고, 미래에 대한 그 어떤 대단한 것도 얘기할 수 없는 소시민에게 한신의 예를 얘기하는 것은 공허하다.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전제로 한 모욕감의 수용과 배고픈 자존감 사이에서의 선택을 약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적어도 그 선택을 강요하는 당사자가 무뢰배가 아닌 의식을 가진 강자라면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그가 모욕하는 대상은 대부분이 비겁함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에도 수과하욕(受袴下辱)을 감수하며 미래를 도모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광해군(光海君)이다.
광해군은 실각 후에도 그가 왕위에 있던 기간보다 긴 19년을 더 산다. 연산군(燕山君)이 폐위된 후 불과 2개월 만에 죽은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가 생존했던 세월은 결코 행복한 시간이 될 수는 없었다. 그는 유배지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며느리 모두를 잃었다.
인조(仁祖) 정권이 그를 천수가 다할 수 있도록 배려 한 것도 아니다. 그를 죽이기 위한 무수한 음모가 있었지만 이원익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정말 힘들었던 것은 왕이었던 사람으로서는 차마 감내할 수 없는 치욕과 수모였다. 그를 감시하도록 붙여 놓은 하인이 영감이라 조롱하며 아랫목을 차지해도 그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그런 수모를 묵묵히 인내하며 버텨낸 것은 다시 복귀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겠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1641년(인조 19년) 7월 10일자 실록에는 광해군의 사망소식이 나온다.
그와 함께 그가 강화도에서 제주도로 옮겨 갈 때 지은 시 한편을 소개하고 있는데 듣는 자들이 비감에 젖었다며 고인을 위로하고 있다.
비감(悲感)
風吹飛雨過城頭(풍취비우과성두)
부는 바람 뿌리는 비, 성문 옆 지나는 길
瘴氣薰陰百尺樓(장기훈음백척루)
후덥지근한 장독, 백척으로 솟은 누각
滄海怒濤來薄幕(창해노도래박막)
창해의 파도 속에 날은 이미 어스름
碧山愁色帶淸秋(벽산수색대청추)
푸른 산의 슬픈 빛은 싸늘한 가을 기운
歸心厭見王孫草(귀심염견왕손초)
돌아오는 마음으로 왕손초를 실컷 보았고
客夢頻驚帝子洲(객몽빈경제자주)
나그네 꿈 자주도 제자주에 깨이네.
故國存亡消息斷(고국존망소식단)
고국의 존망은 소식조차 끊어지고
烟波江上臥孤舟(연파강상와고주)
안개 깔린 강 물결 외딴 배에 누웠구나.
과하지욕(袴下之辱)
바짓가랑이 밑을 지나가는 모욕이라는 뜻으로, 이보다 더 큰 치욕이 없을 때를 비유하는 말이다. 그리고 큰 뜻을 품은 사람은 하찮은 일로 논쟁을 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회음군열전(淮陰君列傳)에 기록되어 있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과 함께 한(漢)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 한신(韓信)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장차 나라의 최고 명장(名將)이 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있었다.
그는 '손자병법(孫子兵法)'을 좋아해 밤낮으로 열심히 탐독하였다. 또 천하의 최고 명장(名將)을 꿈꾸며 다른 무사나 협객들처럼 늘 보검을 차고 다녔다.
하루는 그가 주막(酒幕)에서 술로써 공허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술 몇 모금에 취기가 오른 한신은 졸린 두 눈을 비비며 습관적으로 옆구리에 찬 검을 뽑았다. 그리고는 긴 한숨과 함께 도로 집어넣었다.
그가 몸을 비틀거리며 주막을 나와 골목에 들어서자 회음(淮陰)의 푸줏간 패들 가운데 한 젊은이가 한신을 얕잡아보고 놀려 댔다. "보아하니 덩치도 크고 무예에도 꽤나 능한 자처럼 늘 보검을 차고 다니던데 어디 나와 한번 겨뤄보지 않겠느냐?"라고 시비를 걸어왔다.
이에 한신은 "어찌 감히 너와 겨루겠느냐. 오늘은 내가 급한 볼일이 있으니 그만 길을 비켜라"라고 하자 불량사내는 "검술은 몰라도 사람을 죽이는 법은 알고 있을 테지? 겁쟁이가 아니라면 그 검으로 내 목을 쳐 보거라."
한신이 한 발자국 물러서자 불량배는 더욱 신이 나서 말했다. "키는 8척인 놈이 배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네. 이깟 일에 벌벌 떨다니. 이 마저도 못하겠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 보라."라고 하며 불량배는 저잣거리 가운데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섰다.
두 사람의 오가는 고성에 구경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심한 모욕에 더는 참을 수 없어 한신은 손으로 보검을 꽉 잡고 한참 동안 그를 노려보았다.
"만약 저 자를 죽이면 나는 살인죄로 신세를 망칠 것이 분명해. 어쩌면 죽을 죄를 면치 못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명예나 체면을 지켜서 무엇하리."
한신은 불량배를 한참 훑어보더니 납작 엎드려 그의 다리 사이로 엉금엉금 기어 지났다. 모여 섰던 구경꾼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그 후 사람들은 한신을 "가랑이 사이로 지나간 놈"이라고 불렀다.
'인욕(忍辱)', 그것은 '치욕(恥辱)을 참는다'는 뜻이다. 큰일을 위해서는 목전의 작은 이익에 현혹(眩惑)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굴욕(屈辱) 또한 참고 견뎌낼 줄 알아야 한다.
주(周)나라 건국의 발판을 완전하게 닦아 놓은 문왕(文王)이 자기의 맏아들 삶은 국을 폭군 주왕(紂王)으로부터 받아 꾹 참으면서 마신 것이나,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한 후 스스로 부하 되기를 자청하고 말똥을 치우고, 심지어는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대변을 찍어 맛보았던 것도 대사(大事)를 위해서는 인욕(忍辱)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만약 그 때 문왕(文王)이나 구천(句踐)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들 아마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철학자는 "모욕(侮辱)과 수치(羞恥)를 겪으며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하면서 가장 오랫동안 그 교훈을 잊지 않게 해준다"고 말한다.
굴욕은 사람들에게 깊이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며 순조로운 상황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교훈을 몸소 체험하게 해 준다. 굴욕은 더 깊은 현실체험을 통해 사회를 정확히 이해하고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사고방식을 갖고 광활한 성공의 길을 개척할 수 있게 해준다.
세월이 지난 후의 일이지만 사기(史記)를 집필한 사마천(司馬遷)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신에 대한 논평(論評)을 통해 '만약 한신이 도(道)를 배워 겸양(謙讓)을 지키며 자기의 공적을 자랑하거나 재능을 내세우는 일이 없었던들 한(漢)나라 왕조에 대한 그의 공훈은 저 주공(周公)과 강태공망(姜太公望)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이어서 국가의 원훈(元勳)으로서 뒷 세상에 길이 사당(祠堂)의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꾀하지 않고 천하가 이미 통일되고 난 뒤에 여전히 반역을 꾀하고 있었으니 온 집안이 전멸을 당하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젊은 시절 모욕을 참고 성공한 처세가 말년에 역적으로 참수된 사연이 참으로 안타깝다. 역시 인간은 어떻게 죽었는가가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一勤天下無難事(일근천하무난사)
百忍堂中有泰和(백인당중유태화)
한 번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고, 백 번 참으면 가정에 큰 화평이 온다.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이 참다운 교훈인 참을 줄 아는 미덕(美德)이 실천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해본다.
▶️ 受(받을 수)는 ❶회의문자로 또 우(又; 오른손, 또, 다시)部와 爪(조; 손), 민갓머리(冖; 덮개, 덮다)部의 합자(合字)이다. 손에서 손으로 물건을 주고 받는 모양으로, 주는 것도 받는 것도 受(수)였으나 나중에 授(주다)와 受(받다)로 나누어졌다. ❷회의문자로 受자는 '받다'나 '얻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受자는 爫(손톱 조)자와 冖(덮을 멱)자, 又(또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受자를 보면 舟(배 주)자 위아래로 손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배에서 물건을 건네주거나 받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사실 갑골문에서의 受자는 '받다'나 '주다'의 구별이 없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이를 구별하기 위해 受자는 '받다'라는 뜻으로 扌(손 수)자가 더해진 授(줄 수)자는 '주다'라는 뜻으로 분리되었다. 그래서 受(수)는 ①받다 ②거두어 들이다, 회수하다 ③받아들이다, 받아들여 쓰다, 배우다 ④얻다, 이익을 누리다 ⑤주다, 내려 주다, 수여하다 ⑥담보하다 ⑦응하다, 들어주다 ⑧이루다 ⑨잇다, 이어받다 ⑩등용하다 ⑪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거느릴 령/영(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도울 필(拂), 줄 수(授), 보낼 송(送), 줄 급(給), 줄 여(與)이다. 용례로는 남의 문물이나 의견 등을 인정하거나 용납하여 받아 들이는 것을 수용(受容), 요구를 받아 들여 승낙함을 수락(受諾), 우편이나 전보 따위의 통신을 받음을 수신(受信), 돈이나 물품 따위를 받음을 수령(受領), 상을 받음을 수상(受賞), 남으로부터 움직임을 받음이나 작용을 받음을 수동(受動), 강습이나 강의를 받음을 수강(受講), 남에게 모멸을 당함을 수모(受侮), 학업이나 기술의 가르침을 받음을 수업(受業), 은혜를 입음을 수혜(受惠), 암수의 생식 세포가 서로 하나로 합치는 현상을 수정(受精), 요구를 받아들여 승낙함을 수낙(受諾), 받음과 치름을 수불(受拂), 재난을 당함이나 어려운 일을 당함을 수난(受難), 정권을 이어받는 것을 수권(受權), 물건이나 권리를 넘기어 받음을 인수(引受), 받아 들임을 접수(接受), 군말 없이 달게 받음을 감수(甘受), 입은 은혜가 그지없음을 일컫는 말을 수은망극(受恩罔極), 왕위에 오름을 일컫는 말을 수명어천(受命於天),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를 자기가 받음을 일컫는 말을 자작자수(自作自受), 업무 따위를 넘겨받고 물려줌을 이르는 말을 인수인계(引受引繼), 남에게 재앙이 가게 하려다가 도리어 재앙을 받음을 일컫는 말을 반수기앙(反受其殃), 본분의 임무를 어기고 부정한 청탁을 받으며 뇌물을 받아 재산 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죄를 일컫는 말을 배임수뢰(背任受賂), 장물을 주는 이나 받는 이나 둘 다 죄가 같다는 말을 여수동죄(與受同罪) 등에 쓰인다.
▶️ 袴(바지 고, 사타구니 과)는 형성문자로 褲(고, 과)는 통자(通字), 绔(고, 과), 絝(고, 과), 裤(고, 과)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옷의변(衤=衣; 옷)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夸(과)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袴(고, 과)는 ①바지, 그리고 ⓐ사타구니(=샅. 두 다리의 사이)(과)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여름에 입는 남자의 바지와 저고리를 고의(袴衣), 비단으로 지어 만든 바지를 능고(綾袴), 곱고 흰 비단 바지를 환고(紈袴), 남자의 홑바지를 단고(單袴), 솜을 두어서 지은 바지를 면고(綿袴), 솜바지를 난고(暖袴), 겹바지를 갑고(甲袴), 여자들이 겉에 입는 바지를 말고(末袴), 통이 좁은 바지를 착고(窄袴), 통이 넓은 바지를 활고(闊袴), 짧은 바지를 단고(短袴), 비 올 때에 마부들이 입는 바지를 유고(油袴), 빛이 푸른 비단으로 지은 바지를 청금고(靑錦袴), 산비둘기를 달리 이르는 말을 탈폐고(脫弊袴), 뻐꾸기를 달리 이르는 말을 탈각파고(脫脚破袴), 고경립의 바지 같다는 뜻으로 몹시 더럽거나 지저분한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고경립지고(高景立之袴) 등에 쓰인다.
▶️ 下(아래 하)는 ❶지사문자로 丅(하)는 고자(古字)이다. 밑의 것이 위의 것에 덮여 있는 모양이며, 上(상)에 대한 아래, 아래쪽, 낮은 쪽, 나중에 글자 모양을 꾸며 지금 글자체가 되었다. ❷지사문자로 下자는 ‘아래’나 ‘밑’, ‘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下자는 아래를 뜻하기 위해 만든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下자의 갑골문을 보면 윗부분은 오목하게 아랫부분은 짧은 획으로 그려져 있었다. 윗부분의 오목한 형태는 넓은 대지를 표현한 것이다. 아래의 짧은 획은 땅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下자는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하여 ‘아래’나 ‘밑’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금문에서 숫자 二(두 이)자와 자주 혼동되었기 때문에 소전에서는 아래의 획을 세운 형태로 바꾸게 되면서 지금의 下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下(하)는 (1)아래. 밑 (2)품질(品質)이나 등급(等級)을 상(上)과 하(下), 또는 上, 中, 下로 나눌 때의 가장 아랫길(끝째). (3)일부 한자로 된 명사(名詞) 다음에 붙이어 ~밑에서, ~아래서의 뜻으로, 그 명사가 조건이나 환경 따위로 됨. 나타냄. ~하에, ~하에서, ~하의 형으로 쓰임 등의 뜻으로 ①아래 ②밑(물체의 아래나 아래쪽) ③뒤, 끝 ④임금 ⑤귀인(貴人)의 거처(居處) ⑥아랫사람 ⑦천한 사람 ⑧하급(下級), 열등(劣等) ⑨조건(條件), 환경(環境) 등을 나타내는 말 ⑩내리다, 낮아지다 ⑪자기를 낮추다 ⑫못하다 ⑬없애다, 제거하다 ⑭물리치다 ⑮손대다, 착수하다 ⑯떨어지다 ⑰항복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낮을 저(低), 낮을 비(卑), 내릴 강(降), 항복할 항(降), 낮출 폄(貶),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윗 상(上), 높을 존(尊), 높을 고(高)이다. 용례로는 공중에서 아래쪽으로 내림을 하강(下降), 값이나 등급 따위가 떨어짐을 하락(下落), 어떤 사람의 도급 맡은 일을 다시 다른 사람이 도거리로 맡거나 맡기는 일을 하청(下請), 아래쪽 부분을 하부(下部), 강이나 내의 흘러가는 물의 아래편을 하류(下流), 산에서 내려옴을 하산(下山), 낮은 자리를 하위(下位), 공부를 끝내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옴을 하교(下校), 한 달 가운데서 스무 하룻날부터 그믐날까지의 동안을 하순(下旬), 정오로부터 밤 열두 시까지의 동안을 하오(下午), 차에서 내림을 하차(下車), 위에서 아래로 향함을 하향(下向), 보호를 받는 어떤 세력의 그늘을 산하(傘下), 일정한 한도의 아래를 이하(以下), 치적이 나쁜 원을 아래 등급으로 깎아 내림을 폄하(貶下),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말을 귀하(貴下), 끌어 내림이나 떨어뜨림을 인하(引下), 원서나 소송 따위를 받지 않고 물리치는 것을 각하(却下), 낮아짐이나 내려감 또는 품질 따위가 떨어짐을 저하(低下),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라는 하석상대(下石上臺), 붓만 대면 문장이 된다는 하필성장(下筆成章), 아랫사람의 사정이나 뜻 등이 막히지 않고 위에 잘 통함을 하정상통(下情上通), 어리석고 못난 사람의 버릇은 고치지 못한다는 하우불이(下愚不移) 등에 쓰인다.
▶️ 辱(욕될 욕)은 ❶회의문자로 辰(진; 농경에 좋은 시절)과 寸(촌; 법도)의 합자(合字)이다. 옛날 농사의 때를 어긴 자를 죽이고 욕보인 일로부터 욕보이다, 부끄럼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辱자는 '욕되다'나 '더럽히다', '모욕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辱자는 辰(별 진)자와 寸(마디 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辰자는 농기구의 일종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 사람의 손을 그린 寸자가 결합해 있으니 辱자는 밭일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辱자의 갑골문을 보면 농기구를 손에 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농기구 주위로 점이 찍혀있다. 이것은 농기구로 풀을 베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辱자의 본래 의미는 '풀을 베다'나 '일을 한다'였다. 그러나 일이 고되다는 뜻이 확대되면서 후에 '욕되다'나 '더럽히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辱(욕)은 (1)욕설(辱說) (2)꾸지람 (3)인격(人格) 상(上)으로 받는 몹시 부끄러운 일. 치욕적인 일 (4)몹시 수고롭거나 고생스러운 일 등의 뜻으로 ①욕(辱)되다, 수치(羞恥)스럽다 ②더럽히다, 욕(辱)되게 하다 ③모욕(侮辱)을 당하다 ④욕(辱)보이다 ⑤무덥다 ⑥황공(惶恐)하다 ⑦거스르다 ⑧치욕(恥辱), 수치(羞恥)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영화 영(榮)이다. 용례로는 남을 저주하거나 미워하는 말을 욕설(辱說), 장사지낼 때 무덤 속에 시체와 함께 묻은 금은 패물 따위의 부장품을 욕금(辱金), 상대편을 높이어 그가 자기에게 쓴 답장을 욕답(辱答), 대관을 욕되게 함을 욕대(辱臺), 욕되게 하여 배척함을 욕척(辱斥), 남을 높이어 그가 자기에게 찾아 옴을 욕황(辱況), 자기를 알게 된 것이 그 사람에게 욕이 된다는 욕교(辱交), 자기와 교제하게 된 것이 그 사람에게는 욕이 된다는 욕지(辱知), 자기를 알게 된 것이 그 사람에게 욕이 된다는 욕우(辱友), 깔보고 욕보임을 모욕(侮辱), 남의 이름을 더럽히고 욕되게 함을 오욕(汚辱), 부끄럽고 욕됨을 치욕(恥辱), 남에게 눌리어 업신여김을 받음을 굴욕(屈辱), 괴로움과 모욕을 당함을 곤욕(困辱), 상대를 이김으로써 지난번 패배의 부끄러움을 씻고 명예를 되찾는 것을 설욕(雪辱), 남을 업신여기어 욕보임 또는 여자를 강간하여 욕보임을 능욕(凌辱), 꾸짖고 욕함을 후욕(詬辱), 견디기 어려운 불명예스러운 일을 고욕(苦辱), 사람을 앞에 두고 욕설을 하거나 또는 치욕을 당하게 함을 면욕(面辱), 무고한 사람을 붙잡아서 욕을 보임을 집욕(執辱), 욕설과 악담을 욕악담(辱惡談), 한 번에 많이 하는 욕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욕사발(辱沙鉢), 욕이 조상에게까지 미침을 일컫는 말을 욕급선조(辱及先祖), 자제의 잘못이 부형에게까지 욕되게 함을 이르는 말을 욕급부형(辱及父兄), 오래 살면 욕됨이 많다는 뜻으로 오래 살수록 고생이나 망신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수즉다욕(壽則多辱), 모든 일에 분수를 알고 만족하게 생각하면 모욕을 받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지족불욕(知足不辱), 나라의 수치와 국민의 욕됨을 이르는 말을 국치민욕(國恥民辱), 중생에게 자비하고 온갖 욕됨을 스스로 굳게 참음을 이르는 말을 자비인욕(慈悲忍辱), 총애를 받는다고 욕된 일을 하면 머지 않아 위태함과 치욕이 옴을 일컫는 말을 태욕근치(殆辱近恥),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가 죽는다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는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군욕신사(君辱臣死)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