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보’들이 넘쳐나는 세상
사전에서 ‘바보’라는 말을 찾아보면 “(1)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2) 지능이 부족하고 어리석어서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등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 ‘바보’라는 말은 ‘하는 일 없이 놀며 밥이나 축내는 사람’을 가리키는 ‘밥보’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를 일컬어 바보라고 한다. 아마도 그 속에는 ‘밥값도 못하는 자’라는 자신에 대한 채찍질과 함께 ‘밥 값하는 사람이 되자’는 결의가 담겨있을 것 같다.
바보는 어리석은 자이다. 보통 사람들은 길이 아니면 가지 않으려고 하고, 손해 볼 것 같으면 피하려 한다. 그게 정상이다. 하지만 바보는 사람이 가지 말아야 할 길인데도 갈 길인 줄로 생각하며 그 길을 가고, 손해 볼 일인데도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일을 한다. 불에 타서 죽을 줄도 모르고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든다. 바보는 입으로 어리석은 말을 하고, 마음으로 악을 좋아하여 간사한 일을 하며, 굶주린 사람의 밥그릇을 쏟아버리고, 목마른 사람의 물그릇을 차버린다.
세상에는 의외로 이렇게 어리석은 자들이 많이 있다. 잘못이 있으면 돌이키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잘못을 감추려고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른다. 잠시 사람들의 눈을 가리면 다 되는 줄로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바보들만 있는 게 아니다.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가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손해를 보는 일인 줄 알면서도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기 위함이고, 자신이 손해를 보아도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 사람은 ‘큰 바보’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시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고 흠도 없으신 분이시다.
그런데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고초와 죽임을 당하셨다. 세상에는 예수님에게 견줄 바는 아니지만, 예수님을 닮은 큰 바보들이 적지 않다. 그 큰 바보들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빛이 사라지지 않고 있고, 세상이 살맛이 나고, 희망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큰 바보와는 아주 다른 자들도 있다. 자신에게 돌아올 손익을 계산하며 이익을 위하여 정의의 탈을 쓰고 사랑의 가면을 쓰는 자들이 있다. 겉으로는 소리 높여 정의를 외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자신의 불의한 이익을 위해 이런저런 구실을 대며 악에 눈을 감고 입을 다무는 자,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지만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몫은 전혀 내어놓으려 하지 않고 그저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급급한 자, 이런 자들은 바보 축에도 들지 못하는 역겨운 자들이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의 실상은 어떠한가? 큰 바보들로 채워지기보다, 역겨운 자들이 우글거리고 있지 아니한가? 정의, 평화, 인권, 생명, 사랑 등은 한낱 구호일 뿐이고, 불의, 갈등, 인권유린, 죽음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지 아니한가? 나 역시 이러한 풍조에 장단을 맞추고 있지 아니한가?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할지라도, 악과 불의를 못 본 척하고 모르는 척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악과 불의에 동조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성경은 말씀한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에베소서 5:17).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는다(잠언 14:18).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채찍이 예비 되어 있다(잠언 19:29).
모쪼록 우리 사회가 ‘바보들’과 ‘역겨운 자들’의 세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큰 바보들’이 넘쳐나는 세상이길 꿈꾼다.
출처 : 아산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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