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 (102)
《'타향살이'와 '오디세우스', 인류 보편의 두 개의 귀향(歸鄕) 서사시》
내일이 추석이다. 해마다 도래하는 명절이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고향으로 향한다. 고향은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여우마저 끝내 머리를 두고 죽고자 하는 곳이며, 따스한 평온과 안락이 약속된 장소다. 그러나 인간에게 귀향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다. 장소로서의 고향을 찾아가는 일인 동시에, 타향살이의 고단함 속에서 잃어버렸던 참된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아늑한 여정이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고/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버들피리 꺾어 불던 그때는 옛날"
'타향살이'는 1934년 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고복수 노래로 발표된 한국 대중가요의 고전이자 원형이다. 느린 3박자의 단조 구성에 가요 형식의 원형인 A·B형식 16소절로 이루어진 이 짧은 곡은, 큰 기교 없이 담담하면서도 묵직하고 구수한 목소리 덕분에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원제는 단순하게 '타향'이었으나 대중의 입을 거치며 '타향살이'라는 한층 절절한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스물두 살의 신인 가수 고복수가 이 노래를 불렀을 때, 만주 룽징의 극장 안은 순식간에 통곡 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고향을 등지고 국경을 넘어야 했던 이들, 논밭을 잃고 억압과 굶주림을 피해 낯선 땅으로 흘러간 유랑민들에게 "청춘만 늙고 부평 같은 내 신세"라는 노랫말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피눈물 나는 자신들의 삶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울산에 세워진 고복수 노래비에도 새겨져 망향의 대명사로 전해진다. 고복수는 이후에도 '사막의 한', '짝사랑', '휘파람' 등을 부르며 정상급 가수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는데, 자신을 가수로 키워준 연하의 스승 손목인을 일생 동안 한결같은 정성과 예의로 모시는 도의를 잊지 않았던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고향을 떠나 십년, 이십년을 떠도는 이 서러운 타향살이의 정서는 비단 우리 민족만의 것이었을까. 지금으로부터 2,8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 역시 똑같은 귀향의 갈망을 서사시로 노래하고 있었다.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데 걸린 시간은 자그마치 10년. 그를 기다리며 베를 짰다 풀기를 반복하던 아내 페넬로페, 아버지의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채 자라난 아들 텔레마코스, 연꽃을 먹으면 고향을 잊게 만든다는 로토파고스의 섬, 귀를 막지 않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사이렌의 노랫소리, 외눈 거인 폴리페모스와 마녀 키르케까지. 이 모든 시련의 장치들은 결국 하나의 질문을 향해 있다. "인간은 왜 그토록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는가."
삶이라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모든 인간은 가슴속에 저마다의 '이타카'를 품고 산다. 그곳은 어릴 적 달빛 깔리던 고향 마을의 흙길일 수도 있고, 버들피리 꺾어 불던 시절의 아련한 추억일 수도 있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조건 없이 품어주던 부모님이나 연인의 품일 수도 있다. 명절이 오면 사람들이 물리적인 거리를 뛰어넘어 가슴 깊은 원점을 향해 눈을 돌리는 까닭은, 아무리 삶에 치이고 아프더라도 '돌아갈 안식처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시 오늘을 견뎌낼 힘을 얻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관통하는 핵심 감정은 향수(鄕愁, 노스탈지어), 즉 '노스토스(귀향)'와 '알고스(고통)'가 결합된 그리스어 어원 그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이 곧 고통이 되는 상태'다.
오디세우스가 요정 칼립소의 아름다운 낙원에 7년간 붙잡혀 있으면서도 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울었던 모습은,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이라며 고향의 하늘을 그리워하던 '타향살이'의 정서와 완벽히 겹쳐진다. 또한 귓가를 현혹하는 사이렌의 노래는 현대 도시 곳곳, 스타벅스 상징에 새겨진 두 꼬리 사이렌 로고처럼 끊임없이 우리를 붙잡는다. "여기가 네 자리야, 더 이상 고단하게 이타카를 찾아 방황하지 마." 도시라는 낯선 타향에서 우리는 스피커 너머의 달콤한 소리에 귀를 맡긴 채, 정작 돌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을 잊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목할 점은 두 서사 모두 귀향이 단숨에 끝나는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에 도착해서도 구혼자들과 목숨 건 싸움을 치러야 했고, 고복수 역시 해방 후 6·25전쟁 납북과 탈출, 사업 실패와 만년의 곤궁이라는 거친 풍랑을 겪었다. 귀향은 단순히 장소를 이동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잃어버린 시간과 자아를 되찾아가는 진지한 과정임을 보여준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현존을 '실향(失鄕)'이라 하였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의 타향을 살며 저마다의 이타카를 향해 돛을 올리는 현대의 오디세우스들이다.
늙은 유모가 흉터 하나로 오디세우스를 알아보았듯, 고복수의 '타향살이'가 오늘날까지 가슴을 저미게 하는 이유 역시 우리에게 다정하게 물어오기 때문이다. 비록 세월에 깎이고 청춘이 저물었을지라도, 당신 가슴속에는 여전히 나를 알아봐 줄 돌아갈 안식처가 살아 숨 쉬고 있느냐고.
마침내 돌아갈 보금자리를 가슴에 품고 있는 한, 우리가 걸어가는 이 고단한 타향살이는 결코 외롭거나 헛되지 않은, 아름답고 어엿한 삶의 서사시가 된다. 긴 항해의 끝, 저 멀리 이타카의 불빛이 보인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묵직한 한마디가 들려온다.
"이제 돌아가자, 참된 나의 고향으로"
/문화칼럼니스트 최진태
첫댓글 [추억의 가수] 지금들어도 애절한 고복수의 '타향살이'
https://youtube.com/watch?v=I93oA4agjrc&si=UKnsRG4IkbiKHk8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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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살이(고복수 노래) 하모니카 연주 F#m키(김정호 노래 반주에 맞추어 연주)
https://youtube.com/watch?v=hS99r0OE_l4&si=LUcS91jj2kpQ_Bu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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