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2일 성녀마리아막달레나축일
언젠가 어느 일반 예식장에서 결혼식 주례를 선 적이 있습니다. 신랑 측이 신자가 아니라서 성당에서 관면혼배를 하고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었는데, 주례를 꼭 좀 서 달라면서 간곡히 부탁을 하더군요. 모르는 사이가 아니라서 그냥 승낙을 했지요.
결혼식 당일, 시간에 맞춰서 예식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주관하는 예식장 직원이 저를 찾아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신부님, 계속해서 결혼식이 있어서 주례사를 짧게 해주셔야 합니다. 모든 예식이 30분 내로 끝나야 다음 결혼식에 지장이 없거든요.”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무슨 결혼식을 30분 이내로 끝내나 싶었습니다. 예식장에서야 많은 결혼식이 있어야 수입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더군요. 성당에서의 결혼식을 일반 사람들은 힘들어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혼인미사가 너무 길다는 것입니다. 혼인미사가 아무리 길어봐야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데 뭐가 길다고 할까 라고 생각했는데, 예식장 주례를 서면서 알게 되었지요. 예식장에 비하면 엄청나게 긴 것이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배우는 단어들 가운데 ‘빨리빨리’가 꼭 끼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있다는 것이겠지요. 해방 이후 근대화를 목표로 한 빠른 경제 성장에 맞춰져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라는데, 정말로 빠른 것이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 역시 현대를 살아가면서 ‘빨리빨리’가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상 삶 안에서 서두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잠시 마음을 열고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더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을 맞이해서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발현하신 장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갈 정도로 그녀는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어두울 때라고 복음은 말하지만, 사랑했다면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앞서 이야기했던 서두름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천사가 먼저 “여인아, 왜 우느냐?”라고 물었고,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정원지기로 생각합니다. 바로 빨리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야 한다는 서두름에 정작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계속해서 서두르면서 살고 있음을 느낍니다. 기도도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나의 청원이 들어지고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내 마음에 있는 서두름을 잠시 내려놓아야 합니다. 즉, 내 삶의 속도를 늦춰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부르듯이 우리 역시 계속 부르십니다. 잠시 멈춰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게 딴 거 없네요. 옆에 있는 게 사랑이네(이종수).
예수님과 마리아 막달레나의 만남.
망각의 축복(‘좋은생각’ 중에서)
주차장에서 겪은 일이다. 차를 어디에 세웠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자동차 열쇠 버튼을 연신 누르며 헤맸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얘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아뿔사, 다른 층에 와 있었다.
컴퓨터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검색창을 켠 순간 머릿속이 새하애졌다. 혹시나 해서 “뭘 찾으려 했지.”라고 입력한 뒤에 엔터를 눌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같은 질문이 수십 건 떴다. 비단 나만 겪은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력이 예전만 못한 것에 부담을 느낀다. 한데 기억력 전문가들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어 “한 달 전 월요일 저녁에 무얼 먹었나요?”라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진출한 날 뭘 했나요?”라고 물으면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를 ‘섬광 기억’이라고 한다. 놀랍고 중대한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이다. 지난밤 안경을 어디에 두었는지는 생각 안 나도,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은 길거리에서 언뜻 스친 비슷한 얼굴이나 향수 냄새, 음악 몇 소절에도 떠오른다. 섬광 기억은 나이가 들어도 무뎌지지 않는다.
잊히지 않는 기억은 또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신발을 어디에 두었는지는 종종 깜빡한다. 반면 신발이 무엇인지, 신발 끈을 어떻게 묶는지는 잊지 않는다. 왜 그럴까? 뇌는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기억은 정리해 버린다. 자주 반복하는 중요한 정보는 간직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억은 잊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만약 사람이 모든 걸 기억한다면 불행할 것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과거의 상처를 잊지 못하는 ‘트라우마’다. 코넬대 신경학과 노먼 렐킨 교수는 말했다.
“망각은 기억만큼 중요하다.”
사람은 잊어버리도록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망각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
점점 잊는 게 많아진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건 정리해 삶의 핵심에 가까워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기억력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으시지요. 그러나 행복은 많은 것을 기억해서 생기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은 과감하게 잊어버릴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물론 힘들겠지만 잊어버리도록 사람이 만들어졌음을 기억하면서, 시시콜콜한 것을 모두 기억하지 않음을 감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빠다킹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