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좋아하는 편인데 장마는 좀 그랬다.
후덥지근함이 불편했다.
언제부터인가 에어컨이 일상화되면서
장마는 그냥 많은 비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벼농사를 지어보니 고온다습이 특징인
장마가 고맙고 또 고마운 존재로 다가왔다.
오늘도 눈에 띄게 말라가는 논을 바라보며
정체전선의 북상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장마가 수요일부터 시작이란다.
꼬박 20일 만에 하늘은 논에 물을 댈 것이다.
지구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늘은 비료까지 뿌려주겠지.
빗물논은 6월 초 중순경 물을 빼고 모내기 한다.
모내기가 끝날 때 쯤 장마 시작이다
라고 하면 참 좋겠는데 현실은 다르다.
기상청은 장마를 정체 모를 정체전선이라 한다.
예측 변동성이 너무 커 장마 예보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기상청의 인력난, 재정난에다
몬순 기후대의 급격한 변화 때문이다.
몬순은 계절풍이다.
바다와 대륙의 온도차, 지구 자전 등의 영향으로
특정 계절에 특정 날씨가 발생하는데
한반도는 동아시아 계절풍에 속한다.
덥고 습한 날씨 한복판에 연 강수량의 절반이
이 때 쏟아진다.
이 덕분에 벼농사가 가능하다.
모내기 때 쓰는 줄은 일제 시대에 등장했다.
그 전에는 하늘만 바라보다
천둥소리에 뛰어나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그냥 모를 막 꽂았다.
홍천에서 벼가 논에서 보내는 기간은
고작 넉 달에 불과하다.
장마와 시작하고 더위가 물러나면 수확하는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짧디 짧은 농사가
벼농사다.
벼는 특별히 물이 풍족해야 할 때가 있는데
모내기 하고서, 벼꽃이 필 때
이렇게 두 번이다.
모내기를 끝낸 빗물논은 보름에서 이십 여 일간
기다려야 빗물을 담글 수 있다.
6월 뙤약볕에 하루 증발량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10cm 정도 수위는 남기고 논물을 뺀다.
볏모는 중모 그러니까 20cm 이상 자라야 한다.
여기는 그냥 습지니까 깊은 곳은 볏모가
잠기고 얕은 곳은 거의 드러난다.
몬순 기후대가 벼농사를 가능하게 했으므로
벼농사 역시 몬순 기후대에 기댈 수밖에 없다.
몬순의 어원은 안전한 항해가 가능한 계절이다.
그러니까 예측 가능한 계절이란 뜻이다.
이 때 씨앗을 심으면 그 때쯤 수확이 가능하다는
예측 가능성이 없으면 농사란 없다.
몬순의 변동성이 높거나 사라지면
한반도에서 벼농사란 없다.
앞으로 장맛비를 얼마나 볼 수 있을까?
내일 모레 글피.
수요일부터 한바탕 쏟아질 하늘의 은총을
계속 누리고 싶다.
3,500만 년 전 남극에 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그 때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450ppm.
우리는 이미 이 선을 훌쩍 넘겼다.
그렇다면 지금 남극에 얼음이
없어야하는 것 아니냐고?
천만다행으로 시차가 있다.
정오가 아니라 오후 2,3시에 기온이 가장 높다.
데워지는 데 시차가 발생한다.
남극 얼음도 마찬가지다.
아직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