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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ongp 이웃추가 |2014. 11. 28. 0:08 // 출처// 작성자.
2013년의 한창 무더운 여름 날 밤 후끈한 열기를 느끼며 항공기의 문 밖으로 나갔을 때
누군가를 기다리며 몰려 서 있는 서너 명의 남자들이 입은 통치마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입국 수속과 세관검사를 마치고 공항 건물 바깥으로 빠져 나오자 짐을 들어 주겠다는 사람,
택시 타겠냐고 묻는 사람 등 수많은 미얀마 치마부대가 우리 일행을 둘러 쌌습니다.
더러 사진에서 미얀마 사람들이 치마를 입고 있는 걸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본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지요.
그게 바로 미얀마의 전통 의상인 롱지(Longyi) 였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미얀마의 이곳 저곳을 다니며 본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양한 색상의
롱지를 입고 있는 걸 보며 왜 사람들이 저렇게 거추장스러운 복장을 하고 다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외국인이 보면 우리 한복도 만찬가지겠지만…)
미얀마를 몇 번인가 더 방문하고 나서는, 남자와 여자의 롱지는 형태나 무늬,
그리고 입는 방법에 차이가 있으며, 남자가 입는 치마는 파소(Pasoe),
여자가 입는 치마는 타메인(Htamain)이라고 한다는 것,
그리고 남녀 구분이 없이 부르는 명칭이 바로 ‘롱지’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남자들은 청색이나 녹색, 혹은 회색 계열의 굵은 줄 무늬, 혹은 체크무늬가 있는
롱지를 즐겨 입는 반면, 여성들은 화려한 색상의 단색, 혹은 꽃무늬가 있는
롱지를 즐겨 입고 있으며, 학생들의 교복은 진한 녹색으로 무늬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건 아무래도 50년 이상 지속되어 온 군사정권의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매달 한 차례 이상 미얀마를 왕래하면서,
대도시의 사람들은 대체로 색상이 화려하고 값비싸 보이는 롱지를 입고 다니는 반면,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색상이 어둡고 칙칙하며,
천도 어딘지 모르게 싸구려처럼 보인다는 것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미얀마 사람들이 롱지를 입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해서,
어떤 이들은 약 2,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비슷한 의상을 입기 시작했다고 얘기하지만,
19세기 무렵 인디아 남부지역에서 건너온 사람들에 의해
유래된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인식인 듯 합니다.
어쨌거나 이 롱지는 오늘 날 공식행사에 나오는 대통령에서부터
시골 구석의 농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이 선호하는
미얀마의 국민의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네요.
롱지는 남녀 모두가 공통으로 입는 의상이지만,
입을 때 앞을 여미는 방법에서 남녀간에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남자는 롱지 속에 몸통을 집어넣고, 두 손으로 양끝을 잡고 옆으로 활짝 편 다음
왼쪽 부분을 배꼽 쪽으로, 다음에는 오른쪽 부분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접습니다.
그리고는 배꼽 윗부분 쯤에서 끝부분을 속으로 감아 넣으며 매듭을 만듭니다.
반면 여자는 롱지의 오른쪽 끝이 왼쪽 허리께로 오도록 완전히 감싼 다음,
허리 부분을 안쪽으로 말아 넣고 매듭을 짓는다고 하네요.
(일정한 법칙이 있는 건 아니고, 반대 방향을 선호하는 여성들도 많다고 합니다)
롱지를 입을 때 여성은 위에 에인지(eingy)라는 밝고 화려한 디자인의 블라우스를,
그리고 남성은 통상 깃이 없는 와이셔츠 비슷한 흰색의 셔츠를 받쳐 입습니다.
그 밖에도 공식행사 같은 데서는 셔츠 위에 우리 한복의 마고자 비슷한
따익 뽀옹(Taik Pone)을 덧입기도 합니다.
롱지는 양복을 입을 때처럼 허리띠가 없이, 허리에서 포개진 부분을 바깥으로
혹은 안으로 말아 넣고 매듭을 짓는 방식이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헐렁해지거나 풀어지는 게 가장 불편한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중 화장실이나 혹은 거리의 조금 후미진 장소에서 사람들이 뒤돌아선 채로
롱지의 매듭을 풀어서 활짝 편 다음 다시 허리에 휘감는
과히 아름답지 못한 광경을 종종 볼 수가 있었는데, 그건 우리가
가끔씩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추스리는 것이나 마찬가지 행동일 것입니다.
이런 문제점 때문인지, 여성들의 롱지에는 흘러내리거나 매듭이 풀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일 윗부분에 폭이 10cm 쯤 되는 검은 띠
아텟신(AhtetSin)를 덧대서 롱지를 단단히 잡아준다고 합니다.
한번은 미얀마의 고위 인사가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 롱지를 입고 나왔기에
“그렇게 다니면 불편하지 않은가?” 하고 물었더니,
그는 “롱지야 말로 진짜로 편한 옷”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우선 롱지는 양복에 비해 만들기가 간단해서 가격이 저렴하며,
미얀마는 연중 더운 나라인 데, 롱지는 바람이 잘 통해서
입으면 양복보다 시원하다는 게 그의 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무엇보다 프리 사이즈(Free Size) 이기 때문에 나처럼 배가
많이 나온 사람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좋은 점”이라며 껄껄 웃었습니다.
그래서 내친 김에 “남자든 여자든 롱지를 입을 때 속옷을 입는가?”하고
가장 궁금한 사항을 물어 보았지요.
그는 내 속셈을 알았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예전에는 속옷을 입지 않았는데,
요즘은 거의가 속옷을 입는 편”이라고 대답을 하더니,
“아직도 농촌 지역에서는 안 입는 사람들이 꽤 있겠지…” 하고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농촌 마을들을 다녀 보니 유난히 어린아이들이 많던데, 그
게 아무데서나 롱지를 쉽게 벗어 땅바닥에 깔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짓궂은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그는 파안대소를 한 다음 “미얀마에는 독사가 많아서 아무 데서나 롱지를 펼쳐 놓고
일을 벌이다가는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난다.”고 응수를 하더라구요.
다음으로 떠오른 의문은 ‘남자들이 롱지를 입고 소변을 볼 때는 어떤 자세를 취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얀마 사람들을 향해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한국 신사의 체통에 관련되는 문제이기도 한 것 같아 차마 물어보지를 못했네요.
최근에 렌터카를 타고 양곤에서 수도인 네피도로 가는 도중에 생리현상이 급해서
널찍한 고속도로 갓길에다 차를 세우고 길 옆 풀섶에 서서 소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렌트카의 기사가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더니 롱지를 밑에서부터
둘둘 말아 올린 다음, 뒤쪽을 가린 우아한(?) 자세로 주저 앉아 소변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차가 출발하기 전, “그런 자세로 풀섶에서 일을 보다가
잘못하면 독사에게 물릴 수도 있겠다” 고 얘기를 건네니, 그 친구 낄낄거리며
“나는 오줌줄기가 매우 강해서 뱀이 가까이 못 온다” 고 대답했습니다.
그 친구 역시 롱지 아래는 아무 것도 입지 않고 있었더군요.
한 번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공중 화장실의 벽결이 형 소변기 앞에 서서
일을 보는데, 옆에 한 미얀마 아저씨가 서더니 롱지의 앞부분을 말아 올려
하반신이 거의 드러난 상태로 일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욕을 먹을 지도 모르겠다 싶어 그만 두고 말았지만...
그러고 보니 롱지는 남자들에게는 여러모로 편한 의상인 것 같습니다.
한번은 어스름한 저녁 시간에 일이 있어서 어느 시골 마을로 들어가는데,
동네 우물가에서 여자들 몇 명이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목욕이라는 게 별 것이 아니라, 윗 옷을 벗은 다음 롱지를 겨드랑이 아래까지
올려서 여미고는 그 위에 두레박으로 물을 붓고, 머리 감고, 몸에 비누질하고,
다시 물 몇 두레박 퍼붓고 하는 식이었습니다.
짙은 색상의 롱지였는데도 물에 젖으면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 는 바람에
묘한 매력을 풍겨주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중소도시의 시장에 들렀다가 롱지를 파는 가게가 있기에 몇 마디 배운
미얀마어로, “다 벨라울 레?”(이거 얼마입니까?)하고 값을 물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저렴해서 2,000쨔트(약 2,400원) 짜리부터
2~3만 쨔트 짜리까지 골고루 있더라구요.
나중에 알아 본 바로는 롱지의 품질이나 가격도 다양해서 실크로 만든
고급제품은 백화점에서 십만 쨔트 이상으로 팔리기도 하며,
고관들이나 귀부인들의 경우에는 전문가가 직접 디자인하고 수를 놓은 제품을
맞춰서 입는데, 그런 경우에는 가격은 당사자들만이 안다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를 수행한 그 지역 공무원이 푸른색 바탕에 흰색의 체크무늬가 있는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롱지를 하나 선물했습니다.
그 친구는 “다음 번에 우리 마을에 다시 올 때는 꼭 이걸 입고 오라.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당신을 더욱 좋아하게 될 것이다” 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우리도 선물을 준 뒤끝이고, 전날 저녁에 그가 보스 앞에서 거창하게
칭찬해 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기도 했겠지만, 가난한 나라의
중간급 공무원에 불과한 그의 마음자리가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기왕에 우리가 그 마을과 연관을 맺고 일을 하는 이상, 전통복장을 입고
방문을 한다면 그들로서야 당연히 더 친근감을 느끼게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다음 번에는 꼭 이 롱지를 입고 오겠다” 고 약속을 했지만,
그 이후로 아직 방문을 하지 못하고 있어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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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특히 대도시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청바지나 미니스커트가
유행을 타고 있기는 하지만, 설사 스타일은 다소 변해갈지 몰라도
역사성과 편의성의 양면으로 볼 때, 미얀마에서 이 롱지 문화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저러나, 내 체격에 롱지를 입으면 항아리에 천을 둘러놓은 듯한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되지 않을까 조금은 염려가 되기도 하네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