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한 친구의 빙모상으로 군산에 갔었는데,
장례 절차를 다 끝냈던 그 친구가 그 장례식에 문상을 갔던 서울 주변의 몇 친구를 불러 마련한 술자리가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 장소가 '인덕원'이어서, 나가는 김에 아예 일찍 나가 조조(싸게 볼) 영화를 보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극장에 가는 김에 아예 두 편의 영화를 보기로 했으니, 아파트를 나간 시간이 9시 반 경이었고 첫 영화(가버나움)의 시작이 10시 40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두 영화를 연거푸 보게 되었던 것이다.
나갈 때 부터,
오늘 점심을 어떻게 한다지? 하는 우려는 있었다.
밖에 나가 잘 사먹지 않으려 하는 내 특성 상 뭔가 준비를 해가지고 갔으면 좋을 텐데, 마땅한 먹을 거리가 없어서 그냥 나갈 수밖에 없었고,
혹시 노원역에서 김밥 파는 아주머니가 있을까 하고 둘러보아도 좀 늦은 시각이라선지(내가 나갈 땐 이미 출근 시간이 지난 뒤라) 보이지 않아,
그냥 가게 되었던 게 점심을 굶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런데 첫 번째 영화 '가버나움'은 참 좋았다.
마치 지옥과도 같은 사회(레바논) 환경 속에서, 나이도 정확히 모르는(약 열두 살) 시리아의 난민인 한 소년의 눈물겨운 삶에 울고 웃고 감동을 할 수밖에 없는,
아주 탄탄한 구성과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수작이었다.
감독이 여자라던데,
영화를 만드느라 참 수고했다! 는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로 노력의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기도 했다.
그리고 똑 같은 상영관에서 20 여 분 뒤에 또 본 다른 영화 '로마'.
여기서 나오는 '로마'는 옛 '로마시대'를 가리키는 게 아닌, 나도 1 년 반여 살아봤던 '멕시코'의 '멕시코 시티'에 있는 서울의 '종로' 정도와 비교될 한 구역의 이름이다.
이 영화를 흑백으로 1970년대상을 담은, 멕시코 중산층의 하녀로 일하는 한 인디오 여인의 삶을,
그 인디오 여인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 영화감독의 자전적인 회상의 작품이었다.
멕시코의 역시 암울하기만 한 사회상을,
백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디오 하녀와의 신분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휴머니즘으로 미화시켜 감춘 게 빤해 보이긴 했지만,
이 영화 역시 감독의 능력이 많이 살아나는 무게가 있는 작품이었다.
혹백이자 전반적으로 흐르는 암울한 멕시코의 분위기까지 더해져,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우울하긴 했지만,
영화 자체로만 보면 잘 만든 영화임에는 틀림 없어 보였다.
그렇게 두 영화가 다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에 몇 개의 분야에 후보로 올라와 있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두 편 다 좋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영화를 보는데 웬 놈의 전화가 그리 오던지......
첫 번째 영화를 보고났더니(진동으로 해놓았더니 영화 중간에 얼마나 호주머니에서 전화가 떨던지, 짜증이 났다.), 세 통의 전화와 문자 두 개가 와 있었다.
평소엔 하루에 한 통의 전화도 안 오는 날이 많은 난데......
그래서 중간 휴식 시간에 내 쪽에서 전화를 걸어줄 수밖에 없었고(그 중 두 개는 저녁 약속 때문에 온 것),
두 번째 영화 때도 또 그렇게 전화가 떨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건 세 통이 다 070이었다.
모처럼 영화 좀 보려고 했더니, 전화마저 나를 방해해서 여간 짜증스러운 게 아니었다.
(중요한 전화였다면 짜증까지 내지 않았겠지만, 특히 070이 세 통이나 왔다는 게 얼마나 화가 치밀던지......)
그렇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3시 반이 다 돼가고 있었고,
막상 배가 고픈 줄도 모른 채 다시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반 시간도 더 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해,
또 나 때문에 일찍 나와준 친구와 음식점에 들어간 걸로 허기진 배를 채웠고......
맘껏 떠들고 즐겁게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오니 11시 반이 되고 있었다.
첫댓글 바쁜 하루이면서 보람된 날이었네요.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만 정말 자신에
충실한 삶을 살고 계시네요.
영화도 무척 사랑하는 예술인.
예, 저는 영화도 매우 좋아합니다.
좋은 영화를 보면 감동을 하게 되고, 그런 감정이 제 작품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독서도 하고 싶은데, 노력은 하는데도 눈이 안 좋아서 한계가 있지만,
영화는 짧은 시간에 가능한 것이기도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