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은, 짧다면, 두 배로 좋다’고 말한 사람은 발타자르 그라시안이다. 이런 마음으로 흔쾌히 권할 수 있는 한 권의 책이 있는데 바로 김지수가 쓴 <들꽃 이야기>(문학동네)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빼곤 어느 계절이든 잠시만 도시를 빠져나가면 갖가지 들꽃을 만날 수 있다. 때로는 무심히 그것을 바라보지만 또 때로는 이 세상에 많은 들꽃들은 저마다 어떤 사연으로 피어나게 되었을까, 바람 머무는 자리면 아무 곳에나 아무렇게 한 무더기씩 피어 있는 들꽃들을 바라보며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주 옛날 어떤 마을이 있었고, 그 마을 사람들은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날에 저마다 꽃이 되어 다시 태어나기로 했다. 그것이 이 세상에 많은 들꽃이 피어나게 된 전설이라고 지금 누군가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앞서 좋은 것은, 짧다면, 두 배로 좋다고 말했지만 이 소설은 아주 짧은 장편소설인 동시에 또한 어른이 아이를 함께 위한 동화이다. 그러니까 그런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동화소설’이라고 불러도 좋을,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 넉넉해지게 하는 글이다. 연말이 되면 누구나 크게 하는 일 없이 마음이 들뜨고 바쁘게 된다. 그때 지하철 안에서든 아니면 잠시 짬이 나는 책상 앞에서든 바쁜 마음의 여유를 되찾듯 한두 시간 짬을 내 들꽃처럼 작은 몸집을 한 이 책을 잡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동화는 제대로 쓰지 않으면 어른들 눈에는 유치해 보이고 아이들에겐 억지로 꾸민 거짓말처럼 지루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아이를 위한 동화든 어른을 위한 동화든 그 안에 삶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면 백이면 백 다 그렇게 되고 만다. 하늘에 대한 이야기든 미래에 대한 이야기든, 아니면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든 그 이야기를 통해 현재 우리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삶의 거울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산속에서 길을 잃은 젊은 사진작가와 모두들 다른 삶을 찾아 떠난 수몰지구에 홀로 남아 이웃들의 얼굴 같은 들꽃을 가꾸고 보살피는 노인, 그리고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들꽃처럼 태어나 노인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는 벙어리 소녀의 이야기가 우리 가슴을 노인이 들려주는 들꽃 사연처럼 아프고도 아름답게 적신다.
우리가 이름만 알고 있거나 아니면 이름조차 모르는 수많은 들꽃들의 꽃말과 전설을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인연과 사연을 통해 들려준다. 한 장 두 장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 많은 꽃들의 사연과 사람들의 사연, 그 안에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저절로 깨닫게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그 꽃들은 사랑으로 자신의 씨앗을 땅에 뿌리고 잎을 밀어 올리고 꽃을 피우고 다시 사랑으로 우리 가슴에 다가와 그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들꽃들의 사연을 담은 페이지에 아주 정성 들인 솜씨로 그 들꽃의 그림을 함께 그려 넣음으로써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 또한 깊게 한다. 이 책은 읽는 동안 영혼이 맑게 씻기는 느낌을 준다. 스스로 이 다음 어떤 들꽃으로 피어나 이웃과 함께 하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