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 씨의 봉평 방문기
2024년 4월 22일 뜬금없이 인천 부평에 있는 청천(淸川)제일교회 손봉녀(孫鳳女) 장로와 손정미(孫貞美) 권사가 먼 길을 찾아왔다. 이들은 고모와 조카 사이로 26년 전 담임했던 교회에 당시 권사요 집사였다. 봉평으로 부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진즉(趁卽) 방문하고 싶었지만 차일피일(此日彼日) 미루다가 이제야 시간을 냈다면서 뒤늦은 인사에 미안해했다. 아니, 그 교회를 사임한 지가 그렇게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그 마음이 더 고마웠다. 세월은 사람의 겉모양을 바꾸어 놓는데 그들은 세월이 비껴간 듯 했다. 1998년 그 교회 부임했을 때 그해 3번 목회자가 바뀌어 교인들은 마음의 상처가 매우 깊었다. 또한 성전 건축 빚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설상가상(雪上加霜) 국가 부도사태를 맞이하여 국제구제금융(IMF)의 제재를 받으면서 연일 고금리 폭탄 투하로 교회는 거의 파탄날 지경이었다. 게다가 빚내서 지은 성전이 완공되지 못한 상태라서 추가 대출로 건축비를 해결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당시 부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개인과 단체는 고금리에 백기 투항하고 결국 부도 처리되는 일이 항다반사였으니 그 교회가 처한 위기는 매우 심각했다. 누군가 이 상황을 타개할 실마리를 찾아야 했지만 그 중심이 될 담임자의 잦은 이동은 교회를 더욱 미궁 속에 몰아넣었다. 손 장로는 창립 멤버였지만 목회자의 빈번한 이동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가 컸고 손 권사는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하던 초보 신자였다. 그런 상황에서 창립 12년 되는 그해 6번째 담임자로 부임했으니 마치 끝을 모르는 긴 터널 중간쯤에 서있는 사람처럼 막막했다. 최악에서 최선을 찾는 비법은 하나님만이 아신다. 매일같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밖에 없었다.
날마다 하늘만 쳐다보면서 살아왔던 그 광야 시절 마침내 검은 구름이 걷히고 찬란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우선 IMF가 조기에 종료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고공 행진하던 금리 나리는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서 옭매었던 이자 숨통을 풀어 주었다. 그 덕에 미완의 공사는 마무리되어 2002년 성전 봉헌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부채 덩어리가 용광로의 쇠처럼 녹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광야 길의 백성처럼 매일 구름과 불기둥을 바라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쉴만한 물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작아진 부채의 언덕에 기대며 평온의 숨을 깊게 내쉴 때 하나님은 고단한 8년의 임무를 내려놓게 하시고 새로운 땅을 향해 가라고 하셨다. 새로 부임한 교회에는 지긋지긋한 빚이 없었다. 그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평화롭고 풍요로웠다. 이처럼 그때는 궁핍에도 처해 보았던 사도의 경험(빌 4:12)을 온몸으로 겪었던 빈곤의 시절이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추억이다.
이렇게 그 시절에 동고동락했던 그 사람들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곳 산골 마을에서 목회하는 옛 목자를 찾아와 주었으니 그 반가움이란 매우 컸다. 이제 망각 속에 들어가 있어서 가물가물한 그 당시 교인들의 이야기는 새로웠고 좋은 소식을 들으면서 한때 그들을 축복했던 목자로서 기도의 응답인 것 같아서 흐뭇했다. 무엇보다 이 두 손 씨(孫氏)의 헌신과 교회사랑 이야기는 두고두고 은혜로운 간증이었다. 손봉녀 장로는 현재 교회의 모든 일에 빠지지 않는 목회 동역자이다. 그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했다. 아들의 앞길이 꽉꽉 막혀 절망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주님만 바라보고 불철주야 몸부림치며 기도하던 10년의 세월이 지나자 마침내 아들 사업에 춘화만개(春花滿開)의 은총이 내려 앉았다. 지금은 시간과 물질을 아끼지 않고 봉사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 예배는 물론 기도와 전도의 자리에 늘 그가 있다. 새로 건축한 성전의 문지기로 청소와 관리를 도맡았다. 여생을 그렇게 살려고 손 장로는 아예 교회 지근거리에 있는 신축 아파트로 평생의 거처를 옮겼다. 또한 손정미 권사는 2008년 성령님이 그 마음에 찾아오신 후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복음에 붙들려 옛사람의 낡은 옷을 벗어던지고 그리스도의 새 옷을 갈아입고는 오직 주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고 있다. 매주일 수십 명 분량의 점심 식사를 혼자 감당하는데 주변에서는 얼마나 힘드냐며 격려하지만 그는 하나도 힘들지 않다. 예수님이 날 위하여 피 흘리신 사랑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래서 주를 위하여 이렇게 봉사할 수 있음이 더 큰 감사다. 오히려 어떻게 그 사랑에 보답할지가 날마다의 고민이다. 전도, 기도는 물론 강단장식, 식사준비 등 봉사의 자리에서 고모 손 장로와 짝이 되어 기쁘게 충성하고 있다. 손 권사는 다음 세대에 관심이 지대하다. 하나님이 주신 차세대 비전을 품고 현재 교육부장으로 아낌없이 그들에게 기도와 물질을 투자한다.
지난번에는 끝까지 복음을 거부하던 이 집안의 두 남자 남편과 시아버지가 세례를 받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제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명문가문으로의 일대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다. 또한 직분자의 자녀가 부모와는 달리 신앙의 일탈이 빈번한 현실에서 이들의 자녀는 주님께 열심히 몸과 재능을 바치고 있으니 두 손 씨의 얼굴에는 항상 싱글 군(君)과 벙글 양(孃)이 만나 웃음꽃을 피운다. 날마다 교회와 예수님을 생각하며 산다는 이들 가족의 헌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때 목사가 뿌린 기도의 씨가 이렇게 열매를 맺게 된 것 같아서 기쁨과 감사가 교차했다. 이런 게 하나님의 기쁨이고 목회의 보람이구나 싶다. 이 열매를 위하여 목자는 오늘 새벽에도 또 힘껏 기도의 씨를 뿌린다.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린도전서 3:8).
청천제일교회(2002년에 봉헌)
현재 청천제일교회(2022년 봉헌)
척사대회 3등상을 수상하는 손봉녀 권사(2005년)
청천제일교회 송별 예배를 마치고 기념(2005년)
봉평 방문한 손봉녀 장로 손정미권사
첫댓글 두 손 씨의 봉평 방문을
늦게라도 환영합니다
첫사랑 잊지 않으신 두
분 생애와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충만 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