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수용소유적공원&거제관광모노레일
국내에서 가장 긴 관광용 모노레일이 운행을 시작
경남 거제시 지방공기업인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는
포로수용소유적공원∼계룡산간 관광 모노레일 운영에 들어갔다.
6인승 모노레일 차량 15대가 포로수용소유적공원 하부 승강장과
계룡산 정상 부근 승강장 사이 왕복 3.54㎞를 오간다.
관광 목적으로 설치한 모노레일로는 국내에서 가장 길다고 공사는 강조했다.
이 모노레일은 1분에 평균 80m를 운행한다.
3.54㎞를 오르내리는데 40분 정도 걸린다.
계룡산 해발 500m 지점 상부 승강장에선 거제 시가지는 물론 멀리 남해 바다까지 볼 수 있다.
요금은 유적공원+모노레일 성인 기준 왕복 1만4천원이다.
6.25 한국전쟁의 발생, 전개 과정과 포로의 수용, 생활상, 석방, 교환 등에 알아본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이 인민군과 소련제 T-34 탱크 240여 대를 앞세우고
38선 전역에서 기습남침을 감행하여 서울은 3일만에 함락되고,
한 달 반만에 낙동강 방어선을 제외한 모든 곳이 북한군에 점령당하고 말았는데
국군은 미군 및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낙동강 교두보를 확보하는 한편,
9월 15일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를 역전, 북으로 진격하게 되었으나
100만 여 명의 중공군 개입으로 다시 38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국지전이 아닌 국제전 양상으로 전개 되다.
전쟁중에 늘어난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전선 곳곳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으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엄청나게 증가한 포로들을 전선에서 고립된 섬 지역으로 옮겨 놓는 방안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가 확정되어 1950년 말부터 거제도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1,200만㎡ 부지에 설치되었고,
1951년 2월 업무를 개시하여 인민군 포로 15만, 중공군 2만, 의용군 3천명 등
최대 17만 3천명의 포로를 수요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300여명의 여자 포로도 있었다.
1953년 6월 18일 한국정부의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을 계기로
1957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전쟁은 끝이 났고,
포로수용소에 있던 포로들은 석방 또는 송환되고 수용소는 폐쇄 되었다.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은 약 95,794㎡ 부지에
1999년 1차, 2002년 2차, 2013년 3차 개장을 통해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1983년 12월 20일 경남 지방문화재 자료 제 9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바 지금은 일부 잔존 건물과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 막사, 사진, 의복 등 생생한 자료와 기록물 등을 바탕으로 유적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전쟁역사의 산 교육장 및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각광받고있다.
시설은 6.25역사관, 북한군 남침과 국군의 사수, 탱크전시관 등의 전쟁ZONE,
포로생활관, 여자포로관, 포로생포관 등의 포로ZONE,
야외막사, 잔존유적지, 철모광장 등의 복원ZONE,
VR체험관, 평화미래전시관 평화탐험체험관 등의 평화ZONE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50체험관과 아바타 포 체험시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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