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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강 1장 15절에서 22절 바울의 감사와 기도
26.05.16(토)
에베소서 1장 17절에서 22절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여러분들을 에베소서로 안내하겠습니다.
오늘은 애베소서 1장 15절 이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애베소서 1장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참된 복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바울의 감사와 기도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포인트를 먼저 설명드리겠습니다.
한 3가지 됩니다.
첫 번째가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 때문에 감사했던 내용이 뭘까? 를 한번 살펴보겠고요.
두 번째는 바울이 에베소서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했던 내용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게 무엇인가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연 바울이 기도한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될 게 뭔가 특별히 신앙이라는 게 뭔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단락구분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가 15절부터 16절까지 바울의 감사가 등장 합니다.
그리고 17절 18절 19절이 바울의 기도 내용입니다. 그리고 23절까지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울사도의 편지를 보면 편지 서두에 문안인사가 끝난 다음에 바로 감사가 등장하는데 이 에베소서는 15절 16절에 와서야 감사가 등장 합니다.
15절에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5절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처음에 시작되는 이로 말미암아라는 단어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란 말은 이것 때문에 라는 말인데요.
이 말은 바로 앞에 나온 13절 14절에 내용을 가리키는 이야기입니다.
13절 14절이 에베소 성도들의 회심 개종을 이야기하는 대목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이렇게 이야기하죠.
그러니까 13절 14절은 에베소서 성도들의 회심과 성령의 사역을 말하는 대목인데 바울은 이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있는 겁니다.
에베소 성도들 특별히 13일을 보면은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약속의 성령을 주셔서 이들을 인쳤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 인치단 말 이게 무슨 뜻일까? 신약 성경에 계속 인치단 말이 등장하는데 이 단어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소유한다는 의미가 있고요.
두 번째는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그 주인이 인을 칩니다. 도장을 찍든지 뭔가 표시를 해 가지고 그 주인 누군지를 표시하고 도둑 으로부터 그 소유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책을 새로 사면 그 책에다 이름을 씁니다. 이름을 왜 씁니까 그거는 그 책의 주인이 그 이름을 쓴 사람일 거라는 것이죠.
그리고 또한 책을 누가 가져가지 않도록 이름을 씁니다.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에베소 성도들을 성령을 통해서 인쳤다는 이야기는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의 소유이고 따라서 하나님이 에비에서 성도들을 보호하겠다라는 그런 의미가 있는 겁니다.
14절을 보면은 하나님께서 에베소 성도들을 인친 이유가 목적이 등장합니다.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라는 말을 합니다. 이 보증이란 말 이 단어를 좀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다른 말로 선불금 처음 내는 돈을 가리키는 이야기인데요. 당시에 사용된 용어를 보면 이렇습니다. 소 한 마리를 사고 나서 그 돈을 다 주기 전에 천 드라크마를 미리 냈을 때 그 돈을 보증이란 단어를 썼습니다.
또 땅을 사고 나서 먼저 160 드라크마를 보증으로 냈을 때 그 돈을 보증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쥐를 잡은 사람들에게 그 수고의 대가로 돈을 다 주지 못하고 미리 먼저 주는 그 돈 팔드라크마를 보증 헬라어로 아랍온 이렇게 부르는데요. 보증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보증이란 말은 여기 1장 14절에 사용된 우리 기업의 보증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성금을 주셔서 미래에 주어질 영광을 미리 성령이라는 선금을 주심으로 보증하셨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 기업에 보증됐다는 말을 하는데요. 우리 기업이란 말이 무슨 말일까요? 성도들이 받을 기업을 말하는 게 아니고 성도들 자신이 기업입니다.
그 근거가 11절입니다. 앞에 보면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다른 말로 우리가 기업이 되었으니 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말은 이미 하나님의 기업 다른 말로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었다는 이야기죠 그렇지만 앞으로 종말에 주님의 재림 때 하나님의 100% 완전한 소유물이 된다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소유물이지만 고난과 핍박이 있고 또 죄와 불결함으로부터 아직 완벽하게 자리 잡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종말에 주님 오셨을 때는 완벽하게 죄와 죽음으로부터 그리고 불의로부터 자비롭게 된 하나님의 100% 소유물 될 거라는 그런 의미가 된 겁니다.
하나님의 기업이 됐다는 이야기 굉장히 의미 있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보배를 사람들은 귀하게 여깁니다.
보배 조금 더 쉽게 설명하면요 피부에 와닿게 설명하면 우리가 자동차를 새로 샀을 때 한번 생각해보면 됩니다. 자동차 새로 산 사람은 새 차에 흠집 날까 봐 굉장히 조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차도 기계식 세차에 돌리는 게 아니고 손으로 세차 합니다. 그만큼 자동차를 보배처럼 여기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중한 보배 삼으셨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자 14절 하반절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함이라 우리를 우리에게 신뢰한 복을 주시는 목적 우리에게 성적을 주시고 우리의 미래 영광을 보장하신 목적이 뭐냐하면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입니다.
6절 12절 14절 반복해서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합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일 복을 주신 목적은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려고 주신 것이죠.
자 이제 본격적으로 15절부터 23절에 나오는 바울의 감사 그리고 바울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15절 이하는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서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특별히 15절에 바울의 감사하는 내용이 두 가지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주의 손에서 너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여기 보면 두 개의 단어가 나옵니다. 믿음 그리고 사랑이죠. 에베소 성도들은 주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또한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근데 흥미로운 것은 이 믿음과 사랑이라는 이 주제가 단순히 바울의 감사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에베소서에 나오는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믿음이라는 이 주제는 에베소서 1장부터 3장에 나오는 내용의 핵심 주제입니다. 그리고 4장부터 마지막 6장까지는 성도들이 갖고 있는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앞 부분인 1장부터 3장의 믿음 이야기를 하는데요. 대표적인 본문이 에베소서 2장 8절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거기 2장 8절에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4장 그리고 이제 그 뒤에 나오는 후반부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데 4장 2절에 사랑 얘기를 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으므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그다음에 5장 2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시는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 행하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에베소 성도들의 믿음을 보면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 이 주님을 향한 믿음은 주님과의 관계죠 또한 반면에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은 이웃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주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균형을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됩니다. 또한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은 믿음이어야 됩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열매 없는 나무 또 믿음이라는 뿌리가 없는 사랑은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다고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제 17절 19절로 가보겠습니다.
여기 보면 바울의 기도가 등장 합니다.
아까 앞에 오는 감사했다면 지금 이제 기도인데요.
우리말 성경을 보면은 17절에 끝부분에
알게 하시고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다음에 18절에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라고 이야기하고
19절 제일 마지막 부분에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니까 17절 18절 19절은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한 위해서 한 기도인데 그 내용이 뭔가 알기를 원해서 기도를 한 것이죠.
이 본문을 조금 더 살펴보면 18절부터 19절에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이 눈을 떠서 알기를 원했던 세 가지 내용이 나옵니다.
첫번째가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죠.
그리고 두 번째가 18절에 나오는 것처럼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입니다.
세 번째가 19절에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비교 할 수 없는 큰 능력을 알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로 하여금 눈을 떠서 보게 하고 싶어 했던 이 세 가지를 알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바로 성령이죠.
17절에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지혜 계시의 영을 너에게 주사라고 말합니다. 이 지혜와 계시의 영이 뭘까? 이 영이라는 것은 성령을 가리키는 이야기인데 성령을 가르켜서 지혜와 계시의 성령이다. 이렇게 부릅니다.
이 말은 구약에 보면 이 사연서 11장 2절에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몰약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라는 말을 씁니다.
다시말하면 구약에 보면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켜서 지혜를 주신 분이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신 분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바울은 구약에 말씀했던 그 성령께서 부르심의 소망 영광의 소망 풍성함 그 다음에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능력을 알도록 기도했던 것이죠.
우리 인간의 지식 노력 탐구 분석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알 수가 있는 것이죠.
특별히 흥미로운 건 뭐냐하면 에베소서 1장 13절의 바울은 에베소교 성도들의 회심을 이야기하면서 여러분들 이미 약속의 성령을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받았다 그런데 이제 이 본문에 와서 보면 17절에 와서 보면 그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깨닫게 하는 능력을 주신다라고 또 이야기합니다.
구원받을 때 받았던 성령께서 이제 우리 속에 거하셔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볼 수 있는 눈들을 열어주신다고 이야기를 하죠.
이제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이 알기 원했던 세 가지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8절에 보면 그의 부르심의 소망을 알기를 기도했습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이렇게 이야기하죠.
바울이 기도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주었던 그 구원을 통해서 주신 소망이 무엇인지를 밝히 알게하기를 원했습니다.
흥미로운 게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 가보면 바울이 이방 기독교인들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서 했던 말이 이게 있습니다.
그때 너희는 세상에서 소망이 없었고 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바울을 뭐라고 하냐하면 이제 예수 믿는 이방 성도들이 부르심의 소망이 생겼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본래 이방인들은 육체적 부활을 믿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사후세계가 없던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망이 없었는데 바울은 성도들에게 부활 소망이 생겼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또한 이 부르심의 소망이 뭘까? 앞뒤 에베소서 문맥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에베소서 1장 10절을 보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통치를 받게 되는 그 소망 부르심의 소망이죠.
또 하나는 에베소서 4장 4절이 나옵니다.
거기에 정확하게 바울이 지금 여기 쓰고 있는 부르심의 소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문맥을 보면 바울이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또 요구를 하는 이야기가 4장의 내용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갖고 있는 부르심의 소망은 이방 기독교인과 유대 기독교인들이 민족적 인종적 반목과 갈등을 넘어서 예수님에서 하나 되는 그 소망 그 소망을 바로 부르심의 소망이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해서 갖고 계신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시는 그 소망을 보는 눈을 주시기를 원하셨던 기대 했던겁니다.
두 번째로 바울이 기도했던 내용은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입니다.
18절을 보면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를 알길 원했습니다.
여기 주목해 볼 것은요 우리말로는 그 기업이라고 했는데 본래 원문에는 그분의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기를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그 기업은 그분의 기업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기업이라는 것은 성도들이 앞으로 받게 될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말하는 게 아니고 성도들이 기업이라고 말씀을 드렸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된 영광스러운 소유된 기업이 얼마나 풍성한 상태인지를 영광스러운 상태인지를 알기를 원하셨던 겁니다.
세 번째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이 알기를 기도했던 내용은 19조에 등장합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앞에 에베소 성도들에게 알기 원했던 두 가지는 주로 미래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여기 세 번째 이야기는 현재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기를 바울이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바로 뒤에 20절부터 23절에서 그 하나님의 능력을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내용을 보면 20절부터 23절을 보시면 그 내용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사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어디서 등장했는가 어디에 나타났는가 다름 아닌 죽은 예수님을 살리시고 그분을 하늘 우편에 앉으신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 것이죠. 여러분 죽은 자를 살리는 힘은 작은 힘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사건은 하나님의 능력이 잘 드러난 사건인데 바로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 있다가 살리신 그 사건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우리가 짐작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제 21절부터 22절에 보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예수님이 죽으면서 살아나셨다는데 의미가 있는 정도가 아니고 더 나아가서 모든 악한 영적 세력들을 패배시켰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21절에 보면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 우편의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여기 보면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이것들이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인데 이 통치 권세 능력 주관이라는 말이 뭘 가리키는 건가
에베소서 전체를 보면 이 단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적 세력들 쉽게 말해서 악한 영들을 가리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면 에베소서 3장 10절에 하늘에 있는 통치와 권세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다시 말하면 통치와 권세는 인간 위정자를 가리키는 게 아니고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가리키는 이야기죠
또한 에베소서 6장 12절에 보면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여기보면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그다음에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합니다.
여기 보면 통치와 권세와 주관자를 다른 말로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이라고 바울이 설명을 합니다.
여러분 에베소 도시는 악한 영들이 지배를 받던 곳입니다. 특별히 사도 행전 19장을 보면 이 19장에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사람 제자들 제자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는데요.
거기 보면 주술 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의 제사장이었던 스게와 일곱 아들이 예수님 이름을 빙자해 가지고 주술을 행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보면은 바울의 복음 때문에 그 수많은 주술책들을 태우는 일이 벌어집니다. 따라서 에베소 도시는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악한 영예 지배를 받던 도시다 또 악한 영들을 숭배하던 것이다라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악한 영들 패배시켰다고 이야기합니다. 세상 악한 사탄과 그 악한 영들을 패배시켰다고 얘기합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 그분과 연합한 성도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그 악한 영들을 패배시키셨으므로 이 악한 영의 세력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에베소서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했던 세 가지는 가만히 보면 세 가지 이야기지만 한 가지 이야기입니다.
다른 말로 이 세 가지 이야기는 결국 구원을 좀 제대로 알아봐라 라는 그런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22절에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의 교회 머리로 삼으셨다
22절을 보면 우리말 번역은 만물 위에 교회 머리로 삼으셨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조금 더 번역을 정확하게 번역해보면요 예수님을 교회를 위하여 만물 위의 머리로 삼으셨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머리되심은 단순히 교회 머리라는 의미가 아니고 온 만물 위에 머리시다 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 예수님의 머리되심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다 라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의 온 세상 통치는 교회 공동체를 위한 것입니다.
23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이제 교회를 설명하면서 바울은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의 몸이다
이것은 바울이 등장하는 아주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신약성경 그 어디에서도 교회를 예수님의 몸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썼던 편지에서 교회를 늘 예수님의 몸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고 핍박하기 위해서 가다가 그때 예수님이 하셨던 이야기가 있죠.
네가 핍박하는 것은 성도가 아니고 나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내가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말씀한 걸 보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교회와 자기를 동일시하고 있는 걸 보게 되죠. 그래서 여기에서부터 바울의 교회론 교회는 예수의 몸이다. 라는 신학이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에베소서에 의하면 교회는 단순히 성도들의 몸이 아니고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구성되어 한 몸 된 몸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안에는 인종적 민족적 구분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인류가 만들어진 것이죠.
또한 예수님께서 교회에 몸이다. 이야기는 이게 단순히 통치하라는 의미도 있지만 또 하나 더 나아가 가지고 교회를 성장하고 자라도록 돕는 분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머리는 영양분을 몸에 공급하는 그런 기관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통치할 뿐만 아니라 교회가 성장하도록 영양분을 공급하는 분이십니다.
23절을 뒷부분을 보겠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에 충만함이니라
여기 충만케 하신 이란 말은 문맥상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긴데 이 말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음을 이기게 하셨던 것처럼 동시에 교회도 예수님과 같이 악한 영적 세력의 승리를 경험하게 하신 분이라는 이야기죠
특별히 20절부터 23절은 하나님의 능력에 지극히 크심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우주적 통치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우주적 통치는 단순히 예수님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20절부터 23일까지 나오는 것이죠.
예수님의 통치는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구성돼 있는 그 공동체에게 예수님과 같은 부활과 우주적 통치 혜택을 주시기 위한 통치입니다.
오늘 배운 말씀을 한번 적용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에게 에베소 성도들이 갖고 있던 믿음과 사랑의 균형이 있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바울에 감사 기도에서 주님을 향한 믿음과 또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 때문에 에베소 성도들에게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믿음과 사랑이 균형을 잡고 있었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믿음의 옆면은 반드시 사랑으로 드러나야되죠.
두 번째 가장 중요한 적용점인데요.
이 바울의 기도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신앙은 이미 주신 것에 대해 영적일 눈을 떠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본문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의 기도 내용을 보면 무언가 부족한 것을 더 달라고 기도하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대신에 이미 주신 것을 볼 줄 아는 눈을 열어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18절에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라고 이야기하죠.
또 19절에 알게 하시기를 구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없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닙니다. 대신에 이미 주신 것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다시 말해 신앙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떠가는 과정입니다.
얼마 전에 타이어가 펑크가 났더라고요.
그런데 그 다음 날 제가 어느 기관에 가서 강의를 할 때 됐는데 밤에 이 펑크가 났기 때문에 굉장히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어떤 분이 제게 이야기 했습니다. 보험 들지 않았느냐 제가 그래서 깜짝 놀랬습니다. 제가 들어놓은 보험에 자동차 긴급 서비스 안에 펑크를 수리하는 서비스가 있었는데 제가 몰랐던 것이죠.
그 서비스를 제가 가지고 있었지만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까 풍성하게 그 서비스를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 뭡니까?
없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있는 것을 알아가고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들에 대해서 눈을 떠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풍성해 주신 것을 보는 마음의 눈을 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애베소서 1장 15절부터 바울의 감사와 바울의 기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애베소서 2장을 통해서 새 생명 주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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