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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강 앎이란 무엇인가?
1. 감성과 오성
다음부터 진행되는 칸트 철학 강의는 논어 위정편 15장의 학(學, 사고의 내용)과 사(思, 사고의 형식)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꼭 알아두어야 할 것으로 논의되고 있다.
子曰 :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칸트 철학은 국화빵이다. 강의할 때 항상 잘 쓰는 말이다.
국화빵을 만들려면 쇠로 된 빵틀이 있고 밀가루 반죽도 필요하다. 앙꼬도 들어가겠지만 안에 들어가는 것을 ‘내용’이라고 그런다. 그리고 빵틀을 ‘형식’이라고 그러자. 이건 이해가 된다.
‘내용’이라는 것을 칸트 철학에서는 Sinnlichkeit, 감성(感性)이라고 그런다. 감성은 영어로 sensation이라고 한다. ‘형식’은 Verstand, 오성(悟性)이라고 부른다. understanding이라고 부른다.
감성(Sinnlichkeit) : 우리 지식의 질료(Stoff)
오성(Verstand) : 우리 지식의 형식(Form)
그런데 ‘오성의 범주(範疇)’라는 말을 쓴다. 카테고리라는 말은 알 것이다. 오성의 12범주라고 한다. 범주라는 것은 국화빵틀을 보면 빵틀에 무늬가 있다. 그 무늬를 범주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간의 인식에는 그런 12개의 거대한 범주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인과성이라든가 수량이라든가 하는 여러 가지 범주가 있다.
범주(Kategorie)
오성의 판단의 형식으로서 칸트는 12개를 제시하였다. 분량(Quantitat), 성질(Qualitat), 관계(Relation) 양상(Modalitat)
2.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아까 이야기했듯이 칸트 철학이 국화빵이라고 하면, 감성을 통해서 인식이 들어온다는 전통을 경험주의라고 한다. 후천적인 경험이 앞선다는 것이다. Empiricism이라고 한다.
경험주의(Empiricism)
존 로크 이래의 영국사상가들이 중심이 된 철학전통. 후천적 감각 경험을 인식의 선행조건으로 간주한다.
그럼 선천적인 이성의 능력을 중요시하는 사상을 이성주의라고 한다. 그걸 영어로 Rationalism이라고 한다.
합리주의(Rationalism)
이성주의라고도 한다. 인간의 지식은 만인에게 공통된 선천적 능력(Reason, Vernunft)에서 유래된다는 이론. 데카르트 이래 유럽대륙의 사상가들이 주장하였다.
그 Rationalism과 Empiricism을 칸트는 국화빵 이론으로 종합을 했다. 오성의 형식과 감성의 내용을 결합하는 것이 우리 인식이다. 어느 한 편으로 가면 안 된다. 경험주의로만 가서도 안 되고, 이성주의만으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합리주의 전통 - 형식 - 빵틀
경험주의 전통 - 내용 - 밀가루 반죽
→ 칸트의 종합
3. 주관주의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런 국화빵틀 이론에 의하면 찍어져 나오는 모습은 항상 빵틀에 따라 결정이 된다. 빵틀에 따라 결정되므로, 우리는 그것을 주관주의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객관주의가 아니다. 그러니깐 객관이 보장되지 않는다.
칸트철학의 중점은 밀가루 반죽보다는 역시 빵틀에 있다. 우리의 세계인식은 빵틀이라는 주관적 형식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이러한 이론을 주관주의(Subjectivism)라 한다. 구성설(Constructionism)이라고 함.
아무리 객관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인식 구조는 주관적 인식이다. 그러니깐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객관적 세계라는 것은 칸트철학에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여러분들이 객관적 세계라고 하는 것은 우리인식의 틀을 가지고 만들어낸 세계이다.
최근 제 딸아이가 천체물리학 계통에서 박사가 되었다. 어저께 아인슈타인이 있었던 학교인 프리스턴 대학에서 박사가 되었다고 전화가 왔다. 어린아이가 거기에 가서 박사를 했다고 하니 얼마나 기뻤겠나? 그래서 그 아이하고 한 30분 통화를 했다. 그래서 ‘네 박사논문의 주제가 뭐냐’고 물었다. 갤럭시의 형태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우주에 은하계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은하계가 모인 은하단이 있다. 그 은하단 1,100개를 대상으로 해서, 무슨 이론을 자기가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걸로 통과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네가 천문학 박사가 되었는데, 기막힌 우주라고 하지만, 그 우주는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4차원적 인식 구조에서 보고 있는 우주일 것이다. 그 외로도 또 수많은 우주가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우주는 절대적인 객관적 우주가 아니라 우리의 4차원적 인식구조에서 구현된 하나의 우주일 수도 있다. 따라서 현대물리학의 사유를 넘어서는 다른 우주가 또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우주는 실컷 봤으니깐, 앞으로는 다른 우주를 볼 수 있도록 공부해라.’고 했다.
하다못해 우리가 풀밭을 봐도, 여러분들은 그 풀밭을 하나의 우주로 바라본다. 그런데 예를 들어 거기 있는 메뚜기는 그 풀밭을 어떻게 바라보겠나? 파리를 거길 지나가면서, 그 풀밭을 어떻게 바라보겠나? 우리가 바라보는 식으로만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서 나비가 날아가면서 바라보는 우주는 다를 것이다. 같은 풀밭이지만 모두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니깐 인간이 보고 있는 우주 이외에 무한한 우주가 겹겹으로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우주를 못 본다. 이렇게 생각하면 칸트학파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우주라고 하는 것은 결코 인간의 인식 구조를, 이 국화빵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subjectivism, 주관주의라고 한다.
4. 칸트 철학과 시대정신
칸트가 왜 이런 주관주의를 만들었냐 하면, 결국 주관주의로 가면, 이 세계는 나의 인식주관이 구성해 놓은 것이 된다. 그럼 이 세계의 조물주는 누가 되는가? 바로 내가 이 세계의 조물주가 된다.
칸트의 인식론에서는 이 세계를 구성한 주체가 선험적 “나”가 된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내가 창조한 것이다.
근대적 인간관에 있어서 이 이상의 강렬한 표현이 없다. 서구 근세주의는 인간을 가지고 나왔다.
중세기에는 신이 이 세계를 창조했고, 신이 이 세계를 구성했다. 그래서 신(神)에 의해서 객관이 보장된다고 했는데, 칸트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만든 우주일 뿐이고, 이 우주의 주체는 ‘나’라는 것이다. 이것이 서구라파 근세 개인주의의 가장 지고한 표현이다.
칸트의 주관주의는 르네상스 이래 진행되어온 인본주의, 과학적 이성주의 계몽주의적 개인주의(Individualism)의 지고한 표현이다.
그러니깐 철학이라는 게 매우 어려운 거 같아도, 철학이라는 게 아주 어려운 표현들을 하지만, 알고 보면 어렵지 않다.
칸트가 왜 그런 이론을 만들어냈을까? 그 당시 독일은 후진 국가였다. 그 후진국가의 쾨니히스베르크에 살던 칸트는 이러한 사상을 통해서, 이 세계를 자기가 구성하려고 했다.
그리고 사상가로서 그 당시 진행되고 있던 서구라파 근세 계몽주의를 자기가 완성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 당시 사상적으로 독일을 앞서갔던 프랑스, 영국 등의 모든 나라가 독일에게 오히려 떨어지게 된다. 독일이 더 앞서가게 된다. 그래서 칸트는 이런 이론을 만든 것이다.
5. 칸트 철학의 한계
그러니깐 철학이라는 것은 우리하고 아주 동떨어진 거 같지만, ‘이 세계를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고 하는 심오한 인식론을 가지고, ‘결국 인간을 어떻게 규정하고, 그렇게 규정된 인간들이 구성하는 사회는 어떠한 사회이며,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이 우주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들을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모든 철학사상은 시대정신(Zeitgeist)의 표현이다. 철학은 그 시대의 삶의 양식과 분리되어 논의될 수 없다.
그러나 칸트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인간을 세계의 주체로 높였지만,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빵틀을 넘어가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하나님의 세계라든가 영혼의 불멸, ‘인간은 과연 자유로운가?’하는 여러 가지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칸트철학에서는 인간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계를 지었다.
그래서 칸트철학은 인간을 이 우주의 주체로 만드는 동시에 빵틀을 가지고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왜냐?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계는 빵틀이 찍어낸 현상세계에 국한된다. 그걸 넘어서는 것은 불가지론의 영역이다. 즉 인간이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알 수 있는 세계는 오성의 범주가 찍어낸 현상세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순수이성의 대상인 현상계를 넘어서는 물자체(Ding-an-sich)는 우리가 알 길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칸트 철학의 위대성은 계몽주의를 완성하고, 계몽주의의 한계를 그은 데 있다.
칸트는 계몽주의를 완성한 동시에 계몽주의의 한계를 그었다. 인간은 이 세계의 창조주인 동시에 인간이 창조한 세계는 과학적 인식의 대상인 현상세계에 불과한 것이다.
같은 철학이라도 쉽게 풀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쉽게 철학을 국민한테 풀어드리는 나를 놓고 왜 비난하는가?
그럼 이제 논어로 들어가자. 이렇게 풀어놓고 들어가면, 이 다음에 앎에 관한, 인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된다.
6. 이단의 뜻
위정 제16장
子曰 : “攻乎異端, 欺害也已.”
자왈 : “공호이단, 사해야이.”
이 장(章)도 상당히 문제가 많고 재미난 장이다.
공호이단(攻乎異端)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 우리가 아는 말이 들어가 있다. 이단(異端)이라는 말이다. 지금 우리말에서 이단이라는 말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하면, 종교적 이단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고전을 해석할 때, 오늘날 여러분들이 쓰고 있는 의미를 곧바로 고전에 나오는 단어에 덮어씌워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위험하다. 왜냐? 공자시대에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이단 같은 것은 없었다.
문자의 동일성 때문에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를 고전에 그대로 적용하면 오히려 의미의 동시성이 파괴된다.
왜냐? 정통이 있어야 이단이 있을 수 있다. 교회가 있어야 이단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정통 교리가 있어야 이단 교리가 있는 것이다. 공자의 시대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공자는 창조적 시대를 산 사람이다. 무엇을 변호하던 시대를 산 사람이 아니다. 공자는 apologetic age를 산 사람이 아니다. creative age를 산 사람이다.
공자는 창조적 시대(creative age)를 살았지, 호교적 시대(apologetic age)를 살지 않았다.
후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공호이단(攻乎異端)에 대해 공자가 이단을 비판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건 불가한 해석이다.
주자의 해석은 그런 의미에서 틀렸다. 주자는 공자에 대비해서 도가적 사상가인 노자라든가, 불교라든가, 양묵(楊墨) 즉 양주(楊朱)나 묵가(墨家)를 이단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다 공자 후대의 사상이다. 어떻게 후대의 이론을 가지고 공자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 말한 이단이라는 것은 비정통을 뜻하는 ‘unorthodoxy’이나 ‘heterodoxy’라는 의미가 아니다. 왜냐하면 공자에 있어서 orthodoxy, 정통이라는 생각이 없다.
정통(orthodoxy) ↔ 이단(unorthodoxy, heterodoxy)
7. 일반적인 해석
그리고 여기 나오는 공(攻)에 대해서는 2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공격하다’는 뜻이 있다. 또 하나는 ‘전공하다’고 할 적에도 이 말을 쓴다.
공(攻)
1)공격하다(to attack)
2)전공하다(to delve into)
그러니깐 ‘무엇을 공부하고, 깊게 들어간다’는 뜻과 ‘공격한다’는 2가지 의미로 쓰인다.
예를 들어, 공호이단(攻乎異端)에서 이단을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의미로 보고, 공(攻)을 공격한다로 보면, 이단을 공격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전체를 마구잡이로 해석하면 ‘이단을 까는 건 해가 될뿐이다.’가 된다. 난 이렇게 취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해석한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다. 이단은 아무리 까봐야 별 소득이 없다. 전통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해석했다. 공자께서 이단이라는 것은 치지도외(置之度外)하라고 말했다고 볼 수도 있다.
攻乎異端, 欺害也已.
8. 도올의 해석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볼 수가 없다.
여기서 공(功)이라는 것은 배우다, 깊게 연구해 들어가다, 빠져들어 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 이단(異端)이라는 것은 ‘괴이한 단서’라는 뜻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희한한 일들을 찾게 된다. 병원을 찾을 때도 누가 용하다며 찾아간다. ‘누가 도통했대.’ ‘어디 가면 누가 관상사주를 보는데 기막히게 싸그리 다 알아맞힌대.’ 이런 게 전부 ‘이상한 단서’들이다. 이단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다.
사람들은 기이한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자꾸만 빠져 들어간다. 이런 이단(異端)에 들어가면 갈수록, 그것은 해(害)만 될 뿐이다.
그럼 공자사상은 보수주의냐? 그렇지 않다. 공자사상이 위대한 것은 상식의 존중이다.
이단(기이한 단서)의 거부는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보수주의가 아니라 상식의 존중(respect for common sense)이다.
그런데 이단이라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여 봐야 되지 않나? 희한하게 미래를 다 예언한다고 하는데 가서 볼만하지 않나? 휴거가 올지도 모르지 않나? 가보겠는가?
상식적인 세계를 공부하려고 해도 끝이 없는데, 왜 미쳤다고 이상한 것들을 좋아하는가?
내가 동양철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젊은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항상 괴로움을 당한다. 내가 한의과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항상 괴로움을 당한다. 동양철학을 한다고 하면 ‘도통! 도사!’를 말한다. 한의학을 한다고 해도 비방만 찾는다.
영화도 우주의 열쇠를 가지고 어디를 다니고, 제5원소 같은 것만 보니깐, 사람들이 전부 혼동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게 뭐냐? 나는 우리 학생들한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풀 한포기 이상의 신비는 없다.’ 내가 항상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게 이 말이다. 여러분들 풀 한 포기를 보라. 그 얼마나 위대한 신비로운 생명의 발현인가?
풀 한 포기처럼 위대한 신비는 없다.
-도올-
그러기 때문에 결국 우리 삶의 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삶의 과정에서부터, 삶의 체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다. 진리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공자는 이단이라는 말과 연결해서, 공자는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았다. 이건 한 글자씩 해석을 해야 한다.
子不語怪⦁力⦁亂⦁神.
[술어] 20
괴(怪)는 괴이한 것이다.
력(力)이라는 것은 대단한 힘을 나타나는 것이다.
내 친구 중 하나가 자신의 기를 뿜어서 멀리 떨어져 있는 형광등을 켜는 차력을 연마했다. 치과의사를 하던 친구인데, 의사직도 내던지고, 4년 동안 고생을 해서 그 일을 했다. 그런데 나는 그냥 전기를 연결해서 켜면 된다. 차력이 대단한 거 같지만 기껏 형광등 하나 켠 것뿐이다.
차력을 연마해서 손가락으로 못을 박는데, 나는 망치로 쉽게 못을 박을 수 있다. 망치로 하면 되는데, 그걸 왜 어렵게 손으로 하는가?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그런 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형광등을 켜려고 인생을 낭비한 것이다. 요새 젊은이들은 이런 것에 빠지기 쉽다.
난(亂)은 어지러운 것이다. 신(神)은 신비한 것이다.
이런 게 전부 이단이다. 괴이한 실마리들이다. 괴이한 실마리에 사람들이 다 현혹된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도사’라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믿지 말기 바란다. 도통했다는 사람은 배격해야 한다. 누구한테 가서 미래를 본다는 것은 다 소용이 없는 짓이다.
결국 인간이 산다고 하는 것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산다는 것이다.
운명이라는 게 정해져 있다고도 하지만, 내가 이렇게 가다가, 저렇게 다른 길로도 갈 수 있다. 누가 감히 내 운명을 이야기하겠는가?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다.
인간의 도덕적 삶이란 자유의지(free will)가 있기 때문에만 가능한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
인간의 고귀함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내 인생을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동양철학을 한다고 다들 나보고 사주관상을 봐달라고 한다. 물론 내가 근사하게 봐드릴 수 있다. 내가 정말 잘 본다.
내가 하버드에 있을 적에 사람들이 와서 사주관상을 봐달라고 했다. 용하다고 소문이 났다. 하버드 옌칭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찾아 왔다. 애를 낳으면 한문을 잘 아니깐 이름을 지어달라고 왔다. 그리고 꼭 자기 사주팔자를 좀 봐달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몇 마디 해주면 신기하다며 좋아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은 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부질없는 짓이다. 재미일 뿐이다. 재미는 있으나, 인간의 본질은 그런데 있는 게 아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정말 공자의 사상을 배워야 한다.
‘인생을 살다보면 괴이한 단서들이 나타나는데, 거기에 현혹되지 말라. 그것은 결국 너에게 해를 가져올 뿐이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이런 공자의 위대한 사상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예수를 믿든, 부처님을 믿든, 뭐를 믿든지 간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9. 자로
다음에 유명한 장이 나온다. 17장이다. 오늘은 상당히 강의 진도가 많이 나간다.
위정 제 17장
子曰: “有!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之爲不知, 是知也.”
자왈: “유! 회여지지호!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여러분들이 논어에 점점 재미를 느끼시는 거 같은데, 이 글은 내가 평생을 살면서 가장 내 마음에 간직하고 사는 구절이다.
오늘 내가 이걸 가지고 할 이야기가 많다. 왜냐하면 내가 평생 이걸 실천하고 산 사람이기 때문이다. 할 이야기가 많다.
우선 누가 등장했는가? 유명한 자로가 등장했다. 자로가 어떤 사람이냐 하면, 공자는 자로와 더불어 살고, 자로와 더불어 죽었다고 한다. 자로야말로 공자에게 정말 둘도 없는 친구다.
안회 같은 제자는 공자님 말씀을 잘 듣고, 면도날처럼 머리가 명석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두렵다. 우수한 제자는 인간적으로 두렵다. 좀 바보스럽고 우직하고 멍청한 데가 있는 사람을 인간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子路(자로)
변(卞)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9세 연하, 용맹스럽고 충직한 인물로 공자를 평생 시봉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로는 평생 ‘네! 말씀만 하십시오!’라며 공자를 따랐다. 공자가 자로를 얻고부터 자기 주변에 험담이 없어졌다고 했다.
自吾得由, 惡言不聞於耳(자오득유, 오언불문어이)
[사기][제자열전]
‘까부는 놈들을 제가 다 처리하겠습니다!!’ 뭐 이런 사람이었다. 자로는 우직한 사람이었다.
논어의 주인공을 딱 3명만 고르라면, 우리는 공자, 자로, 안회를 꼽을 수밖에 없다. 논어라는 드라마는 이 3명의 주연과 그 다음으로 자공, 염구와 같은 여러 마이너 캐스팅이 있다.
그러니깐 안회와 자공은 공자의 오른팔, 왼팔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안회는 공자의 데미안이라고 하면, 자로는 공자의 분신이다. 어떤 역경에 빠져도 자로만 있으면 마음이 놓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우직한 사람일수록 무엇이든 우기길 잘한다. 그러니깐 논어에 자로가 여러 번 나오는데, 자로만 나오면 공자가 꾸중을 한다. 자로와 공자의 사이가 이런 느낌이다.
자로(子路)라는 이름으로 47차, 유(由)라는 이름으로 22차 나온다.
여기서도 아마 자로가 평소에 만날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우기니깐, 공자가 먼저 ‘유(由)야’라고 부른다. 유(由)라는 것은 참 인간적으로 부른 것이다. 자로의 명(名)이다. 선생이라도 명(名)을 함부로 안 부르는데, 공자는 자기 제자를 전부 명(名)으로 불렀다. 복동아, 철수야,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誨女知之乎!
내 너에게 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마!
내가 너에게 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마. 회여지지호(誨女知之乎!)라는 것은 완곡한 표현이다. 아주 사랑이 듬뿍 담긴 표현이다.
10. 술이편 10장
그런데 이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자로와 공자의 일화를 하나 보기로 한다. 공자, 자로, 안회 3명이 앉아 대화를 하는 장면인데, 술이편(述而篇) 10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공자가 안연한테 이야기했다.
用之則行, 舍之則藏, 惟我與爾有是夫!
용지즉해, 사지즉장, 유아여미유시부!
이 세상이 좋은 세상이 되어서, 누가 우리를 쓰면 나가서 도를 행하고, 우리를 써 주면 유감없이 행동으로 옮기고, 이 세상이 우리를 버리면 죽은 듯이 파묻혀 살 수 있는 사람은 너하고 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게 대단한 말이다. 도가 있을 때는 유감없이 행하고, 버리면 숨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너하고 나 밖에 없을 것이다. 안회를 보고 그렇게 말한다. 안회는 그렇게 사리의 진퇴 등 모든 게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깐 자로가 옆에 있다가 화가 났다. 안회만을 극찬한 것이라서 화가 났다. ‘쓰이면 너를 데리고 나가서 세상을 운영하고, 버리면 유감없이 숨어서 공부나 하면 되지 않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너하고 나밖에 없다’고 한 것이다.
그렇게 자로가 옆에 앉아서 소외되어 버렸다.
그러니깐 자로가 ‘선생님이 만약 삼군의 총수가 되셨다면, 누굴 데리고 나가시겠습니까?’하고 묻는다.
여기서 3군은 육해공군이 아니다. 그 당시 군(軍)이라는 것은 요새말로 사단과 같은 것이다. 1군은 1만2천5백명이다. 그래서 3군이라면 3만7천5백명의 대군이다. 삼군은 3개의 군단이다. 그런 대전역을 일으킨 것이다. ‘3군을 끌고 전쟁을 하러 나가신다면 누굴 데리고 나가시겠습니까?’라고 자로가 묻고 있다.
子行三軍, 則誰與?
그러니깐 공자가 그때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알몸으로 황하를 건너면서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는 자, 이런 자를 나는 더불어 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여기에서 폭호빙하(暴虎憑河)라는 말이 나온다.
暴虎憑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폭호빙하, 사이무회자, 오불여야.
사실 3군을 끌고 나가려면 그런 사람을 데리고 나가야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람을 전장에 데리고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必也臨事而懼, 好謨而成者也
필야임사이구, 호모이성자야
‘반드시 모든 사태에 임해서 두려워할 줄 알고, 머리를 써서 모든 것을 잘 도모해서 반드시 이루고야 마는 사람을 나는 데리고 간다.’
결국 너처럼 용기만 있는 자는 나의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자로에게 핀잔을 준 것이다. 자로는 참 비참하다. 안회는 그렇게 칭찬하시면서, 자로가 옆에서 끼어들면, 짓궂게 자로를 야단치는 게 공자다. 그게 공자와 자로의 인간적 관계이다. 그런 관계를 아주 드라마틱하게 나타내는 재미난 이야기다.
11. 위정편 17장
자로는 그렇게 폭호빙하하는 인간이어서 매사를 우기고 다 안다고 하였다. 제자들끼리 있으면 상대를 야단치기도 하였다. 그러니깐 자로를 불러서 공자가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주마.’라고 하신 것이다.
誨女知之乎!
그런데 하신 말은 앎에 대한 규정이 아니다. 앎이란 무엇인가? 안다고 하는 것을 규정할 수는 없다. 지식이 뭐냐? 여러분들은 답할 수 있나? 과연 무지가 무엇인가? 여러분들은 정말 무지한가? 시골에 사는 농부들은 무지한가? 지식인은 누구고, 무지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건 어려운 질문이다. 이걸 공자는 어떻게 대답하나?
知之爲知之, 不之爲不知, 是知也.(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곧 그것이 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게 유명한 공자의 대답이다. 이건 잘 분석해야 한다. 나는 평생 이걸 가슴에 담고 산 사람이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러분이 아는 것을 안다고 할 수 있다. 그건 금방 증명이 된다. 그런데 한국 지식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 김용옥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봐도, 사람들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모른다.
자기가 정말로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는 것만 안다고 한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독단이다. 그러면서 나보고 독단이라고 한다.
왜냐? 나는 평생 무지를 동경하고 산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노자철학을 공부했고, 공자를 공부하고 있다. 나는 무지에 대한 동경 속에 산 사람이다.
왜냐?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것처럼 인간에게 희열을 주는 것이 어디에 있나?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만이 지식의 세계로 확장해 나갈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모른다는 것, 무지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깐 젊은 사람도 모르는 것은 철저하게 모른다고 치지도외(置之度外)해야 한다. 에포케, 모르는 것을 가로에다 집어넣고 살라는 것이다.
에포케(epoke)
스토아학파로부터 근세 현상학에 이르기까지 쓰이는 개념. 판단중지. 확실치 않은 것에 대하여 판단을 보류하라는 뜻.
그렇게 하면, 언젠가 알 수 있다는 희망 속에서 살 수 있다. 그런데 전부 적당히 알고 입을 나불거린다.
13. 후쿠나가 미쯔지
내가 대만대학에 갔을 때, 방동미 교수한테 배웠고, 그리고 일본에서도 대가들을 만났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후쿠나가 미쯔지’라는 분이다. 아직도 살아계시는데, 이 양반이 1918년생이다. 아직도 큐수슈우에 살아 계시다. 교토(京都)대학의 대 학자이시다.
후쿠나가 미쯔지(福永光司, 1918 - )
큐우슈우에서 태어나 京都대학 철학과 졸업, 동경대학교수, 京都대학 인문대학장. 유, 불, 도의 문헌에 달통한 방대한 사유체계를 정립한 대사상가
이 분은 노장철학의 대가(大家)시고, 유불도에 두루 통달한 분이다.
동경대학에 유학하고 있을 때 이 분을 만났다. 동경대학 교수들은 좁다. 좁은 데 천착하는 스타일이 많다. 그래서 이런 거장을 교토대학에서 모셔왔다. 이 양반이 동경대에 4, 5년 있을 때, 내가 유학을 했다. 이 분은 유도가 9단이다. 남방인 큐슈에서 성장한 분으로, 교토대 철학과를 나오셨다.
KBS 덕분에 몇 십년 만에 다시 그 분을 만났는데, KBS PD분이 대화 나누는 것은 못 찍었다. 아무튼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그분이 날 호텔에서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네 눈빛을 보니 정말 훌륭하게 살았구나. 그런데 내가 이 한 마디만 하마. 네가 정말 위대한 학자의 재질이 있는 사람인데, 동양학자로서 학문을 하려면 3가지는 읽어야 한다. 그걸 읽지 않으면 내 앞에 와서 학자라고 말하지 마라. 그게 뭐냐 하면, 팔만대장경 전부, 송본 십삼경주소 전부 그리고 도장경 전부다. 이걸 읽지 아니하면, 내 앞에 와서 학자라고 하지 마라.”
대장경(大藏經) 불교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유교
정통도장(正統道藏) 도교
그 말은 뭐냐? 그분이 그걸 다 읽었다는 이야기다. 정말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네가 진수대장경 100권을 다 못 읽으면, 34권에서 55권까지는 꼭 보아라. 그리고 도장경 60권 전체를 다이제스트한 운급칠첨이라는 게 122권 있는데, 이것과 십상경주소를 다 읽어라. 이걸 다 읽지 않으면, 너는 내 앞에서 학자라고 하지 말라.”고 하셨다.
운급칠첨(雲笈七籤)
122권. 북송의 장군방(張君房)이 방대한 ‘도장경’을 요약한 명저.
80 노령의 대 석학이 한국인 제자의 손을 잡고 하신 말씀이다.
지금 나는 새 발의 피다. 그런 분들 앞에 가면, 이건 부끄러운 수준이다. 나는 이렇게 앞으로 오로지 공부할 생각만 하고 사는 사람이다. 이 세계에는 그런 대가들이 아주 많다.
내가 솔직히 말해서, 선생님이 읽으라고 하는 그 분량의 4분의 1은 읽은 거 같다. 그러나 다 읽으려면 앞으로 10년은 걸린다. 그럼 그때 가면 그 분은 돌아가시겠지만, 내가 그 분이 말한 것을 다 읽을 것이다.
그 분이 말하길 ‘근세 학문이라는 것은 전부 쥐꼬리만 한 지식을 가지고. 서양의 과학이라는 것을 빙자해서 뻥 튀겨 먹은 엉터리 학문이다!’고 하셨다. 기초 자료들의 공부를 안 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 동경대학에 ‘마루야마 텐노(天皇)’라고 불리던 동경대학 법학부에 근세 일본의 세계적인 학자가 있다. 하버드 대학에서 모셔다가 명예박사를 드린 일본 근세를 대변하는 ‘마루야마 마사오’에 대해, ‘그 자식이 뭘 아냐? 그 아이가 뭘 아냐?’고 말씀하셨다. 자신은 그런 사람처럼 화려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런 사람들의 학문을 본받지 말라. 그렇게 좁은 시야를 가지고 학문이라고 하고 앉았냐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반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학계가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알아야 한다. 나는 새 발의 피다. 나는 기초도 안 된 사람이다. 그만큼 우리 역사는 사람을 안 키웠다.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우선 어느 정도의 기준이 있어야 도전을 할 게 아닌가?
14. 삶과 죽음
그리고 후쿠나가 선생은 일제시대 때 학도병으로 군에 끌려갔다고 한다. 끌려가면서 장자를 종이에 새까맣게 써서 가슴에 품고 갔다고 한다. 그래서 폭탄이 터지는 장자의 고향인 하남성에 가서, 위대한 장자를 태어나게 한 산하를 바라보면서, 거기서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 한다. 적이 나타나면, 그 적이 어쩌면 자신이 존경하는 장자 같은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장자 구절을 외우면서 총을 겨누고 있는데, ‘인간들이라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 패러독스가 어디 있는가? 나를 붙잡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거기 가서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는 군대에 나갈 때 반드시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이제 죽을 거니깐, 죽음이 무엇인지 알아나 보자고 생각해서 죽음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 포탄이 터지는 가운데 주머니 속에 넣었던 장자를 다시 꺼내 읽었는데, 장자의 지북유(知北遊)에 나오는 하나의 구절을 보았다고 한다.
人之生, 氣之聚也. 聚則爲生, 散則爲死.
[장자] [지북유(知北遊)편]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은 기가 모인 것일 뿐이다. 기가 모였을 때를 생명이라 하는 것이고, 그것이 흩어지면 곧 죽음이라.’
그것을 보고, 자기는 거기서 득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왕충(王充)의 논사편을 인용하셨다.
人未生在元氣之中, 卽死復歸元氣
[논형] [論死]편
사람이 죽지 않을 때는 원기 속에 있지만, 죽으면 다시 원기로 돌아가는 인생이다.
마지막에 이 분이 회남자의 정신훈을 인용하셨다.
知宇宙之大, 則不可劫以死生
[회남자] [精神訓]
이 광막한 우주의 거대함을 알면, 죽는다 산다 하는 것은 인간이 거부할 수 없다.
이 우주의 거대함을 깨닫고, 그러면서 자기는 죽음을 깨닫고, 이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때 장자가 살았던 중국의 산하를 보고, 거기서 깨달음을 얻고, 자기는 돌아와서 학문을 했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대장경을 다 읽고, 도장경을 다 읽고, 십삼경을 다 보았다. 그 양반이 강의하시는 걸 보면, 도장경 몇 권 어디를 보라고 하면, 딱 거기에 그 내용이 있다. 신수대장경 몇 권 어디를 보라고 하시면서, 마구 인용하시면서 강의를 한다.
그런 대가들 앞에서 김용옥은 새발의 피다. 이것을 우리 국민이 빨리 깨우쳐야 한다. 이렇게 유치한 나를 놓고 앉아서, 우리 학계가 유치한 나발을 불고 앉았으니 개탄할 노릇이다.
내가 저번에도 말한 것처럼 우리는 기초학문을 해야 한다. 번역을 해야 하고, 기초자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우리 민족은 앞으로 모두 공유할 수 있는 학문의 기초를 쌓아야 한다.
제가 신주쿠에 있는 선루트 호텔 3412호실에서 12월 29일 아침 9시에 나올 때, 이 양반이 눈물을 흘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受而喜之, 忘而復之’ ‘受けてこれを喜び、忘れてこれをかえし。’였다.
受而喜之, 忘而復之
[장자] [大宗師]
장자의 대종사에 나오는, 이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이걸 가슴에 가지라고 하셨다.
‘네가 이 우주 대 천지로부터 생명을 받았다는 그 자체를 기뻐하라.’ 그렇지 않냐? 태어나서 너랑 나랑 살고 있다는 것, 이 이상의 기쁨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이제 네 존재가 이 우주에서 잊어질 때가 되면 그저 편하게, 너의 모든 것을 돌리고 가라.’ 이런 말씀이다.
그렇게 헤어지면서 큰 절을 하고 나왔다. 제가 이 강의가 끝나기 전에 건강이 허락되면 후쿠나가 미쯔지 선생을 한 번 모시고 싶다.
15. 지관스님
그야말로 지식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유치하게 이야기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이렇게 유치한 게임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도 후쿠나가 미쯔지 같은 분이 있다. 내가 이 시대에 살아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한 분 계신데, 그 분이 지관 스님이다.
이 분은 해인사 가야산문 용성 문중의 거목이신데, 방대한 불교대사림이라는 사전을 만들고 계신다. 이 양반도 팔만대장경을 다 보셨다. 연세가 칠순이신데, 지금도 하루 4시간밖에 못 자고, 방대한 전적을 놓고 이 사전을 만들고 계신다. 이게 우리 불교 역사를 통털어 보면 결국 이거 하나 남는다고 생각한다.
지관(智冠 1932 - )
경북 영일군 유계리에서 출생, 해인사에서 자운(慈雲)율사를 은사로 득도. 운허(耘虛)스님 밑에서 대교를 마침 ,11대 동국대학교 총장. 현재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설립, 방대한 문헌연구에만 몰두. [한국불교소의경전연구], [한국고승비문총집], [가산불교대사림] 등 위대한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모든 비문들이 다 없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양반 혼자 만날 차를 타고 다니시면서, 전국에 있는 비문들을 다 탁본해서, 우리가 볼 수 있게 한문을 다 번역까지 해 놓으셨다. 우리나라 고승들의 모든 비문들을 거의 모아 완간했다.
이런 것을 혼자 하고 계시다. 이런 대 스승이 있고, 석학이 있는데, 우리 사회는 이런 분을 아무도 안 모신다. 아무도 관심을 안 기울이고 있다. 이런 것에 대해서는 기사 하나도 안 쓰면서, 왜 김용옥을 놓고 앉아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지관스님을 가르친 스님이 운허스님인데, 이광수 선생의 사촌형님이라고 한다. 그 유명한 운허스님한테 배우신 분이다.
운허(耘虛, 1892~1980) 속명은 이학수(李學修), 유점사 경송(慶松) 선사에게 득도. 영호(映湖) 강백에게 대교 수료. 봉선사 주지. 1963년 동국역경원을 창설, 열반시까지 한글대장경 편찬사업에 헌신. 화엄경, 열반경, 수능엄경, 불교사전 등을 남김.
하여튼 이 지관스님은 거칠 것을 다 거친 분이다. 동국대 총장까지 하셨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동숭동 옆집에 살게 되었다. 거기서 매일 일을 하고 계시다.
나는 그런 분을 뵈면, 내가 한국 사회에 살고 있다는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다. 신문기자가 뭐라고 쓰든, 나는 상관없다.
伽倻山門沒智冠, 海印三昧無印現.
가야산문에 지관이 없으면
해인삼매는 그 인을 드러낼 길이 없다. -도올의 시-
나는 우리나라의 정신적인 맥을 이어가시는 분이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 책들은 세계적인 것으로,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작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불교도들은 절간에다 돈을 가져다주면서, 이런 작업을 하는 분한테는 돈 한 푼 안 들어간다.
이 책 한 권을 내는데 몇 억씩 들어간다. 어렵게, 어렵게 이걸 하고 계신데, 우리나라 불교도들은 절간을 짓지 말고, 이렇게 무형의 기초 작업에 보시하셔야 한다.
16. 우리 사회의 착각
이 한학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는 험난한 세계다. 김용옥을 비판해도 좋다. 예를 들면 ‘당신이 강의를 했는데, 다산 고금주에 당신이 인용한 걸 찾아보니깐, 당신 해석이 틀렸더라. 내가 해석해보니 이런 뜻이다.’ 이렇게 하면 얼마나 보기가 좋은가? 그럼 나도 보고 확인해보고 ‘아, 그건 내가 잘못본 거 같다.’ 그렇게 시인을 한다.
그런 게 비판이다. 원색적으로 김용옥의 말버릇이 어떻고 하는 비판은 비판이 아니다.
나는 바다 건너 일본에 계신 후쿠나가 선생님 같은 분을 생각하고, 한국 동숭동골에 살고 계신 지관스님 같은 분을 생각하면서, 그저 ‘내가 언제 이런 분들의 학문을 쫓아갈까?’ 그런 것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후쿠나가 선생님이 십삼경주소를 다 읽고, 대장경을 다 읽고, 도장경을 다 읽지 않고는, 자기 앞에서 학문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 정도의 학자들이 우리 사회에 최소한 백 명은 있을 때, 우리 사회에 문화의 기초가 닦이는 것이다. 일본은 그런 학자들이 100명은 있다. 이게 거짓말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죄송하지만 그런 분이 얼마 없다. 그리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대단한 지식인이라고 다들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깐 우리는 빨리 이런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