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크리스마스 출산
그렇게 1년.
그러나, 연애의 과정은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좋기만 하던 둘만의 시간에 때로는 다투는 일도 있었고, 겨울 어느 때는 고만 헤어지자고 선언한기도 했다.
신출가(身出家) 하겠다고 이별을 고했는데.. 막상 다시 나서려하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또 따듯한 인연의 품이 좋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게 된다. 나이 많은 사위라서 경상도 처가에서는 '나배기' 라 불리웠고
한 살 아래의 손위 처남은 주먹을 쓰면서까지 결혼을 말리려고도 했다.^^
그러나, 혼수(?) 앞에서는 누구도 반대하기 힘든 법.
처가집이 있는 진주에 예식장을 잡고 동은스님을 주례로 모셨다. 주봉스님과 더불어 3기 도반들도 참석하여 축하해 주셨다.
원래, 월정사나 보궁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혼수(?) 때문에 결혼이 급했고 집안 어르신들을 고려해서 참아야 했다.
(2006년 크리스마스, 분당 제일산부인과에서)
결혼 후, 분당 이매동에 신혼집을 정하고 복닥복닥 시간이 흘러 어느덧 크리스마스.
드디어 혼수(^^)로 준비해 온 율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았고, 그리고 참 예뻤다.
<조율>이라는 이름은, 도반들과 친구, 친지들께 30만원 상금을 걸고 공모를 거쳐 정하게 되었다.
율이의 한자인 붓 율(聿) 자는 동은스님이 골라서 정해주셨다.
부모가 월정사 단기출가학교에서 만난 인연으로, 오대산 불보살님들의 가피 속에, 그리고 예수님 생일에 태어난 율이..
이 녀석이 어떤 인생을 살지 궁금하다. 적어도 인류에 해는 끼치지 않으리..^^ ()
주민등록등본 위에 이름 하나가 어느덧 셋이 되었고, 행복도 괴로움도 거의 세 배 만큼의 무게가 된 것 같다.
그만큼, 기쁜 일과 힘겨운 일은 마치 사이좋은 남매처럼 시차를 두며 그렇게 우리 가족을 방문했다.
(2007년 여름, 지리산 산청에서)
이제 돌아보니 지나온 세월은 잠깐의 시간이었다. 찰나라는 표현도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결혼 직후의 시간은 참 벅차고도 정신 없는 시절이다.
첫 육아의 행복하고도 고된 경험들, 육아 휴직을 끝내고 다시 시작된 힘겨운 맞벌이 생활,
아이 돌보아줄 마땅한 친지가 없어 한 살박이 아이를 남에게 맡겨야 하는 무거운 마음...
의외로 마주친 현실들은 미리 예상하거나 준비하지 못한 것들이었고,
그렇게 좌충우돌 하며, 때로는 그 고생 만큼의 행복에 젖어, 아무튼 비교적 건강하게 그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 돌잔치에, 남원에서 올라온 3기 수심님)
그 무렵 생각했었다.
월정사 단기출가학교가, 타력(他力)의 힘으로 진정한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해준 고마운 선물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오로지 나만의 힘으로 스스로 수행해 가고 청정하게 살아야 하고 또한 바르게 살아야 하리라.
그러나, 그것은 예감하다시피 결코 쉽거나 그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찍이 원효스님이 그리 산중에서 수행하기를 권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가. 그것도 가족과 함께.
그 당시에 나는 그리 지혜롭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많이 어리석다.)
<함께하는 수행의 길> 은 그러므로...
쉽게 선물처럼 다가오지 않았고, 이후로도 참~ 많은 고뇌와 절망과, 또한 희망과 새로움의 시간들을 거쳐
지금 역시 현재진행형으로 (마치 바닷가의 파도처럼 해변을 들락날락 하며) 나의 삶을 감싸고 있다. ()
(2006년 가을 삼천포에서)
이제는 더 늦추면 안된다.
장식(藏識)의 깊은 바다를 파도처럼 뒤흔드는 육식(六識)의 물결.
청정하게 살지 못한다면 속세에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10 년 전 그때의 마음으로,
불혹의 가운데를 지나는 46 번째 생일 아침에... 깊은 숨 들이마시며 조용히, 그리고 다시 다짐해 본다.
2015. 1. 11. 선일
0. 출가
1. 자자회
2. 꿈길과 버스안에서
3. 탁발 그리고 덧버선
4. 채공
5. 자원봉사, 수광전 보살님
6. 프로방스의 스파게티
7. 강릉 아산병원 응급실
8. 크리스마스 출산
9. 함께하는 수행의 길
<9. 함께하는 수행의 길>은 이 연재의 마지막 글이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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