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식 토기 등장, 기원전 2세기로 올라가”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매산기념강좌’
중도식 토기(中島式 土器)로 대표되는 한반도 중·남부지방의 초기철기 또는 원삼국시대(한국 고고학계에서 사용하는 서력기원 전후부터 3세기까지의 시대구분 명칭) 토기는 기원전 108년 낙랑군이 설치되기 이전 위만조선기(기원전 194~108년) 토기의 영향으로 성립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청동기시대 적갈색 무문토기 전통을 계승한 중도식 무문토기와 중·남부 지방에서 새롭게 출현한 중도식 타날문토기 등 크게 2종류로 구별되는 원삼국시대 토기가 늦어도 기원전 2세기에는 성립됐다는 것으로 원삼국시대의 상한이 기원전 2세기까지 올라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관장 최병현)이 지난 14일 교내 한경직기념관에서 ‘중도식 무문토기의 전개와 성격’을 주제로 연 제7회 매산기념강좌에 참석한 발표자들은 원삼국시대 토기가 낙랑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낙랑군 설치 이전에 성립됐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했다.
이날 강좌에서는 정인승(영남대)·이성주(강릉원주대) 교수와 유은식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한지선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등이 주제 발표를 했으며 김무중 중부고고학연구소장의 사회로 토론이 진행됐다.
원삼국시대 토기문화를 재해석한 이날 강좌는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올해 근 30년 만에 ‘수원 서둔동 유적’ 발굴보고서를 펴낸 것을 기념해 마련됐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지난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총 4차례에 걸쳐 발굴한 수원 서둔동 유적은 처음으로 주거지에서 중도식 무문토기와 외줄구들이 확인된 고고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최병현(숭실대 사학과 교수) 관장은 “보고서만 빨리 나왔어도 ‘중도식 토기’ 대신 ‘(수원) 서둔동식 토기’로 이름이 명명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도식 토기란 이름이 유래한 춘천 중도 유적은 국립중앙박물관이 1980년 발굴·조사했다. 중도식 토기 가운데서도 중도식 무문토기는 남부지방에서 경질무문토기 또는 삼각(형)점토대토기 등으로 불리고 있다. 이보다 앞서 1960년대 고(故) 김원용 서울대 교수는 풍납토성에서 발견한 토기편을 토대로 원삼국시대 무문토기 문화를 처음으로 정의하며 ‘풍납리식 무문토기’란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날 강좌에서 정인승 교수는 ‘동북아시아에서 타날문 단경호의 확산’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중도식 타날문토기가 위만조선기 중국 전국시대 회도(灰陶)와 화분형토기의 등장으로 시작됐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전국시대 연나라의 토기가 한반도 서북지방을 거쳐 중도식 타날문토기 성립에 영향을 끼쳤으며 그 역사적 배경을 기원전 3세기 전반 전국시대 연(燕)나라 장수 진개(秦開)가 고조선과 동호(東胡)를 쳐서 확보한 공간에 요동·요서군 등 5군을 설치했다는 기록과 랴오닝(遼寧)성 푸순(撫順)시 롄화부(蓮花堡) 등 중국 동북지방의 관련 유적에서 찾았다.
중도식 무문토기는 기원과 관련, 청동기시대 중기를 대표하는 송국리식 토기로부터 유래했다는 자체발생설과 요동지역 및 한반도 서북기원설, 러시아 연해주 및 동북기원설 등 다양한 의견이 제기돼 있다. 유은식 연구관은 ‘동북계 토기로 본 강원지역 중도식 무문토기의 편년과 계통’이란 주제 발표에서 “러시아 연해주와 두만강 하류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 계통의 ‘단결-크로우노브카’ 토기에서 중도식 무문토기가 유래했으며 그 등장시기도 낙랑군 설치 이전”이라고 주장했다.
이성주 교수는 ‘원삼국시대의 무문토기 전통’이란 주제 발표에서 “청동기시대 이래 한반도에서 지속한 무문토기 전통이 중도식 무문토기의 등장으로 나타났으며 제작 기법으로 볼 때 이 토기는 중부지역권과 호남지역권, 그리고 영남지역권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고 말했다. 특히 중도식 무문토기가 강원도 영동지방에서는 5세기 전반까지 사용되는 등 지역별로 소멸시기에 편차가 있음을 지적했다. /최영창 2010-10-18
첫댓글 좋은 정보 공부 잘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