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잡기 위해 스스로 악마가 되는 자가 있고.
악마를 잡기 위해 스스로 악마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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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곳 모래바람이 수풀처럼 일렁이는 곳 그런 황량한 벌판에서 앳된 소년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한창 축구하는 중이다.
“모하메트! 모하메트!”
그중 남달리 더 눈이 크고 깊은 소년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이다.
더 놀고 싶지만, 가족의 부름에 터덜터덜 순응하고 만다.
“모하메트! 학교에서 연락이 왔는데... 네가 독일 학교에 장학생으로 뽑혔다고 해. 네가 우수한 학생이라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좋은 일이다. 고민할 일이 아니다.”라며 모하메트의 유학을 독려하는 중이다.
그러나 모하메트 엄마의 표정은 많이 굳어있다. 독일 유학이 아들과의 잠시 이별이 아니고 왠지 영영 아들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이 밀려든다.
2001년 911테러 발발 직후...
주황색 죄수복을 입고 두 발은 쇠사슬에 묶이고 손도 쇠사슬에 묶고 그 남은 쇠줄로 허리를 감긴 죄수가 걸어오며 육중한 철문 앞에 멈춰 선다.
“손 내밀어.”
“뒤로 돌아”
쇠사슬은 철컥철컥 챠르르챠르르 메마르고 차가운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요동치고 괴물 같은 철문은 컹하고 닫히고 주황색 옷을 입은 죄수는 자신의 공간에 놓인 코란을 응시한다.
다시 쿵쾅쿵쾅 군홧발 소리가 점점 다가온다.
“760번 앞으로 나와”
차르르차르르 발을 묶고 있는 쇠사슬이 소란스럽게 떠들면서 밝은 페인트칠이 되어있는 문으로 들어선다.
그곳에는 무료 변론하는 인도주의 운동가 낸시 홀랜더와 동료 변호사 테리 덩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낸시는 베트남전 이후부터 지금까지 정부를 상대로 싸우고 있으며 누구나 자신을 변호할 권리가 있다는 신념을 무료 변론을 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제아무리 흉악범이라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번에는 911테러 조직자 중 한 명이라는 혐의를 받는 죄수를 만나러 관타나모에 와있다.
낯선 낸시와 테리 때문에 760번은 어리둥절하다.
“나는, 내 기소 내용을 모릅니다. 머리에 주머니 씌우고 사슬에 묶여서 여기에 온 것 말고 아는 게 없습니다.”
말을 이어간다.
“한 번은 빈 라덴의 위성전화기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한 사람은 제 사촌이었고 사촌의 아버지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제가 대신 사촌에게서 돈을 받아서 어르신을 병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저는 단지 빈 라덴의 전화기로 걸려 온 사촌의 전화를 받았을 뿐입니다.”
낸시는 최대한 신뢰를 주기 위해 부드럽게 목소리를 낸다.
“당신의 진술이 더 필요해요. 당신의 얘기를 들려주세요.”
철컥철컥 또다시 지옥문이 열린다.
“760번 손 내밀어”
쇠사슬이 챠르르챠르르 소리를 내며 종종 걸어서 이번에는 다른 밝은 페인트 방 앞에 멈춰선다.
사복 심문관들이다.
사복 심문관들의 표정이 심란하다.
“이 빵은 우리가 주는 마지막 빵이 될 거야... 곧 군사정보부에서 사람들이 오고 그들은 친절하지 않아... ...”
그때 문이 덜컹 열리고 갑자기 방안이 얼룩덜룩한 제복 입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고 그들에게는 주황색 옷을 두른 사람의 신분과 존재의 흔적은 관심 없는 양 760번의 팔목에 감겨있는 띠를 우왁스런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고 파랗게 질린 760번의 머리에 검은 복면을 씌우고 양쪽에서 양팔을 잡고 저항하는 760번을 질질 끌고 간다.
온통 하얀 방이다.
누런 서류 박스가 천장까지 높다랗게 쌓여있다.
달걀로 바위치기였지만 결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해서 모하메드에 관련한 극비 서류까지도 열람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아냈다. 낸시와 테리는 담당 공무원의 불퉁스런 불친절도 농으로 넘길 만큼 한껏 고무됐다.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서 테리가 모하메드의 서류를 찬찬히 읽어나간다. 화창한 봄날에 갑자기 먹구름이 낀 양 테리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다.
“이 자식 유죄예요. 자백했어요. 싹 다 자백했어요. 우리한테 거짓말했어요.”
테리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그 방을 나가버린다.
낸시는 테리를 화나게 했던 서류를 찬찬히 읽어나가고. 그 서류에는 모하메드의 자백과 함께 선명하게 서명이 되어있었다.
낸시는 모하메드를 만나야 했다.
이젠 제법 친밀해진 관계인지라 낸시를 본 모하메드는 싱글벙글 히죽이죽 이다.
“모하메드! 자백했어요?”
당황한다.
“아니에요”
“서류에 서명도 있어요”
절박하다.
“아니에요. 강압 때문에 자백한 거예요... 그건 그냥 판타지에 불과해요.”
“강압이 있었어요?”
축축하고 어둑한 방이다.
얼굴에 동물 가면을 쓴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760번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다. 760번은 몸을 반으로 접어 스트레스 자세를 하고 있다. 시각을 공격당하고 있다. 청각을 공격당하고 있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고 배에 태워 복면을 쓴 채 바닷물에 머리를 박아 익사 경험을 유발하고, 급기야는... ...
“760번, 네 어머니가 관타나모에 구금됐어. 남자밖에 없는 이곳에서 네 어머니가 괜찮을까?”
760번의 눈에서 영혼이 빠져나간다.
“자백할게요.”
낸시는 정부 쪽 검찰 중령을 찾아가고 가혹행위로 받은 자백은 무효라고 주장한다. 사형 선고가 목표였던 검찰 중령은 자신의 결론에 하나의 오류도 용납할 수 없어 정부 쪽 인사들과 언쟁을 불사하고라도 MFR 서류 열람 자격을 받아낸다.
그 서류에는 가혹행위가 담긴 70일 플랜이 적혀있었고 법적 효력은 없지만 760번이 두 번이나 거짓말 탐지기도 통과했다는 기록도 있었다.
760번의 사형 선고가 목표였던 검찰 중령은 배신자라는 낙인에도 불구하고 양심을 선언하고 결국 이 재판에서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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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4일
“오른손을 들고 따라하세요.”
“나”
“나”
“이름을 대세요.”
“이름을 대세요. 아...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는 진실만을 말할 것을 엄숙하게 맹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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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은 760번의 최종 변호로 채워진다.
어찌나 목이 메이던지 특히나,
자신의 고향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그곳은 경찰을 믿지 않으며 그들의 법은 얼마나 부패했는지 또한 정부는 공포로 자신들을 지배하는 곳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다 그는 10대 때,
독일로 건너가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법이 국민을 지켜준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자신에게 미국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재판도 없이 8년간이나 수감 될 줄은 한순간도 의심한 적이 없었고... 미합중국이 공포와 두려움을 이용해 나를 통제할 줄은 몰랐습니다.”
말을 이어간다.
“날 가둔 사람들은 내가 죄가 없는데도 날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용서하렵니다. 나는 그들을 용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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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연을 더 보여주고 영화는 끝이 난다.
760번 모하메드의 말에 의하면 아랍어에는 ‘자유’와 ‘용서’가 한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고 알려준다.
용서는 7번을 70번이라도 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고...
우린 그동안 참 잔인했고 우리는 여전히 잔인하고...
예수님은 피해자의, 약자의 삶을 걱정하고 계시는데...
“내 자녀들아 자유롭게 살아라! 더 이상 아프지 말아라!”
라고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