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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이상국전집 제14권
●고율시(古律詩)
목차
春日訪山寺
寓古
聞鸎
天壽寺門外吟
和友人黃蜀葵
晚步待人
遊九品寺迫晚
次韻文長老聞友人彈琴
灌竹
題李花
夏日。開國寺尋僧不遇。池上作。
次韻文長老,朴還古論槿花。
失扇
醉後亂導大言。示文長老。
歸法寺川上有感。
明日次夏課諸生韻
漁父
讀李白詩
友人家食蓴
和友人詠橘
題石泉
燈夕文機障子詩
燈籠詩
妬花風
陳澕家置酒賞花。醉後走筆。
登鵠嶺有作
次韻李程校書惠芹。
眼昏有感。贈全履之。
康宗大王挽詞。翰林奏呈。
蛛網
謝人贈茶磨
書崔員外宗蕃備忘錄
自田司空元均宅。醉迴犯夜。
謝崔秀才惠林檎甘瓜
讀陶潛詩
初拜正言有作
食松菌
詠菊
謝珍丘住老謙公惠綿
初除司諌。兼受金紫。戱贈金正言。
春日內省有作
次韻西京倅劉舍人沖祺見寄
聞官軍與虜戰捷
又
次韻琴相國喜得外孫有作。寄崔平章洪胤。
次韻崔相國洪胤和琴相國題中書壁上之什。奉呈兩相。
萬寶殿醮夜
又次琴相國題壁詩韻奉呈
次韻琴相國以任大司成永齡重娶不開慶宴戱贈之什。呈任公。伏希傳獻相國垂覽。
東門外觀稼
稻畦魚
內直有感。示右拾遺水丘源。
聞胡種入江東城自保。在省中作。
次韻李侍郎眉叟寄權博士敬仲責辟糓
苦熱在省中作
訪安和寺幢禪師。師請賦一篇。
得蟬鳴稻。
李侍郞眉叟和郞子囷冬日詩。命愚息涵和之。又使涵邀予同賦。故次韻奉寄。
以公事免官閑居。李先達元胄,皇甫狀元琯,金狀元莘鼎,朴亞元應貴攜酒見唁。以詩謝之。
次韻吳拾遺夢林。以詩見唁。
題朴淵。
嘲醉僧夜起嚼氷
己卯四月日。得桂陽守。將渡祖江有作。
○봄날에 산사(山寺)를 찾다
화창한 바람 따뜻한 날 새들은 지저귀는데 / 風和日暖鳥聲喧
수양버들 그늘 속에 문을 반쯤 닫았네 / 垂柳陰中半掩門
떨어진 꽃 가득한 땅에 취한 중 누웠으니 / 滿地落花僧醉臥
아직도 태평 흔적 남은 곳은 산 마을 / 山家猶帶太平痕
○옛날을 생각한다
술 마심도 덜할 수 있고 / 省飮猶可期
말조차 참을 수 있지만 / 忍言非不易
이 세상 사는 세월 / 細思此浮生
빠르게 달리는 말 같구나 / 倏若過隙駟
하루아침 눈 감는 날이면 / 一朝瞑雙目
갈 곳은 북망 산천이라 / 祖送北邙趾
아무리 온갖 짓 다하려 해도 / 雖欲作狂態
백골이라 어찌하며 / 白骨能復起
아무리 친구와 말하고 싶은들 / 雖欲與人語
유명이 다르거니 어이하리 / 其奈幽明異
백양나무 바람은 쓸쓸한데 / 白楊風蕭蕭
석자 무덤만 솟았구나 / 三尺墳空峙
무덤인들 보호하리 / 尺墳未可保
나무꾼들 놀이터라 / 樵牧踏皆圯
해골은 풀 속에 뒹굴고 / 髑髏沒蒿蓬
짐승들 여기저기 집 짓는다 / 麋鹿於焉庇
이때에는 선과 악이 / 此時善與惡
모두가 같은 거야 / 混混同一軌
후세 사람이 아무리 칭찬한들 / 萬世稱惺人
죽은 자에게 무어 이로우며 / 死者蒙何利
후세 사람이 아무리 나무란들 / 萬古道狂客
죽은 자가 부끄럼을 알쏜가 / 死者有何恥
가련타 위선자(僞善者)들 / 奈何矯飾者
원만한 체 얌전한 체 / 矜持蓄沈思
좋은 술 왜 안 마셔 / 美酒豈不嗜
죽도록 마셔도 취하지 않네 / 囁囁莫成醉
있는 말 다 못하고 / 有言不敢吐
묵묵히 혼자 간직하누나 / 囊括好自祕
아 모두가 한 꿈이라 / 此亦一般夢
옳고 그름 어디 있던가 / 何論孰是非
[주D-001]백양(白楊) : 버드나무와 비슷한 교목(喬木)으로, 옛날 무덤 가에 이 나무를 심었다.
○꾀꼬리 소리를 듣다 3수
비단옷 입은 귀공자들 / 公子王孫擁綺羅
꾀꼬리 소리 퍽이나 즐겨하지 / 要憑嬌唱助歡多
봄바람도 인간의 낙을 알기에 / 東君亦學人間樂
많은 꽃 다 피우고 너 보내 노래하게 한다 / 開了千花遣爾歌
네가 갈 땐 어디로 갔다가 / 斂去藏何處
울 땐 반드시 이때 우는가 / 啼來必此時
시기도 있고 신의도 있으니 / 有期還有信
새치고는 참 영특하구려 / 爲鳥頗靈奇
까마귀 솔개들 나는 보기 싫어 / 鴉鳶不堪見
무단히 때없이 훨훨 날지 / 朝夕尙
너는 그 좋은 빛과 소리로 / 將爾色音好
오기 어찌 그리 더딘가 / 其來何苦遲
○천수사(天壽寺) 문밖에서 읊다
삼월이라 늦은 봄 / 三月春風晩
곳곳마다 그 이별 슬프구나 / 處處祖筵悲
남북으로 갈리니 또 남북이요 / 南北復南北
이별하고 나니 또 이별일세 / 別離還別離
떨어진 꽃 차마 못 보겠어라 / 落花不忍見
푸른 풀 그 한 가이 없네 / 芳草恨無涯
해마다 저 버들 그다지도 꺾었건마는 / 年年折盡柳
수많은 가지 또 다시 드리웠네 / 還復萬條垂
물어보자 가지 위 저 새들아 / 爲問枝上鳥
이별곡 몇 번이나 들었던가 / 幾聽陽關詞
우연히 이 땅을 지나니 / 自然經此地
옛사람 이별하던 때 생각난다 / 猶似送人時
슬프다 이 마음이여 / 惻惻傷我抱
이곳에 안 온 것만 못해 / 不如不來玆
○우인(友人)의 황촉규(黃蜀葵) 시에 화답하다
조물주의 갖은 재주 누런 꽃 만들었네 / 天工着意剪緗英
기절한 높은 품위 촉에서 왔구나 / 品絶知從蜀地生
이슬 흠뻑 맞을 땐 금잔을 기울인 듯 / 露重偏憐金盞側
바람 산들 불어올 땐 큰 갓을 숙이는 듯 / 風經更見道冠傾
○느린 걸음으로 사람을 기다리다
늦은 비 처음 갠 잔디밭을 걷노라니 / 暮雨新晴步綠莎
석양 놀에 까마귀 번득이며 나네 / 落霞殘日映翻鵶
개 한 번 짓는 소리에 그대 오는가 했더니 / 一聲吠犬疑君至
취한 손 노랫소리만 문 앞에 들려온다 / 惟聽門前醉客歌
○구품사(九品寺)에서 놀다가 날이 저물다
산 험하니 말이 터덕거리고 / 山險馬猶蹶
길은 멀어서 사람 피곤해라 / 路長人易疲
놀란 다람쥐 풀 속으로 들어가고 / 驚鼯潛入草
잠자는 새들 가지에 깃들었네 / 宿鳥已安枝
빈 집엔 가을이 일찍 오고 / 虛閣秋來早
높은 봉우리엔 달 뜨기 더디네 / 危峯月上遲
한가한 중 일도 없어 / 僧閑無一事
차 마심도 잊었구나 / 除却點茶時
○문 장로(文長老)가 그 우인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지은 시운을 차하다
모든 신선은 수부에서 왔고 / 通仙從水府
묘한 춤은 어전(御殿)을 향했네 / 舞幻向珠宮
눈물은 슬픈 곡조에 떨어지고 / 淚滴哀彈裏
마음은 옛 가락에 아득해라 / 心冥古韻中
차가울 땐 솔 달을 두드리고 / 寒敲松檻月
고요할 땐 대 바람이 분단다 / 靜落竹階風
많은 소리 무엇하리 / 不待煩柔指
뼈와 살을 녹였던 것을 / 都令骨肉融
[주D-001]수부(水府) : 당(唐) 나라 제도로 호조(戶曹) 또는 호부(戶部)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밭에 물을 주다
좁은 뜰에 어린 대 옮겨 심고 / 小庭移稚竹
밤낮으로 물 주고 있네 / 日夕灌其根
기후는 따뜻한 남방이라 / 南土氣候暖
지나친 힘 필요 없구나 / 本無護養勤
수없는 죽순들은 / 尙厭戢戢笋
아손처럼 나열했네 / 擘地羅兒孫
그래도 아쉬운 그 생기들 / 於玆生意窘
한 잔 물에 의지하여 / 須仗勺波恩
즐거워라 오늘 아침엔 / 今晨有何喜
잎사귀들 점점 번성하네 / 柯葉稍已繁
하늘에 닿기야 어찌 바라랴 / 干霄安敢望
겨우 난간이나 덮어주길 / 聊以庇吾軒
그러나 겨울날 깊은 눈에 / 玄冬雪三丈
너의 지조 나는 알았노라 / 始識爾性存
○이화(李花)를 보고 쓰다
너는 나와 같은 성 / 汝與我同姓
봄 맞자 좋은 꽃 피었는데 / 逢春發好花
내 낯은 옛과 달라 / 吾顔不似舊
귀밑에 서리만 가득해라 / 反得鬢霜多
○여름날 개국사(開國寺)의 중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못가에서 짓다
사립문 굳게 닫히고 중 하나 없어라 / 板扉牢鎖寂無僧
못가에 돌아와 찌는 더위 피하누나 / 還傍淸池避暑蒸
여기서 서울이 몇 발자국 안 되건만 / 此去都城無幾步
한가히 숲에 앉으니 그만 일어나기가 싫어 / 倚林閑坐尙慵興
못가에 홀로 풀 깔고 앉았으니 / 丌坐池邊草作茵
돌개바람 불어오자 갓마저 떨어진다 / 旋風吹起落冠巾
푸른 나무에 낮은 연기는 비단 띠를 두른 듯 / 煙低綠樹縈羅帶
푸른 연꽃에 이슬 방울은 수은이 일렁이는 듯 / 露滴靑荷漾水銀
○문 장로(文長老)와 박환고(朴還古)가 무궁화를 논평하면서 지은 시운을 차하다 병서(幷序)
장로 문공과 동고자(東皐子) 박환고가 각기 무궁화(無窮花)의 이름에 대하여 논평을 하였는데
하나는 ‘무궁은 곧 무궁(無窮)의 뜻이니 이 꽃은 끝없이 피고 진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하고, 또 하나는 ‘무궁은 무궁(無宮)의 뜻이니 옛날 어떤 임금이 이 꽃을 매우 사랑하여 온
궁중이 무색해졌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하여, 각기 자기의 의견만을 고집하므로 결정을 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백낙천(白樂天)의 시운으로 두 사람이 각기 시 한 편씩을 짓고 또 나에게 화답
하길 권하였다.
(長老文公,東皐子朴還古。各論槿花名。或云無窮。無窮之意。謂此花開落無窮。或云無宮。無宮之意。
謂昔君王愛此花。而六宮無色。各執不決。因探樂天詩。取其韻各賦一篇。亦勸予和之。)
무궁화의 두 가지 이름 / 槿花之二名
우리 두 친구로부터 시작했다 / 發自吾二友
각기 아집을 못 버려 / 滯一各不移
굳이 좌라 우라 주장하네 / 若尙左尙右
내 새로운 용기 뽐내어 / 我將試新勇
그대들을 한 손에 부수련다 / 兩敵破一手
듣건대 옛사람들도 / 嘗聞古之人
구(韭)를 구(九)라고 희롱했다오 / 戱韭以爲九
궁(窮)이나 궁(宮)도 모두가 농담이야 / 宮窮亦似戱
맨 처음 뉘 입에서 나왔는가 / 初傳自誰口
나는 쉽게 판단할 수 있으니 / 予獨立可斷
좋은 술 나쁜 술과 같은 걸세 / 如辨醇醨酒
하물며 이 꽃은 잠시뿐이라 / 此花片時榮
하루도 지탱하기 어려운 것이 / 尙欠一日久
허무한 인생과 같음 혐의하여 / 人嫌似浮生
떨어진 꽃 차마 보지 못해 / 不忍見落後
도리어 무궁이라 이름했지만 / 反以無窮名
그러나 과연 무궁토록 있겠는가 / 倘可無窮有
두 사람 이 말 들으면 크게 놀라 / 二子聞之驚
입 다물고 말 못 하리 / 闔吻如閉牖
내 말이 근거 있으니 / 我說誠有憑
그대들 긍정하겠는가 / 問君肯之否
만일 조정에 이 말 옮긴다면 / 如將移諸朝
또한 해수라 할 것이네 / 亦可言亥首
[주D-001]구(韭)를……희롱했다오 : 남제(南齊) 때 유고지(庾杲之)가 매우 청빈하여 밥먹을 때면
매양 구저(韭葅 부추로 담근 김치)ㆍ약구(瀹韭 삶은 부추)ㆍ생구(生韭 생 부추)로만
반찬을 하므로, 임방(任昉)이 희롱하기를 “그 누가 유랑(庾郞 유고지)이 가난하다고
했는가. 식탁에 항상 27종의 반찬이 오르는 걸.” 하였는데, 27종이라는 것은 곧
3×9〓27의 뜻으로 ‘韭’의 음이 ‘구’이기 때문에 구(九) 자의 뜻으로 해석하여
농담을 붙인 것이다. 《南齊書 卷34 庾杲之傳》
[주D-002]해수(亥首) : 옛날에 해(亥)의 고자(古字)를 파자(破字)하여 “이(二)의 머리에 육(六)
의 몸이다.[二首六身]” 한 설(說)을 인용한 듯하나 자세하지는 않다.
○부채를 잃다
유월 더위 때는 삼복인데 / 炎天六月伏金辰
달같이 둥근 부채 잃어버렸네 / 失却團團月一輪
이제부터 낯을 무엇으로 가리랴 / 祇恐從今難障面
서쪽 바람에 유공의 티끌 입을까 염려로세 / 西風長被庾公塵
[주D-001]서쪽 바람에……염려로세 : 유공(庾公)은 곧 진(晉) 나라 유량(庾亮)을 가리킨 말.
왕도(王導)는 유량의 권세가 너무 중한 것을 미워하여 항상 서쪽 바람이 불 때면 부채로
낯을 가리고 “원규(元規 유량의 자)의 티끌이 사람을 더럽힌다.” 하였다.
《晉書 卷65 王導傳》
○취한 뒤에 큰 소리를 어지러이 지껄여서 문 장로에게 보이다
시 안 지을 땐 내 어디에 있었으리오 / 詩方不作我何寄
저 깊은 바다 삼신산 푸른 곳이겠지 / 海波深處六鼇頂上三山翠
부처님 안 오실 땐 그대 어디서 살았던가 / 佛法未興子何居
수미산 높은 마루 오색 구름 속이란다 / 須彌山高五色彩雲裏
이백과 두보의 매미 같은 소리들 / 李白杜甫似蟬噪
나는 내려다 보고 박수치며 희롱하고 / 我下視之拍手戲
달마와 혜가의 분주한 개미떼들 / 達磨惠可如蟻行
그대의 가엾게 웃는 소리 천지를 흔들었다 / 師之笑聲殷天地
만물을 조롱하던 비단같이 좋은 말들 / 嘲弄萬物好綺語
두보는 궁해 죽고 이백은 취해 죽었지 / 杜子窮終白醉死
무슨 마음 전하랴 공연히 전한다 하고선 / 無心可傳枉傳心
달마는 신 한짝만 가져가고혜가는 팔을 베었다네 / 二祖坐此隻履徒還或斷臂
내 자네와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 我今與子同下人間世
서울 한쪽 티끌 속에 잠시 서로 만났구려 / 紅塵陌上相彈指
법이 무심한 데 이르면 시가 도리어 싱겁다오 / 法到無心詩反素
비로소 그대와 나 큰 도를 창작할 때로세 / 我始與師唱作大道始
우습구나 성인도 별것이 아닐진대 / 咄哉聖人非異物
오늘날 석가와 공자를 사람들에게 다시 보여주리 / 使人重見釋迦與孔子
[주D-001]수미산(須彌山) : 인도(印度)의 바다 가운데 있다는 큰 산. 불서(佛書)에 의하면,
이 산의 꼭대기에는 제석천(帝釋天), 중턱에는 사왕천(四王天)이 각기 주처(住處)하고
있다 한다.
[주D-002]달마(達磨) : 인도의 고승으로 중국에 맨 처음 들어와 선종(禪宗)의 시조가 되었다.
당 대종(唐代宗) 때 시호를 원각법사(圓覺法師)라 했다.
[주D-003]혜가(惠可) : 후위(後魏) 때 고승으로 중국 선종의 제2조가 되었다. 그는 달마에게
도를 받을 때 그의 왼팔을 잘라서 자기의 굳은 뜻을 보였다.
[주D-004]달마(達磨)는……가져가고 : 달마를 중국 웅이산(熊耳山)에 장사하였는데, 위(魏)의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사자로 갔다 돌아오던 중 총령(葱嶺)에서 달마를 만났다.
달마는 손에 신 한짝만 들고 있었으므로 송운이 “대사는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자,
대사가 “나는 서역으로 가오.” 하였다. 이 말을 임금에게 상세히 전하여 임금의 명
으로 달마의 묘를 파고 관(棺)을 열어보니 신이 한짝만 있었다 한다. 《傳燈錄》
[주D-005]혜가(惠可)는……베었다네 : 후위(後魏) 때 고승으로 중국 선종의 제2조가 되었다.
그는 달마에게 도를 받을 때 그의 왼팔을 잘라서 자기의 굳은 뜻을 보였다.
○귀법사(歸法寺)의 시냇가에서 느낌이 있어 여기는 매년 관동(冠童)들이 하과(夏課)하던 곳이다.
나도 소년 때 자주 와서 공부하였다.
여기는 내 젊었을 때 자주 와 공부하던 곳 / 少小翩翩此慣遊
헤어보니 벌써 삼십칠 년이 되었네 / 算來三十七年周
물은 옛물이나 사람은 옛사람 아니라 마소 / 莫言川是人非舊
지금 흐르는 물이 어찌 옛물이겠는가 / 逝水無停豈昔流
모시옷 가볍고 머리털 휘날리니 / 白葛婆娑散髮遊
여기는 바로 깊은 숲이 둘려진 물가이다 / 茂林深樾繞川周
어릴 때 발 씻고 잔 띄우던 그곳이언만 / 少年蘸足浮杯處
병든 다리 잠시도 못 담글세라 / 病脚難堪暫下流
○다음날 하과(夏課)하는 제생(諸生)이 지은 시운에 차하다
이 사람 이 땅에 몇 번이나 왔던가 / 此生此地幾回來
해마다 재촉하는 백발을 내 어이 막으리 / 無奈年年白髮催
우리야 늙고 병든 것 무엇을 한하랴만 / 我輩何嫌今老大
공부하는 젊은이들 예보다 줄고 있네 / 後生猶減舊遊陪
다만 억수로 퍼붓는 비 때문에 / 只緣惡雨傾河水
내 술 한 잔 그대들께 못 보내네 / 未向淸流送酒杯
거꾸로 실려 돌아오는 길만은 예와 같은데 / 倒載歸程唯似昔
의연히 지는 해 성 너머로 숨어드네 / 依然落日隱城隈
[주D-001]거꾸로 실려[倒載] : 술에 만취된 것을 말한다. 진(晉) 나라 때 산간(山簡)이 술을
매우 좋아하여 매양 못가에 나가서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해 돌아오곤 하므로, 당시
동요(童謠)에 “산공(山公)이 어디로 가느뇨, 고양지(高陽池)로 가는구나. 해 저물면
거꾸로 실려 돌아와, 술에 취해 아무것도 모른다네.” 하였다. 《晉書 山簡傳》
○어부(漁父)를 보고 짓다 4수
바늘 낚시 하나가 쟁기와 호미 대신하니 / 一隻針鉤當耒鋤
그대 집 풍년은 오직 고기잡이에 있네 / 豐年但卜海饒魚
천 이랑 농사에도 먹고 살기 어려운데 / 農耕千畝猶艱食
강 집 살림살이 언제나 묵은 양식 남았다오 / 沙戶尋常有宿儲
한평생을 낚시터에 맡겼어라 / 一世生涯付釣臺
강 마을 저문 날에 술 취해 돌아오네 / 江村日落醉扶廻
그의 말이 술 있으면 안주투정 어찌 하리 / 自言有酒何憂佐
여울에 있는 고기 회하면 된다 하네 / 灘下群魚作膾來
갈대꽃 바람 일고 저문 강 차가운데 / 荻花風亂暮江寒
보슬비에 도롱이 입고 여울가에 잠자누나 / 細雨蓑衣宿淺灘
연파에 시달린 몸 한가한 날 적어라 / 辛苦煙波少閑態
귀인 집 병풍에서 본 그림과 같네 / 侯家屛障畫形看
강호에 방랑하는 한가한 몸 되었으니 / 江湖放浪作閑民
부귀에 미친 사람 도리어 우습구나 / 猶笑公侯富貴身
너는 세상을 비웃고 세상은 너를 웃으니 / 爾笑世人人亦笑
그래서 위천에서 주 나라 낚는 사람 있었던가봐 / 渭川還有釣周人
[주D-001]위천(渭川)에서……낚는 사람 : 강태공(姜太公)을 가리킨다. 주(周) 나라 때 강태공이
위천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다가 문왕(文王)을 만나서 세상에 나왔고, 또 무왕(武王)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였다.
○이백(李白)의 시를 읽고
이백을 적선인이라 부르니 / 呼作謫仙人
그는 곧 광객 하지장일레라 / 狂客賀知章
과연 하늘에서 온 것 보았는가 / 降從天來得見否
하로의 이 말 모두가 황당하구려 / 賀老此語類荒唐
그렇지만 이제 그 시를 본다면 / 及看詩中語
어찌 인간의 목구멍에서 나왔다 하랴 / 豈是出自人喉吭
그 이름 강약궐에 쓰이지 않았고 / 名若不書絳藥闕
그 입 단하장을 맛보지 않았다면 / 口若未吸丹霞漿
아무리 갖은 노력 다하여 그것을 본뜬다 하여도 / 千磿百鍊雖欲倣其體
어찌 그 같은 훌륭한 문사를 뱉어 내랴 / 安可吐出翰林錦繡之肝腸
당 나라에 글 잘하는 사람 많아서 / 皇唐富文士
범 같은 위세로 각기 한 세계를 담당했지 / 虎攫各專場
앞에선 자앙 뒤에선 한류에다 / 前有子昂後韓柳
또 맹교와 장적 등은 매미처럼 울어댔으니 / 又有孟郊張籍喧蜩螗
어찌 굉장한 말이 없었으며 / 豈無語宏肆
또 어찌 강직한 글이 없었으며 / 豈無詞屈强
또 어찌 꽃도 무색할 화려한 문장이 없었으며 / 豈無艶奪春葩麗
또 어찌 강물처럼 양양한 문장이 없었으랴 / 豈無深到江流汪
그러나 이처럼 뛰어난 격외의 사어들이야 / 如此飄然格外語
과연 이백이 아니면 그 누가 하리 / 非白誰能當
난학 타고 삼청세계 오가는 것 보지는 못했으나 / 雖不見乘鸞駕鶴去來三淸態
아마도 저 넓은 천지에 구름 타고 훨훨 날아다니리 / 已似寥廓凌雲翔
그렇다면 적선이라 부른 하지장이 / 所以呼謫仙
참으로 미친 건 아니구려 / 賀老非眞狂
[주D-001]이백(李白)을……하지장(賀知章) : 당(唐) 나라 하지장이 일찍이 이백을 추어올려
적선인(謫仙人 하늘에서 인간 세상으로 귀양온 사람)이라 불렀다. 광객(狂客)은 하지장
의 자호인 사명광객(四明狂客)의 준말이다.
[주D-002]강약궐(絳藥闕) : 신선이 노는 곳을 말한다.
[주D-003]단하장(丹霞漿) : 신선이 먹고 마시는 음식물을 말한다.
[주D-004]앞에선……장적(張籍) : 자앙(子昂)은 당(唐) 나라 때 문장가인 진자앙(陳子昂)을 말하고,
한유(韓柳)는 역시 문장가인 한유(韓愈)ㆍ유종원(柳宗元)을 가리킨다. 맹교(孟郊)와
장적(張籍)도 당 나라의 시인으로 맹교는 시에 이치(理致)가 깃들어 있어 한유의 칭찬을
받았고, 장적은 악부(樂府)에 능하였다. 이상의 인물들은 모두 당 나라 전ㆍ후반기에
걸쳐 일대 문호(文豪)로 유명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5]삼청세계(三淸世界) :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옥청(玉淸)ㆍ상청(上淸)ㆍ태청(太淸)
삼천(三天)의 세계를 말하는데, 곧 여기에는 신선이 산다고 한다.
○친구 집에서 순채(蓴菜)를 먹다
얼음 삶는다는 건 예로부터 못 들었는데 / 烹氷古未聞
그대는 어찌하여 삶는다 자랑하는가 / 子忽誇能烹
불러와 자세히 보니 / 呼來細相見
곧 순채국을 말한 것 / 是之謂蓴羹
얼음 같으나 풀리지 않고 / 似氷而不融
삶을수록 더 또렷또렷하지 / 遇烹而愈精
이것이 바로 얼음 삶는다는 것인데 / 所以曰烹氷
나를 놀라게 했네 / 令我聞之驚
내 평생 조금도 누라곤 없어 / 我生無點累
스스로 깨끗한 마음 자랑했지요 / 自負心地淸
그러나 항상 속된 식물을 먹었기에 / 口常食俗物
목구멍에 티끌이 끊이지 않았는데 / 喉底煙塵生
오늘 순채를 먹으니 / 今日啖此菜
가늘고 가벼워 은실 같구나 / 縷縷銀絲輕
이와 볼은 눈 씹는 것 같아서 / 齒頰帶霜雪
미친 병 나은 줄 나도 몰라 / 不覺失狂酲
어찌 꼭 장한을 본받아서 / 何必學張翰
강동으로 회 먹으러 가랴 / 却向江東行
[주D-001]장한(張翰)을……먹으러 가랴 : 동진(東晉) 때 오군(吳郡)의 장한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대사마 동조연(大司馬東曹掾)으로 있다가,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인 오군의
순채국[蓴羹]과 농어회[鱸膾]가 생각나서 “인생이란 가난하게 살아도 뜻에 맞는 것이
좋지, 어찌 벼슬을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수천 리 밖에 몸을 얽매일 필요가 있겠느냐.”
하고는 수레를 명하여 고향으로 곧장 돌아와버렸다. 강동(江東)은 곧 오군을 가리킨
말이다. 《晉書 文苑傳 張翰》
○친구가 귤(橘)을 읊은 데 화답하다
어린애들 처음 보고 황금인가 의심하여 / 癡兒始見訝黃金
희롱에 마음 쏠려 먹을 줄 모르누나 / 弄久都無咀嚼心
옛날 어전에 있던 그때가 생각난다 / 玉殿何年參侍宴
임금이 주시던 그 귤 내 가슴에 찬란도 했지 / 親承御賜爛盈襟
○석천(石泉)에 쓰다
나는 물 흐르는 것 볼 때마다 / 每見東流疾
세월 빠른 것 슬퍼했지 / 潛懷逝者悲
맑은 샘물도 내 뜻을 알아서 / 淸泉知我意
돌에 걸려 짐짓 더디더라오 / 礙石故逶遲
○등석(燈夕)
문기장자(文機障子)를 보고 짓다(文機障子詩)
용란기 바람에 나부끼니 하늘에 수 놓은 듯 / 綵天風颺舞龍鸞
백관이 옹호해라 임금 자리 중앙일세 / 黼座中開擁百官
등불은 비단에 가리어 빛만 반짝이네 / 燈隔紅紗光閃閃
패옥이 흔들리니 소리만 쟁쟁하고 / 佩敲蒼玉響珊珊
호위병에 분부하여 엄한 경계 해제하고 / 勅敎禁衛停嚴警
도성 사람 우대하여 마음껏 놀게 하네 / 恩許都人快縱觀
만수무강 비는 마음 어디에 있었던가 / 欲識龜臺來獻壽
향기로운 이슬 머금은 벽도 따서 드리고져 / 露香新摘碧桃寒
[주C-001]등석(燈夕) : 정월 대보름날 밤에 한데다 등불을 켜 놓고 밤을 밝히므로 이른 말.
○등롱(燈籠)을 보고 짓다
높은 등불 깊은 궁중에 휘황하니 / 九華燈焰耀熒煌
맑은 빛 의지하여 즐겁기 한이 없다 / 憑仗淸光樂未央
바다로 기름 삼고 산으로 심지 삼아 / 傾海爲油山作炷
은근히 만년상에 비쳐 주네 / 殷勤好炤萬年觴
연꽃 그림 장막이 부는 바람 막아 주니 / 氷荷霧縠障風搖
자주 돋우지 않아도 이 밤을 지날레라 / 不倩挑頻也度宵
알겠네 성조에 공물(貢物)이 많아 / 欲識聖朝多遠貢
남방 기름 북방 칠 한꺼번에 사르는 줄을 / 南油西漆一時燒
연꽃으로 꾸민 등잔 일백 가지 붉었는데 / 蓮燈點綴百枝紅
화려한 자리를 두루두루 비쳐준다 / 炤遍華筵錦繡叢
하룻밤 좋은 놀이 모두가 네 덕이야 / 一夜淸歡都寄汝
구석구석 비추어 밝은 달 구실 하누나 / 區區明月若爲功
[주C-001]등롱(燈籠) : 대나무 또는 나무나 쇠 같은 것의 살로 둥근 바구니 모양을 만들고,
거기에 비단 또는 종이를 씌워 그 속에 등잔을 넣는 것이다.
○꽃샘 바람
꽃 필 땐 미친 바람도 많으니 / 花時多顚風
사람들 이것을 꽃샘 바람이라 했다 / 人道是妬花
조물주가 모든 꽃을 만들 제 / 天工放紅紫
마치 한없는 비단을 가위질해 놓은 듯 / 如剪綺與羅
이미 그토록 공력을 허비했으니 / 旣自費功力
꽃 아끼는 마음 응당 적지 않으련만 / 愛惜固應多
어찌 그 고운 것을 시기하여 / 豈反妬其艶
도리어 미친 바람 보냈는가 / 而遣顚風加
바람이 만일 하늘을 어긴다면 / 風若矯天令
하늘이 어찌 죄주지 않으랴 / 天豈不罪耶
이런 이치 반드시 없을 것이니 / 此理必不爾
나는 사람들 말이 잘못이라 한다네 / 我道人言訛
바람의 직책은 만물을 고무하는 것 / 鼓舞風所職
만물에 입히는 공덕 후박이 없는 걸세 / 被物無私阿
만일 꽃 아껴 불지 않는다면 / 惜花若停簸
그 꽃 영원히 생장할 수 있으랴 / 其奈生長何
꽃 피는 것도 좋지만 / 花開雖可賞
꽃 지는 것 또한 슬퍼할 게 뭐랴 / 花落亦何嗟
피고 지는 것 모두가 자연인데 / 開落摠自然
열매가 있으면 또 꽃을 낳는 것이야 / 有實必代華
아서라 오묘한 이치 묻지 말고 / 莫問天機密
술잔 잡고 소리 높여 노래나 부르자 / 把杯且高歌
○진화(陳澕)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꽃을 감상하다가 취한 뒤에 붓을 달려 쓰다
시 지을 때 좋은 꽃을 안 보면 / 作詩非名花
그 시에 고운 말이 없는 거야 / 筆下無姸詞
반드시 좋은 꽃 만나서 / 絶欲遇仙紅
비단 창자 헤칠까 했는데 / 腸錦時一披
이제 고운 꽃 만나보니 / 及看此花艶
너무 좋아 바보가 된 듯 / 意極反如癡
아침 내내 한 글귀 찾았으나 / 終朝索一句
을씨년스러운 소리만 읊었을 뿐 / 吟苦寒蛩悲
끝내 한마디 좋은 글귀 없으니 / 畢竟寡好語
꽃 대하기 부끄럽네 / 對花顔何施
그러나 날 향해 웃는 그 꽃 / 花亦向我笑
은근히 날 꾀는 것만 같구나 / 低昂似相欺
어떤 정 많은 한 남자가 / 有如多情子
예쁜 여자 못 잊더니 / 浪憶一妖姬
길에서 만난 우연한 인연 / 道傍忽邂逅
서로가 말없이 머뭇거린다 / 相對空逶遲
보기만 하고 말 못하는데 / 脈脈竟無言
하물며 만날 약속을 어떻게 하랴 / 況奈論佳期
여보게 취토록 나에게 술 권해다오 / 請君勸我醉
고운 저 꽃 다시 한 번 감상하게 / 更賞夭夭枝
취할 때 지은 시면 / 詩從醉裏出
아리따운 그 자태 당적할 수 있을는지 / 儻可敵嬌姿
○곡령(鵠嶺)에 올라 짓다
이 땅 신령님 뵙기 위하여 / 欲謁靈祠主嶽君
때마침 정상에 올라 사방을 바라본다 / 時躋絶頂望軒軒
도성의 많은 집들 벌통 같고 / 城中萬屋如蜂綴
길에 다니는 사람 개미떼 같구나 / 路上千人似蟻奔
아름다운 상서 구름 궁궐에 둘러 있고 / 靄靄卿雲圍帝闕
성한 왕기 천문을 옹위했네 / 蔥蔥王氣擁天門
곡령산 그 형세 용같이 서렸으니 / 鵠山形勢龍盤屈
한없는 도읍터로 굳기만 하리로다 / 自此皇都固蔕根
○교서(校書) 이정(李程)이 미나리 보낸 시운에 차하다 2수 이정은 이미수(李眉叟)의 아들이다.
나는 한평생 빈한에 익숙하여 / 此生已分飽酸寒
요즘은 소채마저 어려웠네 / 蔬菜年來得尙難
그대 편지 움막집을 빛나게 하고 / 華札無端光甕牖
그대 선물 구슬상보다 낫네 / 珍投不啻與珠簟
사랑하는 마음 자배와 같으니 귀한 길 어렵지 않고 / 愛同炙背堪鑽貴
맛 좋기 생선보다 나으니 반찬으로도 썩 좋아 / 味勝烹鮮足佐餐
벤 줄기 이내 자라나리니 / 刈去殘莖隨手長
뒷날 다시 보낼 것 잊지 말게나 / 莫忘時復潤枯肝
옥처럼 귀여운 것 밥상에 가득하니 / 領得盈盤碧玉寒
다시금 그 은혜 갚기 어려워라 / 再三珍重報恩難
흙 씻어라 막 솥에 담아 삶고 / 靑泥洗去方烹鼎
쌀로 밥 지어라 도시락에 가득히 / 紅粟炊來正滿簟
순채의 가을 맛을 어찌 생각하랴 / 豈憶吳蓴秋有味
국화로 지은 저녁밥보다 낫다오 / 堪欺楚菊夕爲飱
다시는 안읍의 대추가 필요 없어 / 從今不復煩安邑
날마다 살진 저육 먹기보다 훨씬 나은걸 / 絶勝肥猪日致肝
[주D-001]자배(炙背) : 햇볕에 등을 쬐는 것으로 곧 임금을 생각하는 성의에 비유한 말이다.
춘추 시대 송(宋) 나라의 한 야인(野人)이 떨어진 옷으로 겨울을 지내다가 따뜻한 봄날
을 맞이하여 하루는 그의 등을 햇볕에 쪼이니 매우 즐거운 마음이 들어,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좋은 것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 법을 우리 임금에게 아뢰면 큰 상을 받지
않겠는가.” 하였다. 《列子 楊朱》
[주D-002]순채[蓴]의 가을 맛 : 동진(東晉) 때 오군(吳郡)의 장한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대사마
동조연(大司馬東曹掾)으로 있다가,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인 오군의 순채국[蓴羹]과
농어회[鱸膾]가 생각나서 “인생이란 가난하게 살아도 뜻에 맞는 것이 좋지, 어찌 벼슬
을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수천 리 밖에 몸을 얽매일 필요가 있겠느냐.” 하고는 수레
를 명하여 고향으로 곧장 돌아와버렸다.《晉書 文苑傳 張翰》
[주D-003]국화로……저녁 밥 : 《초사(楚辭)》이소(離騷)에 “아침에는 목란(木蘭)에 떨어진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의 떨어진 꽃잎으로 밥짓는다.” 하였다.
[주D-004]안읍(安邑)의 대추 : 《사기(史記)》식화전(貨殖傳)에 “안읍에는 대추가 많이 난다.”
하였고, 위 문제 (魏文帝)가 군신(群臣)에게 내린 조서에는 “안읍의 대추 맛이 천하에
제일이다.” 하였다.
○안혼(眼昏)에 느낌이 있어 전이지(全履之)에게 주다
내 나이 이제 마흔넷인데 / 我方四十四
두 눈 이미 침침하구나 / 兩眼已瞢瞢
지척에 있는 사람 분별치 못하여 / 咫尺不辨人
꼭 봄 안개 가리운 것 같군 / 如隔春霧濃
의원에 물으니 의원이 말하기를 / 問醫醫迺云
그대의 간경이 좋지 못한가봐 / 由汝肝不充
그렇지 않으면 젊었을 때 / 不然少壯時
등불 밑에서 글 읽은 때문이라 한다 / 讀書燈影中
나는 이 말 듣고 크게 웃으며 / 我聞拍手笑
그대는 참 공부 없는 의원일세 / 爾是非醫工
귀는 듣기 위해 있으니 / 耳有所欲聞
못 듣는 건 귀머거리요 / 不聞卽爲聲聾
눈은 보기 위해 있는 것이니 / 目有所欲見
보지 못하면 장님이라 / 不見謂之矇
나는 황제를 보려 하니 / 我欲見天子
그 높은 문 통할 수 없고 / 九闥無由通
귀인을 보려 하니 / 我欲見金紫
추한 옷이 몸 가리지 못했고 / 布褐不掩躬
모란(牡丹)을 보려 하니 / 我欲見姚魏
범상한 풀만이 무성하구나 / 凡草空茸茸
좋은 집에 살지 못하고 / 未見甲第居
오막살이에 머리 희었네 / 白首栖蒿蓬
오정 음식 먹어 보지 못하고 / 未見五鼎食
양식 떨어진 때가 몇 번이던가 / 顔巷厭屢空
이 때문에 눈이 어두워 / 以此致目暗
베로 가리운 듯 답답도 하군 / 如將疏布蒙
모두가 하늘이 시킨 것이라 / 是亦天所使
어찌 약으로 다스리랴 / 何必藥石攻
이것도 복이 될 줄 뉘 알리 / 焉知不爲福
세상에 편한 사람은 귀머거리와 장님이라오 / 聾瞽能完終
[주D-001]오정(五鼎) : 소ㆍ양ㆍ돼지ㆍ물고기ㆍ순록을 담아 제사지내는 다섯 개의 솥을 말하는데,
전하여 높은 작위에 있는 사람의 미식(美食)의 뜻으로 쓰인다.
○강종대왕(康宗大王) 만사(挽辭)를 한림원(翰林院)에서 드리다
자나깨나 어진 심려 퍽이나 쓰시더니 / 夙興勞聖慮
임금님 상여길 바쁘기도 해라 / 晏鴽促仙期
천상에는 참다운 즐거움 있겠지만 / 天上朝眞樂
인간에는 아비 잃은 슬픔일세 / 人間喪考悲
애용하던 기물들 부질없이 남았건만 / 空餘軒釰墮
거룩한 의상은 다시 보지 못할레라 / 無復舜裳垂
슬피 우는 동문 밖에 / 痛哭東門外
흰 깃대를 어이 보리 / 那堪望素旗
등극한 지 삼년이라 나라는 부강한데 / 御極三年國已肥
뜻밖에 하찮은 병환으로 졸지에 떠나셨네 / 忽因微恙輟宵衣
신선들 노는 곳으로 멀리 떠나니 / 瑤臺縹緲仙遊遠
궁궐은 처량해라 용상이 비었구나 / 玉殿凄涼御座非
가신 님 영원히 가셨는지 못 믿겠고 / 未信賓天終莫返
아직도 달에서 놀다 돌아올 것만 같구려 / 尙疑遊月儻還歸
만백성에 그 은혜 깊었으니 / 四方涵泳皇恩久
눈 있는 사람 누군들 눈물 아니 닦으랴 / 有眼何人不淚揮
○거미줄을 읊다
가을 만난 거미들 / 蜘蛛乘秋候
처마 끝에 그물 치네 / 緣霤工織網
뒷걸음치면서 실을 걸어 / 蟹足行掛絲
빠르기가 북질하는 것 같군 / 疾若梭來往
아이들이 낚싯대로 거두면 / 兒童黏以竿
떨어진 실끝 바람에 날리지만 / 遺片隨風颺
순식간에 다시 이룬 그물 / 須臾復結成
섬세한 조직 말도 못할레라 / 纖細不堪望
날던 매미가 잘못 걸리면 / 飛蟬誤見絓
물레 소리 내며 슬피 울고 / 空作繰車響
오가는 나비 한 번만 걸리면 / 胡蝶亦來縈
아무리 날려 해도 저만 괴롭지 / 翻翻徒自强
나는 본래 그물 벌레를 미워하여 / 我本疾網蟲
종들 불러 걸린 벌레 놓아주라지 / 呼奴釋且放
모든 혈기 있는 동물치고 / 凡有血氣者
누구라고 안 먹고 살랴마는 / 口腹誰不養
저 큰 범과 곰은 / 大則虎與熊
짐승도 가려 먹고 발바닥도 빨며 / 擇獸行舐掌
저 작은 닭이나 오리들은 / 小則鷄與䳱
썩은 흙에서 벌레를 쪼네 / 啄蟲於糞壤
이런 유가 하나뿐이랴만 / 若此非一類
어찌 너만을 미워할까 / 胡獨憎爾狀
내가 미워하는 건 너의 기교란다 / 機巧吾所忌
너의 기교 뉘라서 짝하리 / 汝巧誰與伉
뱉는 실 잠사보다 더 가는 것을 / 吐絲細於蠶
뱃속에서 모두 꺼내어 / 不惜腹中纊
이것으로 모든 벌레 유인하니 / 以此引癡蟲
어리석은 벌레들 어찌 속지 않으랴 / 焉得不見誑
○차[茶] 가는 맷돌을 준 사람에게 사례하다
돌 쪼아 바퀴 하나 이뤘으니 / 琢石作孤輪
돌리는 덴 한 팔을 쓰누나 / 廻旋煩一臂
자네도 차를 마시면서 / 子豈不茗飮
왜 나에게 보내주었나 / 投向草堂裏
특히 내가 잠 즐기는 걸 알아 / 知我偏嗜眠
이것을 나에게 부친 거야 / 所以見寄耳
갈수록 푸른 향기 나오니 / 硏出綠香塵
그대 뜻 더욱 고맙네그려 / 益感吾子意
○원외(員外) 최종번(崔宗蕃)의 비망록(備忘錄)에 쓰다
알건대 자네 총명 하늘에서 얻었으니 / 知公聰慧得於天
마음속에 밝은 거울 달려 있을 거야 / 方寸心中一鏡懸
많은 책 다 잃어도 모두 욀 수 있으리니 / 三篋亡書猶可誦
비망록 만들 필요 뭐 있으랴 / 不須更作備忘編
○사공(司空) 전원균(田元均)의 집에서 취해 돌아오다가 야경꾼에게 들키다
취한 사람이 어찌 조만을 분간하리 / 醉客那能分早晏
나졸들은 누구냐고 따지지 말라 / 金吾不用更誰何
성동에 술 즐기고 임금 옆에 모시던 손이 / 城東嗜酒花甎客
성서 재상 집에서 많이 마셨다네 / 痛飮城西宰相家
○최 수재(崔秀才)가 임금(林檎)과 감과(甘瓜)를 보내 준 데 사례하다 2수
내 집에는 말 안 듣는 애들이 많아 / 我家難制衆頑童
파란 열매 생길 때부터 따서 없앴지 / 綠子生時已摘空
그러나 점잖은 선생께선 익기를 기다려 / 珍重先生能待熟
좋게도 시 짓는 한 늙은이에게 나누어 주시네 / 肯分消渴一詩翁
속 많고 씨 적으며 달기가 엿 같은데 / 多瓤少瓣味如飴
삵 머리 용 발굽 품위마저 기절하다 / 狸首龍蹄品絶奇
이제부터 해마다 보내주길 기대하노니 / 自爾年年期見貺
이 늙은이 나이는 많아도 입맛은 애들일세 / 此翁雖老舌猶兒
○도잠(陶潛)의 시를 읽다
내가 사랑하는 도연명은 / 吾愛陶淵明
그 말 너무도 평담하다 / 吐語淡而粹
항상 줄 없는 거문고 만졌다지 / 常撫無絃琴
그러기에 시도 모두 그렇군 / 其詩一如此
지극한 음률은 소리가 없는 법 / 至音本無聲
무슨 줄이 필요하겠는가 / 何勞絃上指
지극한 말은 문체가 없는 법인데 / 至言本無文
어찌 꾸밈을 일삼으랴 / 安事彫鑿費
자연에서 나온 그 평화로운 말들 / 平和出天然
음미할수록 진미를 느낀다 / 久嚼知醇味
인끈 풀고 전원에 돌아와 / 解印歸田園
세 길 속에 소요하면서 / 逍遙三徑裏
술 없으면 친구 찾아가 / 無酒亦從人
날마다 취해 쓰러졌지 / 頹然日日醉
한 평상에 희황이 누웠으니 / 一榻臥羲皇
맑은 바람 솔솔 불어온다 / 淸風颯然至
순수한 태곳 때 백성이요 / 熙熙太古民
고상한 높은 선비로세 / 岌岌卓行士
그 시 읽고 그 사람 상상하면 / 讀詩想見人
천 년 동안 높은 의리 숭앙할레라 / 千載仰高義
[주D-001]희황(羲皇) : 도잠(陶潛)의 자호인 희황상인(羲皇上人)의 준말인데, 희황상인이란 복희씨(伏羲氏) 시대인 태곳 적의 사람이란 뜻으로, 속세를 떠나 한가히 지내는 사람을 말한다.
○처음 정언(正言)이 되고 나서 짓다
팔년 동안 임금 옆에서 모시다가 / 八載花甎沐帝恩
늙어서야 서원을 맡게 되었네 / 白頭方始直西垣
한평생 말없이 침묵만 지켰더니 / 平生口訥如囊括
사람들이 말없는 늙은 정언이라 하는군요 / 人道無言老正言
간관이란 그 벼슬 요직이요 청직이라 / 拾遺班秩要而淸
글 읽던 사람에겐 적합한 거지 / 大副書生宿昔情
흰 머리에 푸른 적삼이라 웃지들 마오 / 白首靑衫人莫笑
나졸들 길 인도하니 이만하면 영광일세 / 金衣前導足爲榮
[주D-001]서원(西垣) : 중서성(中書省)의 이칭(異稱).
○송이버섯을 먹다
버섯은 썩은 땅에서 나거나 / 菌必生糞土
아니면 나무에서 나기도 한다 / 不爾寄於木
모두가 썩은 데서 나기에 / 朽腐所蒸出
흔히들 중독이 많았다 하네 / 往往多中毒
이 버섯만은 소나무에서 나 / 此獨産松下
항상 솔잎에 덮였었다네 / 常爲松葉覆
소나무 훈기에서 나왔기에 / 爲有松氣熏
맑은 향기 어찌 그리도 많은지 / 淸香何馥馥
향기 따라 처음 얻으니 / 尋香始可得
두어 개만 해도 한 웅큼일세 / 數箇卽盈掬
내 듣거니 솔 기름 먹는 사람 / 吾聞啖松腴
신선 길 가장 빠르단다 / 得仙必神速
이것도 솔 기운이라 / 此亦松之餘
어찌 약 종류가 아니랴 / 焉知非藥屬
○국화(菊花)를 읊다 2수
봄이 꽃 피우는 것 맡았거늘 / 靑帝司花剪刻多
어찌하여 가을이 또 꽃을 피우려 하나 / 如何白帝又司花
서늘한 바람 날마다 불어오는데 / 金風日日吹蕭瑟
어디서 따뜻한 기운 빌려다가 꽃을 피우는지 / 借底陽和放艶葩
봄 힘 빌리지 않고 가을 빛에 피었기에 / 不憑春力仗秋光
한 줄기 찬 꽃 서리에도 늠름하다네 / 故作寒芳勿怕霜
술 가진 사람 누군들 너를 버릴 수 있겠는가 / 有酒何人辜負汝
도연명만이 그 향기 사랑했다 말을 마라 / 莫言陶令獨憐香
[주D-001]도연명(陶淵明)만이……사랑했다 : 연명은 도잠(陶潛)의 자. 송(宋) 나라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초목(草木)의 꽃 가운데 사랑스러운 것이 매우 많지만, 진(晉) 나라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다.……” 하였다.
○진구(珍丘)에 있는 중 겸공(謙公)이 명주를 보낸 데 사례하다
남쪽 사람들 봄 누에 기르노라 / 南人養春蠶
뽕이란 뽕은 다 없앴구려 / 剝盡千桑枝
불행히도 그 누에 다 죽으면 / 不幸死且僵
한 치의 실도 얻지 못한다네 / 未得錙銖絲
이러기에 한 웅큼 실도 / 迺知一握絮
끝없는 잠부의 공인 줄 알레라 / 蠶婦功莫涯
하물며 그 세탁하는 손들 / 何況汧澼絖
거북 등처럼 터졌음에랴 / 任却手如龜
씻고 씻어 그 눈빛 같은걸 / 漂竟取雪色
아끼고 아껴 차마 팔지도 못하네 / 愛惜固不貲
고맙게도 스님은 나의 추움 염려하여 / 多師念我寒
사환 시켜 바로 보냈네 / 遽遣白足馳
먼 길에 발병도 불고하고 / 不憚重繭至
나에게 겨울 준비 제공했지 / 供我三冬支
이제야 추위에 떠는 늙은이를 / 遂令氷叟冷
봄집에 오르게 한 것 같구나 / 似陟春臺熙
내 비록 예부에 있다 하나 / 吾雖名省郞
실상은 얼어터지고 말았네 / 其實凍裂肌
이렇게 따뜻한 물건 아니면 / 不有此溫燠
어찌 이 해를 넘기랴 / 得無卒歲悲
비록 죽는 날에 이를지라도 / 雖至屬纊日
이 은혜 잊을 날이 있으랴 / 那有敢忘時
○처음 사간(司諫)이 되고 또 금자(金紫)를 받았기에, 시를 지어 김 정언(金正言)에게 희증하다
옛날 푸른 적삼 입었을 땐 사람들 피하지 않더니 / 舊着靑衫人不避
이제 붉은 옷 입으니 뭇사람 다투어 따르네 / 新披紫袖衆爭趨
얼굴과 품계는 예나 다름 없건만 / 形容班品猶依舊
사간(司諫)과 정언(正言)이 모두 6품(品)이다.(司諫正言皆六品。)
한갓 옷차림의 귀천이 달라서일세 / 都爲身章貴賤殊
푸른 옷 벗고 붉은 옷 입었으나 / 綠衣方脫紫衣披
흰 머리 검은 얼굴은 아직도 여전하네 / 白鬢黎顔尙未移
허리에 옥대 두르니 책임도 무거워 / 腰嚲金魚微意在
이제부터 잠 덜 자고 눈 번쩍 떠야겠군 / 自今張目少眠時
○봄날 내성(內省)에서 짓다
금성에 봄 깊고 해는 긴데 / 禁省春深白日長
주렴 펄럭여라 서늘한 바람 좋기도 해 / 珠簾微動好風涼
홀연히 재상에게 큰 꾸지람 듣고 / 忽聞丞相嚴呵喝
정돈한 의관으로 뜰에 내리기 바쁘네 / 整頓冠巾下砌忙
○서경(西京)의 사인(舍人) 유충기(劉冲祺)의 시를 받고 그 운에 차하다 2수
옛날 영주관에 올라설 때 / 當年携手上瀛洲
봉황못 맑은 물에 우리 함께 몸 씻었다 / 鳳沼漣漪共濯流
머리에 붙인 관함은 아직도 바꾸지 않았으니 / 舊綴頭銜猶未換
옛 규례에, 궁내의 관함으로는 외임에 나갈 수가 없는데 공만은 기거사인(起居舍人)으로 외임에 나갔다.
오늘날 같이 못 노는 것 슬퍼하지 마라 / 莫嗟今日阻同遊
보낸 시에 이런 말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들으니 서도는 십주보다 낫다는데 / 聞道西都勝十洲
그중에도 가장 좋은 건 꽃과 버들이란다 / 箇中花柳最風流
누에 올라 긴 휘파람 부는 건 자네 집 일이야 / 登樓長嘯君家事
앉아서 오랑캐 물리치고 마음대로 놀아보게 / 坐却胡圍足縱遊
보낸 시에 오랑캐 막는 데 갖은 노고를 다하므로 하루도 얼굴 펼 사이가 없다 했다.
[주D-001]영주관(瀛洲館) : 당 태종(唐太宗)이 영주관을 짓고 천하의 현재를 이곳에 불러들여 예우(禮遇)하였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이곳을 존모하여 등영주(登瀛洲)라 하였다. 《唐書 褚亮傳》
[주D-002]서도(西都) : 고려 때 평양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주D-003]십주(十洲) : 선인(仙人)이 산다는 섬. 곧 조주(祖洲)ㆍ영주(瀛洲)ㆍ현주(玄洲)ㆍ염주(炎洲)ㆍ장주(長洲)ㆍ원주(元洲)ㆍ유주(流洲)ㆍ생주(生洲)ㆍ봉린주(鳳麟洲)ㆍ취굴주(聚窟洲). 《海內 十洲記》
[주D-004]누(樓)에……물리치고 : 진(晉) 나라 때 유곤(劉琨)이 진양 태수(晉陽太守)로 있을 적에, 호병(胡兵)에게 겹겹으로 포위를 당하자 유곤이 성루에 올라 긴 휘파람을 부니 호병이 이 소리를 듣고는 향수에 젖어있는 틈을 타서 포위망을 풀고 달아났다는 고사. 《晉書 劉琨傳》
次韻西京倅劉舍人沖祺見寄 二首
當年攜手上瀛洲。鳳沼漣漪共濯流。舊綴頭銜猶未換。舊例。不得以省銜赴外。公獨以起居舍人赴官。莫嗟今日阻同遊。來詩有及。故云。
聞導西都勝十洲。箇中花柳最風流。登樓長嘯君家事。坐却胡圍足縱遊。來詩。備言防胡艱苦。無一日開顔之語。
○관군(官軍)이 오랑캐와 싸워 이겼다는 말을 듣고 거란(契丹)과 싸웠다.
오랑캐 기세 날로 미친 듯이 날뛰어 / 虜氣日披猖
사람 베기를 풀같이 한단다 / 殺人如刈草
굶주린 호랑이처럼 침 흘리면서 / 虎吻流饞涎
노유를 가림 없이 막 잡아먹을 듯 / 呑噬無幼老
그러나 부녀들 부디 근심 마라 / 婦女愼勿憂
더러운 오랑캐를 곧 쓸어 없앨 것이다 / 腥穢行可掃
국업이 아직 다하지 않았고 / 國業未遽央
조정엔 묘한 계책 많아서 / 廟謀亦云妙
저들 스스로 와서 죽을 것이니 / 行且自就誅
우리 임금의 토벌을 어찌 피하랴 / 焉得避天討
내 어찌 망녕된 말 했으랴 / 吾言豈妄云
오늘 싸움에 이겼다는 소식 들었네 / 今日聞捷報
聞官軍與虜戰捷 與契丹戰。
虜氣日披猖。殺人如刈草。虎吻流饞涎。呑噬無幼老。婦女愼勿憂。腥穢行可掃。國業未遽央。廟謀亦云妙。行且自就誅。焉得避天討。吾言豈妄云。今日聞捷報。
○또
오랑캐들을 다 못 죽여서 / 胡騎猶未殲
밤새 눈 붙이기 어렵구나 / 夜臥難交睫
우편 길 빠르기 한이 없어 / 郵筒疾似飛
관군이 이겼다 전해 주네 / 報道官軍捷
온 나라 즐겁기 가이없어 / 一國喜濃濃
축하하는 사람 구름 모이듯 하네 / 簇賀如雲合
○금 상국(琴相國)이 외손을 얻고 즐거워서 시를 지어 평장사 최홍윤(崔洪胤)에게 부친 운에 차하다
함랑의 재주 세상이 다 안다 / 咸郞才調世皆知
상국 집에 장가 올 때 점괘도 좋았으니 / 奠雁高門早叶龜
영특한 물건 밤에 나니 빛이 방 안에 비치고 / 英物夜生光炤室
하례하는 손님 아침에 모이니 옷깃이 장막 이루네 / 賀賓朝集衽成帷
좋은 사위 타성에서 구하지 않았던들 / 不因外姓求佳壻
어찌 영특한 손자 아이 얻었으랴 / 豈向諸孫得異兒
소리 듣고 장래 알던 온 태위가 기대된다 / 要待識聲溫太尉
자비로 이마 만지던 지 선사가 무어 필요하랴 / 何煩摩頂誌禪師
깃털은 마침 하늘을 날 학이 되겠고 / 羽毛會作沖霄鶴
담 기운은 반드시 나무 뽑는 곰을 이길레라 / 氣膽應呑拔樹羆
틀림없는 내 말을 증험하려거든 / 欲驗吾言如合契
뒷날 이 시 한 편을 증거해 주게 / 他年徵此一篇詩
재상 자리에 오를 것을 나는 일찍 알았으니 / 台鉉登庸我早知
당신의 발 밑에 거북 무늬 봤더란다 / 看公足底踏文龜
공이 옛날 우리 집에 와서 박 상서(朴尙書)와 발을 씻을 때 발 밑에 거북 무늬가 있는 것을 보았다.(公昔到予家。與朴尙書跣足着棊。予見足底踏龜。)
수부(水府)의 관함에는 예로부터 붉은 비단으로 수 놓았고 / 水銜舊綴紅綃署
일찍 한림 학사(翰林學士)가 되었다.(曾爲翰林學士。)
옥같이 고운 얼굴 일찍 임금 옆에 가까이 있었지 / 玉色曾親紫錦帷
공이 일찍 승지(承旨)가 되었다. 한(漢)ㆍ당(唐)의 제도에 임금은 자금(紫錦)의 장막을 설치했다.(公曾爲承旨。漢唐帝施紫錦之帷。)
어진 혜택은 오는 손님들에까지 골고루 주었고 / 膏液盡霑門下客
남은 향기는 젖 먹는 애들에도 입혔다네 / 薰香猶被乳前兒
아름다운 세 손자는 나라의 보배요 / 三英共美邦之彦
큰 공은 장차 임금 스승으로 만호후에 봉해질걸 / 萬戶行封帝者師
곳곳에 알려진 그 이름 초목을 기울이고 / 名遍江淮傾草木
오랑캐에 떨친 그 위엄 곰들까지 겁냈네 / 威行蠻貊懾熊羆
공무 끝에 지은 시 풍자도 많으니 / 公餘著詠多規諷
뒷날 악부에 전하면 아름다운 음률 되리라 / 樂府流傳卽雅詩
[주D-001]함랑(咸郞) : 함씨(咸氏) 낭자(郞子). 곧 금 상국(琴相國)의 사위를 지칭한 듯하다.
[주D-002]소리 듣고……기대된다 : 온 태위(溫太尉)는 곧 진(晉) 나라 온교(溫嶠)를 가리키는데, 온교가 일찍이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 환온(桓溫)을 보고 “이 애가 기골(奇骨)이다.” 하고, 또 그 울음소리를 듣고는 “참으로 영특한 아이다.” 하였다. 《晉書 卷98 桓溫傳》
[주D-003]자비로……필요하랴 : 지 선사(誌禪師)는 양(梁) 나라 때의 고승 보지선사(寶誌禪師)를 지칭한 듯하나, 자세하지 못하다.
○중서(中書)의 벽상에 쓴 금 상국(琴相國)의 시에 화답한 상국 최홍윤(崔洪胤)의 시를 차운하여 다시 두 재상에게 바치다
재주는 문무를 겸했으니 / 才兼虎庫與文房
행동하는 그 품위 분성당에 둘이 높았네 / 步驟雙高粉省堂
상위(相位)에서 이런 일 예로부터 보지 못했으니 / 千古台階元未見
한때 두 재상 모두가 장원랑이더란다 / 一時兩相甲枝郞
두 정승이 모두 장원급제(壯元及第)하였다.(二相皆狀元及第。)
[주D-001]분성당(粉省堂) : 상서성(尙書省)의 이명(異名). 상서성의 벽(壁)에는 분(粉)으로 옛날의 현인(賢人)ㆍ열사(烈士)들을 그려 놓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전하여 출세(出世)의 뜻으로 쓰인다.
○밤에 만보전(萬寶殿)에서 초제(醮祭)를 지내면서
별들은 반짝이고 달은 고운데 / 星斗森芒璧月娟
향불 가지런히 피우고 신선을 맞이하네 / 嬰香齊點引神仙
못난 이 신하도 목청을 자부하노니 / 微臣自負吭音滑
청사 읽는 소리 저 하늘에 닿고져 / 欲讀淸詞徹九天
어지신 임금의 비는 마음 하늘을 감동케 해 / 聖主齋心已格天
정화수(井華水) 올리기 전에 오는 복 냇물 같네 / 未斟明水福如川
옥단에 예 마치고 임금님 돌아가니 / 玉壇禮罷廻宸仗
나라에서 주신 술 우로같이 퍼지누나 / 拜受黃封雨露宣
[주C-001]초제(醮祭) : 성신(星辰)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또 금 상국의 벽에 쓴 시운을 차하여 바치다
기이한 계책 젓가락 빌린 자방을 무색케 하고 / 借筯奇籌倒子房
낭랑한 높은 의논 조정을 두렵게 하죠 / 琅琅高議激朝堂
관방표 네 번째를 뭐 다시 시정하리 / 房標第四何須訂
상국 시에 제사방(第四房)이란 말이 있었다.(相國詩。有第四房之語。)
대감님 금년에 시랑이 되었네 / 門下今年拜侍郞
공이 이때 참정(參政)이 되었다.(公時爲參政。)
[주D-001]기이한……자방(子房) : 자방은 한 고조(漢高祖)의 명신 장량(張良)의 자. 장량이 일찍이 한왕(漢王)의 밥상 앞에서 젓가락을 빌려 그것으로 이리저리 그으며 자기 계획을 진언(陳言)했던 것을 말한다. 《漢書 卷40 張良傳》
○대사성(大司成) 임영령(任永齡)이 재혼(再婚) 때 큰 잔치를 열지 않았다고 희롱한 금 상국의 시운을 차하여 임공(任公)에게 드리고, 또 이것을 금 상국에게 전해 드릴 것을 엎드려 바라다
듣건대 대감님은 안방 말 듣기를 즐겨한다지 / 聞公端喜聽卿卿
좋은 집안 두 혼인 참으로 적당한 걸 / 甲族雙華正的當
기운 길러 충만하니 건강에 자신 있거늘 / 養氣得充堪自負
눈썹 그려 아양떠는 것 무엇이 해로우랴 / 畫眉求媚亦何傷
약 안 먹어도 눈썹 검어가고 / 不呑丹藥髭還黑
향수 기름 바른 듯이 낯빛 윤택하네 / 似點香膏面有光
연리지에 꽃 피니 봄이 늙지 않고 / 連理花開春不老
동심침 따뜻하니 꿈만이 길었더라 / 同心枕暖夢偏長
장가 든 뒤 오래도록 인색한 걸 사람들은 희롱했고 / 巹餘久嗇人多戲
축하연 크게 열기를 모두 희망했단다 / 賀宴高張衆固望
금 상국의 조롱도 참 멋있는 거야 / 相國欺嘲誠有味
무슨 일로 손님 막고 안방만 지키느뇨 / 何須屛客守帷房
[주D-001]눈썹……아양떠는 것 : 한(漢) 나라 장창(張敞)은 위의(威儀)가 너무도 부족하여 그 아내에게 잘 보이려고 항상 아내의 눈썹을 그려 주었다. 《漢書 張敞傳》
[주D-002]연리지(連理枝)에……늙지 않고 : 서로 애정이 깊은 부부(夫婦) 관계를 비유한 말이다. 연리지란 근간(根幹)이 각기 다른 두 나무의 가지결이 서로 연하여 하나가 된 것을 말한다.
○동문(東門) 밖에서 들판을 보고
마른 흙덩이 푸른 들로 변했으니 / 乾塊化碧畦
저것이 모두 몇 마리 소의 힘이던가 / 費盡幾牛力
바늘 같은 싹이 누런 이삭 될 때까지 / 針芒到黃穗
수없는 사람들 노고하여 / 勞却萬人役
만일 수재 한재 없으면 / 幸免水旱災
모든 곡식 제대로 수확하겠지 / 萬一儻收得
농사란 이렇게도 힘든 것인가봐 / 見玆稼穡艱
쌀 한톨인들 어찌 차마 함부로 먹으랴 / 一粒何忍食
보라 농사 대신 녹 먹는 사람들아 / 凡以祿代耕
마땅히 자신의 직무에 충실할지어다 / 要當勖乃職
○벼 포기 사이에서 고기를 잡다
곡식 심어 가을 오기만 바랐지 / 播穀望西成
또 이랑에 고기 있을 줄 뜻했으랴 / 魚肥本非意
벼 얻고 또 물고기 삶으니 / 旣穫又烹鮮
끝없는 건 사람의 욕심일레 / 人欲何窮已
○내직(內直)에서 느낌이 있어 우습유(右拾遺) 수구원(水丘源)에게 보이다
거울 보니 머리털 날마다 희어가는데 / 鏡中絲鬢日紛紛
액원을 맡아본 지 벌써 다섯 해일세 / 五載遷廷直掖垣
송죽은 추위에도 그 절개 남아 있고 / 歲暮松筠猶有節
도리는 봄이 와도 말 한마디 없어라 / 春來桃李又無言
저 하늘엔 기러기떼 높이 나는데 / 仰看天上高鴻擧
늙은 봉황 못가에 앉은 것이 우습구나 / 自笑池邊老鳳蹲
오랑캐 냄새 온 천지에 뻗쳤으니 / 胡羯腥涎流宇內
어느 곳에서 술 한 잔으로 눈썹을 펴볼거나 / 一樽何處得眉軒
[주D-001]액원(掖垣) : 액성(掖省)과 같은 말. 당대(唐代)에 문하(門下)ㆍ중서(中書) 양성(兩省)
이 금중(禁中)의 좌우에 있었으므로 일컫는 말이다.
○오랑캐가 강동성(江東城)에 들어와 있다는 말을 듣고 성중(省中)에서 짓다
남은 오랑캐 도망도 안 가고 / 殘胡厭竄逃
이미 우리 울타리 안에 들어왔네 / 已入圈牢內
만일 저들의 고기를 나누어 준다면 / 得肉幸平分
만인이 그 회를 달게 먹을 걸세 / 萬人甘共膾
○시랑(侍郞) 이미수(李眉叟)가 박사(博士) 권경중(權敬仲)의 벽곡(辟穀)을 나무란 시운에 차하다 3수
공자는 일찍 한 치의 땅이 없어도 / 孔聖曾無寸土封
따르는 제자가 삼천이나 되었단다 / 三千門弟競攀龍
진에서 주린 건 정말이지만 / 在陳絶粒眞飢矣
그때 솔 먹는 거야 누가 봤던가 / 誰見當時肯餌松
그대의 귀한 골상 봉군이 될 것인데 / 相君骨法貴當封
하필이면 용 타려고 신선 구하나 / 何必求仙要跨龍
배불리 밥 먹고 달게 잠자 좋은 꿈 맞이하여 / 飽食酣眠邀好夢
언젠가 큰 배에 소나무 날 때를 기다리게 / 待看便腹忽生松
나는 한평생 술 즐기니 누룩의 봉군이라 / 我生嗜酒麴成封
취할 땐 기린도 굽고 용도 회하고 싶어 / 醉欲炮麟更膾龍
그대는 무슨 일로 오래도록 벽곡하여 / 何事權君長辟穀
좋은 얼굴 소나무보다 더 여위게 하나 / 忍敎形貌瘦於松
[주C-001]벽곡(辟穀) : 익힌 음식을 먹지 않고 생식(生食)만 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1]진(陳)에서 주린 건 : 공자(孔子)가 진(陳)ㆍ채(蔡)에서 양식이 떨어져 군색함을 당했던 일을 말한다. 《論語 衛靈公》
[주D-002]좋은 꿈……날 때 : 높은 작위(爵位)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진(晉) 나라 장발(張勃)의 《오록(吳錄)》에 “정고(丁固)가 자기 배 위에 소나무가 나는 꿈을 꾸었는데, 누가 이르기를 ‘송(松) 자를 파자하면 십팔공(十八公)이 되니, 18년 뒤에 틀림없이 공작(公爵)이 될 것이오.’ 했다.” 하였다.
○성중(省中)에서 더위가 괴로워 짓다
금오가 제 스스로 불을 뿜어 / 金烏自吐炎
헐떡이며 날지를 못하네 / 呀喘反難翥
이로부터 해도 더디 가서 / 自此日行遲
사람 볶는 불이 되었네 / 留作煎人火
어찌하면 하늘 가리는 부채 얻어 / 安得亙空扇
맑은 바람 온 천하에 불게 할까 / 搖簸遍天下
[주D-001]금오(金烏) : 금 까마귀로, 곧 태양의 별칭. 태양 속에는 세발 달린 금 까마귀가 있다는 전설에서 연유된 것이다.
○안화사(安和寺)의 당 선사(幢禪師)를 찾으니, 선사가 시 한 편을 청하다
청산이 참 친구라 / 靑山眞故人
내 오는 걸 즐기는 듯 / 似喜幽人至
내 올 때 맑은 경치 보여주니 / 來時貺淸景
날씨가 곱고도 아름다워라 / 風日正姸媚
더구나 산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 到山未云幾
빗소리 다시 좋기도 하네 / 蕭蕭雨聲美
머리털 풀고 난간에 누웠으니 / 散髮臥風軒
코고는 소리 우레 같구나 / 一場雷鼾鼻
다시 일어나 갠 날을 보니 / 起視復澄霽
둥그런 해가 나무 끝에 걸렸군 / 木末掛規燬
매미들은 잎 속에서 울고 / 鳴蟬翳葉嘒
새들은 나뭇가지에서 싸운다 / 鬪雀爭枝墮
중들 제 손으로 차 달여 / 衲僧手煎茶
나에게 향기와 빛을 자랑하네 / 誇我香色備
나는 말하노라 늙고 병든 몸이 / 我言老渴漢
어느 겨를에 차 품질 따지랴고 / 茶品何暇議
일곱 사발에 또 일곱 사발 / 七椀復七椀
바위 앞 물을 말리고 싶네 / 要涸巖前水
때는 마침 초가을이라 / 是時秋初交
늦더위 다하지 않았단다 / 殘暑未云弭
낮이면 비록 찌는 듯하나 / 當千雖敲蒸
서늘한 저물녘의 기운 더욱 좋구나 / 晩涼聊可喜
수정 같은 푸른 외 먹으니 / 靑瓜嚼水精
얼음같이 찬 액체에 이빨이 시리다 / 永液寒侵齒
볼처럼 붉은 복숭아 / 碧桃雙頰紅
씹어 먹으니 잠 쫓기 알맞네 / 嚼罷堪祛睡
누웠다 앉았다 하며 돌아가길 잊으니 / 偃仰自忘還
이 놀이 참으로 내 뜻에 맞구려 / 玆遊眞適意
○선명도(蟬鳴稻)를 얻다 선명도는 올벼를 말한다.
그 이름 어기지 않기 위하여 / 不欲負其名
마침 선명 날을 맞이하였네 / 趁得蟬鳴日
직접 새 곡식을 보게 되니 / 眼見新穀升
금년 일도 끝났는가봐 / 今年事亦畢
○시랑 이미수가 자기 아들 균(囷)의 동일(冬日) 시를 화답하여 내 아들 함(涵)에게 화답할 것을 명하고, 또 함을 시켜 나를 맞이하여 함께 시를 짓고자 하기에, 나도 그 시운을 차하여 받들어 부치다
그대는 봄 동산의 풍성한 살구와 복숭아를 보지 못했는가 / 君不見春園富貴紅杏與緋桃
모두 조물주의 재주가 아니던가 / 無奈天工費剪刀
이렇게 꽃다운 시절에 미칠 듯이 읊어나 보자 / 芳辰若此宜狂吟
나같이 거친 재주도 강 파도를 기울이고 싶구나 / 如我麤才尙欲傾江濤
찬 겨울 섣달에야 무엇을 감상하랴 / 頑冬臘月何所賞
북풍이 나무에 불어 부질없이 설렁대네 / 朔風號樹空騷騷
궁중에 늙은 아전 자라처럼 웅크리고 / 掖垣老吏凍鼈縮
손 불어 조서 초하며 괴롭다 말하는군 / 呵手草詔猶言勞
공같이 화려한 문장 이때를 당했으면 / 公於此時摛藻麗
화려한 글 기운 하늘을 사를 듯 호걸스럽겠지 / 春葩都爲熏天氣却豪
부럽구나 그대 같은 이 어찌 애들에 비하랴 / 更羨郞君不是阿兒比
붓 아래 새로운 시 그 품격 너무도 높으리라 / 筆下新詩調太高
○공사(公事)로 인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한가히 있을 때 선달(先達) 이원주(李元冑), 장원(壯元) 황보관(皇甫琯), 장원 김신정(金莘鼎), 아원(亞元) 박응귀(朴應貴)가 술을 가지고 찾아와 위문하기에 이로써 사례하다
늙은 사람 보직으로 간다는 건 말이 아닌데 / 白頭補闕本何言
돌연히 풍파에 휩쓸려 궁 밖으로 쫓겨났네 / 忽陷風波擯掖垣
처자들과 밤낮을 같이했을 뿐 / 獨與妻兒同旦暮
다시는 옛친구 하나도 찾는 이 없었다오 / 更無賓客問寒暄
다만 돌돌이라는 글자나 길이 쓸 뿐 / 但將咄咄空書字
어찌 구구하게 문 쳐닫고 있으랴 / 何用規規自勒門
고맙네 그래도 날 못 잊는 네 군자들 / 多謝慇懃四君子
함께 좋은 술 갖고 내 집을 찾아주니 / 共携芳酒枉高軒
[주D-001]돌돌(咄咄)이라는……쓸 뿐 : 돌돌은 돌돌괴사(咄咄怪事)의 준말로, 뜻밖의 괴이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놀라는 것을 말한다. 《진서(晉書)》은호전(殷浩傳)에 “은호가 조정에서 쫓겨난 뒤 담소하고 음영(吟咏)하는 일을 끊지 않았으므로 자기 식구들도 쫓겨난 데 대한 유감의 기색을 전연 볼 수 없었는데, 온종일 허공에다 ‘돌돌괴사’라는 네 글자만 쓰고 있을 뿐이었다.” 하였다.
○나를 위로해 주는 습유(拾遺) 오몽림(吳夢林)의 시운에 차하다 2수
거미줄 친 문밖에는 오는 손이 없건만 / 雀羅門外無來客
계수 앞에서 놀던 옛 놀이 생각난다 / 鷄樹垣前憶舊遊
간관의 직책 버렸으니 내침받기 마땅하고 / 諫職久癏宜見擯
푸른 놀 푸른 산 속에 돌아와 쉬니 좋구나 / 碧霞靑嶂好歸休
벼슬길 잃으니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아 / 失路忽從天上落
영주관(瀛洲館)에 놀던 일 모두가 꿈이로세 / 登瀛翻似夢中遊
위로하는 말 한마디 천금보다 더 중하고 / 一言見訊千金重
세 번이나 쫓겨났으니 만사가 그만일세 / 三黜忘懷萬事休
[주D-001]계수(鷄樹) : 중서성(中書省)을 말한다. 삼국 시대 위(魏)의 유방(劉放)ㆍ손자(孫資) 두 사람이 오랫동안 기임(機任)을 맡고 있자, 하후헌(夏候獻)ㆍ조조(曹肇)가 여기에 불평심을 품고는 전중(殿中)에 있는 계수를 보고 말하기를 “이 나무도 무척 오래된 것인데, 어찌 더 이상 오래가랴.” 하였는데, 이때 마침 유방과 손자가 중서성에 있었으므로 후인들이 중서성을 가리켜 계수라고 했다. 《三國志 魏志 劉放傳 注》
○박연폭포(朴淵瀑布)에 제(題)하다. 옛날 박 진사(朴進士)란 사람이 못가에서 피리를 부니, 용녀(龍女)가 그 피리 소리에 반하여 저의 본 남편을 죽이고 박 진사에게 시집갔으므로, 이 못을 박연이라 이름했다 한다.(昔有朴進士者。吹笛於淵上。龍女感之。殺其夫。引之爲壻。故號朴淵。)
피리 소리에 반한 용녀 선생께 시집오니 / 龍娘感笛嫁先生
오랜 세월 그 정열 즐겁기만 하였겠지 / 百載同歡便適情
그래도 임공의 새 과부가 / 猶勝臨邛新寡婦
거문고 소리에 미쳐 달려온 것보다는 나으리 / 失身都爲聽琴聲
[주D-001]임공(臨邛)의……달려온 것 : 임공은 지명. 한(漢)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임공에 가서 탁왕손(卓王孫)의 딸 문군(文君)이 새로 과부가 된 것을 알고 그날 밤 봉황가(鳳凰歌) 곡조로 거문고를 탔더니, 문군이 이 노래에 반하여 밤중에 도망쳐 상여에게 왔던 것을 말한다. 《司馬相如 琴歌》
○술 취한 중이 밤에 일어나 얼음 깨무는 것을 조롱하다
밤중에 술 깨어 찬 얼음 깨무니 / 酒醒中夜嚼寒氷
온갖 맛 좋은 음식 여기에 당하랴 / 百品珍羞敵未能
이런 맛 한평생 나 혼자만 아는가 했더니 / 此味平生疑獨享
늙은 중이 나 먼저 일찍이도 알았구나 / 老髡先我飽嘗曾
○기묘년 사월에 계양 군수(桂陽郡守)가 되어 조강(祖江)을 건널 때 길제사를 지내면서 짓다
저문 산 어두운 연기에 물은 길기도 해 / 晩山煙瞑水漫漫
험한 여울 미친 바람에 건너기도 어렵구나 / 灘險風狂得渡難
천박한 운명 이제 또 귀양살이 가는 길이지만 / 命薄如今遭謫去
그래도 임금님 향한 마음 버리기 어렵다오 / 尙難拚却望長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