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 수필울 제 2 집 수록
권 덕 봉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날씨를 확인하니 대체로 흐리고 비 올 확률은 낮다. 공기는 실외활동에 적당하고 바람은 약하게 분다. 걷기에 좋은 날씨다. 요 위에 누워 크게 기지개를 켠 채 골반을 흔들어준다. 다리를 감싸 안아 가슴으로 끌어당김과 동시에 머리를 들어 올려 몸을 동그랗게 만다. 팔다리를 위로 올려 흔들어 턴다. 좌우로 구르며 근육들을 깨우는데 갑자기 삼천갑자 동방삭이 생각나 빙긋이 웃었다.
오늘은 매번 다니던 유등천변 길이 아니다. 나무 그늘이 좋은 서구 황톳길 4구간과 5구간을 거처 남선공원을 한 바퀴 돌고 올 생각이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기 전에 한 무리의 학생들 틈에 끼어들었다. 엄마와 손잡고 등교하던 초등학생이 급하게 달려가는 중학생에 부딪혀 넘어졌다. 엄마가 얼른 일으켜 세우는데 아이의 무릎에 난 상처가 보인다. 아이는 울먹이고 중학생은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우리 아이들의 오래 전 모습이 겹친다.
두 아이를 강하게 키우고 싶다는 욕심에 넘어져 울고 있어도 안아 일으키지 않았다. 대신 ‘울지 말고 털고 일어서라’고 다그쳤다. 아이들은 넘어져도 울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무엇을 사 달라고 조를 때에도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사주지 않았다. 한번 거절하면 아이들은 더는 조르지 않았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로부터 떠나지 못하는 젊은이가 많다는 말이 들린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일찍 독립하여 품을 떠났다. 그들이 씩씩하게 잘 살아가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자식은 ‘살갑기가 평양 나막신 같다’는 말을 들으면, 나의 교육방식이 틀렸던 것 같아 안타깝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 안아 일으켜 눈물도 닦아주고 사달라는 것도 모두 사주는 자상한 아버지를 기억 속에 넣어주고 싶다.
황톳길 4구간이 끝나고 5구간이 시작되는 곳이다. 교차로 건널목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보니 흩어지는 담배 연기같이 옅은 구름이 낮게 걸려있다.
일찍 담배를 배우고 애연가임을 자처했었다. 담배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 감에 따라 몇 번 금연을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체중이 늘어 포기했었다. 어머니께서도 담배를 좋아하셨는데 요양원에 모시고 나서는 담배를 드릴 수 없었다. 사 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좋아하시던 담배를 피우지 못한 기간이 고작 넉 달이라니. 나는 이때 근 두 해를 금연 중이었는데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며 앞으로는 절대 금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국민연금을 받는 나이가 되자 아내가 담배 끊기를 종용했다. 연애할 때는 담배 피우는 모습이 멋있다고 하던 여자다. 이제 냄새가 싫어졌다고 하며 자기를 사랑한다면 그까짓 담배를 못 끊겠는가 하고 압박해왔다. 나는 남편이 좋아하는데 그 냄새를 못 참느냐며 버텼다. 오 년 전 겨울 심한 기관지염으로 근 한 달을 앓았는데 아내의 소원이 저절로 이루어졌다.
남선공원 초입에 다다랐다. 운동복 차림인 젊은이 둘이 담배 연기를 뿜어대고 있다. 아직도 콧속을 파고드는 냄새가 구수하다. 어떤 근거인지는 모르지만 ‘칠 년은 지나야 끊었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지인이 있었다. 유혹을 뿌리치며 젊은이들 곁을 빠르게 지나 오름길로 들어섰다. 이 길은 익숙하지 않다.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가 볼 요량이다. 그동안 걷던 평지 길과 달리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이다. 남선정이 있는 곳에 다다라서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무계단으로 되어있는데 그 끝에 올라서서 가쁜 호흡을 가다듬는다.
나이 쉰셋에 직장에서 명퇴를 권유받았다. 명퇴가 유행병처럼 횡횡했던 시절이다. 말이 좋아 명예퇴직이지 사실상 강제 퇴출이다. 결정을 못 하고 끙끙 앓고 있었더니 아내가 용기를 북돋는 말을 했다.
“고생할 만큼 했어요. 사표 던져요. 앞으로는 내가 먹여 살릴 수도 있어요.”
먼저 퇴직한 선배들이 ‘직장 안은 온실과 같고 직장 밖 세상은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 같다.’고 하며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었다. 그들 말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조기 퇴직에 따른 위로금을 더한 퇴직금만으로도 여생을 보내기에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오판이었다. 일만 해온 나 자신에게 보상한다며 몇 군데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대학 졸업 후에도 취업이 힘든 딸을 해외어학연수에 보내야 했다. 대학원에 진학한 아들의 학비를 지원하면서 곶감 빼먹듯 하고 보니 주머니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늘어난 수명을 지켜내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웠다. 이 두려움과 더 힘을 잃기 전에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두어야겠다는 조급함, 나만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근거 없는 자만심이 성급한 결정을 불러왔다. 가지고 있던 유동성을 모두 한곳에 투자했는데 업체는 망해 없어지고 그 대표자는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집 한 채는 남았지만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던 나를 아내가 다시 건져냈다.
“날아간 돈이요. 그러니 잊어요. 이제 밥 벌러 같이 나가요.”
되돌아 집으로 가는 길이다. 속도를 조금 낮추었다. 제법 오래 걸어 힘에 부친 탓도 있지만, 딱히 급히 걸어야 할 이유도 없다.
살아오면서 몇 번의 자잘한 성공과 커다란 실패를 경험했다. 성공의 기쁨은 기억에 별로 없는데 실패의 아픔은 뼈에 새겨진 듯 불쑥불쑥 뇌리에 떠오른다. 되짚어보면 여유를 가지고 의사를 결정하였을 때는 성공을 이루었지만, 빨리 성취하려는 욕심이 더해졌을 때는 여지없이 실패를 만났던 것 같다. 내리막길이 위험하다고들 하지만 급경사 구간은 지났으니 완만하지만 길고 지루한 나머지 길이 남았다. 앞으로도 수많은 의사결정의 순간이 다가올 것이다. 매번 결과가 좋은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은 경험으로 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 주춤거릴 경우도 부지기수로 있을 터이다. 하지만 ‘욕심을 내려놓으면 낭패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가르침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예전처럼 서두르지 말고 주위도 살피면서 천천히 걸어야겠다. 다만, 그침 없이 꾸준히.
황톳길에 그늘을 드리우는 짙은 녹색 나뭇잎 사이를 뚫고 들어온 햇볕마저 뜨거운 유월이다. 여름은 성큼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