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천에 담은 소망
불광천은 불광동이란 지명에서 유래된 하천의 이름으로, 불광동은 불광사(怫光社)라는 이름의 절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도 하고, 이 근처에 바위와 대소 사찰이 많아 부처의 서광이 서려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한다. 또한 이곳 불광천을 연서내, 연신내, 까치네라고도 부르며 한자로는 延曙川(연서천)으로 표기한다.
1623년 인조반정때, 광해군을 몰아내고 새 임금으로 추대 되었던 인조 임금이 이귀, 김류 등과 함께 이 곳 불광동에서 만나 창의문을 넘어 궁궐로 쳐들어가기로 약속하였는데 이곳으로 모이기로 한 신하들이 늦게 도착하여 애를 태웠다하여 “신하를 늦게 만난 개천” 이라는 뜻의 “연서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불광천은 은평구와 마포구를 거쳐 흐르는 천으로, 발원지는 불광중학교 뒤 비봉에서 시작되고 상류인 북한산 자락에서 연신내 6호선 응암역 까지는 복개로가 형성되고 응암역에서부터 오픈되어 수색과 월드컵공원을 지나 홍제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불광천의 폭은 250m 정도로 발원지에서 한강까지의 총 길이는 29.7km이고 그 중 은평구를 흐르는 물길은 20.2km정도로 전체 길이의 68%정도가 행정구역상 은평구에 해당되는데, 그 중 응암역에서 수색역에 이르는 2.9km의 하천구간을 우리는 불광천이라고 부른다.
응암역을 지나 월드컵경기장을 지나는 물줄기는 홍제천과 합류하고, 그 합류된 물줄기가 다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형태로 되어 있어 지류와 본류의 개념, 작은 실개천이 모여 강이 되어가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천의 주변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이곳은 아이들에게 좋은 학습장소가 되고 있다. 또한 체육시설과 자전거도로의 확보, 라바댐과 분수, 해담는다리 등의 시설물이 있어 이른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바람을 쐬러 나오거나 운동을 하러 나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휴식공간, 산책공간으로 인기가 높으며, 이곳을 찾는 주민들의 수는 점차로 늘어나는 추세이고, 연신내 쪽에서 살고 있는 나 또한 가벼운 운동과 산책을 위해 이곳을 종종 찾고 있다.
도심 속에서 물고기가 살고 나비와 곤충이 찾아드는 냇가를 걷는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또한 냇가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여울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쌓였던 스트레스가 여울과 함께 흘러가 버려 마음까지도 상쾌해짐을 느낀다. 산책하는 동안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노라면 구불구불한 하천의 모습이 자연의 모습을 닮아 인공적으로 가꿔진 하천임을 잠깐 잊게 되는데, 이는 그만큼 불광천이 자연스러운 예전의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찾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곳 불광천을 흐르는 물은 하루 평균 약 1만톤 정도로, 이는 불광역과 연신내 역사에서 유입되는 지하수가 대부분인데, 이렇게 수량이 많지 않은 것은 다른 도시의 하천이 그렇듯, 주변의 수변지구가 대다수 콘크리트로 되어있어 물을 품어둘 공간이 없고 그로인해 자연스럽게 건천화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원인이 된다. 이에 지난 2008년 10월 1일 불광천과 한강이 만나는 부분의 하상여과수를 끌어 응암동에 위치한 다리위에서 떨어트리는 “불광천 유지용수 통수식”이 있었는데, 시원스레 떨어지는 물줄기는 폭포가 되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만톤 정도의 추가수량을 확보하는 결과를 가져와 이제는 풍부하게 물길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재 불광천 에서는 잉어와 붕어는 흔하게 볼 수 있고 버들치 종류도 발견되고 있으며, 흰뺨검둥오리와 쇠백로, 백할미새, 청둥오리와 물총새도 찾아온다. 그들을 만날 때 마다 느끼는 반가움, 감사함, 안도감 등의 행복한 감정은 아마도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다. 또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종의 식물들은 녹색의 공간을 열어 두고 소박하고 예쁜 꽃들을 피워내 작은 새들과 곤충을 초대하고 있는데 그들이 찾아옴으로써 이곳은 더욱 아름답고 풍성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과 향수를 선물하고 있다.
한결 풍성하고 신나는 곳이 되어가는 불광천, 나는 얼마 전 북가좌 초등학생 28명을 데리고 하천 수업을 위하여 이 불광천을 찾은 일이 있다.
하천은, “일정한 물길을 가지고 물이 흐르는 곳” 국어사전에 간단하게 설명된 것과 같은 그런 의미뿐만이 아니라, 인체에서 혈관이 영양소를 공급하고 체온조절을 하며 노폐물을 배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천은 지구의 혈관”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하천은 유기물질을 날라 물고기와 생물들을 키워내고 그들의 삶터가 되기도 하고, 하천 주변의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고 물을 정화시키기도하며, 바람 길을 만들어 도시의 공기를 순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과, 인간에게는 심성을 가꾸고 키우는 휴식공간이 된다는 것을 이곳을 통해 느끼게 하고 싶었다. 또한 혈관이 막히면 병이 나고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 것처럼, 하천이 썩고 병들면 지구도 상하고 우리도 함께 상한다는 것을 알려주고도 싶었다.
그렇게 하천을 이해하고 나면 아이들은 아마도 함부로 물을 낭비한다든지,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린다든지, 음식물을 남긴다든지 하는 일들을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우리 주변에 하천이 흐른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아이들과 천천히 불광천을 돌아보며 징검다리를 건너보기도 하고, 소와 여울의 모습도 찾아보고, 갈대 잎으로 배를 만들어 띄워 보기도 하고, 이 곳에 깃들어 사는 식물이나 물고기, 새들을 관찰하며 우리는 함께 “하천 지도”를 만들었다.
선생님,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이 씨앗은 누구의 씨앗인가요?
물고기가 깃들어 사는 곳이 “소”, 그게 바로 웅덩이란 뜻이라고 하셨었죠?
물결이 여울이고 여울은 물 속에 산소를 공급해 주지요?
서양등골나물은 귀화식물 이라고 하셨나요?
지도위에 징검다리를 그려 넣어도 되나요?
쏱아지는 아이들의 질문과 관심들. . . 나는 그 질문과 관심들이 너무나 반갑고 고마웠다. 그날, 아이들이 그려낸 지도 위에는 코스모스도 여뀌도, 강아지풀도, 버들치도, 무성한 억새와 환삼덩굴도 있었고 징검다리도 있었으며 흰뺨검둥오리와 여울의 모습, 하수관과 하천 위를 지나가는 다리도 있었다. 그리고 하천 주변에 이렇게 많은 다양한 이름의 식물과 생물들이 살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과 놀라움도 함께 담겨 있음이 보였고, 안타까운 아쉬움 한 자락도 내게는 함께 보였었다.
그 안타까운 아쉬움 한 자락이란, 예전의 하천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개구리, 맹꽁이, 두꺼비, 도룡뇽 등... 그들의 모습이 아이들의 지도 위에서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물과 뭍을 오가며 산다하여 양서류라 불리우는 그들은, 물과 뭍의 생태계를 연결해주던 중요한 존재였었다. 그러나 물에서 나와 뭍으로 올라왔을 때 그들의 서식공간이 마땅치 않아 도시 주변의 하천에서는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지금, 그들의 모습이 아이들이 그려낸 지도위에 함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까움에 미리 사진으로라도 보여줄 양으로 준비한 개구리와 개구리 알, 두꺼비와 두꺼비 알, 도룡뇽과 도룡뇽 할, 맹꽁이와 맹꽁이 알의 모습을 보여주니 아이들이 반응이 아주 재미있다.
도룡뇽 알은 “똥” 싸 놓은 것 처럼 생겼어요~!
순대 같기도 해요~!
두꺼비 알은 아주 긴 호스 같아요~!
개구리 알은 물컹한 젤리 구름 같아요~!
맹꽁이는 맹꽁하게 생겼어요~!
아이들의 천진스러움과 기발함, 그들만의 눈높이와 재치, 호기심과 상상력, 그들의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나를 큰 소리로 웃게 만든다. 인간의 심성을 가꾸는 곳이 자연이기에, 자연 속에서 뛰어 놀 때 아이들이 몸과 정신은 건강해진다. 자연 속에 깃들면서 아이들의 심성이 순화된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들의 생활 주변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하천이라는 공간, 그 공간이 자연친화적인 공간, 생태적 공간으로 거듭나 우리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키워낼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나는 또 욕심을 내고 있다.
불광천...
악취가 나고 부패해서 복개 천으로 뒤 덮어 버릴 만큼 망가졌었던 곳이 이제는 자연 친화적인 공간으로 바뀌었고, 생태적으로 풍부해지면서 식생 또한 다양해져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지만 이 상태에 머물기에는 아직도 뭔가 좀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욕심이다.
마음껏 욕심을 내어보자면 지금부터 50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바위틈엔 가재가 살고 반딧불이 날아다니며, 여름이면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멱 감고, 가을엔 고운 단풍잎 배가 여울 따라 떠다니고, 겨울이면 썰매타고 팽이 돌리는 그러한 곳, 추억을 가꾸고 어린 시절을 풍부하게 보낼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되돌려 놓고 싶다.
아마도 그런 날은, 하천을 깨끗하게 가꾸고 지키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이 지속적인 실천으로 이어졌을 때에 우리에게 소중한 선물로 반드시 찾아오지 않을까? 바로 그 날, 우리 동네의 하천에서 마음껏 아이들이 뛰놀고 멱 감으며 물고기 잡는 바로 그 날, 행복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어른들도 덩달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누구보다 크게 웃으며 행복해 질 것이리라 생각하며, 나는 나의 욕심이 결코 욕심이 아니기를 소망하고 있다.
글 - 이 은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