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명의 핵심은... 참마음이다...
《말 많고, 생각 많으면 더욱 도에 부합하지 않으며, 말 끊고 생각 끊으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신심명의 구절에서도 말했듯이... 말이 끊기고, 생각이 끊긴 곳이... 참마음이다라는 것이다...
참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은 중생들이 생각을 따라가기 때문이라는 것이 승찬대사의 주요 가르침이다...
이를 토대로... 다음의 글을 해석해 보자...
일종불통(一種不通), 한 가지에 통하지 않으면,
양처실고(兩處失空), 양쪽 다 공덕을 잃으리니, 또는 두 곳에서 모두 보람을 잃으리라...라고 해석들을 대체적으로 함...
견유 몰유(遣有沒有),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종공배공(從空背空), 공을 따르면 공을 등진다...
양처실고(兩處失功)만 빼면 나머지는 해석이 무난하다....
한 가지에 통하지 않으면, 양쪽 다 공덕(?)을 잃는다?.... 무슨 공덕(?)
승찬대사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뜻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한자에 충실하다 보니... 글의 해석이 매끄럽지 못하다...
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야 문맥상 흐름과도 맞고... 매끄럽고, 쉽게 이해가 된다...
일종불통(一種不通) , 한 가지에 통하지 않으면
양처실고(兩處失功) , 두 곳에서 모두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리라...
견유몰유(遣有沒有) ,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종공배공(從空背空) , 공을 따르면, 공을 등진다...
일종불통 (一種不通) , 양처실고(兩處失功)
본래면목(자성)을 보지 못한 채...
양극단의 이분법적인 생각을 따라가면.... 이쪽이든, 저쪽이든..... 두 곳 어디를 선택하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래자성이 생각에 있지 않고... 생각이 끊긴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견유몰유 (遣有沒有)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진다...
있음을 버리는데 왜 있음에 빠질까?.. 있음을 없음의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볼 때...
있음을 버린다면... 없음이 되어야 하는데...
왜 다시 있음에 빠진다고 하였을까?...???... 왜...?
그렇다면 없음도.... 결국... 있음이라는 이야기다....
왜 그럴까요...?
대립하는 두 존재가 본질적으로 볼 때는 둘이 아니라는 것이... 불가에서 보는 불이법이기 때문입니다...
있음과 없음이 결국 본질적으로 같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무엇이 본질인가?...
둘 다... 허상(또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있음과 없음이 허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러한 허상도 하나의 자성에서 나와서 둘이 된 것이므로 결국 둘의 본래의 성품은 같다는 것이 불이법이다.....
있음을 왜 버릴까?
중생들은 있음과 없음이 모두 같은 줄 모르기 때문이다...
같은 줄을 모르고 나타난 현상만 보고 다르니까 버리고, 취하는 것이다... 버리고 다시 똑같은 것을 것을 얻었으니... 버린 것이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상품이 포장지만 다른 게 두 개 있다고 치자.....
어떤 사람이 그중 하나를 구매했다가... 그 상품을 버리고 다시 다른 포장지의 상품을 구매했다면...
그 사람은... 그 상품을... 버린 것인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전히 버린 그 상품을 그 사람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리의 눈으로 보면 다 똑같은 속성을 가진 것이지만, 중생들의 눈에는 다른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승찬대사는 이것을 알아야 실체인 자성( 自性 )에 다가설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종공배공(從空背空), 공을 따르면 공을 등진다...
여기서 空은 앞의 有와 대척점에 있는 개념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문맥상 흐름이 매끄럽습니다...
空을 따른다는 것은 대척점에 있는 有를 버린다는 것인데...
그것은 有나 空이 그 본질이 같다는 점에서 버리거나 취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有를 버렸지만 다시 有에 빠져서... 그 원하는 바를 성취하지 못하였고...
有를 버리고 空을 따랐지만... 다시금 有에 빠진 것과 같아서... 원하는 공을 얻지 못하였다...
앞에 양처실고(兩處失功)을 다시 한번 부연 설명하는 문구라고 보시면 될 듯하다...
따라서 대립되는 양극단의 이분법적 생각으로는...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참마음을 얻을 수 없다...
버리려 해도 안되고, 따르려해도 안된다, 양극단을 떠난 분별을 멈추는 그 자리가 바로 참마음이기 때문이다...
참 마음을 얻기 위해 , 하나의 생각을 버리고, 또 다른 대립되는 생각을 따른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똑같은 생각 속에 빠져버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생각이든, 저런 생각이든... 진리의 견지에서 보면 다 같은 생각일 뿐이다..양극단의 분별을 멈춰야..참마음을 얻을수 있다..
왜냐하면, 참마음은 생각으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참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금강경을 보는게 좋다, 아니다 신심명을 읽는게 좋다...
그러나 금강경을 선택하든, 신심명을 선택하든...참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 허망한 생각일 뿐이기 때문이다...책을 달달 외운다고 해도...생각일 뿐이다...깊은 의미를
되새긴다 해도..그 역시 생각일 뿐이다...
참마음은 생각으로 다가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경이나 신심명은...우리에게 발판을 제공해 준다...생각을 뛰어넘을수 있는...
생각을 뛰어넘을수 있을지 ,없을지는...학인들의 간절함과 시절인연이 묘하게 겹쳐야 일어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