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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4연합 [하나님을 송축하는 예배] 김성현 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계 7: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계 7: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 7: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우리 신앙생활은 평생 동안 이어져야 할, 취소할 수 없는, 또 거짓으로 만들 수 없는 진실한 고백으로 장식해야 할 무대입니다. 아무 그림 없는 하얀 캔버스 종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감사하고 또 감사함으로 영원토록 다행스럽게 생각할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영원토록 후회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신앙생활의 목적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간증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신앙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솔직하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에 처박혀야 될, 가장 먼저 내던져야 마땅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도리어 우리를 살려주셨으니, 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우리는 숨이 붙어 있는 동안 평생 고백해야 될 우리 인생의 의미이자 목적이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영적으로 많이 모자란 점이 있다는 것은 안타깝긴 합니다. 영감이 부족합니다. 영감이 부족한 상태에서 믿음으로 그저 이렇게 주신 말씀을 의지하여서, 약속에 의해서 믿고 가야 합니다. 훤히 하늘을 보고, 천사들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바라고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긴 하지만, 답답하기도 하면서도 그만큼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또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 이 땅에 있는 동안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평생 감사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입니다. 지금 우리가 자기 목숨으로 사는 것이 아니거든요? 내 생명이 아니거든요? 하나님 아들의 생명입니다. 하나님 아들의 생명을 마치 내 것처럼 내 것으로 갖고 살고 있습니다. 소중하게. 또 그 생명은 내게서 떠나지 않고 영원히 내게 있도록 내가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여기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진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질서가 상실되면, 하나님과 부조화 되면, 하나님과의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혹은 이루어졌던 교감이 끊어진다면, 우리는 불행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감하는 자로 바꿔야 합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 우리의 의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있습니다. 그가 내게 이루신 일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데 있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나타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존재는 사실을 내놓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혜에 대한 우리의 진정한 어떤 이해나 진정한 감사, 진정한 깨달음 그 자체가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죄인이 하늘로 가기 위해서는 그 단계를 거쳐가야 합니다. 여기 이미 하나님의 약속으로, 또 법적으로 보장을 받은 이후에 그 나라에 우리가 실제로 올라갈 때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이루어진 자가 구원받은 자입니다. 그것이 십자가 은혜, 그 하나님의 놀라우신 인자하시고 너그러운 그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평생에 중요한 임무는 하나님께 대한 내 감사한 마음이, 그 진실이 그분께 전달되고 있는가? 상달되고 있는가? 또 하나님은 그러한 나를 보시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감, 정말 교감다운 교감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마치 전화를 걸어서 “하나님, 진지 드셨습니까?” 하고 직접적으로는 대화할 수는 없지만, 그가 우리의 마음을 다 보신다고 했습니다. 일방통행의 형식이긴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고 마음을 다 읽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도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들의 생각을 읽으시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나는 예수 믿었으니까 구원받는다!’ 하는 형식적인, 종교적인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원하십니다. 은혜에 감사하는 사랑, 하나님을 향한 진심을 원하는 것이지 종교적인 어떤 형식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형식을 가졌던 자들에 대해 예수께서는 이 땅에 내려오셔서 현장에서 직접 판단하시고, 곤욕 당하시고, 굴욕 당하시고, 모욕 당하시고, 죽임 당하셨습니다. 가짜 마음을, 종교성을, 인간의 사악한 마음을 체험하신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평생이 하나님을 감사할 수 있는, 평생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가 베푸신 사랑이 반사해서 다시 퍼져나가게, 모세의 얼굴에 비쳤던 영광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 영광을 보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엄청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공식적인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온 세상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 오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개인적으로 다 섬기지만, 본격적으로, 공식적 자리를 마련하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아무 자원이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자원 혹은 자본이라면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주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버리지 않고 갖고 계신다는 것이 이 땅에서 우리의 유일한 자본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자본은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겨주는 데 있는 것
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담하여 모두 함께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께 받으시기에 합당해야 합니다. 저는 사람의 목적을 가지고 예배를 거짓으로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굉장히 많은 아픔을 가졌습니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배우고,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보내신 자, 여러분과 나를 위해 보내신 구원자, 우리의 주, 우리의 직속 주인이신 그의 하신 일을 확실히 다시 기억하면서 그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찬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천국에 가서 우리는 기뻐서 영원토록 찬양할 것입니다. 이 땅에 있을 때처럼, 농사를 짓고 할 일이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할 일뿐입니다. 또 건강하고 모든 것이 충만하고 만족스럽습니다. 그저 매일매일 천국에 온 것이 기뻐서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마땅히 영광 받으실 분을 가까이 모시고 그분 얼굴 앞에서 찬양할 것입니다. 비록 이 땅에 있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오늘 하늘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과 똑같이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여기 말씀에 미래에 있을 성도들이 어린양께 찬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처럼,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찬양할 것입니다.
여기서 가짜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만큼 우리를 비참하고 불쌍하게 만드는 것도 없습니다. 혹시 평소에는 기도하다가 시계를 보고 딴짓을 해도 예배할 때만큼은 태도가 달라야 할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하나의 주제로 갖다 놓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족스럽게, 하나님을 흡족하게 하지 않는다면 예배를 왜 합니까? 예배란 ‘하나님,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의 은혜에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 같은 교감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존재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미 생명을 타 냈으니 적당히 해도 됩니까? 망하고 싶으면 예배를 망치면 됩니다. 말로만 ‘예배 성공해야 한다! 예배 성공하자!’ 하지 맙시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말아야 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이 하신 일에 대한 감사로 우리 삶이 가득가득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에 찬양할 때 다른 데 마음이 가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예전에는 찬양할 때 성경을 펼쳐보고, 노트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찬양할 마음,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에 감동받아 뜨겁게 타오르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마음은 다른 데 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전혀 마음 속에 다루지 않고 다른 것에만 뜻이 있는 것을 보고 저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자세가 그나마 우리에게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자본이랄까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진실, 감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마음이 없다면, ‘이 사람아! 어떻게 너는 감사가 없냐! 이 무지한 인간아! 이 무식한! 정말 모자란 인간아!’ 하고 자기를 쳐서라도 은혜 받은 자로서 마땅한 자세를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할 자가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데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처럼 말입니다. 성경에 ‘주님을 찬양한다, 주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하는 말이 자주 나오지 않습니까? 주님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복 있으라, 그의 이름에 복 있으라.’ 우리가 찬양을 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찬송가에 보면 1장부터 7장까지는 예배를 시작하는 ‘송영’으로 되어 있고, 8장부터 55장까지가 다같이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모든 신앙을 포괄하는 찬양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노래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배가 시작되는 것이 그리스도 교회의 전통입니다. 교회가 주일예배를, 공식 예배를 시작하는 데에는 그 목적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우리 모두가 ‘우리는 당신의 십자가의 보혈의 열매의 첫 열매,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여기 있는 자들입니다.’ 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 100% 나타내서 하나님께 합당하게 여겨져야 합니다. ‘하나님, 당신 때문에 나 살아있습니다! 하나님, 당신 때문에 나는 은혜 받습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당신 때문에 나 살아있습니다! 당신의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천국 가기를, 내가 이렇게 포부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능력이시고, 나의 힘이시고, 하나님 때문에 내가 살아있습니다. 만민에게 당신을 전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 외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전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당신은 예배를 왜 드립니까? 혹시 이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예배 드리고 있진 않습니까?
예배의 첫 노래로 찬송가 8장부터 55장까지 중에서 하나를 뽑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일반적인 찬양입니다. 하나님의 그의 이름에 영광 돌리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주일의 주제에 맞춰서 부릅니다. 그래서 설교 전에는 보통 이렇게 찬양을 두 개씩 부르곤 합니다. 두 개만 부르든지, 더 부르든지. 한 곡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전문으로 하는 곡입니다. 주일에 우리가 여기 모여있는 이유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 교회, 하나님의 피로 사신 그 열매들인 우리는 당신을 따라갈 것입니다. 우리 당신 때문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이것을 매주 100% 완벽하게 해야 되는데, 우리는 한가지 찬양만 합니다. 30장을 수십 년간 했습니다. 그리고 예배 전이나 끝에 우리 교회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의 교회가, 그가 세우신 교회, 예수 교회, 갈보리 십자가 교회가 세워져야 되는데 한 교회만 계속 다릅니다. 그러니 다른 교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봅니다. 또 우리는 계속 같은 노래를 오랫동안 하다 보니, 찬양한다 하면서도 아무 감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세뇌가 된 건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압니다. 성경 찬송은 몇 해마다 한 번씩 새롭게 개편이 돼서 나옵니다. 여기 있던 한 육백 개의 노래 중에서, 이를 테면 거의 3분의 1 이상은 빠지고 새로운 것으로 3분의 1이 또 채워집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면 옛날에 있던 노래들은 과거에 묻힙니다. 찬송가의 그 후보권의 범위에 들어가 있는 노래는 수천 곡이라고 봐야 될 것입니다. 찬송가 안에 있는 찬양은 그 중에서 뽑힌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뽑히지 못한 그 나머지 찬송들은 버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쉽게 뽑히지 않은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찬송가에만 있는 것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고, 찬송가 밖에 있는 것은 다 ‘마귀의 노래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저 성서 찬송가 만드시는 분들이 많은 후보곡 중에서 뽑은 것입니다. 많은 후보곡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부르는 노래 중에서 우리가 잠재적으로 부를 수 있는 수천 곡 중에서 꼭 30장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교회들은 우리 교회에서 부르는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상하게 보는 것입니다. 항상 꼭 똑같은 노래만 부르니.
이제 그렇게 하지 말고, 찬송 55장까지 마음대로 골라서 하나님 찬양하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그 은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는데 한 가지 노래로 커버할 수가 없습니다. 표현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이렇게 55장까지 중에서 하나 뽑고, 또 그 다음 주에는 또 바꾸고, 또 바꾸기도 합니다. 계속하기도 하고. 그런데 우리는 워낙 한 가지만 계속하기를 고집하던 상황이기 때문에 한 노래를 몇 주 지금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찬송가 하나 하자 하는 데에도, 꼭 한 가지만 해야 된다는 대한 강박관념이 있는 분들의 공격으로 굉장히 고난을 받았습니다. 성도들은 ‘오늘은 이거구나.’ 하고 “거룩 거룩 거룩하신~” 하고 쉽게 부르지만, 저는 이것이 그날 우리 모두의 심령을 천국에 올리고, 하늘의 광명이 쏟아지길 간절히 바라고 고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대로 할지 모르지만, 저는 너무너무 초조합니다. 육신이 썩어 들어가듯이 그냥 배 속에서 신물이 쫙쫙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고민하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요새 새롭게 하게 된 노래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라는 곡입니다. 그 찬양의 가사는 세계 최고입니다. 설명하려면 한두 시간 가지고 안 됩니다. 누가 썼을까요? 세계 최고의 찬송 가사 작곡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신앙인 중에 하나이고, 이 세상에서 이렇다 할 지성인인 ‘찰스 웨슬리’가 쓴 것입니다. 그는 옥스포드에서 교육받은 사람으로서 존 웨슬리의 동생인데, 제가 아는 찬송가 작곡가 중에 세계 최고입니다.
찰스 웨슬리는 찬송가 가사를 쓰는데, 세상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성경이 다 없어진다면, 이 사람의 찬송과 시에서 다시 성경을 추출해서 만들 수 있다.’ 그 정도로 그의 가사는 완전히 성경적이고 복음적이고 은혜가 충만합니다. 겸손하면서 따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훌륭하게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꿰뚫고 있고 엄청난 감동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입니다. 1700년대에 살았던, 한 250년 전 사람입니다.
그가 쓴 가사들 가운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내 주는 살아 계시고~’ (16장),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23장), ‘만유의 주 앞에~ 다 찬양하여라~’(22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15장), ‘오랫동안 기다리던 주님 강림하셔서’(105장) ‘천사 찬송하기를 거룩하신 구주께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126장) ‘웬 일인가 내 형제여~ 주 아니 믿다가’(522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280장) ‘나 맡은 본분은 구주를 섬기며’(595장) 등이 다 찰스 웨슬리가 쓴 가사입니다. 또한 ‘송축해 내 영혼 내 영혼아 거룩하신 이름~이전에 없었던 노래로 나 주님을 찬양해~’ 10,000 reasons(만 가지 이유), 라는 제목의 찬양도 찰스 웨슬리의 시로 만들어진 찬양입니다.
저는 영국에 있는 동안, 고향을 많이 그리워했습니다. ‘이거… 정말 이거 너무 심하다. 이거 좀 견디기가 만만치 않구나.’ 그래도 고향을 생각하며 참았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내 교회가 기다리고 있다. 나는 내 교회에 돌아가고, 내 사랑하는 내 형제들에게 돌아가리라.’ 하면서 제가 참아냈습니다. 도전을 견뎌내고, 불가능할 것을 해낸 것입니다. ‘내 고향을 생각하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돌아보니까 그게 전혀 아니었기는 했지만. 그때는 모든 시간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갔는데 찰스 웨슬리 찬송이 나왔습니다. 55장의 이 가사인데, 가사가 우리 말로 번역을 하면서 음절 수를 많이 줄이다 보니 내용을 다 담지 못해서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당시 저는 무거운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는데, “Love divine, all loves excelling~” 하고 나오는데 너무 쇼크를 받았습니다. 그냥 팍 깨져버렸습니다. 예배 중간에 제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다 떨어뜨려버렸습니다. 너무너무 은혜 받았습니다. 참 은혜 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영국 사람들을 보면서, 교회에서도, ‘정말 영적으로 뭘 모르는구나. 무식하구나.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근데 그날 그런 생각이 다 깨졌습니다. ‘이 사람들…하나님의 사랑을 잘 받은 사람들이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도 왜곡하지 않고, 조금도 부시지 않고, 조금도 버리지 않고 반듯하게 세운 사람들이구나.’
한국어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 하늘로서 내리사’라고 되어 있는데, 이 찬양의 가사가 영어로 표현할 때 더욱더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훌륭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구나. 천년 이상을 예수님 모시면서 이 나라가 저렇게 무궁하게 발전해 왔던 것은 이런 것과 전혀 무관한 일이 아니구나.’ 그 옥스포드의 건방지고, 콧대 높고,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높고, 엄청난 분들이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평온하게, 뻔뻔스럽게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노래하는데, 너무너무 감동받았습니다.
이 노래가 미국에서는 우리가 보통 부르는 곡조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부르는데, 영국에서는 오늘 우리가 부른 ‘하나님의 크으신 사랑~하늘로서 내에리사~’ 이 곡조로 부릅니다. 저는 이 노래에 하나님과 제 사이에 막혔던 담을 뻥 뚫어주는 체험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 팍팍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그것을 깨닫지 않고 고백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연결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고백하고 알 때에 그의 사랑이 내게 임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엄청 사랑받고 있었구나! 하나님의 사랑은 나를 위해 이렇게 퍼부어졌구나!’
그래서 ‘이렇게 하자. 우리 여기서도 해보자.’ 또 ‘오랫동안~기다리던~’ 하는 찬송가의 곡조에도 이 가사를 씁니다. 이 곡조의 노래는 영국 여왕의 손자인 프린스 윌리엄과 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 결혼 예배 때 첫 찬송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결혼을 열면서 이 나라 지킨 하나님의 그 사랑, 인류에게 그리고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한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영국 사람들을 무시하고 미워했던 데 대해 너무 미안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뭘 알긴 아나?’ 하고 비웃었었는데, 너무너무 회개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들이 받는 사랑을 저는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 곡조로 ‘커먼웰스 데이(Commonwealth Day)’, 영연방 기념일에는 웨스터민스터(Westminster)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때에도 이 찬양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교회에서 이 찬양을 하고, 마가렛 대처, 역사상 제일 유명한 수상 중에 하나인, 여성 수상 마가렛 대처의 장례식 때도 이 노래를 했습니다.
이 찬양을 부르면 이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그 영혼의 묶였던 족쇄가 팍 터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푹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사랑을 이해하지 않으면, 누군가 깨닫게 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무지한, 영적으로 메마른 자가 우리 인간입니다. 그것을 찬송으로 뚫으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할 때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반발하고 거기에 비판하는 사람들 때문에 저는 너무 초조했습니다. 거기에 쓴 에너지도 엄청 될 것입니다. 이 악보를 일일이 그린 한 사람도 있습니다. 악보를 어디 구하고 싶어도 우리는 이단으로 정죄된 교회라 악보 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예배 찬양을 한 가지만 고집하지 말고, 이렇게 평안하게 하기 원합니다. 이 노래 저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딱 깨지고 아무 정체성 없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그렇습니다. 우리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당신 정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삽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원수에 대해 ‘원수를 이기게 하옵소서! 우리의 힘이 되어 주옵소서!’ 하고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려야 합니다.
저는 여러 주 동안 이 곡을 준비했습니다. 한 몇 달 됐습니다. 이 찬양 한번 하기 위해 몇 달을 준비한 것입니다. 오늘 박자가 조금 느렸는데, 그래서 저는 초조했습니다. 혹시 성도들이 싫다 할까 봐 소화가 안 될 정도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55장에 있는 한국어 가사로는 그 내용 전달이 다 되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그 내용을 펼쳐주기 위해서 여러분께 해석을 해서 보여드리려고 갖고 왔습니다. 시적으로 얼마든지 아름답게 하여서 그 시의 능력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겠지만, 제가 몹시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하고, 다만 원래 가사에 있는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이렇게 좀 써왔습니다.
1. Love divine, all loves excel-ling,
1. 하나님의 사랑, 모든 사랑을 뛰어넘는 사랑,
먼저, ‘Love divine, all loves excelling’라고 나오는데, 하나님의 사랑, 모든 사랑 중에 최고의 사랑, 사랑을 다 뛰어넘는 사랑을 말합니다.
Joy of heaven, to earth come down;
하늘의 기쁨 이 땅에 내려오셔서
‘joy of heaven’, 하늘의 기쁨이 누구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의 기쁨 이 땅에 내려오셔서,
Fix in us thy humble dwelling;
우리 안에 낮추어 임하셔서 떠나지 마시고 거처로 정하소서
우리 안에 낮추어서 겸손하게 임하셔서, 여기를 완전히 당신의 거처로 정해 주시옵소서.
All Thy faithful mercies crown!
모든 당신의 변함없이 충실한 자비들로 왕위에 계신
당신의 모든 변함없이 충실한, 항상 자비하신 자비로 왕위에 계신 예수님
Jesu, Thou art all compassion,
예수, 당신은 당신은 긍휼함, 그 자체이시고, 모든 긍휼함이시며
Pure, unbounded love Thou art;
순전하시고 한계가 없으신 사랑이십니다.
순전하시고, 사랑에 한계가 없으신 사랑이십니다.
Visit us with Thy salvation;
당신의 구원으로 우리에게 오소서.
우리에게 당신의 구원을 갖고 오셔서,
Enter every trembling heart
두려워 떠는 모든 마음에 들어오소서
떨고 있는 우리의 두려운 마음에 들어오시옵소서.
2. Breathe, O breathe Thy lov-ing Spirit,
2. 내쉬소서, 내쉬소서, 당신의 사랑의 성령을
2절에, ‘내 쉬소서, 내 쉬소서…’ 예수께서 요한복음에서 제자들 앞에서 숨을 내쉬었던 것처럼, 내쉬소서, 당신의 사랑의 성령을
Into every troubled breast
힘겨워하는 가슴 속에 내쉬어 주소서
모든 힘겨워하는 가슴 속에 내쉬어 주옵소서.
Let us all In Thee inherit;
우리 모두가 당신을 유업으로 받게 하소서
우리 모두가 당신을 유업으로 받게 하옵소서.
Let us find that promised rest.
우리로 그 약속하셨던 안식을 찾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이 약속하셨던 그 안식을 우리로 찾게 하옵소서.
Take away the love of sinning;
죄를 사랑하는 것을 빼앗아가 주옵소서
죄를 사랑하던 우리 옛 사람을 빼앗아가 주옵소서.
Alpha and Omega be;
알파와 오메가 되소서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End of faith, as its Beginning,
믿음의 나중 되소서, 믿음의 시작이셨던 것처럼
믿음의 나중이 되소서. 당신이 믿음의 처음이셨던 것과 같이.
Set our hearts at liberty.
우리의 마음을 자유케 하소서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자유케 하소서
3. Come, Almighty to deliver,
3. 전능하신 이여 구원하러 오소서
3절, 오소서, 전능하신 이시여.
Let us all Thy life receive;
우리 모두가 당신의 은혜를 받게 하소서
당신의 은혜를 받게 하시고,
Suddenly return and never,
홀연히 임하시고 결코
홀연히 임하시고, ‘Suddenly return’, 갑자기 오셔서 결코
Never more Thy temples leave.
결코 당신의 성전들에게서 떠나지 마소서
떠나지 마시고. 어디서 떠나지 말라 하는 것입니까? ‘성전들을’, 우리, 작은 성전들을 떠나지 마시옵소서.
Thee we would be always blessing,
당신을 우리는 언제나 송축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을 항상 축복하고 있을 것입니다. 송축하고 있을 것입니다.
Serve Thee as Thy hosts above,
당신을 섬깁니다. 저 위의 당신의 천사들처럼
마치 당신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당신을 축복하듯이.
Pray and praise Thee with-out ceasing,
당신께 기도하고 당신을 찬양합니다. 쉼없이
그리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멈추지 않고 계속 그렇게 할 것입니다.
Glory in Thy perfect love.
당신의 완전한 사랑에 영광 돌립니다
그리고 영광 돌릴 것입니다. 당신의 완벽한 사랑의 감동 속에 영광 돌릴 것입니다.
4. Finish, then, Thy new creation
4. 그렇다면, 이제 당신의 새 창조를 끝까지 이루어 가소서
4절, ‘Finish, then’, 당신의 창조를 계속 이루어서 마무리 해주옵소서. 다 완성해 주옵소서.
Pure and spotless let us be.
순전하고 흠 없는 우리가 되게 하기 위해
순전하고 흠없는 우리가 되게 하기 위해서.
Let us see Thy great salvation
당신의 위대한 구원을 보게 하소서
당신의 위대한 구원을 보게 하소서.
Perfectly restored in Thee;
당신 안에 완전하게 회복되게 하소서
우리 속에 완벽하게 회복된 것을 보게 하소서
Changed from glory into glory,
변화되게 하소서 영광에서 영광으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하여서, 계속 은혜 받으면서 변화하여서
‘Till in heaven we take our place,
하늘에서 우리의 처소를 가질 때까지
우리가 언제까지? ‘하늘에서 우리의 처소를 가질 때까지.’
‘Till we cast our crowns before Thee,
당신 앞에서 우리의 왕관들을 당신께 벗어드릴 때까지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앞에서, 당신 앞에서 우리 왕관을 벗어 당신에게 드리는 날까지
Lost in wonder, love, and praise.
경이로움과, 사랑 그리고 찬양 속에
흠뻑 빠지게 하소서.
당신의 경이로움과 사랑과 또 찬양 안에 흠뻑 빠져서, ‘lost in’, 너무 그 감흥에 취해서 길을 잃는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경이함과 사랑과 찬양 속에 흠뻑 젖게 하소서.
신앙의 처음부터 끝을 이렇게 한 번에 쭉 찬양한 것이 이 찬양입니다. 그래서 그런 나의 엄청난 충격과 감사함과 그 기대가 많습니다. 우리가 찬양을 한건 데, 이 찬양곡이 딱 짝을 이루니까 더할 나위 없이 정말 저한테는 하늘에서 때리는 거대한 망치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냥 죄가 뚝뚝뚝 떨어져 나가는, 죄가 쥐고 있는 그 힘이 뚝뚝뚝 떨어져 나가는, 하나님의 은혜에 팍 취해버리는, 저에게는 충격적인 찬양곡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해하시고, ‘우리 곡조가 없다.’ ‘이상하다’ 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하나님께 대한 진실, 하나님께 향한 예배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타나는 예배를 드리기 원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드리기 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을 합시다. 예배 드리러 와서 다른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어린 양을 찬양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뜻을 찬양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계획을 찬양, 오늘 우리를 인도해 주심을 찬양하는, 성락교회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대한 자세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데 대해서는 게을리하면서 ‘하나님, 우리 교회 전 세계를 지배하게 하옵소서!’ 하는 말하지 맙시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과 완전히 교감 이루시는 여러분 되시길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평생에 하나님 은혜로 사는 자, 하나님의 은혜의 영향력으로 사는 자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락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교회, 하나님의 핏값에 합당한 자세를 갖는 교회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천국에 갔을 때 만국에서 온 그 흰옷 입은 자들처럼, 모든 어려움과 환란과 도전에서 살아남은 그들처럼, 죽음의 사경에서 살아난 그들처럼, 우리도 천국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찬양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 입니다.
우리 다 같이 기도합시다. 하나님, 오늘도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우리를 받아주시고 우리 예배 속에 하나님 찬송,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가장 마땅한 자세에 확실히 임한 우리들이 되고, 하나님 앞에 마땅한 예배, 마땅한 찬양 드리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고, 우리의 많은 부족한 것을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정하실 은혜에 합당한 자세를 갖고,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큰 기쁨으로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을 평생 찬양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고, 진실함으로 평생이 하나님과 만나는 자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예배당에서는 극소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거기에 한 성도가 있더라도 그 성도의 영혼 속에 임하여 주시옵시고, 리더센터에 있는 우리의 성도들의 영혼 속에 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