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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12.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재산 가운데서 내게 돌아올 몫을 내게 주십시오'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제 것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가서, 거기에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낭비하였다.(눅15:11-13)
11 Jesus went on to say, “There was once a man who had two sons. 12 The younger one said to him, ‘Father, give me my share of the property now.’ So the man divided his property between his two sons. 13 After a few days the younger son sold his part of the property and left home with the money. He went to a country far away, where he wasted his money in reckless living.
오늘은 예수님께서 들려주셨던 탕자 이야기입니다.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상속받을 재산을 먼저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돈을 챙겨서 먼 나라로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그는 그 돈으로 온갖 방탕한 짓을 했습니다.
그것이 떨어지고 노숙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결국 굶어 죽지 않으려고 집을 찾았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를 환대한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동생이 아버지의 환대받는 것을 보고 큰아들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못된 놈을 아들 취급한다며 아버지에게 대들었습니다.
그것이 탕자의 이야기 내용입니다.
저는 일생 설교를 했는데 저에게 설교는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설교란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역이란 영어로 말하면 그것을 듣고 한국말로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더 잘 알아듣도록 말하는 사람의 감정까지 실어주어야 합니다.
설교란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사용하는 죄인의 언어를 통해 말해 주는 통역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의 죄인들에게 쉽게 알려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본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락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 때는 이와 같은 설교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제 눈앞에서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복락을 누릴 유일한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
동산 중앙의 금단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16.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2:16,17)
그 말씀을 들은 아담과 이브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수시로 외웠던 것 같습니다.
밥 먹을 때마다!
그래서 뱀이 이 동산 안의 모든 열매를 다 먹을 수 있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창3:2,3)
얼마나 술술 나오는 고백인가!
그들은 먹지 않을 뿐 아니라 만지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말씀의 순종에 열심인가!
더 단단히 주의한 것 같습니다.
먹다니 만지지도 말라고 강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이 말씀을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로 그들이 이렇게 돌변했을까요?
뱀과 대화를 나누더니 돌변한 것입니다.
그 동산 안에는 사탄이 함께 거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와 대화를 나누느냐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코로나를 보십시오.
누구와 대화하느냐 누구와 악수하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옆에 스쳐 지나기만 해도 일이 터졌습니다.
뱀은 그 대화를 통해서 가짜 뉴스를 전한 것입니다.
4.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5.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3:4,5)
가짜 뉴스라는 바이러스가 사람을 잡았는데 교제를 통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제대로 말씀을 알자고 교회에 모인 것입니다.
이런 모임이 여러분의 생명을 보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을 경계하십시오.
그들이 뱀과 대화하더니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고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에덴에서 쫓겨나 에덴의 동쪽에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에덴에 접근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24. 그를 쫓아내신 다음에, 에덴 동산의 동쪽에 그룹들을 세우시고, 빙빙 도는 불칼을 두셔서,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창3:24)
그래서 그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에 설교가 등장했을 것입니다.
설교란 빙빙 도는 불칼로 막힌 그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전하는 일입니다.
에덴 동쪽은 나이트 클럽에서 술 마시고 춤추는 곳입니다.
저주와 시기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오직 이 문화와 언어만 알고 있습니다.
빙빙 도는 불칼로 막혀서 경험할 수 없는 그 나라를 이 에덴 동쪽의 문화와 언어로 통역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 나라를 죄인들이 충분히 알아 듣도록 전해야 하니 어려운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사람들은 설교를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를 통역하는 줄 압니다.
손양원 목사님을 보십시오.
목사님은 소외된 나병환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시고 옥살이를 했습니다.
일본놈들이 목사님의 가족을 사택에서 쫓아낸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쓰레기통을 뒤지며 연명하셨다고 합니다.
공산당이 그의 아들 둘을 죽였는데 자신의 아들을 죽인 공산당을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그 놈을 한 식탁에 앉혀놓고 같은 반찬에 밥과 국을 떠먹었던 것입니다.
6.25가 터졌을 때 피난을 거부하고 교회를 지키시다가 순교하신 것입니다.
한경직 목사의 경우 일본의 요구에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공산당이 밀려오니 자신의 교회를 놔두고 남으로 피난왔습니다.
군사 독재에 동조하다가 이제는 전두환이를 두고 여호수아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설교는 알아주게 잘했습니다.
목사는 설교와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것입니다.
삶과 설교가 이분화 되면 안됩니다.
그 설교는 위선자를 만들 것입니다.
실은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설교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이 역사를 통해 빙빙 도는 불칼 너머의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역사를 만드셨고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계속 섭리하십니다.
바울은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역사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20.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롬1:19,20)
그러므로 우리 앞에 일어나는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배우는 하나님의 교과서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사를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일을 사탄이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리를 가로 막아서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가로막는 사람의 온갖 불경건함과 불의함을 겨냥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롬1:18)
그 사탄들이 우리와 가까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신 차리고 할 일이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를 정확하게 구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에덴에서도 사탄은 이브에게 살그머니 가짜 뉴스를 전했던 것입니다.
4.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5,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3:4,5)
그러자 죽음의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역사를 왜곡 조작하는 자들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드러내놓고 바이든을 날리면이라고 역사를 조작하는 자들이 에덴의 뱀입니다.
서류를 파쇄해서 역사를 조작하는 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뉴라이트 목사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독립기념관 관장도 목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학교 교수라나?
성경은 딱 하나의 주제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늙은 김 두레, 김 극동 혹은 오 사랑 목사인가?
그들이 앞장서서 불의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기도해서 벌떡 일어나는 일에 신경을 쓰게 하고 모조리 쓰러져 뒹굴게 하는.......
온통 거기에 신경을 빼앗기게 하는 가짜 뉴스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마7:22,23)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불의와 대항해야 합니다.
지금 주일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성경이라는 역사책을 두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가정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수많은 아버지와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예로 드신 그 식구도 틀림없이 예수님과 같은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1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11 Jesus went on to say, “There was once a man who had two sons.
예수님은 이렇게 에덴 동쪽에 살고 있던 두 아들을 가진 집안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개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거창에도 아들 둘 가지 집이 흔할 것입니다.
그 집 이야기입니다.
이 예수님의 이야기에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탕자입니다.
그는 아주 못된 짓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입니다.
그 파렴치한 비윤리적 행위를 통해서 결국 아버지를 제대로 알아본 것입니다.
창녀와 모든 재산을 날리고 나서 돼지우리에서 사료를 훔쳐먹다가 주인의 발길에 채인 것입니다.
그 때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아버지집을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 돌아와서 구원의 잔치를 경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놀라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세상 에덴의 동쪽에는 나쁜 놈들은 여지없이 감옥에 가고 좋은 사람은 상을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나라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나쁜 일을 하면 감옥 가고 좋은 일을 하면 상을 받은 나라가 아닙니다.
아버지를 제대로 알아본 사람이 구원의 잔칫상을 받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둘째 등장 인물은 탕자의 형입니다.
그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나쁜 일은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쉬지 않고 아버지를 위해 봉사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첫째 아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 아버지의 구원 잔치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잔치 자리에서 아버지께 소리를 지르며 아버지와 다투었는데 그의 열심 있는 봉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큰소리를 칠 수 있었습니다.
그도 제 동생처럼 술이나 퍼마셨다면 그렇게 아버지께 대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과 정말 달랐습니다.
그의 선행이 거침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등장인물인데 그의 아버지입니다.
제가 제주도 교회에서 경험한 것입니다.
집사님의 아들이 고등학교 때인가 갑자기 사라진 것입니다.
도무지 십여년간 연락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아들이 돌아온 것입니다.
어느날 밤에 아들이 아버지하고 문을 두드렸는데 어떤 아버지가 “야, 이 나쁜 놈아” 하겠습니까?
껴안고 울다가 밥이나 제대로 먹었냐 하고 밥부터 챙겨주었을 것입니다.
바로 성경의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아들과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둘째 아들의 행위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무슨 짓을 했어도 아버지에게 그는 여전히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중요한 것을 내 아들이라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이 문제였습니다.
그는 제 착한 일들을 내세우면서 저놈은 창녀와 어울려서 아버지 재산을 삼켜버린 놈이라고 불렀습니다.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형은 제 아버지를 주인으로 여기면 섬겼던 것입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식의 순종을 하면서 자신이 내세울 의를 성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 나는 증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3.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하지 않았습니다.(롬10:2,3)
예수님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 두 아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그 관계를 부인했던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그 불의를 인해서 아버지를 떠나갔습니다.
불의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아들은 그의 선행을 인해서 관계를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의 관계 부인이 더 치명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우리가 수시로 경험하는 이 세상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소통을 위해서 우리도 잘 아는 두 아들 가진 한 가정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안에서 이와 꼭 반대의 설교를 해 댑니다.
자신의 소욕 즉 세상의 뜻을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꼬박 속는 것입니다.
부자가 복이 있는데 아브라함이 부자였다는 둥
처음에는 작은 식당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식당 체인점을 내게 하셨다는 둥
여러분의 세상보장을 성경을 통해 확인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의 이야기를 끌어다가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성경을 가져다가 세속의 수단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세의 징조입니다.
5. 그리고 마음이 썩고 진리를 잃어서, 경건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 끊임없는 알력이 생깁니다.(딤전6:5)
이 탕자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요구했습니다.
12. '아버지, 재산 가운데서 내게 돌아올 몫을 내게 주십시오'
12 ‘Father, give me my share of the property now.’
그의 당장 관심사는 돈이었습니다.
그 아들에게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이트클럽에 들어가는 입장료입니다.
봄에 모내기를 하지 않은 사람은 가을에 수확할 벼가 없습니다.
수 만년 사계절이 반복되면서 똑같은 하나님의 교훈이 반복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역사를 통해서 수없이 교훈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수확해 놓은 벼를 약탈해 가는 일본놈 순사의 역사를 배운 것인가?
뉴라이트 역사관인 것 같습니다.
그는 세상을 대충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일생 모아둔 재산을 양심 없이 요구한 것입니다.
돈만 있으면 다 된다고 여긴 것입니다.
실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둘째 아들과 같은 모순적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간이 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빚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존재는 여러분 노력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죽음에 내다 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값을 주시고 여러분을 다시 사신 것입니다.
19. 여러분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여러분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20.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고전6:19,20)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제 멋대로 살려고 그 아들이 제 몫을 요구했을 때 아버지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이 놈이 무엇을 계획하고 돈을 요구하는지 아버지는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입니다.
아버지는 그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의 이런 수용의 태도는 그가 이제 아들을 버렸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이 아들이 떠난 그 날부터 내내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대문 앞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아들이 떠난 곳을 바라보면서.......
아버지가 이렇게 무모한 일을 택한 것은 아들을 막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론이라고 할지 모릅니다.
아들은 시행착오를 경험해야했던 것입니다.
그 경험 후에 아들이 제 주소지를 찾아온 것입니다.
둘째 아들에게 돼지 우리는 교회였습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대문 앞에서 아들을 기다리면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그는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외에 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 살려주세요.
우리 아들 살려주세요.”
아버지가 간절히 기도 했을 때 둘째 아들은 돼지 사료를 퍼 먹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멘 했을 때 주인이 둘째 아들을 걷어찼던 것입니다.
돼지 똥으로 팍 꼬꾸라졌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아버지가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이 세상 역사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아버지의 기도는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돼지우리에서 돼지 사료를 훔쳐 먹고 그것을 깨닫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두들겨 맞고 병원 침상에서 하나님 하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가 있으니 헷갈리는 것입니다.
그의 형은 정말로 아버지를 제대로 봉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형이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12. 그래서 아버지는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2 So the man divided his property between his two sons.
못된 동생이 제 몫을 챙겨간 통에 그 나머지가 자신의 몫으로 정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동생이 집을 떠날 때 아버지가 재산을 둘로 갈라 주었습니다.
그러니 남은 모든 재산은 형의 것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자신의 재산으로 동생에게 잔치를 베푼 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형의 주장은 맞는 것입니다.
동생은 아버지의 돈을 창녀와 삼켜버렸습니다.
집에 남아있는 그의 재산은 없었습니다.
동생은 아버지의 집에서 어떤 권리 주장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의 형처럼 항시 맞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하나님과 적대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맞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맞는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지옥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정말 이상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형이셨습니다.
죄인인 우리 때문에 옴팍 형벌을 당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일은 주님께서 당하실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하는 것이지 수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도 그 옳은 자신의 주장을 놓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둘째는 일사분란하게 제 일을 처리해 갔습니다.
먼저 제 상속을 챙기더니
13.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제 것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가서,
13 After a few days the younger son sold his part of the property and left home with the money.
그는 아버지가 40년 두고 모은 재산을 며칠 사이에 주머니에 들어갈 수표 한 장으로 정리했습니다.
밭은 반값에 내놓았습니다.
논과 집은 30%만 돈으로 챙겼습니다.
그랬으니 며칠만에 그 일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것을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부담스러운 아버지의 눈을 피해서 멀리 떠났습니다.
13. 거기에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낭비하였다.
13 He went to a country far away, where he wasted his money in reckless living.
그가 거기에서 한 일은 허랑방탕하는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원했던 일이었습니다.
도둑놈도 밤에 제 일하러 가면서 자식에게는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되라고 한답니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자신이 목사님이 된 것은 형님 때문이었는데 형님은 깡패 두목이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물건을 훔쳤는데 그것을 알고 깡패 형이 무섭게 혼을 낸 것입니다.
교회 가면 착해진다는 말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형이 그에게 “야 임마, 너 이리 와! 물건을 슬쩍 했다면서. 이번 주부터 너 교회 안 가면 죽을 줄 알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깡패 두목 형이 무서워서 교회 다니다가 목사가 된 것입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그 말씀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몸을 그렇게 잘 안다면 왜 의사에게 가서 자신의 몸을 물어봅니까?
맹장에 고장 났는지 폐에 염증이 있는지.......
제 몸을 자신이 잘 알텐데.......
나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 나를 훤히 아십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진정성을 가지고 계신 분도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 깡패 형은 동생이 물건을 훔치는 것의 뜻을 동생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깡패 형은 동생 목사님을 더 진정성을 가지고 강제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형은 뺏은 돈으로 동생 신학교 학비도 대주고.......
탕자의 아버지도 아들의 입장에서 아들을 아들보다 더 잘 알고 조언했던 것입니다.
방탕하며 살지말라고 조언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조언이 너무 싫은 나머지 그는 돈을 챙겨서 먼 나라로 간 것입니다.
그 때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께서 그 위에 계신다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의 아들을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아들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우리에 대한 더 큰 진정성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