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 긴급 사태
2022.11.16.
바리
지난주 금요일에 파스타를 만들어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토마토 파스타 소스의 유통기한은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그날도 밤 열 시가 가까워지도록 침대에 누워 유튜브의 짧은 영상을 휙휙 넘기고 있었다. 불편하게 허리를 굽히고 앉은 자세 그대로 세 시간이 지났던가. 아무것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난달에 다니기 시작한 토익 학원에서 내준 숙제 다섯 페이지와 미루고 미뤄 day6 까지 밀린 단어장, 끝까지 읽지 못하고 중간에 책갈피가 꽂힌 책이 네 권과 돈을 미리 내고 정기구독한 두툼한 문학 잡지 두 권, ‘나중에 보기’ 재생목록에 넣어둔 ‘나를 위한 20분 하타 요가’, 일기장에 쓰다 만 영화 감상문과 어젯밤의 일기, 친구가 꼭 보라고 추천해준 세 시간짜리 다큐멘터리. 쌓여있는 설거짓거리, 환불하고 싶은 후드티와 끊어진 휴대폰 충전기와 염증이 돋은 잇몸.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앞뒤도 없이 뒤섞여 있었다.
계속해서 짧은 영상을 생각없이 내린다. 무릎이 간지러워 벅벅 긁다가 따가운 느낌에 잠옷 바지를 걷어 올리니 무릎이 벌겋게 부어 있다. 자전거를 타다가 크게 넘어져 찢어진 무릎에는 꾸준히 발라야 할 연고를 바르지 않아 딱지가 지저분하게 앉았다. 주변의 살갗은 퍼석하게 갈라져 있다. 정신없이 주제를 바꿔대는 짧은 영상들 틈에 30초로 요약한 파스타 만들기 영상이 뜬다. 과장된 목소리의 남자가 말한다. “양파가 투명해지면~ 면수를 자박하게 붓고옹~ 파스타 면을 넣으세요옹~” 영상 속에는 누군가의 양손이 나타나 먹음직스러운 파스타를 두 배속으로 완성한다. 그제서야 하루종일 한 끼도 안 먹었다는 것이 떠오른다.
영상을 보고 직접 만들었던 상한 파스타는 그 날의 첫 끼니였다. 점심을 거를 때만 해도 그닥 허기를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면을 삶으려 냄비를 가스 불에 얹으니 배가 터지게 먹고 싶다는 욕망이 훅 샘솟았다. 본능적으로 평소 먹는 양의 두 배에 가까운 양의 면을 삶았다. 원래 만들어 먹던 대로 양파를 채썰어 넣고 마늘 한 줌을 잘게 편썰어 노릇하게 볶았다. 프라이팬에 파스타 소스를 들이부었다. 뜨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파스타 한 대접을 허겁지겁 급하게도 먹었다. 첫 입을 먹었을 때 어랏, 맛이 조금 밍밍한가, 아니 이상한가,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얼핏 스쳤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몇 입을 더 먹다 보니 뜨끈하니 먹을만 했다. 크게 한 젓가락을 푹푹 퍼서 삼킬 때마다 배가 든든하게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새콤한 소스가 오묘하게 맛도 있었다. 평소 같으면 남겼을 양을 그날따라 전부 해치웠다. 졸음이 쏟아졌다.
가득 찬 배에 양 손바닥을 얹고 침대에 누웠다. 밤 12시가 가까워지는데도 여전히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뒤섞여 머릿속을 떠다닌다. 잠을 자야 하는데 해내지 못한 것들이 발목을 붙잡는다. 눈이 감기는 와중에도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무언가를 해야할 것만 같다. 그러자 마음이 툭,하고 끊어지는 느낌이 든다. 휴대폰을 켜서 하늘 위로 무한히 점프해 올라가는 단순 반복 게임을 튼다. 귀여운 녹색 외계인이 뿅, 뿅, 소리를 내며 하늘로 올라간다. 외계인이 점프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이다. 마음도 텅 빈 것처럼 공허하다. 이 게임을 틀었다는 것은 파업 직전이라는 신호이며 긴급 구호 요청이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를 알아먹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날부로 크게 탈이 나서 이틀을 내리 앓았다. 상한 파스타를 먹은 다음 날 국어사 전공 수업을 듣는데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변의 온갖 소음이 웅얼웅얼 뭉개졌다. 동해 바다 한 가운데의 출렁이는 돛단배에 올라타 파도를 정면으로 들이받으며 울렁거리는 멀미를 견디는 느낌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남은 수업을 내팽개치고 병원으로 향했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의 짙은 향수 냄새, 길거리 족발집에서 풍기는 족발 냄새, 심지어는 내 옷에서 미세하게 나는 꿉꿉한 냄새까지도 모두 역하게 느껴졌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반동으로 몸이 흔들리는 것이 마치 360도 회전하는 놀이기구에 타 있는 것처럼 매스껍게 느껴졌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고통에 대해 생각했다. ‘배가 찌르듯이 아파요, 아니다. 그보다는 쪼이듯이 아파요, 아니, 쥐어짜는 것처럼? 아닌가... 빵빵하게 부푸는 것처럼?’ 남은 다섯 정거장동안 내 아픔을 설명할 완벽한 표현을 찾고 있었다. 병원에 가면 내가 얼마나 아픈지 최대한 자세하고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우욱, 우욱, 하고 헛구역질이 나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집 앞 상가의 엔젤 소아청소년과에 도착했다. 노란색과 하늘색으로 꾸며진 자그마한 병원에는 엄마의 등에 업히거나 손을 잡고 따라온 작은 아이들 서너 명이 저마다의 이유로 찡얼대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틈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렸다. 온몸을 멸균시킬 것만 같은 차가운 소독약 냄새를 맡으며 잠시 가만히 앉아 있으니 매스꺼웠던 속이 좀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문득 나풀거리는 아이들 틈에 고인돌처럼 묵직하게 자리잡고 앉아 있는 나의 몸집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나도 저만할 때부터 할머니나 엄마의 손을 잡고 이곳에 오곤 했었다. 코끼리 모양의 비염 치료 기구로 치료받기도 하고 주사를 맞으면 찐득한 막대 사탕도 받았었다. 문득 내가 입고 있는 부드러운 남색 코트와 검은 가방 속의 빼곡한 국어사 전공 책과 프라이탁 매장에서 직접 산 6만 원짜리 빨간색 지갑, 내 이름으로 된 국민은행 체크카드와 그 안에 든 적당한 돈 같은 것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차례가 되어 안으로 들어가니 나를 어릴 때부터 봐 온 의사가 화면에 무언가를 열심히 타자로 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눈을 화면에 고정시킨 채 고개를 끄덕이며 내 증상을 들었다. 의사는 식중독같은 거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의사가 나의 상태에 ‘식중독 같은 거’라는 이름을 붙여주니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그는 꾸룩대는 배에 청진기를 갖다 대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청진기를 빼고 배의 왼쪽을 두 번 통통, 오른쪽을 두 번 통통 쳐보기도 하다가 “오른쪽이 더 아프거나 그러진 않죠? 그럼 맹장염을 의심해야 하거든요”라고 말했다. 병원에 올 때마다 내게 ‘그래, 이번에는 어디가 아파서 왔지?’라고 묻던 사람이 오늘따라 정중하게 존댓말을 했다. 왼쪽이 더 아픈 것도 같고 오른쪽이 더 아픈 것도 같아서 헷갈렸지만 “네 괜찮아요”라는 말이 나왔다. 괜찮다고 말하니 괜찮은 것도 같았다. 의사는 우유나 커피를 먹지 말고 미음이나 죽을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난 이미 그날 아침에 믹스커피를 한 잔 타 마셨고, 점심에는 이디야 카페의 따듯한 오곡 라떼를 먹은 상태였다.
식사를 거르거나 본죽에서 시킨 야채죽을 덜어 먹으며 며칠을 보냈다. 몸이 회복되면서 기운이 나고 허기가 지며 식욕이 돋는다. 배부르게 죽을 먹었는데도 해물 떡볶이나 김치볶음밥 같은 것이 먹고 싶다. 분명 금세 다시 탈이 날 것을 알면서 배달 어플을 켜서 떡볶이를 검색해본다. 어릴 적에도 꼭 크게 탈이 나면 매운 라면 같은 것이 먹고 싶었다. 할머니에게 라면이 먹고 싶다고 말하면 할머니는 뭐라도 먹어야 한다며 라면을 끓여주려고 했고,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말리면서 뜨거운 계란죽을 끓여주었다. 길게 앓을 적엔 하루고 이틀이고 누워서 내키는 대로 시간을 보냈다. 쇼파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투니버스 만화영화를 서너 시간씩 보거나, 침대에 누워 흰 종이에 커다란 집 구조을 그리고 그 위에 표정 스티커를 붙이며 놀았다. 그렇게 뜻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면 몸은 곧 제자리를 찾았다.
배달 어플을 끄고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쉰다. 으슬으슬한 겨울 초입의 냉기에 발이 시렵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해야 한다. 머리카락은 축축함이 남지 않게 바싹 말린다. 퉁퉁 부은 무릎의 상처에는 연고를 잔뜩 바른다. 두툼한 겨울 잠옷을 꺼내 입는다. 찬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부엌의 창문을 꼼꼼히 닫는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컵을 꺼낸다. 식탁에 흩어진 약 봉투와 빈 물컵을 정리한다. 물이 뜨거운 김을 내며 끓어오른다. 물이 끓자 커피포트는 자동으로 탁 소리를 내며 전원이 꺼진다. 바글바글 끓던 물이 차츰 잠잠해진다. 힘을 빼며 가라앉은 뜨거운 물을 컵에 따른다. 물이 차가운 컵에 닿으며 파아아, 소리가 난다. 컵을 들고 편안한 곳에 가서 앉는다. 차나 커피를 타면 급하게 홀짝이며 맛보고 싶어지지만 뜨거운 물을 마실 때에는 천천히 김을 식히게 된다. 가만히 물이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따뜻한 물을 마시며 천천히 온몸에 따뜻한 열이 감돌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