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 소개
삼남길은 조선시대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지역을 총칭하는 삼남대로로 해남-강진-광주-익산-천안-서울을 잇는 1,000리 길을 말한다. 경기옛길은 역사적 고증을 토대로 원형을 밝혀 지역의 문화유산을 도보길로 연결한 새로운 형태의 역사문화탐방로다.
조선시대에는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있다. 이 중 경기도를 지나는 주요 6개의 도로망은 제1로인 의주로를 시작으로 시계방향으로 경흥로ㆍ평해로ㆍ영남로ㆍ삼남로ㆍ강화로가 있다.
이러한 원형길을 바탕으로 새롭게 조성한 ‘경기옛길’ 중 2013년 5월 삼남길 경기도 전체 구간이 개통되었다. 경기옛길에는 지역의 문화유산과 민담ㆍ설화ㆍ지명유래와 같은 스토리텔링이 곳곳에 녹아있어 길을 걸으며 역사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영남대로
조선시대에 사용된 6대로 중 주요간선도로의 하나로 서울과 부산을 잇는 최단거리의 노선을 '영남대로' 또는 '동래로'라고 불렀다. 문경새재(643m)를 통과한 후 상주에서 대구를 경유하여 부산진에 이르는 이 도로는 현재 경기도의 행정구역 상으로는 성남, 용인, 안성, 이천을 경유한다. 한강유역과 낙동강유역의 교통은 약 2세기 중엽부터 활발했던 것으로 보이며, 삼국통일 이후 경주를 중심으로 교통망이 본격적으로 정비되면서 영남대로가 본격적으로 성립되었다. 조선시대에 한양을 중심으로 하는 도로망이 체계화되면서 영남대로도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되었으나, 조선초기에는 충주, 말기에는 청주를 경유하여 문경새재를 넘는 것으로 노선이 일부 변화하게 되었다. 영남대로의 연장선은 서울에서 의주에 이르는 의주대로(관서대로)다. '의주-서울-부산'을 잇는 직선은 조선의 5대 도시 한양, 평양, 개성, 충주 상주를 비롯하여 의주, 황주, 광주, 선산, 대구, 밀양, 동래 등의 도시가 위치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간선도로였다. 또한 영남대로와 의주대로를 통해 일본으로의 통신사와 중국으로의 연행사가 왕래하였다. 영남대로는 국제적인 문화와 경제 교류의 허브로서 동아시아 문화가 왕래한 핵심적인 루트였다
잊은 터로 불리게 된 천주교 순교성지, 죽산성지
죽산성지순례길은 천주교 탄압이 극심했던 시기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닌 길이다. 죽산면소재지를 출발하여 죽산성지에 이르면 넓고 아름답게 조성되었지만, 슬픈 순교성지를 통과하게 된다. 죽산성지를 지나면 일죽면의 넓은 들을 지나게 되는데, 멀리 보이는 성당 건축물과 함께 이국적인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장암리, 화봉리, 금산리까지 이어지는 들길은 영남대로 주변에 있던 여러 재미있는 전설과 민담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죽산면소재지에서 출발!
다리를 건너서 좌측 길로 접어든다.
끝없이 이어진 들길 끝에 보이는 산들은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이다.
벼 수확이 끝난 들판이 황량하기만 하다.
굴다리를 지나면 마을길을 만난다.
나무 사이로 난 숲길 안에 죽산성지가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겟세마니 동산을 재현 해 놓은 조형물이다.
성지 안 공원이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성역으로 들어가는 문이 장엄하다.
아직도 고통이 모자라(죽산 이진터에서) <김영수>
땅 기우는 고문도
시원한 바람일 수 있는 것입니까
하늘은 맑고 햇살은 곱습니다
나는 침묵 투명한 땅에서
캄캄히 나의 삶 들여다봅니다
캄캄히 나의 죽음 들여다봅니다
나는 아직도 고통이 모자라
피 맑지 못한 기도는
여전히 구름 뚫지 못하는데
진정 나의 사랑은 어느 높이에서
잠을 깨고 있는 것입니까
멀리 지평선 이루는 숨결
아득히 약속 밝히는 기억
부질없이 떠돌았던 나의 젊음도
이제는 밝은 파문 일으키는
작은 죽음 하나 꿈꿀 때 되었습니라
천주교 4대 박해 중 하나인 병인박해(1866년) 때 많은 천주교인들은 죽산관아에서 참혹한 고문을 받다가 이곳에 끌려와 순교하였다.
순교지묘
죽산에서는 1866년 병인박해부터 1871년 신미양요 때까지 스물 네 명이 피를 흘리며 신앙을 증거하고 하느님께 목숨을 바쳤다.
성지를 둘러보고 숙연한 마음으로 다시 길을 나선다.
길을 걷가보면 우사를 많이 만나게 된다.
다시 들길을 걷는다.
며느리의 소원을 이뤄준 갓바위
어느 부잣집 며느리가 소원을 하나 말해보라는 스님에게 '제 손에 물이 마르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는데, 스님이 집 앞에 세워진 커다란 바위 위의 갓모양이 이 집 부의 원천이라고 생각하여 '저 바위의 갓이 재앙이 씨앗이니, 갓을 떼어 땅에 묻게 했는데, 그 뒤로는 집이 망해 며느리의 손에 물이 발랐다고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폐교가 된 장암초등학교
1946년에 개교한 공립초등학교였는데, 1998년 일죽초등학교로 통폐합되면서 폐교되어 잡초가 무성하다.
장암이란 이름은 마을에 큰 바위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삼대를 이어져 내려 온 효자 가문 현풍 곽씨 충효각
1665년에 태어난 곽천재는 천성이 정직하고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병이 깊어지자 변을 맛보아 약의 효력을 살피었고 부모가 돌아가시자 여막살이 3년을 죽으로 연명하였는데,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숙종이 정려를 내렸다고 한다.
마늘을 심는 일손이 바쁘다.
생각해 보니, 안성이 포도로도 유명하다.
들길을 지나 차도로 나왔다.
9코스 죽산성지순례길의 종점인 금산리 버스정류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