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우의 「血書」평설 / 홍일표
血書 채상우
가지 않았다 묵호에 가지 않았다 주문진에 가지 않았다 모슬포에 가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햇빛 그러나 가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에 쿠바에 유고슬라비아에 가지 않았다 내 의지는 확고하다 창문을 휙 긋고 떨어지는 새처럼 무진은 남한에도 있고 북한에도 있지만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가지 않았다 약현성당에 가지 않았다 개심사에 가지 않았다 길안에 가지 않았다 길안은 내 고향에서 삼십 리 떨어진 동네 평생 가지 않았다 담배를 사러 가지도 않았고 술을 사러 가지도 않았다 아직은 그리하여 가지 않았다 파리에선 여전히 혁명 중인가 광주에선 몇 구의 시체들이 또 버려지고 있는가 게르니카는 아직 그려지지 않았다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그날이 또 다시 그러나 가지 않았다 애인은 지금 열심히 애무 중일 테지만 가지 않았다 앵초나무에 꽃이 피려 한다 이제 최선이 되려 한다 그러나 가지 않았다 레바논에 사이공에 판지셰르 계곡에 가지 않았다 가지 않았다 못 견디겠네 그러나 가지 않았다 그날 그때 명동에 신촌에 종각에 미도파백화점 앞에 꽃잎 꽃잎들 가지 않았다 그날 오전 열 시 민자당사에 구치소에 그날 새벽 미문화원 앞에, 가지, 않았……다… 그날 아침 그날 저녁 그날 밤 그곳에…… 꽃잎, 꽃잎, 꽃잎들 아직 있다 거기에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가지 않았다 오로지 가지 않았다 가지 않고 있다 가지 않는다 한평생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는 잭카스 펭귄은 펭귄인가 아닌가
끝끝내
*김추자, 「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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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의 힘
두 세계의 충돌이 뜨겁다. 이쪽과 저쪽은 상충하고 대립하는 이미지의 공간이다. 시종 팽팽한 긴장과 장력이 텍스트 안에 가득하고, 독자는 이 작품의 중요한 혈맥인 리듬의 마력에 쉽게 빠져든다. ‘가다’와 ‘가지 않다’는 행위의 대립이고, ‘가야할 곳’과 ‘머물러 있는 곳’은 공간의 대립이다. 시에서 이항대립의 설정은 다분히 전략적이다. 시의 화자는 가야할 곳을 가지 않았다. 여기에는 자기 반성과 자책, 갈등과 비판이 숨어 있다. 그럼 화자가 가야만 했던 곳은 어디인가. 왜 그토록 화자는 과거의 행위를 괴로워하는가. 텍스트 안에 중요한 몇 개의 단서가 배치되어 있다. 쿠바, 유고슬라비아, 아르헨티나, 파리, 광주, 게르니카, 레바논, 사이공, 명동, 신촌, 미문화원, 민자당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곳의 공통점은 모두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이다. 과거 70년대와 80년대를 살아온 세대들에게는 너무나 낯익은 곳이고, 전쟁과 혁명, 군부독재와 맞서 싸우던 민주화 투쟁의 공간이다. 국외의 예로는 스페인 북부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란의 격전지로 독일 공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2000여명이 사망한 비극의 현장이다. 피카소의 대표작 중 하나인 「게르니카」는 전쟁의 참혹함과 광포성을 표현한 반전회화이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통해 고통의 극한, 공포, 연민 등을 표현하면서 파시스트 정부를 비판하였다.
그러나 화자는 역사의 현장에 적극 투신하지 않았고, 현실로부터 비켜서 있었다. 그리고 과거는 완료되지 않았고 하나의 상흔처럼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진다. 아직 그려지지 않은 “게르니카”를 목도하고,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그날이 또 다시” 떠오르지만 화자는 여전히 제3의 위치에 있다. 앵초나무는 꽃을 피우며 “최선”이 되려고 하지만 여전히 화자는 그곳에 가지 않는다. 그러한 자신을 자책하며 화자는 “못 견디겠네”라는 고백을 한다. 그러나 결국 가지 않고 과거 역사의 현장을 떠돌며 지속적으로 반성과 자책을 이어간다. 피카소처럼 그림으로나마 현실의 폭력성을 비판하지도 않았고, 자유와 정의를 위해 투사가 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문한다. “한평생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는 잭카스 펭귄은 펭귄인가 아닌가”라는 절실한 의문은 어딘가 많이 아프다. 그 아픔으로 쓰여진 “혈서”는 비단 화자만의 것은 아닐 것. 동시대를 무력하게 살아온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아픔인 것. 그러므로 “잭카스 펭귄”은 곧 화자이며 너와 나인 것이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리듬이다. “가지 않았다”가 반복적으로 이어지면서 변주되는 운율은 강력한 에너지로 살아 움직이고 한 편의 시를 눈부신 행성으로 도약하게 한다. 리듬은 단순한 기의의 차원을 넘어 커다란 아우라를 거느리게 되고 의미의 파장은 겹겹으로 확산되어 나간다. 이 작품에서 시의 리듬은 신비한 마력을 지닌다. 기의나 기표, 구조 등을 초월하여 생성되는 신비한 힘이 리듬으로부터 발생한다. 얼핏 진부하고 한물간 이야기의 반복으로 넘길 수도 있는 내용이 설득력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은 바로 리듬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채상우 시인은 리듬의 신묘한 힘을 잘 체득한 시인으로 텍스트 내부에서 리듬이 어떻게 시적 에너지로 활성화되고 변환되는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바흐친은 리듬이 의미론과 무관한 것이라고 했지만 운율과 의미가 상호작용과 충돌을 통해 새로운 시적 공간을 개척한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명징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모처럼 리듬이 살아있는 시를 만나 반갑고 기뻤다.
홍일표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