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숨 단잠을 자고 나니, 차는 단양을 지나고 있었다.
丹陽하면 이름부터 감각적이다. 뭔가 기운 있고,
구경거리가 있음직한 느낌의 고장이다. 단양 8경이라고
했듯이 이 곳은 그렇게 아름다운 경관이 있단다.
그 중 도담상봉은 조선 역성혁명의 이론을 제공한 정도전이
담론을 하면서 유적함을 보낸 곳이다. 지금도 절경이니
그 당시는 천하가경였겠다. 충주호에서 영춘 온달산성에
이르는 남한강 상류 풍치는 좋다. 특히 소백산 아래 펼쳐진
전경은 이 나라 중부 내륙의 아름다움의 극치로다. 그러나
품안에 숨겨진 곳이 있으니, 적성면 일대의 경관이다. 굽이굽이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와 물빛은 자연의 예술이고
기기묘묘하게 펼쳐진 바위 형상은 선인들이 사는 경지로다.
이러한 적성 땅 975번 도로를 꿈속을 가듯 헤매이다가
도착한 곳이 문경 동로면 생달리였다. 황장산 아래
심산유곡 마을이다. 산행 준비하고 시진을 찍은 시간이
4시경였다. 안생달리 한백주 양조장은 300여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단다. 이 마을 인심 또한 몇 백년을
이여내려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한동안 허리통으로 고통스런 환자 생활을 했으니 조심스럽게
산을 올라야 했다. 작은 차갓재 길을 따라서
몇 명이 나뉘었다. 어두운 밤길을 전등불 켜고 계곡길을
걸었다. 물소리 들으며 나무와 풀을 헤치면서 길을 찾아서
산을 올랐다. 능선에 가까이 이르니 새소리 벌레 소리가
유난히 났다. 여명 전 새소리는 새날을 재촉하며 하루를
준비하는 희망곡처럼 생생하게 들렸고, 한편으론 불편한 몸,
조심스럽게 걷는 나의 품새를 격려라도
한듯한 행진곡처럼 들렸다. 작은 차갓재에 올라
이정표 표시판에 손을 얹고 한숨을 내쉬었다. 출발 후
첫능선에 올라 숨쉬는 순간은 상쾌하다. 몸과 마음 상태를
정검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기분이 쏴하면 산행길이 열리고
기분이 찜하면 하루길이 찜찜하다.
헬기장을 지나, 마을이 보이는 지점까지는 나무가 빽빽이
들어섰다. 나무사이 난 마루금을 걷는 일은 어느 동화 나라의
숲속 여행을 하는 것 같이 숲터널길이였다. 나무 멀미가 날
지경이로다. 이런 곳을 걸으면 숨쉬기가 조심스럽다.
산소를 아끼는 궁핍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한기롭고 툭터진 바위터에 머물렀다. 차갓재(송전탑)
로 출발한 대사들과 함께 했다.
눈앞에 일어나는 자연 풍광이 장관이다.
산봉우리와 능선 사이사이로 계곡과 계곡 사이사이로
바람의 흐름따라 펼처지는 운해의 움직임은
어린시절 활동 사진을 봤을 때 같이 신기하다.
여명과 함께 펼처지는 운해는
천지의 드라마틱한 조화이고 귀신 같은 신비스러움이
있다. 빠르게 진행되는 운무의 형상은
猛鳥가 먹이 새를 빠르고 힘차게 쫓아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철새가 먹이를 찾아 떼지어 이 곳 저 곳을 신속하게 날으는
鳥舞 형상 같다. 허공에서 산 속으로
산에서 마을 벌판으로 자유자재롭게 움직였다.
이것이야말로 새벽녘 대간선상에서 만이
볼 수 있는 순간의 장면 장면이다.
묏등바위까지는 오르막 길이다. 묏등바위에서 또 다시
암릉이 이여졌다. 암릉 있는 곳에 위험이 있고 위험한 곳에
스릴이 있다. 이 곳이 황장산 오르는 길의 백미로다.
주변에 황장목은 없으나, 금강송이 유명한 곳은 거의 바위 능선이
있다. 바위처럼 단단한 기질을 소나무가 이여 받음일까?
황장산(黃腸山, 1077m)에 올랐다.
黃腸封山이라 했다. 궁궐에서 사용하는
소나무를 보호하는 표시가 封山이니 황장산은
옛부터(숙종 때 표시) 좋은 재목의 소나무가
자랐다는 증거다. 지금은 너른 정상터
옛날에는 황장목을 위해서 공들이고 정성 드린
산의 정기가 서린 곳이다. 함께 모여 정상주를
했다. 정신청청, 기운충만 하소서.
정상주를 마시고 나니 찌뿌린 날씨가 구름 속에서 언듯언 듯
햇살이 퍼졌다. 맑고 푸른 날씨로다.
감투봉(1040m) 지나면서 하늘은 거칠 것 없이 맑아졌다.
우리가 지나온 동로면과 저 멀리 대강면이 아침빛 따라
선연하게 나타났다. 청량한 아침 기운. 발걸음도 가볍게
콧노래도 저절로 나왔다. 하늘의 파란색 산천초목의 초록색은
속세의 속됨을 씻겨 주는 색조다. 마음의 색이렸다.
감루봉에서 황장재 하산길은 퍽 가파랐다. 명산일수록
오르고 내리는 길이 험하고 가파르다. 경순이 딸이
통통 틔듯이 잘도 걷고 잘도 내려 갔다. 모험심은
어릴 때부터 단련된다. 톰소여의 모험이 떠 올랐다.
황장재에서 985봉 오르기 전 너른 바위 위에서
아침을 했다. 동서로 경계가 펼쳐진 곳. 대강면쪽
산자락이 평온하게 보이는 곳. 온산의 木草石化가
우리를 보호하는 포인트에서 상을 차렸다.
안성마춤의 상체로다.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아침.
힘들고 배고프다. 느긋하게 쉬면서 밥을 먹으니
대사들의 재담은 산중을 흔들었다.
아침 밥을 먹은 뒤 岩上시회를 했다. 김지하의
“빗점”과 몇 수를 읊었다. 그 중 한 수를 적어 본다.
중놈은 승년의 머리털 잡고 승년은 중놈의 상투 쥐고
두 끝이 맞맺고 이 왼고 저 왼고 짝자꿍이 쳤는데
뭇 소경이 굿을 보니
어디서 귀 먹은 벙어리는 외다 옳다 하느니
이항복에 관한 얘기 중 하나란다.
풀자하니 내시는 중의 머리까락을 끌어잡고
중은 내시의 불알을 쥐고 큰길 복판에서 서로 싸움질 하는
것이였소.
벌재재를 향하여 가는 마루금은 부드러운 편이였다.
산을 걸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수많은 풀꽃과 나무가
우러진 자연이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지닌 것은 그것이
빛깔과 향기와 달리하는 수많은 생명체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다.
황장산을 휘감듯이 난 길을 가면서 황장산을 처다본다.
유난히 암릉이 많고 밝은 햇살이 비취는 산세다.
양택의 산, 봉산의 地格이로다.
벌재재에 도착 구간 완주할 대사와 이 곳에서 마칠 사람을
분별하고 나는 이 곳에서 차를 타고 저수재로 향했다.
산중에 사는 인간의 삶은 산천초목의 살아감과 같다.
생명체를 유지하며 어울려 살아가는 것.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여가는 삶의 끈질긴 연속성이다.
겹겹산중에 사는 사람들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애환을 삭이면서
굿굿하게 살고 있다. 안생달리의 비탈 마을의 정경
수리봉 아래 방곡리의 모습. 옛 모습 그대로 700m 이상의
고지에 살고 있는 올살리 마을 사람들.
이러한 우리 이웃들이 구석구석
끈질기게 살아 왔기에 우리네 역사가 있고 현재 우리의
삶이 풍성할 것이다. 저수재는 단양과 경북 예천을 잇는 고개다.
저수재 아래 평원에 자리한 소백산 목장이 이국적이며,
이채롭기만 하다. 저수재에서 마즈막 종마가 도착
단양온천에 몸 씻고 이번 구간을 마쳤다.
幻覺 산행이라니
지난 소백산 구간 이후 초암사 인연이 자꾸 떠 올랐다.
허리통증이 악화돼 꼼짝 못했다. 입원 후 수술할 수밖에...
라는 생각에 아연실색했다. 며칠동안 병치레하면서
궁리했다. 청화가 한분을 소개, 치료했다.
1주 병가 냈고, 2주 치료 후 이번 산행을 했다. 꿈같은 산행였다.
보통이면 수술 후 요양 중였을 것이다. 그런데 산을 탔다.
환각 상태가 아니고서는 탈 수 없는 황장산 산행였다.
환각이란, 심리학적으로 실제로 대상이나 자극이
외계에 없음에도 그것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느끼거나 느껴졌다고 생각하는 감각이라 한다.
갈 수 없는 이번 구간을 대사들과 즐겁게 고통없이
함께 했다. 몽상, 몽환 속에서 산행을 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현대 의학의 첨병인
대학병원의 진단이고 보면 나는 환각 속에서
황장산을 올랐다. 인생이란 이럴 수도 있는 가 보다.
복잡한 이 세상, 그저 단순하고 간단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첫댓글환각여행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통증은 겪어보지 않고는 괜찬어? 라는 단순한 질문 가지고는 아픔을 나눌수 없는 거죠.대장님 너무 무리한 산행은 하지마세요.마음으로 환각으로 여행을 무사히 했지만 그뒤의 후유증이 생길까 걱정입니다.가끔은 마음도 빈공간으로 둬야 할때가 있나봅니다.건강하시구요.
첫댓글 환각여행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통증은 겪어보지 않고는 괜찬어? 라는 단순한 질문 가지고는 아픔을 나눌수 없는 거죠.대장님 너무 무리한 산행은 하지마세요.마음으로 환각으로 여행을 무사히 했지만 그뒤의 후유증이 생길까 걱정입니다.가끔은 마음도 빈공간으로 둬야 할때가 있나봅니다.건강하시구요.
--------얍-------여여.